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6화 〉# https://t.me/LinkMoa
“드림월드.”
스킬명을 외치자 순식간에 몸이 나른해지기 시작했다.
선명했던 의식이 깊게 가라앉는다.
마치 잠을 자는 듯한 편안함.
저절로 눈이 감기고, 내 몸은 그대로 의자에서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 스킬, ‘드림월드’를 사용했습니다. 소모값으로 50코인이 차감됩니다. ( 남은 코인 : 2,353,175 ) ]
휘이잉-
“......으음.”
다시 눈을 떴다.
고급스러운 책상과 의자는 어디로 가고,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 펼쳐졌다.
썰렁하네.
분명히 나는 카페 델리아의 사무실에서 있었는데, 순식간에 장소가 바뀌었다.
마치 다른 나라라도 온 기분. 그러나 정확히는 내 의식이 꿈속 세계로 간 것뿐이었다.
‘언제 봐도 신기하단 말이야.’
히로인 어플에 적혀있는 스킬의 설명과 델리아의 말을 종합해 보자면, 이 스킬은 중급 서큐버스부터 사용 가능한, 꿈속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한다.
내가 갑자기 나무가 생기길 원하면 나무가 뿅, 하고 나타나거나 지진이 일어나길 원하면 땅이 흔들리는 식이었다.
그야말로 이 꿈속에서 나는 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존재.
미소녀가 나타나길 원하면 미소녀도 눈앞에 곧바로 나타나게 할 수 있는데, 만들어 낸 미소녀와 야한 짓도 당연히 할 수 있었다.
음.
아마도 성에 굶주린 남자 중고등학생에게 환상 스킬이 아닐까......
옛날에는 나도 미소녀랑 떡 좀 쳐보겠다고 한참동안 자각몽을 연구했던 적이 있었는데, 아쉽게도 어찌어찌 소환에는 성공했으나 옷을 벗기려고만 하면 꼭 흥분해서 깨버렸던 기억이 있었다.
뭐, 아무튼.
이건 그러한 자각몽의 최상위호환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되었다.
심지어 나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의식을 초대하는 것도 가능했다.
물론, 초대한 사람은 마음대로 조종하는 것이 불가능했고, 무엇을 한다고 해도 초대한 사람의 현실 육체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지만......
잠에서 깨면 이곳에서 느낀 것들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기 때문에, 활용도는 굉장히 높았다.
마망을 더더욱 야하게 만드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나는 천천히 이미지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우선은...... 윤나은 어머님의 집.
“......”
세 번이나 초대받으면서 집 구조를 완벽하게 기억해뒀기 때문에, 어느 정도 비슷하게 구현해낼 수 있을 것이다.
뿅-
“오, 괜찮은데?”
정신을 집중하고 윤나은 어머님의 집을 생각하자, 생각한 모습 그대로 구현이 되었다.
집 바깥도 썩 비슷했고, 문을 열고 들어가자 펼쳐지는 마루나 방의 느낌 또한 상당히 비슷했다.
뭐 서랍 안쪽에 뭐가 있고 그런 건 잘 몰라도, 어차피 꿈속이니까.
디테일한 부분까지 너무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나는 휴대폰을 켰다.
[ 초대 목록 : 일반 히로인 ]
1. 강수정 ( 불가 )
2. 델리아 ( 불가 )
3. 윤다정 ( 불가 )
4. 윤유정 ( 불가 )
5. 장예화 ( 불가 )
꿈속에서도 내 휴대폰은 바지 주머니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초대하려면 초대할 대상을 지정해야 하니까.
내 일반 히로인들은 전부 다 깨어 있었다. 드림월드는 자고 있는 사람만 초대가 가능했기 때문에 ‘불가’라고 적혀있다면 깨어있는 거였다.
수정이는 방송, 델리아는 꽃꽂이, 예화는 작곡, 다정이는 학교, 유정이 누나는 카페 일을 하고 있어서 다들 바쁘겠지.
목록을 살짝 내리자 초대가 가능한 한 사람이 보였다.
[ 초대 목록 : 서브 히로인 ]
윤나은 ( 가능 )
“나은 마망...... 가능......!”
그동안 내가 어머님의 집에 초대받고 가서 하도 새벽에 다정이, 유정 누나랑 떡을 치는 바람에 윤나은의 수면 패턴이 살짝 꼬여버렸다.
새벽에는 깨어 있고, 점심 즈음에 낮잠을 자는 걸로.
다정이나 유정이 누나의 경우에는 피로도를 내려주고 컨디션이 좋아지는 아이템을 주면 되었지만, 나은 어머님에게는 아직 그런 조치를 안 취했으니까.
오늘도 마찬가지로 낮잠을 자는 것이리라.
나는 윤나은을 선택해 초대 버튼을 눌렀다.
[ 서브 히로인, ‘윤나은’을 ‘드림월드’에 초대하시겠습니까? ]
응.
[ 서브 히로인, ‘윤나은’을 ‘드림월드’에 초대하였습니다. ]
지이잉-
“으응......”
초대를 완료하자 내 눈앞에 윤나은 어머님이 짠, 하고 나타났다.
집안에서 입는 간단한 옷차림.
그녀는 나를 초대할 때마다 빨간색 티에 베지색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게 그녀가 즐겨 입는 최애 옷 같았다.
어머님은 내가 소환한 장소인 마루에 누워 세상 모른 채 자고 있었다.
쿠울, 쿨-
‘와, 진짜 예쁘다.’
지금 이 꿈속 육체가 현실 육체는 아니지만, 기본적으로는 현실의 육체와 똑같이 생겼다.
그동안 내가 외모랑 몸매 능력치를 굉장히 많이 올려주었기 때문인가, 눈을 감고 조용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그녀가 굉장히 섹시하게 느껴졌다.
몸매와 외모를 늘려주면 자연스럽게 피부까지 좋아지니까. 앵두 같은 입술 위로 있는 볼은 굉장히 말랑해 보이기도 했다.
물론, 그 밑에 더욱 말랑해보이는 게 있었다.
커다란 가슴.
손가락으로 살짝만 콕 눌러보았다.
‘오우야.’
생각한 대로의 감촉이었다.
아니, 이게 뭐가 40대야.
많아야 30대 초반. 앞으로도 더 외모와 몸매를 올려줄 생각이니까, 그럼 20대 후반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마망이 아니라 거의 눈난데......’
으음.
뭐, 상관없지.
예쁘면 장땡 아닌가!
나는 고개를 주억이고는, 그녀가 깨기 전에 얼른 소파 옆의 리모컨을 이용해 TV를 틀었다.
******
[ 동작 그만! 밑장빼기냐? ]
“으응......”
부스럭-
TV 소리가 들려온다.
[ 내가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냐 이 새끼야? ]
“응......?”
귀를 통해 들어오는 남자의 대사에 윤나은은 두 눈을 깜빡거리며 떴다.
“......”
부스스한 머리를 들고 몸을 일으킨다.
오래전에 구매한 작은 TV와 낡은 소파. 허름한 거실의 풍경.
언제 봐도 익숙한 광경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익숙하지 않은 존재 또한 눈에 들어왔다.
“......어?”
“일어나셨어요?”
“진현......이?”
바로 천진현.
TV가 켜져 있는 마루의 소파 위로 진현의 얼굴이 보였다.
요즘 들어 집에 몇 번 초대한 남자. 다정이, 유정이와 친한 딸들 또래의 남자.
빙그레 웃는 그의 모습을 보니 머릿속에 약간 혼란이 찾아왔다.
어라?
진현이가 왜 여기에 있지?
분명 아침에 나갔을 텐데...... 내가 마루에서 잤던가?
“진현이 네가 왜 여기에......”
“어머님이 초대해주셨잖아요. 오늘도 자고 가라면서.”
“어? 그...... 런가?”
“네, 피곤하면 더 주무세요.”
혼란스러운 와중에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그의 대답에 윤나은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잠에서 덜 깨서 그런가, 이전에 뭘 했는지가 조금 흐릿하다.
약간 머리가 정리되지 않은 느낌.
그런데 진현이가 집에 놀러 온 이 상황이 묘하게 납득되었다.
“아니야, 괜찮아. 그보다 다정이랑 유정이는 아직 안 왔니......?”
집안을 둘러보는데 딱히 진현 말고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에게 묻자 진현이 무슨 소리냐는 듯 반문했다.
“좀 전에 쇼핑하러 나갔잖아요. 기억 안 나요?”
“아...... 그, 랬나?”
“네, 좀 걸릴 거라고 했는데...... 많이 피곤하신가 봐요.”
“으응. 요즘에 좀 잠을 못 자서......”
“아아......”
진현은 살짝 고민하는 표정을 하더니 갑자기 뭔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그럼 제가 안마라도 해드릴까요?”
“응? 안마......?”
“네. 다정이나 유정이 누나한테도 많이 해주거든요. 제가 시원하게 잘해요.”
그가 기분 좋게 웃으며 어깨를 주무르는 시늉을 했다.
“한번 받으면 피로가 싹 가시니까. 여기 한번 기대 보세요.”
탁탁-
진현이 소파 위에서 양반다리를 하고 앉더니 그 앞을 팡팡, 하고 쳤다.
“어? 으응......”
윤나은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가 가리키는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뭐지?
원래 진현이가 이렇게 친근하게 나왔나?
평소에 굉장히 친절하게 대해주기는 했지만, 지금은 굳이 따지자면 친절함이 아니라 친근함이 느껴졌다. 뭔가 태도가 묘하게 다른 것 같기도 한데......
이상하게도 윤나은은 거기에 별다른 의문을 품지 못했다.
“그럼 할게요?”
“응.”
꾸욱꾸욱-
“아......”
진현의 안마가 시작되었다.
어깨를 전체적으로 누르듯 주무르고, 알맞은 강도로 두들겨준다.
꾹꾹 누르는 진현의 손길은 정말로 마법 같아서, 받고 있자니 몸이 굉장히 상쾌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응...... 아......!”
무심코 신음도 조금씩 나왔다.
한 1분 정도 안마를 받고 있는데, 도무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윤나은은 칭찬할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
“으응...... 진현이 너 안마 엄청나게 잘하는구나.”
“그런가요?”
“응. 진짜로.”
“흐. 사실 그런 이야기 좀 많이 들어요.”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하는 진현의 목소리에도 윤나은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이정도면 정말로 수준급이었다.
“다 됐어요.”
“하아......”
5분 정도가 지나자, 진현이 손을 떼며 말했다.
정말로 어깨에 뭉쳐 있던 근육이 확 풀린 것만 같았다.
이렇게 안마를 잘하다니. 사실 카페 사장님이 아니라 안마 클럽을 차려도 될 정도.
누군가가 손을 떼는 게 이렇게 아쉬웠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더 해달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정말 고맙다고 하려던 찰나.
“그런데 어머님.”
“응?”
“어깨 말고 다른 곳도 엄청나게 뭉쳐 있는 것 같은데...... 이렇게 된 거 그냥 제가 다 풀어드릴까요?”
“어? 다?”
“네, 여기 한번 누워 보세요.”
진현은 그렇게 말하며 이부자리를 가리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