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화 〉# https://t.me/LinkMoa
“그런데 그 박스는 뭐야?”
“아. 이거?”
고속도로에 진입하기 직전의 사거리.
마침 걸린 빨간불에 옆자리의 예화를 바라보자, 그녀가 작은 아이스박스 하나를 안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예화는 희미하게 웃더니 박스 뚜껑을 열어 내게 보여주었다.
“그냥 좀 집에서 가져와 봤어. 볼래?”
“어디, 어. 귤이네?”
예화가 가져온 박스 안에는 여러 가지 먹거리들이 들어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역시 탱글탱글한 귤.
내가 묻자, 예화는 봉투 안의 물건들을 하나씩 손에 집어 보여주었다.
“응. 귤이랑 뭐, 음료수랑 과자랑 몇 가지? 우리 속초 간다며.”
“맞아. 펜션에서 묵을 거야.”
“그러면 운전 오래 걸리니까. 중간에 가면서 먹으라고 싸 왔어. 귤이 또 멀미에도 좋데.”
“오, 그래?”
여행지로 잡은 곳은 속초.
아주 멀다고는 할 수 없지만, 서울에서 속초까지는 대략 3시간 정도 운전해서 가야 했다.
나름 장거리 운전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나는 운전면허를 장롱에서 꺼낸 지도 얼마 안 됐고, 장거리 운전은 처음이라 이런 부분은 생각지도 않고 있었다.
이런 걸 준비해줄 줄은 몰랐는데.
내가 놀란 눈으로 예화를 바라보고 있자. 그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아니, 운전하는데 챙겨준 건 예화가 처음이라서.”
“그, 그래?”
직설적으로 칭찬하자 예화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요즘은 칭찬을 좀 해주면 예화는 아주 좋은 반응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괜히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귤 하나를 집어 들었다.
“지금 하나 먹을래? 까줄게.”
“응, 좋다.”
내가 답하자마자 예화는 예쁜 손으로 귤껍질을 쭈욱, 쭈욱 벗기기 시작했다.
평소와는 다른 매니큐어를 발랐는지, 예화의 손톱이 연한 핑크색으로 빛났다. 지금 보니까 은근히 내게 어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귀여워가지고.’
전형적으로 손톱이 예쁘다는 칭찬을 해주자, 예화가 또 베시시 웃었다.
어느덧 귤을 다 깠는지, 예화가 내게 귤 두 조각을 잘라서 내밀었다.
“자.”
“아, 땡큐. 잠시만.”
귤을 받으려고 하는데, 때마침 신호가 바뀌었다.
우우웅-
솔직히 그냥 한 손으로 받는다면 받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이럴 때 써먹어야지.
나는 그대로 앞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나 운전 중이니까, 예화가 먹여주라.”
“먹여달라고?”
“응. 싫어?”
“시, 싫은 건 아닌데......”
예화는 힐끗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내 입 앞에 귤을 내밀었다.
“알았어. 그럼 입 벌려봐.”
“아~.”
쏘옥.
입을 벌리고 있자, 예화가 직접 귤을 넣어주었다.
오물오물 귤을 씹자 시원하고 톡 쏘는 달콤새콤한 맛이 입안에 감돌았다.
이게 또 먹여주니까 색다른 맛이 있네.
예화가 감상을 물어왔다.
“어때?”
“이거 맛있다.”
아이스박스에 있어서 그런지, 귤은 상당히 차가워 딱 내 취향이었다.
“그치? 나도 먹어봤는데 괜찮더라. 인터넷에서 할인하길래 사봤어.”
“아하.”
예화는 싱긋 웃더니 박스 안에서 음료수도 꺼내 흔들었다.
“음료수나 아니면 과자도 있으니까. 마시고 싶으면 말해. 꺼내 줄게.”
“과자도 먹여줄 거야?”
“응? 뭐, 원하면......”
“그럼 지금 바로 먹여주라.”
내가 말하자 예화가 물어왔다.
“으음, 뭐로?”
“윙스칩?”
“이거? 알았어. 자.”
“아아.”
쏘옥.
예화는 과자 봉지를 뜯어 한 조각을 내게 내밀었고, 나는 웃으며 예화가 준 과자를 맛있게 받아먹었다.
******
아침 8시가 되기 전에 시작한 운전은 11시가 넘어서도 계속되었다.
[ 잠시 후 좌회전입니다. ]
이미 운전 시간만 3시간이 넘어갔지만, 운전 자체는 내 생각보다도 별로 힘들지 않았다.
운전하는 내내 별달리 지루할 틈이 없어서 그런가.
“자, 아아.”
“아~.”
쏘옥.
예화가 이따금 입에 넣어주는 귤이나 과자들이 꿀맛이기도 했고, 처음 직접 들린 휴게소에서 잠시 쉬는 것도 꽤 재미있었다.
고속도로를 달려본 적이 몇 번 없고, 장거리 운전도 처음이었지만, 역시 히로인 어플의 아이템.
운전석에 집중과 안정을 비롯한 여러 효과의 스티커들을 붙여놓으니, 딱히 긴장하지도 않고 실제로 매우 안정적인 운전이 가능했다.
“이제 얼마나 남았어?”
“한 20분? 거의 다 왔어.”
늦가을 속초 여행.
사실, 특별히 속초 자체에 의미를 둔 것은 아니고, 워낙 급하게 펜션을 잡으려다 보니 행운추적자의 힘을 빌린 것이다.
[ 11월 20일, 예약이 비어 있는 아주 좋은 펜션을 알려다오...... ]
솔직하게 말하자면 여행지 자체는 어디로 잡든 큰 상관이 없었다.
일단 자리가 남아있는 좋은 펜션을 위주로 찾아봐 결정하게 되었다.
어디를 가든 볼 것들은 꽤 되는데, 일단 묵는 곳이 느낌 있어야 하니까.
원래는 이번 주말에 예화를 집으로 초대해 주택에서나 어떻게 수정이랑 함께 찐득한 3P 섹스를 할 각을 잡아보려고 했는데......
[ 아~ 나는 진현이랑 언제 데이트 하지~ ]
[ 그러니까요~ 오빠가 평생 사랑한다고 해놓고~ 맨날 다른 여자랑 놀고~ 데이트는 일주일에 한 번인데, 그것도 가끔은 빼먹고~ ]
유정이 누나나 다정이의 질투심이 폭발하는 바람에 일정을 조금 앞당길 수밖에 없었다.
또한, 주택보다는 여행을 가면 어떠냐는 수정이의 의견에 또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하긴......’
내가 그동안 예화한테 꽤 오랫동안 집중하기는 했지. 얼른 다른 여자들도 달래줄 필요가 있었다.
델리아도 평소에 은근슬쩍 질투심을 드러냈었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예화가 예쁜 것을.
앞으로 편애하겠다는 소리는 아니었지만, 일단 호감도 100을 찍을 때까지는 어쩔 수 없다. 완전히 공략 완료를 해야 안심이 되니까.
특성들도 심어줘야 다른 히로인과도 잘 지내게 할 수 있고......
아마 지금은 질투를 표해도, 같이 지내고 하면 금방 다 친해질 수 있을 것이다.
[ 곧이어 목적지 부근입니다. ]
“어, 다 온 거 아냐?”
“그러게. 도착했나 본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차를 몰다 보니 어느덧 예약한 펜션에 도착할 수 있었다.
펜션은 해변가 근처에서 상당히 근사한 건물을 자랑하고 있었다.
나는 자갈이 바닥에 쫙 깔린 펜션 주차장에 차를 댄 다음, 자동차가 완전히 멈추고 나서야 예화를 바라보았다.
“이제 내리자.”
“응.”
우리는 각자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예화는 바깥 공기를 크게 들이쉬더니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 바다 냄새.”
“그러게, 가까워서 그런지 확 난다.”
차 안에 있을 때는 못 느꼈는데, 나오자 시원한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기분 나쁜 냄새는 아니고, 서울에서는 맡을 수 없는 되게 짭짤하고 시원한 향기.
문득 예화를 바라보자, 바람에 흩날리는 그 옆모습에 되게 아름다워 보였다.
“왜?”
“아니, 그냥 예뻐서.”
“뭐야아......”
나와 눈이 마주친 예화는 내 칭찬에 시선을 살짝 피하며 머리카락을 넘겼다.
자연스럽게 귀를 보여주는데, 사람 많은 곳에서 하면 안 쳐다볼 남자가 없어 보였다.
안 그래도 화장 없이도 빛날 외모.
오늘은 화장까지 열심히 하고 나와서 그런지, 여러 가지로 엄청나게 화사했다.
그러고 보니 옛날에는 예화 같은 여자를 좋은 차 옆자리에 태우고 드라이브 한 번 해보는 게 꿈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것도 일상이 되었네.
나는 예화에게 물었다.
“아침은 먹고 나왔다고 했지?”
“으응. 간단하게 샐러드 조금?”
“그럼 지금 배는 어때? 우리 짐만 놓고 근처에서 점심부터 먹을까?”
“아, 응. 그러자.”
예화의 동의에 나는 얼른 짐을 챙겨 펜션 안으로 들어갔다.
당연히, 펜션 주인한테도 예약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는 걸 잊지 않았다.
“와아. 되게 좋다.”
펜션은 1층과 2층의 복층 구조로 되어있었다.
1층에는 당구를 즐길 수 있는 당구대와 함께 여러 놀 거리가 놓여있었으며, 2층에서는 커다란 침대와 함께 경치를 구경할 수 있는 테라스까지 존재했다.
펜션을 한번 둘러본 예화는 눈을 빛냈고, 나 또한 감탄했다.
“그러게. 생각보다도 더 좋네? 침대도 되게 크고 푹신해 보이고.”
“침대? ......너 또 야한 생각 하지.”
“와. 이건 진짜 음해다. 나는 그냥 푹신하다고만 했는데. 예화 네가 야한 거 아냐?”
“몰라아.”
펜션을 구경하며 평온한 대화를 주고받은 우리는 그렇게 짐을 펜션에 둔 다음 간단한 가방만 챙겨 다시 밖으로 나왔다.
자동차에 시동을 건 다음 예화가 조수석에서 안전벨트를 맨 것을 확인한 나는, 슬슬 때가 왔음을 느꼈다.
나는 갑자기 신호가 왔다는 듯 예화에게 배가 아픈 척 말했다.
“아, 미안...... 나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게. 여기서 좀 기다리고 있어?”
“응? 아, 천천히 다녀와.”
고개를 끄덕이는 예화를 자리에 두고, 나는 다시 펜션 안으로 들어갔다.
터벅터벅.
펜션 안은 조용했다.
으음.
아주 좋아.
주변 감지로 예화나 다른 사람이 근처에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완벽하게 확인한 나는, 이내 수정이한테 사랑의 메신저를 보냈다.
『 수정아, 지금 블랙룸 안에 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