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6화 〉# https://t.me/LinkMoa
“......”
로열 한즈 호텔의 방 안.
침대 위에 몸을 눕힌 채 휴대폰을 바라보던 주하린은 이불 위를 뒹굴뒹굴 굴러다니며 고민했다.
“으으음......”
[ 지금 뭐 해? ]
이걸 보낼까 말까.
10초 그리고 20초.
송신 버튼에 손가락을 댈락말락 하던 그녀는 결국 후우, 하고 미약한 한숨과 함께 액정을 꾹꾹 눌러 메시지를 지워버렸다.
‘지금 뭐 해?’, ‘점심 먹었어?’, ‘카페 잘돼?’ 등등.
머릿속에 여러 가지 단어들이 맴돌았다.
하지만, 뭘 선택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가만히 고민하던 그녀는 이내 그냥 ‘모해?’라는 간단한 두 글자만을 입력해 전송 버튼을 눌렀다.
[ 나 : 모해? ] ( 1 )
“......”
진현이한테 보내는 메시지.
연락처를 교환한 뒤로 주하린은 매일같이 진현에게 톡을 보내고 있었다.
오랜만에 소꿉친구를 만났다는 반가움, 이제는 연락이 끊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그리고...... 약간은 옛날에 대한 그리움.
진현이한테서 선톡이 거의 없다는 것은 좀 아쉬운 일이었지만, 그래도 답장은 항상 빨랐다.
가만히 1이라는 숫자를 바라보고 있자, 역시나. 금방 답신이 왔다.
띠링-
[ 진현이 : 이제 점심 먹으려고 ]
“아직 안 먹었나?”
벌써 2시가 넘었는데.
주하린은 얼른 답을 입력했다.
[ 나 : 지금? 좀 늦게 먹네? ]
[ 진현이 : 어쩌다 보니 ㅋㅋ ]
[ 나 : ㅋㅋㅋ 뭐 먹을 거야? ]
[ 진현이 : 음, 아직 안 정했는데......? 아마 양식 먹을 것 같아 ]
“양식......”
진현이가 양식을 좋아했나?
주하린은 옛날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하지만, 잘 모르겠다. 너무 어릴 적의 일이라 음식 취향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 수 없었다.
같이 뭘 먹은 기억은 굉장히 많았지만, 그건 대부분이 다 분식집이나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나 순대 같은 걸 사 먹은 기억이니까.
취향이고 뭐고 할 게 없었다.
[ 나 : 양식? 피자나 파스타? ]
[ 진현이 : ㅇㅇ ]
[ 나 : 누구랑 먹는데? ]
아.
주하린은 톡을 보내놓고도 살짝 후회했다.
“괜히 보냈나......?”
이 질문은 굳이 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먹으면 그냥 먹는 거지, 누구랑 먹는지까지 알려줄 이유가 없으니까.
무심코, 전에 민지아와 삼겹살 가게에 갔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는 살짝 긴가민가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옆 테이블에 앉아있었던 사람이 진현이였다는 게 판명 난 상태였다.
분명 진현이는 다른 여자랑 같이 삼겹살을 먹으러 왔었지.
예쁜 단발머리를 한 여자였다. 확실히 기억이 난다.
카페에서도 봤었기 때문에 진현이 운영하는 카페의 아르바이트생인 것은 확실해 보였다.
하지만, 평범한 아르바이트생과 사장의 관계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친해 보이기도 했다.
처음에 봤을 때도 의심했었는데, 어쩌면 그녀는 진현이의 여자친구이고, 오늘 점심도 함께 먹을 수도......
“......”
그렇게 생각하자 왜인지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았다. 하린은 가만히 진현의 톡을 기다렸다.
[ 진현이 : 친구랑 먹지 ㅋㅋ ]
“아.”
친구랑.
진현의 답변을 보자 하린의 입꼬리가 그녀도 모르게 살짝 올라갔다.
[ 나 : 아하. ]
[ 진현이 : 왜? ]
[ 나 : 암것두 아니야. 점심 맛있게 먹어! ]
주하린은 얼른 답톡을 보냈다. 뭔가 좀 어색한 답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안 보내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혹시 몰라서 가만히 답장을 기다리는데, 1분이 지나도록 답장이 없었다.
‘밥 먹으러 갔나 보다.’
그렇게 생각한 하린은 톡을 닫고 인터넷을 켜 폰으로 웹서핑을 하기 시작했다.
띠링-
“응?”
그런데, 20분 정도 폰을 하자 진현으로부터 다시 톡이 도착했다. 하린은 얼른 알림을 눌러 진현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 진현이 : ( 사진 ) ]
[ 진현이 : ( 사진 ) ]
[ 진현이 : ( 사진 ) ]
톡으로는 세 장의 사진이 날아왔다.
클릭해 보니 음식을 찍은 사진들이었다.
파스타, 피자, 샐러드......
‘가게에서 찍은 건가?’
정말 맛있어 보이는 사진들을 보자, 점심을 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군침 넘어갔다.
주하린은 액정을 두들겼다.
[ 나 : 뭐야 ㅋㅋ 음식 자랑? ]
[ 진현이 : 아니, 뭐 먹는지 궁금해하는 것 같길래 ㅎ ]
[ 진현이 : ( 사진 ) ]
[ 진현이 : ( 사진 ) ]
[ 진현이 : ( 사진 )...... ]
진현이는 사진 몇 장을 더 보냈다.
음식 사진과 더불어 가게 안을 찍은 사진. 그리고 테이블에 앉아있는 진현을 누군가 반대편에서 찍어준 듯한 사진도 있었다.
주하린은 마지막 진현이 나온 사진을 보고 감탄했다.
‘아.’
잘 나왔다. 누가 봐도.
비스듬한 각도로 웃고 있는 모습을 찍은 게, 안 그래도 잘생긴 진현의 얼굴을 더욱 부각해주는 것 같았다.
주하린은 가만히 사진을 바라보았다. 그때, 머릿속에 뭔가 스쳐 지나갔다.
‘어, 그런데 친구랑 먹는다고 하지 않았나?’
주하린은 다시 사진을 바라보았다. 잘 나온 것도 잘 나온 거지만, 보통 남자끼리 가면 이런 사진을 안 찍어준다고 했는데......
사진을 보니 여자가 찍어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하린은 이번에는 다른 음식 사진들을 사진을 확대해서 보았다.
“으으, 안 보여......”
보일 듯 말 듯.
음식 사진에 확대해 보니까, 미묘하게 건너편 의자에 앉은 사람이 보일락말락 했다.
주하린은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하지만, 정말 아슬아슬하게 보일락말락 할 뿐, 결국에는 어떤 사람인지 알아볼 수는 없었다.
“후우.”
그녀는 한숨을 내쉬고 평범하게 답장을 보냈다.
[ 나 : 어디 레스토랑이야? ]
[ 진현이 : 굿 파스타라는 레스토랑인데 이 근방 맛집이야 ]
[ 나 : 굿 파스타? ]
[ 잔횬아 : ㅇㅇ 되게 맛있어. 너 이사 오면 내가 한번 사줄까? ]
어?
사준다고?
주하린은 뜻밖의 말에 눈이 크게 떠졌다.
[ 나 : 진짜로? ]
[ 진현이 : ㅇㅇ ]
[ 나 : 이거 캡처한다? ]
주하린은 그렇게 톡하고는 진짜로 톡방을 캡쳐했다.
[ 나 : ( 사진 ) ]
캡처한 사진을 보내자 진현이 곧바로 답장했다.
[ 진현이 : 야 ㅋㅋ 하린이 네가 오는데 내가 이정도도 못 사주겠냐 ]
하린이 네가.
“......”
왜인지는 모르지만, 주하린은 진현의 말에 살짝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 나 : 많이 먹어도? ]
[ 진현이 : ㅇㅇ ]
[ 나 : 메뉴 다 시켜도? ]
[ 진현이 : ㅇㅇ ]
[ 진현이 : 그런데 그냥 가게 하나를 통째로 시키지 그러냐 ]
[ 나 : ㅋㅋㅋㅋㅋ ]
[ 진현이 : 여기 아니더라도, 뭐 원하는 거 있으면 사 줄게 ]
진현은 톡을 이었다.
[ 진현이 : 우리 근처에 살면 옛날처럼 같이 놀러도 다닐 수 있으니까. ]
옛날처럼.
“아......”
진현의 말에 하린은 옛날에 그와 함께 놀았던 시절을 떠올렸다.
친구가 없던 초등학교 무렵.
생각해보면 어렸을 적 그녀는 참 약했다.
그때는 부잣집 딸이라고, 재수 없다며 따돌리려는 애들도 많았는데, 성격이 수동적이라 어떻게 잘 대처하지를 못했다.
말장난을 치고, 안 놀아준다는 별거 아닌 따돌림에도 상처를 많이 받았었다.
그래서 혼자 훌쩍이기도 하며 외롭게 지냈는데......
그때 유일하게 다가와 준 남자아이가 바로 진현이였다.
진현이가 옆에 온 이후로는 그다지 울지 않게 되었다. 그가 다른 따돌림 들을 다 막아주었으니까.
무리에 끼어서 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진현이도 자신을 위해 다른 무리에서 빠져나와 항상 옆에서 함께 놀아주었고. 그의 사촌인 은주랑도 친해지게 되어 셋이서 많이 놀러 다녔다.
따지고 보면, 그때가 가장 행복하지 않았을까.
[ 진현이 : ㅇㅋ? ]
[ 나 : 응응, 오키. ]
하린은 일부러 담백하게 답변했다.
진현이랑 떨어지고 연락이 없어지면서 점차 그와 멀어졌었는데, 뭔가 운명처럼 다시 만나고 매일 톡을 하다 보니까 다시 시간이 거꾸로 가는 것 같다.
하린은 신나게 진현이와 톡을 나눴다.
그러다 한 5분이 지난 뒤 그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 진현이 : 야, 근데 이따 또 톡하자. 나 밥 먹어야 돼. ]
[ 나 : 아 맞다; 미안...... ㅠ ]
그녀는 뻘쭘하게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