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화 〉# https://t.me/LinkMoa
“엄마는 특별관 처음 와봐?”
“응. 되게 신기하다.”
백화점 꼭대기 층에 자리한 대형 영화관.
지금까지 봐온 일반적인 영화관의 사이즈보다도 훨씬 거대한 스크린에, 무슨 고급 안마의자를 연상하게 하는 좌석까지.
등받이를 뒤로 젖힌 윤나은은 상영관 입장 전에 서비스로 준 오렌지 쥬스를 마시며 영화관을 둘러보았다.
“요즘 영화관은 이런 곳도 있구나.”
윤나은의 말에 딸 윤유정이 웃으며 답했다.
“응. 특별관이라고 해서, 되게 다양한 상영관들 많아.”
“헤헤, 나도 진현 오빠가 데려와 줘서 처음 알았어. 막~ 좌석마다 헤드폰 있는 곳도 있다?”
“정말?”
“응!”
즐겁게 이야기하는 다정이의 모습에 윤나은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딸의 입에서 또 진현 오빠라는 단어가 나왔다.
천진현이란 이름을 그녀는 참 많이 들었다.
딸들과 이야기를 할 때면 항상 화제의 중심에 그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상영관 영화표도 엄청 비싸던데, 그 오빠한테 너무 많이 받는 거 아니야?”
윤나은은 살짝 걱정스러운 투로 물었다.
다정이가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괜찮을까 싶어서 그와 한 번 통화한 것 말고는, 윤나은은 딸들이 말하는 천진현이라는 사람과는 만나기는커녕 대화도 나눠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하도 딸들을 통해 이야기를 많이 듣다 보니까 그가 딸들에게 무엇을 해주었는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에 대해서는 비교적 잘 알고 있었다.
유정이한테는 카페의 매니저 자리와 함께 상당한 월급을 주고 있고, 다정이는 카페 안쪽의 사무실의 좋은 환경에서 매일같이 공부와 만화를 그릴 수 있게 해주고 있었다.
처음에는 살짝 걱정도 됐지만, 유정이도 있고 하니까 다정이가 카페에서 공부하고 오는 것을 허락했다.
그리고 나날이 밝아지는 딸 둘의 얼굴을 바라보며, 걱정은 점차 고마움으로 변해갔다.
심지어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는 비단 자리를 제공하는 것 뿐 아니라 딸들에게 뭐 사주는 것도 많았다. 자신 또한 그에게 선물을 많이 받고 있으니까, 말 다 한 셈이다.
무슨 드링크에 영양제에 화장품까지.
집에 돌아온 딸 둘이 어떨 때는 상자를 가지고 올 때가 있었는데, 이게 뭐냐고 물으면 둘은 진현이, 또는 진현 오빠가 엄마 주라고 선물해줬다며 입을 모아 말하곤 했다.
“헤헤. 괜찮아, 괜찮아. 오빠 돈 어엄청 많아.”
순박하게 웃는 다정이의 미소에 윤나은은 다정이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돈 많다고 너무 받으면 안 돼. 저번에 너 생일 때는 심지어 테블릿도 새 걸로 사줬잖아.”
“응. 그거 진짜 엄청 좋아.”
검색해보니까 100만 원을 훌쩍 넘기는 고급 테블릿이었다.
평범한 오빠 동생 사이에서 그런 선물이 오갈 수 있을까.
나이도 유정이보다 어리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다정이와도 나이 차이는 많이 나지 않을 것이다.
당시에는 혹시 그 남자와 다정이와 사귀는 게 아닌가 싶다는 의심이 들었었다.
[ 너, 혹시 그 진현 오빠라는 사람이랑 사귀니? ]
[ 어, 어? 그, 그게...... ]
하지만, 정작 다정이한테 혹시 사귀냐고 물어보니까, 귀여운 딸은 말끝을 오묘하게 흐리면서 부정인 듯 아닌 듯 사귀는 게 아니라고 부정했다.
그때, 다정이가 분명 유정이의 눈치를 보는 걸 윤나은은 놓치지 않았다.
‘설마 둘이서 좋아하는 건가? 경쟁?’
설마 하는 생각이었지만, 그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데에도 얼마 걸리지 않았다.
오늘 또한 마찬가지다.
다정이든 유정이든 둘 다 천진현에 관해 말할 때 눈빛이 너무 밝았다.
‘그러고 보니 한 번 만나본다는 게.’
지금까지 못 만나봤네.
솔직히, 결혼이면 매우 조심스러워도, 윤나은은 딸들의 연애에는 크게 참견할 생각이 없었다.
도박에 중독되고, 책임감도 없이 딸과 자신을 버려둔 채 집을 나간 남편.
힘든 환경 속에서 딸 둘을 혼자 부양해야 했기 때문에, 자신을 위해서 딸들이 지금까지 연애도 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와 일에만 매진해온 면이 크다고 윤나은은 생각했다.
본래는 남편의 성을 따라야 했지만, 엄마를 놔두고 집 나간 사람을 아빠라고 부르기 싫다고 윤씨로 개명을 요청하기까지 한 두 사랑스러운 딸이었다.
분명 자신의 생각이 맞겠지.
이제는 둘에게도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으니까, 잘 됐으면 한다.
‘그래도 어떤 사람인지는 직접 이야기를 나눠봐야지.’
당연히 얼굴은 알고 있었다.
딸 둘이 사진을 보여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니까. 솔직히 얼굴만 보면 반할 만하다고 생각되었다.
지금까지는 너무 좋고 고마운 사람이라는 평가지만, 또 직접 보면 대화를 나누면 평가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
감사인사도 할 겸.
이번에 휴가도 얻었겠다.
직접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고 생각한 윤나은은 이번 휴가 기간 안에는 꼭 카페에 찾아가보기로 결심한 채.
“아. 그거 치즈 맛 팝콘, 이게 엄마가 좋아하는 카라멜맛이야.”
“그래?”
진현이 선물해줬다는 팝콘 세트에 손을 올렸다.
******
‘엄마 진짜 많이 좋아지셨다.’
영화를 보다가 윤다정은 고개를 살짝 돌려 엄마를 바라보았다.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진현이 오빠랑 같이 데이트하는 것도 너무 좋지만, 이렇게 엄마랑 언니랑 셋이서 영화를 보는 것도 참 즐거웠다.
자신은 고등학생인데, 지금 엄마를 보면 마치 자신이 중학교 입학했을 시절의 엄마를 보는 듯했다.
점점 피부나 안색도 좋아지고 있고.
이대로 계속해서 좋아지면 진짜 아빠라고 부르기도 뭐한 그 사람이 집을 나가기 전, 그러니까 스트레스를 하나도 받지 않은 엄마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도 당연히 예쁘지만, 엄마의 앨범을 보면 예전에는 정말로 더욱더 예뻤으니까.
‘오빠 고마워요. 히히.’
이게 다 진현이 오빠 덕분이었다.
엄마 말대로 오빠한테는 받은 게 참 많았다.
엄마는 오빠가 빚까지 다 갚아주겠다고 약속한 사실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도 받은 게 많다고 느끼는데, 자신은 오죽할까.
그런 거 미안해하지 말라고 진현 오빠에게 들었기 때문에, 또 자신이 언젠가 엄청난 만화가로 대성해서 갚아주겠다는 마음에, 윤다정은 당당하게 오빠가 주는 것들을 다 받아들였다.
그으, 그 기분 좋은 쾌감과 사랑까지도......! 흠흠!
물론, 그런 오빠에게도 단점이 있긴 했다.
바로, 여자가 많다는 단점.
오늘 놀러 간다고 했는데, 아마도 지금쯤 그 예화 언니랑 같이 데이트하고 있겠지. 바보 오빠......
어쨌든.
‘그런데 엄마를 어떻게 설득하지.’
윤다정의 고민은 그거였다.
엄마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딸 둘이 한 오빠와 동시에 사귀고, 그 오빠가 또 다른 여자친구도 많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었다.
언젠가는 이 관계가 들킬 것이고, 들키기 이전에 같이 오빠 집에서 동거하기 위해서는 엄마의 허락을 맡아야 하는데,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오빠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고민해봤지만, 딱히 이렇다 할 답이 나오지 않았다.
‘뭐 오빠니까......’
@K122
평화적인 방법으로 잘 해결해주지 않을까 싶었다.
응.
윤다정은 생각을 그만두고 다시 영화에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