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 어플-222화 (222/303)

〈 222화 〉# https://‍t.‍me/‍LinkMoa

나는 속으로 끄응, 하고 앓았다.

기억 못하냐고?

‘네.’

솔직히 모르겠다.

나는 아직 히로인들 말고는 저렇게까지 예쁜 여자와 딱히 친분이 있지는 않은데......

‘이게 바로 그건가?’

길가에서 모르는 여자가 내게 말을 걸어오는 상황.

나는 눈가를 살짝 찡그린 채, 눈앞의 단발머리 여성을 슬며시 바라보았다.

‘음?’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얼굴상이 또 묘하게 익숙하기도 했다.

분명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다.

저 고양이 같은 눈동자도 그렇고, 도도한 표정도 그렇고, 특유의 분위기도 그렇고..... 왜인지 모르게 기억에 익었다.

뭔가 이렇게......

“아!”

그래 맞아!

나는 손뼉을 짝, 하고 쳤다.

무언가가 생각난 듯한 내 반응에, 눈앞 여자의 얼굴이 살짝 밝아졌다.

“어? 혹시 기억났어?”

“맞아, 그때 그! 저번에 고깃집에서 옆쪽 테이블에 앉았던 사람 아니에요?”

이건 확실했다.

전에 유정이 누나랑 같이 점심을 먹으러 고깃집에 갔는데, 옆쪽 테이블에 굉장히 예쁜 여자 둘이 앉아있어서 쳐다본 적이 있었다.

한 명은 단발머리 여인이었고, 다른 한 명은 그녀 바로 옆에 있는 귀염상의 여인이었다.

내 말에 밝아졌던 단발머리 여자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

“아이씨......”

원하는 답이 아니었는지 살짝 혀를 차며 한숨까지 내쉰다.

으음, 뭐지?

“어? 아닌가......?”

“하아, 맞기는 한데...... 치이. 진짜로 기억 못 하나 보네.”

그녀는 입맛을 쩝 하고 다신 다음에, 다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뭐...... 나도 처음에 너 보고 바로 알아본 건 아니니까.”

앞으로 한 발자국.

단발머리 여자가 다가오자 향긋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녀는 내게 살짝 상체를 숙이며 말했다.

“주하린.”

“응?”

“내 이름. 나 주하린이라고. 너...... 설마 내 이름까지 까먹은 건 아니지?”

약간은 불안한 목소리.

하지만, 그런 그녀의 걱정과는 다르게 ‘주하린’이라는 세글자 단어를 듣자마자 나의 눈은 순식간에 휘둥그레졌다.

“응? 주하린......?”

나는 그녀의 이름을 곱씹었다.

주하린?

설마, 하린이?

어렸을 때 같이 놀았던 그?

“혹시...... 금별초등학교?”

“맞아.”

“청소년 오케스트라 같이 했고?”

“응.”

“은주랑 같이 놀았던 그?”

“응.”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놀라서 입을 벙긋했다.

“와, 너 진짜......”

주하린.

그녀의 이름을 듣고 나서야 나는 완벽하게 그녀를 떠올릴 수 있었다.

왜 그녀의 분위기나 눈매가 익숙했는지 알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해서, 전체적으로 보면 옛날과 외형적으로 정말 많이 바뀌었는데, 분위기만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내가 알던 하린이라는 사실을 알고 바라보니까 금세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내 반응이 꽤 마음에 들었는지, 여자가 살포시 미소 지었다.

그녀의 웃음은 굉장히 예뻤다.

“이제 좀 알아보겠어?”

“응. 하린아 너...... 와. 진짜 오랜만이다.”

내 말에 하린이의 표정이 환해졌다.

“나도 오랜만이야 진현아.”

******

카페의 1층.

빈자리에 앉아서 나는 하린이와 은주를 바라보았다.

“와. 설마 너희가 둘이 내 카페에 오다니. 진짜 깜짝 놀랐다.”

하린이를 알아본 다음.

내가 그녀를 알아보자 은주까지 나서서 자신을 기억하냐고 물었다.

이미 직전에 하린이라는 힌트를 얻었고, 은주는 보스턴에서 한번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곧바로 그녀가 내 사촌인 정은주라는 사실을 유추해낼 수 있었다.

“나도 네가 여기 카페 사장일 줄은 꿈에도 몰랐어.”

하린의 말에 내가 웃었다.

그야 몰랐겠지.

나도 히로인 어플을 얻기 전까지는 이렇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아마 히로인 어플이 없었다면 계속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 않았을까.

“그나저나 너 뭘 먹었길래 그렇게 예뻐졌냐. 와. 솔직히 이건 못 알아볼 수밖에 없다. 아예 그냥 다른 사람이 됐는데?”

나는 하린이의 모습을 보고 감탄하며 말했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더니.

아니, 이건 변신이 아니라 진화 수준이다.

나는 어렸을 적의 하린이의 모습을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하린이나 은주나 둘 다 또래 중에서는 미래에 미인이 될 거라는 싹수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상당히 있었던 것 같기는 했다.

그런데 그것도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그런 거지. 어려서는 그걸 알 길이 없었다.

그냥 하린이는 좀 무뚝뚝한 아이. 은주는 밝은 아이라는 인식만 있었지.

물론, 그녀들이 또래 중에서도 꽤 예쁘기는 했는데, 솔직히 젖살도 있고 해서 이정도까지는 압도적이지는 않았던 느낌이 들었다.

지금은 보면 솔직히 감탄만 나온다.

내 칭찬에 하린이 살짝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그래......?”

“응, 너 옛날에는 섹시함이라고는 진짜 하나도 없었는데.”

“뭐라고?”

“프흐. 그만큼 지금 예쁘다는 소리야.”

“아, 응......”

나는 은주를 바라보았다.

“은주 너도 마찬가지야. 엄청 예뻐졌네. 아니, 근데 넌 왜 보스턴에서 만났을 때 이름 안 말해줬어? 우리 서로 인사까지 나눴잖아. 생각해보면 네 이름도 못 들었네.”

그때를 돌이켜보면 내가 일방적으로 그녀에게 자기소개만 했던 것 같다.

“아...... 그, 그때는 너인지 확실하지 않아서......”

“야. 뭐가 확실하지 않아. 내가 이름이랑 전화번호까지 줬잖아. 명함 보고 이 카페 온 거 아니야?”

“으응, 그건 맞는데. 혹시 동명이인 아닐까 싶어서 엄마한테 확인을......”

은주의 말을 듣고 나는 웃음이 터졌다.

“푸흐. 동명이인이래.”

“아니, 야! 혹시 모르잖아......!”

“그래그래.”

나는 다시 둘을 차례대로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너희 둘 요 근처로 이사 온다고?”

은주와 하린이한테 어쩌다가 이 카페에 들리게 됐냐고 묻자, 이사할 집을 결정할 겸 들렸다고 했다.

내 물음에 주하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래서 오늘 집 알아보러 같이 돌아다니는 중이었어.”

“아하, 이사는 언제 올 생각인데?”

“내년? 아마도 내년 1월 1일에 바로. 땡 치자마자.”

“어? 뭐야. 그럼 한 달 뒤네?”

“맞아.”

나는 은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럼 은주 너도 1월 1일부터 같이 사는 거야? 대학은?”

“아, 나는 대학 졸업하고. 한 2월 중순에 합류할 거야.”

“그래? 와, 진짜 잘됐다. 앞으로 자주 만나자 우리.”

은주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린은 팔짱을 꼈다.

“흥, 먼저 연락 두절 된 게 누구였더라?”

“아, 야. 그건......”

그렇게, 우리는 카페에 앉아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 연락처도 교환하고.

그동안 뭐 하고 지냈냐.

앞으로는 어쩔 거냐 등등.

이야기할 거리는 한 보따리였다.

어렸을 적 정말로 셋이서 딱 붙어 다녀서 그런가, 솔직히 시간이 많이 흘러서 약간은 어색할 줄 알았다.

그런데, 초반에만 그랬지 한번 물꼬를 트니까 그런 게 생각보다 별로 없었다.

그래도 너무 그녀들의 시간을 잡아먹을 수는 없었다.

둘이서만 온 것도 아니고, 일단은 여자 넷이서 모인 거니까.

하린이나 은주는 괜찮은데, 민지아가 살짝 혼자만 동떨어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적당히 30분쯤 같이 이야기를 나누다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기로 했다.

옆에서 휘낭시에를 냠냠 먹고 있는 민지아에게 말했다.

“지아 씨도 마음껏 드세요. 아르바이트생들한테 다 말해놨으니까,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만 하면 공짜로 줄 거에요.”

“아! 네에. 감사합니다......!”

그녀가 뭔가 예의바르게 고개를 숙였다.

하린과 은주, 지나 옆에 있던 귀여운 상의 여성은 하린이의 친구인 민지아라고 했다.

먹성이 좋은지, 디저트를 아까부터 굉장히 흡입한다.

“가실 때 뭐 마음에 드시는 거 있으면 포장해드리라고도 할게요.”

“어, 어? 진짜요? 어...... 저 그럼 휘낭시에 몇 개만......”

민지아가 내 제안을 덥석 받아들였다.

옆에서 하린이가 준다고 다 받냐, 하며 옆구리를 쿡 찌르고 핀잔을 주었지만, 나는 피식 웃었다.

“에이 괜찮아. 이정도야 뭐. 너희 것도 다 싸줄게.”

“진짜 괜찮아?”

“응, 당연하지. 여기 매출 되게 잘 나와. 그리고 전에 잠수탄 값이라고 생각해.”

“? 그걸로 치면 좀 많이 부족한데......?”

“아, 미안해. 좀 봐주세요.”

“흣......”

내가 빌 듯이 말하자 하린이가 살짝 웃었다.

그 웃음이 너무 매력적이다.

평소에 좀 무뚝뚝해서 그렇지, 아마도 환하게 웃기만 하면 델리아나 예화 정도의 외모가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아무튼, 난 이제 일어날게.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고. 천천히 먹으면서 어느 집이 좋을지 골라.”

“아, 응. 고마워 진현아. 또 연락할게......!”

“응.”

그렇게 말하고 나는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런데, 2층에 올라가자 갑자기 나를 따라온 지나가 내 팔을 붙잡았다.

“진현, 우리 같이 해요.”

팔에 지나의 풍만한 가슴의 감촉이 느껴졌다.

사실 아까부터 지나가 계속 엉겨 붙어서 살짝 난처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저 여자친구 있어요.”

“있어도 저번에 했잖아요.”

“그때는 사고였어요.”

솔직히 지나랑 하면 기분 좋긴 하다. 워낙 테크닉이 뛰어나서.

그런데 이미 나는 히로인이 많으니까.

앞으로 히로인을 안 늘릴 생각은 없겠지만, 적어도 히로인이 아닌 여자한테 힘을 빼서 히로인한테 줄 사랑을 줄이기는 싫었다.

그렇다고 지나를 히로인으로 만든다?

‘오우 노......’

내 안에 있던 유니콘 하트가 고개를 저었다.

지나는 문란해도 너무 문란했다.

일반 히로인은 안 되고, 한다면 서브 히로인인데...... 그것도 지나의 성향을 봤을 때 너무 고민되는 문제였다.

지금까지만 문란했으면 상관없지만, 앞으로 내 히로인이 된 후에도 문란하면 매우 곤란하다.

뭐, 호감도 100을 만들고 지금까지 히로인들처럼 ‘철벽’ 특성을 끼워주면 해결될지도 모르겠지만......

‘어렵네 어려워.’

나는 이 난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다가.

‘그냥 한 번만 해줄까......?’

그냥 오늘 하루만 더 박아주기로 했다.

비행기까지 타고 나만 보러 한국에 왔다고 하니까.

그녀를 만족시켜주면 내게는 더 이상 안 엉겨 붙겠지.

나는 그녀를 데리고 내 사무실 옆방의 내 전용 휴게실로 향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