EP.288 288화 - 농담입니다~(2)
“......그래서.”
“응.”
“사실 면접 보러 올 필요도 없었고.”
“응.”
“정장을 챙겨입고 올 필요도 없었다......?”
“으음, 그렇지.”
찌릿-
면접이 모두 끝난 뒤.
유정이 누나와 지연이 누나는 손님용 방에서 합격시킬 사람을 고르고 있었다.
나는 내 사무실에 하린이를 불러 그녀와 따로 이야기를 나눴다.
‘면접 어땠어......? 그, 괜찮았어?’ 하면서 약간 부끄러운 듯 물어보는 하린이한테, 사실은 ‘넝담이었어~ ㅎ’하고 털어놓자, 그녀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나를 노려봤다.
“아니......! 네가 톡 보냈잖아, 이렇게!”
하린이가 휴대폰을 탁, 탁 조작하더니 나와의 톡 화면을 띄워 내 눈앞에 대고 보여주었다.
모지?
확인 사살인가?
[ 나 : 근데, 내일 면접은 몇 시에 봐? ]
[ 진현이 : ㅇ? ]
[ 진현이 : 면접 오게??? ]
[ 나 : 웅 ]
[ 나 : 네가 오라며 ]
[ 나 : 나 진짜 아르바이트 할 거야 ㅡㅡ ]
보니까 어제 그녀와 나눴던 대화가 담겨있었다.
그나저나 톡 배경 화면 이쁘네.
[ 진현이 : ㅋㅋ ]
[ 진현이 : 2시에서 3시 사이? ]
[ 나 : 그 사이 아무 시간에나 가면 돼? ]
[ 진현이 : ㅇㅇ ]
[ 진현이 : 암때나 와도 노상관 ]
그리고 나는 천진현이 아니라 진현이라고 저장돼 있었다.
귀엽다.
[ 나 : 뭐 따로 준비할 건 없나?? ]
[ 진현이 : 음...... ]
[ 진현이 : 이력서 챙겨 오고 ]
[ 진현이 : 면접이니까 옷 깔끔하게 입고 오기? ]
[ 진현이 : 정장 같은 거? ㅎ ]
[ 진현이 : ㅎㅎ ]
[ 나 : ㅇㅋ ]
내가 휴대폰에 적힌 톡 내용을 모두 읽고 하린이를 바라보자, 그녀가 마치 어떻게 생각하냐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생각하긴.
“야, 딱 봐도 농담이잖아.”
“노, 농담이라고......?”
“그래. 아니, 바보도 아니고 면접에. 그것도 친구 아르바이트 면접에 이력서는 몰라도 누가 진짜로 정장을 차려입고-.”
“이잇!”
후웅-
“오소이......!”
거의 매일 델리아와 함께 천리염기공을 수련하는 내가 하린이의 기습 공격 따위를 맞을 리가 없었다.
아예 피해버릴 줄은 몰랐는지, 하린이는 자신의 친구 펀치가 허공을 가르자 아랫입술을 짓씹으며 분한 표정을 했다.
“야, 그렇다고 때리려고 하냐.”
“읏......!”
어허.
옛날 버릇 나오는 건가.
얘 은근히 나를 잘 따랐으면서도, 초딩 때 내가 놀리거나 그러면 막 때리고 했던 기억이 있다.
으윽...... 지금 생각하면 등이 막 쑤시네.
부들부들-
그런데 내가 아니라 하린이가 부들부들 몸을 떨고 있었다.
“즈기여?”
“으으, 나 진짜인 줄 알고 엄청 열심히 준비했다고......!”
하린이는 다시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내게 호소했다.
어쩐지 그런 것 같더라.
질문 하나하나에 아주 유창하게 답하더라고.
“그래도, 친구 찬스로 합격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진짜로 합격하는 게 낫지 않아?”
내가 그렇게 말하자, 하린이가 약간 바보 같은 표정을 지었다.
“어......?”
“왜.”
“나 합격이야?”
“아니, 그럼 불합격이겠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당연히 합격이지라고 말하자, 또 얼굴이 좀 밝아진다.
얘 왜 이래.
안 본 사이에 더 귀여워졌네.
* * *
“그, 근데 꼭 오늘 입어 봐야 돼?”
“당연하지. 기왕 한다고 마음먹은 거, 일찍 하는 게 좋잖아. 안 그래?”
10분 뒤.
하린이와 어찌어찌 이야기를 마친 나는, 그녀에게 오늘 아르바이트 체험을 해보지 않겠냐고 권했다.
“아니면, 오늘 뭐 바빠?”
“바쁜 건 아닌데에......”
“그럼 한 번 해봐. 계약서 쓴 다음에 했는데, 너무 안 맞으면 또 별로잖아.”
“으음...... 그것도 맞아.”
하린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다.
나는 여기서 참을 수 없는 미끼를 던졌다.
“일단은 세 시간. 알바비는 현금으로 바로 줄게. 그리고 체험하면 음료도 마음대로 만들어 먹어볼 수 있어.”
“어, 진짜?”
“응.”
“횟수 제한 같은 거 없어?”
“그런 거 없는데, 그냥 원하는 만큼 먹어도 돼.”
진짜였다.
그래서 지금 아르바이트생들도 꼭 1일 1 음료는 필수적으로 하더라고.
근데 이신아 같은 경우는, 이 복지 때문에 맨날 음료 먹어서 살찌게 됐다고 나한테 적반하장으로 굴기도 한다.
뭐, 농담이겠지만.
“너 저번에 왔을 때 먹어보고 싶은 음료 많다고 했잖아.”
“응.”
“한번 체험하면서 만들어 먹어봐.”
“그으, 럴까......?”
하린이가 확 구미가 당기는 표정을 지었다.
하린이야 뭐, 솔직히 친구가 아니었어도 그냥 아르바이트는 프리패스지.
목소리 좋지, 몸매 대박이지, 얼굴 엄청 예쁘지.
우리 카페는 남자 손님도 꽤 많은데, 진짜 계산하면서 얼굴 한 번 가까이서 보겠다고 오는 사람도 상당히 많았다.
하린이가 있으면 그 힘이 배가 되지 않을까.
게다가 그녀는 내가 아는 한 굉장히 성실하고 머리가 좋다. 아마, 카페 일쯤은 금방금방 잘 배울 거다.
설령 못 배우더라도, 내가 옆에서 가르치면 되니까.
‘가르치면서 호감도도 쌓고.’
음, 존나 완벽한 계획이야.
역시 난 천재가 아닐까.
그나저나 생각해보니 얘 호텔 대표의 딸이잖아.
호텔 대표 딸이 아르바이트?
이거 완전 서민체험 아니야.
“그럼 수락하는 걸로 알고, 지연 누나!”
“어?”
하린이가 멍하니 있는 사이, 나는 바로 지연 누나를 호출했다.
“네에, 불렀어요?”
“오늘 하린이 아르바이트 체험한다고 하는데, 한 3시간 정도. 사이즈 측정해서 제복 맞는 걸로 좀 입혀줘요. 아, 탈의실 사물함도 하나 배정해주시고.”
“아, 알겠습니다.”
“어, 어어?”
뭔가 일이 순식간에 진행되자 하린이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 이쪽은 한지연 매니저님. 아까 인사하면서 봤지?”
“반가워요. 한지연이라고 해요. 주하린씨 맞죠?”
“아, 네에......”
주하린은 얼떨결에 지연 누나와 인사를 나누게 되었고, 그녀의 손에 이끌려 탈의실으로 직행했다.
‘갈아입는 모습을 좀 훔쳐보고 싶기는 하지만......’
그건 다음의 즐거움으로.
‘그런데, 진짜 하린이가 올 줄은 몰랐네.’
원래 오늘은 카페에서 5시 정도까지만 있다가 들어가려고 했는데, 하린이가 왔으니 하린이 체험하는 것 좀 구경하다가, 저녁까지 먹고 들어가면 딱 좋을 것 같았다.
“톡은 남겨 둬야겠지.”
탁, 타닥, 탁-
나는 고개를 주억이고는, 하렘 단톡방에 오늘 퇴근이 좀 늦어질 것 같다고 적었다.
* * *
그리고 같은 시각, 천진현 주택 지하의 파티 룸.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강수정이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으흠, 다 모였지?”‘
“네에!”
강수정의 말에 윤다정이 씩씩하게 답했다. 윤다정 옆에 앉아있던 장예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유정 언니가 없는데?”
“언니는 지금 카페에서 일하잖아.”
“그럼 언니는 빼고?”
“응.”
“시간 다 맞추기가 어려워서, 언니한테는 제가 전해줄게요!”
“그래? 이히~, 우리 다정이 너무 귀여워.”
윤다정의 활기찬 대답에 장예화가 히죽 웃으며 그녀의 볼살을 늘렸다.
“으우...... 하지마요오. 아파요오.”
“왜에, 조금만.”
“흐푸으으......”
“진현이는 지금 안 오는 거 맞지?”
강수정이 델리아를 보며 물었고, 델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오늘은 신규 알바생 면접도 있고 해서, 지금은 안 올 거예요. 단톡에도 방금 퇴근이 좀 늦는다고 올라왔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무엇보다?”
“방금 사메( 사랑의 메신저의 줄임말 )로 물어보니까 주하린이 면접 보러 와서...... 좀 같이 있다 저녁 먹고 들어오겠다고......”
“아.”
“칫.”
“흥.”
델리아가 강수정, 장예화, 윤다정을 둘러보며 말하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세 여자의 표정이 동시에 구겨졌다.
주하린과 정은주는 이미 진현을 제외한 여자들만의 단톡방에서 4주 전부터 요주의 인물로 낙점 찍힌 사람들이었다.
표면상으로는 델리아만이 그 둘이 다음 공략 대상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히로인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강수정이 쯧, 하고 혀를 차며 말했다.
“아무튼, 예쁜 여자라면 사족을 못 써 아주.”
“그러니까, 이러다가 카페 여자애들 다 건드는 거 아니야?”
장예화도 한 발 거들었다. 뒤이어 윤다정이 말했다.
“신아 언니가 특히 위험해 보여요오. 제 생각에는 꼬리 치는 것 같아요!”
“맞아. 아, 그리고 지연 언니도. 유정 언니한테 들어보니까 딱 진현이가 좋아할 행동만 골라서 한다던데. 언젠가 한 번 일 날지도 몰라.”
강수정이나 델리아, 장예화, 윤다정.
넷 중에 둘이나 셋이서 같이 모여 이야기할 기회는 상당히 많지만, 이렇게 모두 모이는 건 단톡이 아니면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다.
때문에 여자들은, 이때다 싶어서 천진현을 신나게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기 시작했다.
“내일은 PC방 아르바이트생도 뽑는다잖아.”
“헤헤헷.”
“야, 넌 웃지 말고.”
“아, 왜에. 크리스탈 PC! 얼마나 멋져!”
“멋진데, 네 이름 단 PC방에서 진현이가 딴 년이랑 이상한 짓 한다고 생각해봐. 그래도 웃음이 나와?”
“......아니.”
“PC방 아르바이트생도 다 여자로 뽑는다며, 분명 예쁜 애들로만 뽑을 텐데......!”
“으으......”
장예화가 이를 갈고, 강수정도 이를 갈았다.
델리아는 평온한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다가 한마디씩 거들었고, 윤다정 또한 가끔 공감하는 부분에 크게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렇게 한창 이야기를 하다가, 윤다정이 셋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으으, 저희 근데 뭐 먹으면서 이야기하면 안 돼요? 좀 배고픈데......”
윤다정의 말에 강수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러자! 지금 음식 차리기에는 시간 걸리니까...... 뭐, 시켜 먹을까?”
“뭐 시키지?”
“피자? 아니면 치킨? 델리아는 뭐 먹고 싶어?”
강수정이 델리아를 보며 묻자, 델리아가 차분하게 말했다.
“둘 다요. 파스타랑 버팔로 윙도 같이.”
“으흐, 내가 그럴 줄 알았어.”
강수정이 히죽 웃었고, 윤다정이 끼어들었다.
“피자 메뉴는 뭐로 해요?”
“음...... 진현이가 포테이토랑 고르곤졸라 좋아하니까, 그거 두 개 포함해서 시키고 몇 조각 냉장고에 넣어두면 어때?”
장예화가 의견을 냈다, 그와 동시에 강수정이 그녀를 흘겨보았다.
“오호라, 방금전까지는 신나게 까놓고 진현이한테 또 좋은 어필 포인트는 다 가져가시겠다?”
“그, 그런 게 아니라아.”
어찌어찌해서 메뉴가 정해졌고, 강수정이 휴대폰으로 결제를 진행했다.
“델리아랑 다정이는 내가 사줄게, 예화 너는 먹은 만큼 계좌로 돈 보내.”
“와아, 치사하다 수정아.”
둘이 잠시 티격태격했지만, 어차피 고등학교 때부터의 친한 친구 사이라는 걸 알기에 윤다정과 델리아는 편안한 표정으로 잠깐의 다툼을 감상했다.
그렇게 가벼운 분위기 속에서 피자와 치킨이 배달 왔고, 테이블 세팅을 전부 완료한 뒤에 돌연 강수정이 헛기침을 시작했다.
“흠흠! 그럼 먹을 것도 다 왔고 사람도 모였으니까.”
그리고 드디어, 본래 넷이 모인 목적인 하렘 대첵 회의가 시작되었다.
“지금부터......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