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7화 〉# https://t.me/LinkMoa
집 안.
“어서 들어오렴. 많이 좁지?”
신발을 벗고 들어온 윤나은은 진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집에 놀러 오지 않겠냐는 초대를 그는 거절하지 않았다.
집은 카페에서 10분도 되지 않는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다정이나 유정이가 진현과 대화하는 모습을 보며 걷자 순식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궁금한 게 그렇게 많은가?’
진현은 비단 다정이나 유정이뿐 아니라, 걸어오면서 자신에게도 말을 꽤 많이 걸었다.
정말로 호기심인지, 아니면 단순히 어색하지 않기 위함인지.
‘뭐어...... 훗.’
어찌 되었든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기에, 윤나은은 집까지 걷는데 미소가 끊이지를 않았다.
국밥집에서 하루종일 일하다 보면 진상손님들을 정말로 많이 상대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다정이나 유정이한테 고마운 사람이라도, 사람 자체가 별로면 정이 안 가는데 진현은 그 반대였다.
그는 현관과 집안을 좀 둘러보더니 맑은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아니에요. 되게 깔끔한데요?”
“그럼 다행이다. 일단 편히 쉬고 있으렴.”
“네, 감사합니다.”
윤나은은 예의 바르게 인사하는 진현을 보고 미소를 짓고는 주방 앞에 섰다.
카페에서 이미 디저트를 먹기는 했지만, 그래도 손님이 왔는데 아무것도 안 내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오빠오빠! 이리 와 봐. 우리 방 보여줄게.”
“응? 어디?”
“여기여기. 여기가 언니랑 내 방이야, 헤헤.”
집에 들어오자마자 다정이와 유정이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진현이를 데리고 방을 구경시켜주었다.
‘좀 부끄럽네.’
이 집은 그의 사무실과 비교해도 형편없었다.
돈이 없어 딸아이 둘이 같은 방을 사용하고 있기도 하고.
방 두 개 중에서 넓은 방을 딸아이들에게 주었지만, 그래도 역시 둘이서 사용하기에는 작을 수밖에 없었다.
“다정아, 그 전에 손 씻어야지.”
“아, 맞당.”
“아, 저도 씻을게요.”
다정이와 유정이, 이어서 진현까지 손을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갔다.
자신도 주방에서 손을 씻은 다음, 귤을 포함한 과일 몇 개를 접시에 담고 오렌지 쥬스를 컵에 따랐다.
문을 열고 한창 이야기하고 있는 다정이, 유정이, 그리고 진현에게 간식 삼아 내주었다.
“이거 먹으면서 이야기하렴.”
“아, 감사합니다.”
“와, 귤이당!”
셋은 사이가 정말 좋아 보였다.
솔직히 집 안에는 요즘 애들이 재미있어한다는 게임기 같은 것도 없고, 놀게 굉장히 제한적이지만 셋은 서로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즐거워 보였다.
그렇게 거실 소파에 앉아 TV 소리와 아이들이 이야기하는 소리를 배경 삼아 시간을 보내자, 어느덧 저녁 시간이 다가왔다.
“얘들아, 뭐 먹고 싶은 거 있니? 저녁으로.”
문을 열고 묻자 다정이가 곧바로 되물었다.
“저녁? 뭐있는뎅?”
“뭐. 시켜 먹어도 되고, 아니면 내가 해줘도 되고? 찌개나 떡국이나 뭐 그런 거 끓여줄 수 있어.”
“아, 떡국!”
다정이의 물음에 그렇게 답하자, 다정이가 눈을 빛내더니 진현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오빠오빠. 울 엄마 요리 어엄청 잘해요. 특히 떡국이 엄청 꿀맛.”
“응? 떡국?”
“맞아. 엄마 떡국이 맛있긴 해.”
옆에서 유정이까지 거들자 괜히 쑥스러웠다.
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어, 그럼 떡국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나는 괜찮은데, 진현이 너는 떡국 하나로 되겠니?”
“네, 상관없어요.”
“그래. 그럼 조금만 기다리렴.”
윤나은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주방으로 나왔다.
고기를 볶고, 국물을 내고, 떡과 만두를 넣어 끓이고.
마지막으로 김과 고명을 올려서 마무리한 다음, 혹시 몰라 밥과 반찬까지 세팅해 아이들을 불렀다.
“와, 냄새 좋다.”
“히히, 그죠. 먹으면 더 대박이에요. 진짜 맛있어요.”
“더 있으니까, 많이 먹으렴.”
“네, 잘먹겠습니다~.”
달그락- 달그락-
식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식탁의 오른편에는 다정이와 유정이가 앉아있었으며, 왼편에는 진현이. 자신은 중앙에 앉아서 식사했다.
평소에는 항상 셋이서 먹었는데, 넷이 된 것만으로도 식탁이 굉장히 풍요로워진 느낌이 들었다.
다정이나 유정이도 셋이 먹을 때보다 훨씬 즐거워 보이고.
정말 행복한 식탁의 풍경이었다.
‘남편이 도박에 안 빠지고 집을 안 나갔으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윤나은은 고개를 저었다.
이제와서 생각해봐야 어차피 지나간 일. 지금 자신은 혼자였다.
옛날에는 사랑했던 남편도, 지금은 원망만 남아있었다.
“엄마, 엄마아.”
“응? 왜?”
그렇게 한창 식사하고 있는 도중에, 다정이가 또 조르듯 말했다.
“있잖아아, 오늘 오빠 자고 가라고 하면 안 돼?”
“자고?”
다정이의 물음에 윤나은은 무심코 반문했다.
하지만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딱히 안 될 건 없지......?’
생각해보면 이 집에 다른 누군가를 초대하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는데, 이미 초대한 이상 딱히 안 될 게 있나 싶었다.
“응, 진현이만 괜찮으면 상관없어.”
“아! 오빠! 그렇데요. 오늘 지희 집에서 자고 가요오.”
“으음, 그럴까?”
다정이는 신나서 진현을 꼬셨고, 진현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어디서 자게 하지?’
문득 생각이 들었는데, 일단 손님을 마루에서 자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래도 딸아이 둘은 딸아이 방에서 평소대로 자라고 하고, 자신이 마루로 나온 다음 진현을 자신의 방에서 자라고 해야겠지.
그렇게 머릿속으로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있자 어느덧 식사 시간이 끝났다.
“잘 먹었습니다~. 와, 진짜 맛있게 먹었어요.”
“입맛에 맞았다니 다행이다.”
진현의 말에 윤나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었다는 말은 빈말이 아닌지 그는 정말 그릇을 싹싹 비워 먹었다.
흐뭇한 마음이 든 윤나은은 즐겁게 그릇들을 정리했다.
중간에 진현이 설거지를 도와주겠다고 하기도 했지만, 당연히 손님인데. 거절했다.
대신에 과일 깎는 걸 도와주겠다는 건 말리지 못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보면서 다치면 어쩌지 하며 조마조마했는데, 생각과 다르게 엄청나게 잘 깎아서 놀랐다.
“흐흐. 짠~ 봐봐. 어때, 토끼 모양으로 잘 깎았지?”
“오오, 오빠아. 그런 것도 할 줄 알았어요?”
“훗. 내가 어려서부터 좀 가정적-.”
“가정적은 무슨, 거짓말. 너 수정이나 리아한테 배웠지.”
“아니, 누나. 그걸 말하면 어떡해요.”
“아잇, 뭐야아.”
방에서 이야기하는 소리를 흐뭇하게 듣는다.
역시나 TV 소리와 아이들의 이야기 소리를 배경 삼아 소파에서 쉬고 있자, 얼마 안 가서 깜깜한 밤이 되었다.
윤나은은 이부자리를 준비했다.
“진현이 너는 여기서 자렴. 내 방인데, 새 이불 깔아줄 테니까.”
“아, 네에. 알겠습니다.”
기존에 자신이 쓰던 이부자리는 마루로 옮기고, 윤나은은 새 이부자리를 방에 깔아주었다.
“너무 늦게까지는 이야기하지 말고. 다정이 너 내일 학교도 가야 하고 유정이는 출근해야 하니까. 알지?”
“웅웅.”
“네에~.”
다정이와 유정이는 잠옷으로 갈아입은 채 아직 진현의 옆에 앉아있었다.
아무래도 조금 더 이야기하고 자려는 듯싶었다.
‘다 컸으니까...... 알아서 잘하겠지.’
윤나은은 그렇게 생각하고는, 마루에 깔아둔 이부자리에 누웠다.
눈을 감고 하루를 회상한다.
딸들이 즐거워하는 모습. 그리고 카페 사장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까지. 너무 좋은 하루였다.
몸에 힘을 빼고 편안하게 이불을 덮자, 금방 수마가 몰려왔다.
“오늘은 다정이 먼저야?”
“맞아! 언니는 다음에......”
무슨 이야기일까.
어쨌든 아이들의 즐거운 이야기 소리를 뒤로한 채, 윤나은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아앙, 항-!
“우으음......?”
윤나은은 부스럭거리며 몸을 비틀었다.
실눈을 뜬 다음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두컴컴한 밤 그 자체.
‘몇 시지......?’
자다가 중간에 깬 것인가.
윤나은은 얼른 옆에 있는 휴대폰을 켜 바라보았다.
[ 오전 01시 54분 ]
“......”
어중간한 시간이었다.
11시 반쯤에 잠들었는데 이때 깨다니.
‘요즘은 항상 중간에 깨는 일 없이 푹 잠을 잘 잤는데......’
희한한 일이었다.
일어나면 언제나 개운하고 컨디션이 좋았는데, 지금은 뭔가 비몽사몽 해서 잠에서 덜 깬 것 같기도 하고......
‘끄응...... 아무래도.’
평소에는 방에서 자다가 갑자기 마루에 나와서 그런 것도 같았다.
윤나은은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나았다.
따뜻한 물을 한잔 들이키고 다시 잠을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쪼르르-
그래서 정수기에서 온수를 받아 마시려고 하는데.
으흣, 하윽-!
또 귓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아까 깰 때도 이러한 소리가 들렸었다.
이 목소리는 다정이 목소리 같은데.
설마 아직도 안 자고 깨어 있는 것인가.
‘내일 학교도 가야 하는 애가......’
충분히 자기 앞가림을 잘하는 애라서 적당히 이야기하다 잘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진현이 와서 흥분한 모양이었다.
‘자라고 일러줘야겠다.’
혹시나 지각할까 걱정이 되었다.
따뜻한 물을 빠르게 들이키고 다정이와 유정이의 방 앞에 갔는데, 이상하게도 굉장히 조용했다.
‘?’
살짝 문을 열어서 안을 들여다보는데, 방에 불도 꺼져있고 되게 고요했다.
‘아 맞다.’
잘못 들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분명 자기 전에 다정이와 유정이는 자신의 방에서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렇게 다른 방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이번에는 비교적 선명하게 소리가 들려왔다.
하앙, 흐으윽-!?
‘어?’
목소리가 살짝 물기에 젖어있는 것 같기도 했다. 무언가를 참는 소리 같이 들리는데......
‘혹시 애가 어디 아픈가?’
이제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걱정이었다.
저렇게 신음을 참을 정도로 아프다니.
하윽, 흐앙-!
자신의 방 쪽으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목소리는 더욱 커져만 갔다.
방문을 바라보니, 아직까지도 켜져 있는 희미한 불빛이 문틈 사이로 빛나고 있었다.
‘역시 안 자고 있네.’
만약 아프다면 어서 병원에 가봐야 했다.
내일......이 아니고 오늘 자신이 아직 휴가 기간이기 때문에, 다정이보고 학교를 쉬라고 하고 같이 병원에 가줄 수도 있었다.
윤나은은 걱정되는 마음에 얼른 문을 열었다.
“다정아 어디 아프......”
어......!?
그리고.
윤나은은 이어지는 충격적인 광경에 몸을 굳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