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 어플-265화 (265/303)

EP.265 265화 - 주인공이 공략당함(5)

“히, 이제 오픈까지 얼마 안 남았네?”

“그렇지. 기대 돼?”

“안 될 수가 있어? 델리아 혼자만 이름 달았을 때 얼마나 질투 났는데.”

수정이가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시선 끝에는 ‘크리스탈 PC’라는 간판이 단아하게 걸려있었다.

아침에 델리아와의 수련을 마치고 소파에 누워 하린이, 은주와 함께 톡을 즐기자, 옆에 있던 수정이가 자꾸 날카로운 눈빛으로 내 배를 콕콕 찔러댔다.

요즘 들어 수정이의 질투가 부쩍 늘었다.

저녁이나 아침에는 줄곧 함께 있지만, 최근에는 나은 어머님을 공략하느라 바빴으니까.

데이트도 꾸준히 하고 있긴 하다만, 그 빈도수가 줄어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아침에 같이 산책이라도 나가자는 수정이의 말에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르바이트생은 구했어?”

“아직. 이제 공고 올리려고.”

컴퓨터 설치나 세팅은 델리아가 도와주기로 했기 때문에, 따로 설치 아르바이트는 구할 필요가 없었다.

“오픈할 때는 나한테 알려줘, 알았지?”

“당연하지.”

즐겁게 웃는 수정이를 데리고, 나는 PC방 구조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어디는 커플석이고, 어디는 대형 모니터고......

인테리어 공사가 끝나 아무도 없는 PC방 안에서도 수정이는 눈을 반짝였다. 간판에 자기 스트리밍 닉네임이 걸린 게 그렇게 좋을까.

분위기가 살짝 묘해질 때는 그녀를 끌어안기도 하고, 말랑한 입술에 입을 맞추기도 했다.

PC방에서 나온 뒤에는 손에 깍지를 끼고 몇 군데를 더 돌아다니며 산책했다. 1시간 반 쯤 지난 뒤, 나는 수정이를 다시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수정이가 볼멘 소리를 내었다.

“으으. 들어가기 싫다.”

“그냥 하루종일 둘이서 데이트할까?”

“어? 진짜?”

“솔깃하면 어떡해. 오늘은 휴방 아니잖아.”

“힝. 그래서 짧방 하려고...... 후우. 요즘 공포겜 요청이 너무 많아서 힘들어.”

수정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마지막으로 내게 가볍게 입을 맞춘 뒤 집 안에 들어갔다.

나는 그대로 카페에 출근했다.

언제나처럼 돈을 불리고 게임도 한두 판 돌려준 다음 시계를 보니, 하린이랑 은주와의 약속 시간까지 한 시간 반도 남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좋아.’

준비는 끝냈다. 거울을 바라본 나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오늘은 옷도 꽤 멋들어지게 차려입었으니까.

막 화려하게 치장한 건 아니고,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깔끔한 인상의 코디라고 해야 할까.

수정이랑 같이 쇼핑한 옷이기도 하고, 어쨌든 내 마음에는 쏙 들었다.

“근데 심심하긴 하다......”

잠시 창밖을 내다보며 멍하니 바깥을 구경하던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제 돈 복사도 막 필사적으로 해야 할 단계는 진작에 지났고, 즐기던 게임인 레전드 리그에서도 최고 랭크에 올라버렸다.

잠시 책상을 손가락으로 탁탁 두들기던 나는 이내 몸을 일으켜 카페 1층으로 내려갔다.

딸랑딸랑-

손님은 여전히 많았다.

아르바이트생은 미소를 지으며 메뉴를 만들고 있었고, 카페에 머물던 손님들은 저마다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디저트나 음료를 맛보고 있었다.

흐뭇해지는 광경이었다. 미소와 함께 홀을 한번 쭉 둘러본 나는 자연스럽게 시선을 바깥으로 향했다.

그리고.

“예화?”

“아, 진현아!”

때마침 문밖에서 날 보며 그렇게 말하는 듯한 예화의 입 모양을 볼 수 있었다.

예화는 얼른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나를 보고 재빠르게 달려오려던 그녀였지만, 순간 이곳이 사람이 많은 카페임을 깨달은 뒤 다시 민망한 표정과 함께 차분히 거리를 좁혔다.

“오늘은 나와 있네?”

예화의 말에 나는 가볍게 웃었다.

“심심해서. 작업하려고?”

“아~니, 그냥. 잠깐 테이크아웃 하려고 들렸어. 너 얼굴도 보고.”

“그래?”

예화가 테이크아웃을 하는 건 꽤 자주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테이크아웃은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예화는 휘낭시에 다섯 개에 더불어 아메리카노까지 다섯 잔을 포장했고.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까지 예화가 커피를 저렇게 많이 포장해간 적은 없었다.

내 눈동자에 떠 있는 궁금증을 느꼈는지 그녀가 베시시 웃으며 말했다.

“부동산 가거든.”

“부동산?”

“응. 오늘 비어 있던 빌라 하나 계약하러 와.”

“아.”

자세히는 몰라도 좋은 일임은 확실하다.

“잘됐네.”

“그치. 층간 소음만 안 내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는데, 그럴까?”

“요즘 이슈잖아. 설마 그러겠어?”

“으음. 만약 그렇다면 내가 따끔하게 말해줘야지.”

예화는 그녀답게 당당한 눈꼬리를 치켜뜨며 주먹을 꽉 쥐는 포즈를 취했다.

나는 그 모습을 귀엽게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하린이랑 은주도 요번에 월세 계약한다고 했는데.’

어딘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일단 카페랑 가깝다고 했다.

가까이 살면 자연스럽게 볼 일도 많아질 것이다. 둘은 아직 히로인 등록도 안 했고 어떤 식으로 관계를 쌓을지 아직 생각 못 하긴 했지만......

‘일단 좀 착한 이미지를 쌓으면서...... 그래, 천천히 다가가면 괜찮지 않을까?’

역시 모를 때는 정석적으로 나가는 것 만큼 좋은 게 없어 보였다.

“할 거 없으면 진현아, 같이 갈래?”

그렇게 잠시 소꿉친구 둘에 대해 생각하고 있자, 예화가 내게 물어왔다.

“같이? 아, 부동산에?”

“응.”

“그래도 돼?”

“으음. 안 될 건 없지 않나?”

예화의 말에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둘이랑 만나기까지 시간이 좀 남았는데, 나쁠 건 전혀 없었다.

“그래, 그러자.”

나는 자연스럽게 예화가 포장한 아메리카노 다섯 잔이 든 종이백을 받아들었다.

“히이.”

한쪽 손이 빈 그녀는 활짝 웃으며 내게 팔짱을 껴왔다.

***

“좀 천천히 먹어.”

“오랜만에 집밥 먹어서 좋아하는 것 같은데, 뭐 어때.”

“아니, 저러다 체할 것 같아서 그래.”

하얀 대리석으로 꾸며진 주방.

식탁에 앉은 정은주는 정신없이 부모님이 차려준 밥상의 반찬들을 흡입했다. 그녀의 어머님 유지숙은 그런 은주를 빤히 바라보다가 남편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얘가 미국 밥이 맛이 없었나?”

“흐음......”

아버지와 어머니 둘 다 손으로 턱을 매만지자, 그걸 본 정은주은 전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히 개아나써.”

“으이구, 좀 삼키고 말해라.”

우물우물, 꿀꺽-

“으으응. 괜찮았어.”

버클리 음대를 다니는 한국인은 생각보다 많았다.

보스턴이 있는 매사추세츠주 또한 한국인들이 나름 많이 거주하는 주에 속하기 때문에, 정은주는 그녀의 입맛에 맞는 한식당을 골라낼 때 그다지 어렵지 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미국에서 먹었던 밥은 그럭저럭 그녀의 입맛에 맞았다. 단지, 오랜만에 맛본 집밥이 웬만한 미국 밥보다 더 맛있게 느껴졌을 뿐이다.

“더 줄까?”

“웅.”

“그럼 이제 한국에서 계속 사는 거지?”

“그렇지? 가끔 여행은 다닐 수도 있지만.”

“하긴 미튜브가 그렇게 잘 나가는데, 여행도 좀 다니고 해야지.”

정은주의 대답에 그녀의 아버님은 기분 좋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딸이 유학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그 버클리 음대를 무사히 졸업한 것만 해도 굉장히 대단한데, 이렇게 미튜브까지 잘 나가다니.

자연스럽게 미래에 대한 걱정은 사그라들고, 자랑스러움만 남았다.

물론, 아직 버클리 음대의 졸업식은 열리지 않았다.

딸은 졸업식에 참여하지 않고 한국에 왔지만...... 졸업에 필요한 모든 학점을 이수한 이상, 굳이 참석하지 않아도 알아서 졸업장이 날아올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 된 입장에서 바라볼 때 딸은 이미 대학을 졸업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언제 한번 가족여행이라도 가면 좋을 텐데.”

정은주의 아버지 정후일은 딸이 밥 먹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짐짓 중얼거렸다. 그러자, 유지숙이 그에게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허어, 참. 내가 가자고 할 때는 맨날 회사 일 바쁘다고 했으면서?”

“크흠. 아니 내가 뭐 평생 가지 말자 그랬나. 언제 거, 내년 즈음에 휴가 써서 다녀오면 되지.”

유지숙의 눈빛을 받은 정후일은 처음에 살짝 찔끔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는 아내와 둘만 있을 때 여행보다는 그냥 조용히 쉬는 게 마음이 편해서 그런 핑계를 댄 것이었지만...... 이 사실은 부부 관계의 평화를 위해 말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유지숙도 딱히 크게 의식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 어쨌든 우리 딸이 이렇게 잘 돼서 좋다. 졸업도 하고. 딸 사랑해?”

“으흐흐, 네.”

정은주는 어머님의 칭찬에 기분 좋게 웃었다.

칭찬은 언제나 기분이 좋았다. 요즘 들어 친구들, 교수님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항상 그녀를 향해 칭찬을 건네왔지만, 부모님의 얼굴을 맞대고 들은 칭찬은 또 기분이 색달랐다.

기분 좋은 날이었다.

하지만, 은주의 얼굴에서 그 기분 좋은 웃음이 사라지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이제 여기서 남자친구만 사귀면 완벽한데.”

바로, 어머님이 요즘 들어 슬금슬금 떠오르는 화제를 꺼낸 탓이었다. 정은주는 곧바로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으, 그건 나 알아서 할게.”

아버님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래, 왜 애 부담을 주고 그래.”

정후일이 그렇게 말하자 유지숙이 기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소리래. 당신도 은주 남자친구 안 사귀냐고 궁금해했잖아.”

“뭐? 이거 날 이상한 사람 만드네. 난 엄한 놈 만날까 걱정만 했지. 내가 언제 그랬어?”

“음...... 요즘에? 남자친구 소식이 신기하게 없다고 중얼거리지 않았나.”

“아.”

정후일은 유지숙의 말에 무슨 소리인지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후일은 딸이 남자친구를 너무 가볍게 사귀지 않았으면 하는 아버지였다. 예쁜 딸을 가진 아빠의 마음이 다 그런 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는 그랬다.

딸을 유학 보낼 때도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 그 부분이었다.

사람.

환경도 환경이지만, 괜히 은주가 엄한 불량한 학생들한테 물들어 나빠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가장 컸다.

중학교 때 딸이 미국으로 넘어갔을 때는 그와 아내도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그녀와 생활을 같이했지만, 그건 딱 1년 정도일 뿐이니까. 딸이 별 탈 없이 학교에 다니는 걸 본 뒤에는 둘 다 다시 한국으로 귀국했다.

어찌어찌 혼자서도 잘 해나갈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하나, 그동안 별 탈 없이 지낸 것과 앞으로도 별 탈 없이 지내리라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여전히 걱정이 하늘을 찔렀고, 정은주의 아버님은 항상 미국 애들을 절대로 조심하고 몇 번이고 신신당부했다.

정은주는 그런 아버지의 말을 잘 듣는 듯 보였다.

열심히 자신을 갈고닦는 데에만 집중해 버클리 음대까지 합격했으니까.

아무리 빼먹어도 며칠에 한 번씩. 영상통화도 1~2주에 한 번씩은 꾸준히 해온 만큼 딸에 대한 정보는 확실했다.

다만, 은주가 아예 졸업하기 직전까지 딱히 남자에 관심 없는 태도가 이어지자, 혹시 이런 성격이 몇 년 뒤까지도 이어질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아.무.튼! 걱정하지 마. 나 알아서 할게.”

정은주는 묘한 분위기 속에서 단호하게 부모님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도 남자친구를 사귀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다.

단지, 그냥 부모님한테 이렇게 잔소리를 듣는 게 싫었다.

애초에 그녀도 이제는 좀 자신을 풀어주려고 했다. 음대를 다니면서는 음악에 집중해서 그렇다 쳐도, 이제는 유학 생활도 끝났고 한국에 왔으니 좀 여유롭게 일상을 즐겨도 되지 않을까.

괜찮은 사람 만나면 연애도 하고 그러는 거지.

“음, 그래......”

결국 그녀의 어머님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유지숙도 딸이 스스로 잘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항상 버클리 음대를 다닌다고 모임에서 자랑하고 다녔는데, 평소에는 가만히 있던 다른 엄마가 딸이 의대에 다니는 남자랑 진지하게 사귀고 있다고 하도 자랑을 해대서, 요즘 조금 재촉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나 싶었다.

그녀는 얼른 화제를 바꿨다.

“그나저나 오늘 계약한다며.”

“아, 맞아.”

“근데 용케 하린이랑은 같이 살기로 했네. 오랜만에 봤을 텐데, 안 어색해?”

“괜찮아. 하나도 안 어색하더라.”

정은주도 그 점은 좀 신기했다.

하린이랑 만나거나 톡을 해도 그다지 어색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편안하다면 편안했지.

“그래, 다행이네. 오늘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아, 오늘 둘이서 만나나?”

“아니? 진현이도 같이 만나는데.”

“응? 진현이?”

갑작스럽게 그 이름이 튀어나오자, 정후일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저번에 연락처 알려달라더니 진짜 연락 했구나?”

“응.”

정은주가 고개를 끄덕이자, 유지숙이 끼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진현이 걔는 요즘 뭐 한다냐?”

“아, 그게-.”

“그러게. 그냥 바로 군대 가서 전역한 지 1년 정도 됐다는데, 재수하나?”

“재수? 기술 배우는 거 아니었어? 저번에 뭐 아르바이트하면서 자격증 공부하겠다고 했던 거 같은데.”

“음. 그럴 수도 있지.”

정후일은 고개를 주억였다.

정은주는 자신한테 물어봐 놓고 정작 부모님 둘이서 이런저런 추측을 하며 대화하는 모습에 살짝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어렸을 때는 참 똘똘했는데, 쯧쯧.”

“중학생 고등학생 때 놀았다고 했으니. 어쩔 수 없지.”

“음. 아직 정신 못 차렸나?”

“전역했는데 설마. 그리고 남자는 원래 철이 늦게 들어. 시간 지나면 알아서 잘할 거야.”

그리고 대화 내용은 더욱 황당했다.

‘아니, 진현이 카페 차린 거 우리 엄마 아빠가 모르나?’

그래도 친척인데.

자신이 알고 있는 진현이와, 부모님의 입에서 나오는 진현이의 간극이 너무나도 컸다.

정은주는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아니, 엄마 아빠.”

“응?”

“왜?”

“진현이 지금 뭐 하는지 몰라?”

정후일과 유지숙은 서로 눈을 한 번 마주 보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야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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