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6화 〉# https://t.me/LinkMoa
“엄마! 준비 다 했어?”
“응. 이제 거의.”
딸의 재촉에 윤나은은 얼른 옷매무새를 정돈하며 대답했다.
앉아서 TV를 보며 쉬고 있자, 시간이 금방금방 흘러 어느덧 나갈 때가 되었다.
현관 쪽으로 몸을 옮기자, 어여쁜 두 딸은 이미 나갈 준비를 전부 마치고 대기하고 있었다.
윤나은이 나오자 딸 둘이 눈을 크게 뜨면서 감탄했다.
“와아, 엄마 엄청 예쁘다. 헤헤.”
“그러니?”
“웅웅. 언니도 그렇지?”
“응. 엄마 진짜 잘 어울린다. 잘 사 왔어.”
요즘에 유정이가 돈을 참 잘 벌고 있었다.
예전에는 자신이 딸들에게 뭘 사주지를 못해서 두 딸 모두 옷이 별로 없었는데, 이제는 다정이나 유정이나 스스로 옷을 구매해 옷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낡은 장롱이 다 수납하지 못할 정도.
어제저녁에는 갑자기 엄마 선물! 이라며 유정이와 다정이가 새 겨울옷 몇 벌을 들고 왔는데, 어찌나 놀랬는지.
지금 입은 것도 어제 유정이와 다정이가 사준 옷들중 하나였다.
솔직히 말해서 너무 젊은 사람들이 입는 스타일이라 안 어울리지 않을까 싶었는데......
‘괜찮을 지도......?’
의외로 입고 나니 자신이 보기에도 꽤 잘 어울렸다.
두 딸을 바라보니 자신과 굉장히 비슷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어제에 이어서 다시 한번 고맙다고 말하자, 딸들이 이정도는 별거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헤헤, 이제 나가자 엄마.”
“응, 그래.”
다정이가 신나게 팔짱을 끼어온다.
‘귀여워.’
아직도 애교가 많은 딸의 모습에 윤나은은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셋이서 나란히 걷자 얼마 안 가 카페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의 1, 2층에 자리한 커다란 카페.
‘그나저나 저런 건물에 카페 차리려면 돈 많이 들 텐데.’
카페 델리아의 사장은 나이도 굉장히 어렸다. 대체 돈이 어디서 나서 저런 카페까지 차렸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횡단보도를 건너자 미리 카페 밖에 나와 있는 사장의 모습이 보였다.
손을 흔들고 있는 그를 바라본 다정이가 끼고 있던 팔짱을 풀고 그에게 한 번에 달려갔다.
“오빠아아! 히히.”
“어? 다정이 옷 바뀌었네? 뭐야. 누나도...... 아니, 어머님까지 셋이서 커플룩이야?”
“응. 어때?”
“진짜 잘 어울린다. 둘 다 너무 예뻐.”
“헤헤.”
다정이와 유정이를 보고 칭찬을 아끼지 않은 그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더니 이윽고 자신을 바라본다.
그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어머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네에, 잘 지냈죠. 반가워요.”
예의 바르게 인사하는 그의 모습에 윤나은도 마주 인사를 했다.
그런데, 활짝 웃고 있던 상대방의 표정에 살짝 아쉬움이 스쳐 지나갔다.
왜 그러지 싶었는데, 그가 금세 다시 입을 열었다.
“어머님, 이제는 진짜 말 편하게 해주세요. 계속 존대해주시면 제가 너무 어색해요......”
“아......”
그러고 보니 저번에 카페에 들렀을 때는 그뿐만 아니라 자신까지 계속 존대를 했었다.
말을 놔달라고 한 걸 듣긴 했지만, 일단 그가 운영하는 카페 안이고. 유정이도 그의 밑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그를 계속 높여 불렀었다.
그래도 역시 저렇게 몇 번이고 놔달라고 하는데, 당연히 그렇게 해주는 게 맞지 않을까.
“으음...... 그럴까?”
“네에, 편하게 진현이라고 불러주세요.”
“그래, 알았어.”
말을 놔주자 표정이 한결 편해진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 그가 입을 열었다.
“원래 저희 만나서 점심 먹기로 했는데, 혹시 들으셨어요?”
“응. 그래서 애들 아침도 조금만 먹였는데.”
“아! 잘됐네요. 제가 차 가지고 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카페 안이 따뜻하니까 안에서 기다리고 계셔도 돼요.”
진현은 그렇게 말하더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윤나은이 딸들에게 물었다.
“차? 오늘 어디 운전해서 가?”
“응! 오늘 오빠가 맛있는 한정식집에 데려다주기로 했어.”
기껏해야 요 근처를 돌아다니다 어디 괜찮은 식당에서 먹을 줄 알았던 윤나은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그 의문은 얼마 가지 않아 풀리게 되었다.
탁탁-
“먹고 싶은 거 아무거나 시켜요. 어머님도 편하게 고르세요.”
“......”
차를 얻어 타고 한 15분 정도 후에 도착한 한정식집.
건물 주차장까지는 평범했는데, 안으로 들어가자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윤나은은 메뉴판을 바라보았다.
아니, 이걸 어떻게 해서 편하게 고른단 말인가.
평생 본 적도 없는 비싼 메뉴들의 가격에 윤나은은 살짝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내었다.
“여기...... 너무 비싼 거 아니니?”
“에이, 괜찮아요. 비싼 만큼 되게 맛있어서 어머님도 분명 만족하실 거예요.”
“맞아. 여기 엄청 맛있어 엄마.”
유정이가 목소리를 거들었다.
딸들의 태도를 보아하니, 이런 곳에 오는 게 익숙한 모양이었다.
“으음, 그럼 나는 B코스로.”
윤나은은 그나마 가격이 낮은 편인 코스를 골랐다. 태도를 보니까 진현이 사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래도 내가 내야지.’
오늘은 자신이 사기로 생각하고 나온 것이니까. 윤나은은 그나마 편안한 마음으로 음식을 받았다.
코스가 차례차례 나오고, 윤나은은 음식들을 하나씩 맛봤다.
“아, 엄마. 그건 이렇게 해서 요렇게. 싸 먹는 거야.”
옆에서 다정이가 어떻게 먹는지 하나하나 알려줘서 잘 먹을 수 있었다. 과연 비싼 만큼 맛있기는 했다.
음식이 상당히 나온 뒤.
드디어 고기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진현이 쌈을 하나 싸서 건네주었다.
“어머님, 이거 드세요. 제가 베스트 조합으로 쌌어요.”
“아, 고마워.”
설마 자신에게 쌈을 싸줄 줄은 몰랐는데.
윤나은은 식사하는 내내 은근히 계속 자신을 챙겨주는 그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그가 준 쌈을 받아 맛있게 먹었다.
그러고 있자, 옆에서 다정이가 진현의 팔을 붙잡고 막 조르는 모습이 보였다.
“오빠 저도요오.”
“응? 뭐가. 너도 쌈 싸줘?”
“네에. 히히.”
다정이의 부탁에 진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열심히 쌈을 싸기 시작했다.
재료도 다양하게 얹고, 고기는 2개를 넣어서 돌돌 말아 다정이한테 보여주었다.
“다정이 너는 많이 먹어야 하니까, 고기 두 개 넣었어. 자, 아아~ 해봐.”
“헤헤, 아아......”
직접 먹여줄 생각인가 하고 보고 있었는데.
‘?’
그는 다정이의 입 안에 쌈을 집어넣었다가, 입이 닫히기 직전에 갑자기 다시 쌈을 쏙, 하고 빼냈다.
탁-
결국 다정이는 허공을 씹었다.
“앗! 아, 뭐에요!”
“흐흐. 손이 미끄러졌어. 어우, 맛있다.”
오물오물.
쌈을 회수한 그는 마치 보란 듯이 다정이의 앞에서 얄미운 표정을 지으며 쌈을 먹었다.
다정이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우씨이...... 그렇게 나온다 이거죠? 복수할 거야. 자! 오빠도 빨리 아 해봐요”
“흐흐, 할수 있어? 아아~.”
다정이가 순식간에 쌈을 싸고, 돌돌 말아서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아까 그가 다정이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다정이 또한 진현의 입에 쌈을 넣으려다가 다시 뺐다.
덥석-!
아니, 쏙 빼려는데 진현의 입이 더욱 빨랐다.
“앗!”
오물오물-
결국, 다정이는 이번에도 쌈을 빼앗기고 말았다.
“힝......”
“느려.”
“이씨, 그거 레이저 피할 때 하는 대사거든요!”
다정이가 입술을 삐죽이자 진현이 웃었다.
“이제는 쌈 싸 먹을 때도 할 수 있는 대사네.”
“으. 오빠 나빠요오.”
“프흐. 농담이야. 이번에는 진짜 싸줄게, 자 아아, 해봐~.”
“아아~.”
쏘옥-
이번에는 쌈을 싸서 진짜로 넣어주었다. 다정이가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헤헤.”
“맛있어?”
“네에.”
진현은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유정이한테 시선을 돌렸다.
“누나. 누나도 도전?”
“그럴 줄 알고 미리 쏴놨지.”
진현, 다정이와 유정이.
셋은 서로 즐겁게 떠들며 이야기를 하였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걸 보니까 흐뭇하기도 하고, 자신이 살짝 동떨어진 느낌도 들고.
한편으로는 진현이 유정이 다정이랑 티격태격 장난치는 걸 보니, 어려서부터 카페를 차리고 이런 곳에서 밥을 먹기는 해도 그도 확실히 유정이나 다정이 나이 또래의 애긴 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식사는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되었다.
“후아아, 잘 먹었습니다아~.”
다정이가 빵빵해진 배를 문지르며 말했다.
“계산은 내가 할게.”
자리에서 일어나 걷는 도중 말했는데, 진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 계산 미리 다 했어요.”
“어...... 그러니?”
“네.”
윤나은은 시무룩하게 도로 지갑을 집어넣었다.
******
‘끄응. 이러려고 나온 건 아닌데......’
윤나은은 속으로 입맛을 다셨다.
오늘은 확실히 고마움을 전할 겸 점심과 후식까지 자신이 다 내려고 했는데, 결국 다시 차를 타고 돌아와 진현에게 카페 델리아에서 후식까지 얻어먹고 말았다.
오히려 빚이 더 쌓인 느낌이다.
조각 케이크에 음료에 과자에.
세상 편안한 표정으로 후식을 맛있게 냠냠 먹고 있는 다정이를 보자, 너무 사양이 없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되기도 하였다.
얘는 저게 다 얼마인지 알까.
그렇게 생각할 찰나, 다정이가 입을 열었다.
“오빠아.”
“응?”
“오빠아, 근데 오빠 오늘 저희집에 놀러 오면 안 돼요?”
“응? 너희 집에?”
갑작스러운 다정이의 말에 진현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윤나은의 눈 또한 커졌다.
진현은 다정이를 바라보다가 자신을 힐끔 쳐다보았다.
“나야 좋은데...... 우선 어머님 허락부터 받아야지.”
“엄마, 엄마아. 오늘 오빠 우리 집에 놀러 오게 하면 안 돼?”
진현의 말에 다정이가 곧바로 약간 불쌍한 다람쥐 같은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았다.
“얘는. 우리 집 되게 더럽고 좁잖니.”
“으응, 그래도오...... 엄마. 응?”
다정이가 보기 드물게 떼쓰듯 조른다.
솔직히 집이 너무 좁아서 초대하기 조금 그런 상태인데......
‘그래도.’
집에 초대하는 편이 밖에 있는 것보다 나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저녁은 자신이 뭘 시켜줘도 되고, 요리해줘도 되고 하니까.
“진현이 너는 괜찮니? 불편하면 거절해도 괜찮은데.”
“아, 네. 저는 전혀 상관없어요.”
“으음, 그럼...... 놀러 올래?”
윤나은이 진현에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