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화 〉# https://t.me/LinkMoa
달각, 달각.
“그럼 갈게?”
“응, 조심히 들어가.”
예화는 현관문 앞에서 신발을 신는 진현을 배웅했다.
둘이서 같이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이야기를 좀 하다 보니까 또 시간이 금방 흘러갔다.
이제는 어느덧 점심이 다가올 무렵.
마음 같아서는 조금만 더 그와 같이 있고 싶고, 점심도 함께 먹고 싶었지만......
진현이 먼저 가봐야 한다며, 이야기하던 도중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아마도......
‘수정이나 다른 여자들을 만나러 가는 거겠지.’
예화의 표정이 살짝 시무룩해졌다.
그의 다른 여자들 생각을 하니 또 마음이 저릿했지만, 그렇다고 진현을 붙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뭐야. 왜 그렇게 축 처져있어. 나 이제 간다니까 많이 아쉬워?”
장난스러운 얼굴을 하며 말을 하는 진현.
그런 그의 표정이 살짝 미웠다.
“......그렇게 많이는-.”
“으유. 또 삐진 거 봐. 가기 전에 할 일 있잖아. 빨리, 이리 와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약간 삐진 분위기를 내자, 진현이 슬그머니 다가와 머리를 순식간에 감싸 안았다.
“응? 아...... 움, 쪽, 쪼옥......”
콧가에 확 느껴지는 그의 향기.
말랑하게 닿는 입술의 감촉.
예화는 자연스럽게 발꿈치를 조금 들어 올려 눈을 감았다.
동시에, 그의 등 뒤로 팔을 둘러 그를 꽈악 붙잡았다.
“움, 쫍, 쪽, 쪼옵, 쭙......”
가벼운 입맞춤에서 시작된 키스는, 점차 숨이 가빠질 정도로 짙어졌다.
혀와 혀가 얽히며 타액이 교환되고, 예화는 몸이 붕 뜨는 것만 같은 황홀한 기분을 느꼈다.
언제나 그렇듯.
그와 키스할 때면 이런 기분이 들었다.
신비했다.
오로지 먹이를 갈구하는 새처럼 그의 입술과 혀만을 갈구하게 된다.
예화는 타액을 넘겨주는 그의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며 그의 침을 받아마셨다.
“츄웁, 쪽, 꿀꺽, 쪼옥, 파하......”
“하아, 어때? 좋아?”
“으응, 조금 더...... 쫍, 쪼옥......”
조금 더 같이 있다 가라는 말은 못 해도.
키스를 조금 더 해달라는, 그 정도 어리광은 부릴 수 있었다.
“쪽, 쪼옥, 으응, 하아, 하아......”
몇십 초 정도 더 입술을 맞추고 입술을 떨어뜨리자, 혀와 혀 사이에 야하고 기다란 실선이 늘어졌다.
진현이 살짝 몽롱하게 풀린 예화의 얼굴을 만지며 물었다.
“키스하니까 표정 좀 낫네. 그래서, 아직도 불안해?”
“으응? 불안......? 뭐가......?”
예화는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은 기분이 좋을 뿐이었다.
진현은 예화를 보며 입을 열었다.
“수정이 말이야. 아직도, 수정이한테 우리 사이 말하는 거 불안해?”
예화는 진현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드는 걸 느꼈다.
그를 바라보며 소리치듯 답했다.
“그, 그거야 당연하지!”
“왜? 진짜 괜찮다니까. 나만 믿어.”
진현이 걱정말라는 듯 말했지만, 예화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절대 말하지 마아. 우리 이러는 거 알면...... 수정이 엄청나게 상처받을 거야. 나랑 사이도 멀어질 거고......”
진현이 그런가? 하며 긴가민가 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예화의 생각은 역시나 확고했다.
이건 진현이 섬세함이 없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수정이한테 관계를 말한다니.
‘절대 안 돼.’
예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진현이 양다리를 걸친다는 것을 수정이가 알고 있고, 이미 다른 여자들도 있기야 하지만......
그들과 자신은 근본적으로 달랐다.
자신은 처음부터 수정이를 알던 그녀의 절친.
게다가 수정이와 진현의 사이를 욕하거나, 진현을 악담하며 수정이한테 당장 진현과 헤어지라고도 했던 전적까지도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역으로 수정이를 놔두고 진현과 깊은 관계가 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수정이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너무나도 뻔한 일이었다.
심지어 저번에는 수정이와 진현이가 섹스한 장면을 몰래 촬영해 협박하기까지......!
‘으......’
그 문제의 섹스 동영상 사건을 생각하면 계속 얼굴이 화끈거린다.
결국, 수정이와 화해를 하고 사과를 해 사이가 다시 좋아지긴 했지만......
어쨌든, 자신이 지금까지 둘 사이에서 그래왔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으니까.
‘아무리, 수정이가 친한 친구라도......’
아니지, 오히려 친구니까 더욱더.
자신과 진현이 이런 사이라는 것을 알면, 그녀가 경멸할 것이 뻔했다.
“그래, 알았어. 그럼 아직은 말 안 할게. 일단 예화 원하는 대로 키스나 더 할까. 응?”
솔직하게 말해서, 진현과의 관계를 끊는 것이 가장 이성적으로는 맞는 수지만......
“하아, 바보...... 응, 으응, 쬬옵, 쪽......”
쪼옥, 쪽-
이미 그에게 너무 깊게 빠져버렸다.
이 불안한 관계라도 이어가고 싶었다.
그렇게 입을 맞추길 수 분.
영원할 것만 같던 키스의 시간이 끝나고, 진현이 마침내 뒤를 돌았다.
“그럼 나 이제 진짜로 갈게? 어제 파스타 맛있었어.”
“아, 응. 잘 가. 원하면 다음에 또 해줄게......”
“고마워.”
쪽.
철컥-.
마지막으로 가벼운 키스를 남기고 간 진현의 모습에, 예화는 그의 입술의 여운이 남은 이마를 잠시 매만졌다.
그가 나간 현관을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후다닥 창문을 통해 마저 진현이 걸어가는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당당하게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
창문을 통해 조금 보고 있자, 그의 모습이 골목길 사이로 완전히 사라졌다.
진현의 모습이 아예 보이지 않게 된 다음에야, 예화는 창문에서 눈을 뗐다.
“후우......”
그리고 예화는, 한숨과 함께 아직까지도 그의 침이 남아있는 입술을 조용히 매만졌다.
“으응.”
......그러다가.
스윽-.
조심스럽게 손을 팬티 쪽으로 가져갔다.
문질.
“아으, 진짜아. 또, 젖었어. 어떡해......”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혹시나 해서 팬티를 만져 봤는데, 역시나 가운데 부분이 미약하게 젖어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미친 것 같았다.
어제 그렇게 했는데도 또 젖다니.
예화는 한숨을 내쉬며 팬티를 벗었다.
“후우, 뭐 하지. 갈아입고, 으음 스튜디오 갈까......”
진현이 준 디퓨저의 효과 덕분에, 이제는 또 굳이 카페에 갈 필요가 없어졌다. 오히려 디퓨저를 옆에 놓고 집중하는 편이 훨씬 더 작업이 잘 되니까.
게다가, 어차피 카페에 간다고 해서 진현의 얼굴을 계속 볼 수 있는 건 아니고......
그래도 음료랑 빵은 너무 맛있었기 때문에, 요즘은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마친 다음에 카페에 잠깐만 들려 음료와 빵을 포장으로 구매하여 나오는 게 일과가 되었다.
집에 와서 편하게 디저트를 즐길 수도 있고, 잠시 들른 김에 진현과 간단히 인사도 나누고(인사라고 쓰고 키스라고 읽는다).
오늘도 그렇게 하자.
일단 스튜디오에 가기 위해 짐을 싸려는데, 문득 휴대폰이 진동했다.
“응?”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보니 진현에게서 톡이 도착해 있었다.
[ 진현이 : 오늘도 카페 들릴 거야? ]
예화는 자연스럽게 답했다.
[ 나 : 응. 아마 그럴 것 같은데? ]
[ 진현이 : 잘 됐다. 만약 들리면 오늘 신메뉴 하나 나왔거든? 한번 마셔봐. ]
카페에 들리냐고 물어보는 진현의 물음에 혹시나 오늘 또 키스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는데.
아쉽게도 신메뉴 이야기였다.
[ 나 : 신메뉴? 뭔데? ]
[ 진현이 : 민트초코 라떼. 직원 한 명이 이런 메뉴도 꼭 있어야 한다고 해서 요번에 만들었어. 먹어보면 어땠는지 평가도 해주고, 알았지? 오늘은 내가 카페 안 나가서 직접 더 얼굴을 더 보지는 못하겠다. ㅠㅠ ]
‘민트초코 라떼라.’
그래도 새로운 음료는 좋으니까.
맛을 봐주는 것이 그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고. 진현의 말대로 하기로 했다.
답장을 치려는데, 진현으로부터 톡 두 개가 더 도착했다.
[ 진현이 : ( 사진 ) ]
[ 진현이 : 이거 보여주면, 직원이 공짜로 내줄 거야. ]
‘앗. 또 무료 쿠폰......’
요즘 진현은 카페 쿠폰을 많이 주었다.
그에게 특별한 존재가 된 것 같아 기쁘기는 했지만, 저번에는 비싼 바이올린까지 받아는데.
솔직히 좀 미안하긴 했다.
[ 나 : 계속 받기만 하는 건 미안한데...... 그래도 고마워. 잘 먹을게! ]
[ 진현이 : 미안하면 엄격한 평가 부탁해 ㅋㅋ ]
[ 나 : 웅, 당연하지 ㅎㅎ ]
[ 진현이 : 아, 모레 우리 1박 2일 가기로 한 것도 잊지 말고, 알았지? ]
1박 2일.
모레 진현이가 1박 2일로 어디 놀러 가자고 제안해서, 어젯밤 막 수락한 이야기였다.
자신과 진현이 동시에 어디를 놀러 가면 수정이가 알아챌 가능성이 있어 살짝 걱정되었지만......
솔직히 2박 이상도 아니고 1박이라면, 그나마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수정이한테는 어디 갔다고 말을 안 하면 되는 거니까.
수정이.
수정이......
‘그러고 보니.’
예화는 다시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오늘 아침에 수정이한테 진현이 폰으로 전화가 왔을 때, 그의 폰 액정에 비춘 수정이의 이름이 떠올랐다.
[ 수정이♡ ]
그냥 이름까지는 괜찮은데, 뒤에 붙은 하트.
살짝 거슬렸다.
여자친구니까, 딱히 이상한 저장 방식이 아니었다만, 당연히......
‘나는 뭐라고 저장되어 있을까......’
라는 궁금증이 안 들 수가 없었다.
진현의 폰이 잠겨있었기 때문에 직접 전화를 걸어 확인해보려고 했었는데.
[ 일찍 일어났네? ]
[ 어? 아, 으응. 진현아, 일어났어? ]
[ 뭐야. 왜 그렇게 당황해? ]
[ 아무것도 아냐아. ]
갑자기 잠에서 깬 진현이가 거실로 나오는 바람에, 결국 확인하지 못했다.
궁금한데......
‘아니.’
그래.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차라리 확인하지 못한 게 더 나을 수도 있었다.
‘만약 아무것도 없이 그냥 이름 만 저장 되어 있으면......’
괜히 또......
또......
‘으음.’
예화는 조용히 휴대폰을 바라보다가, 연락처가 저장되어있는 프로필 메뉴로 들어갔다.
그리고 즐겨찾기로 저장되어있는 진현의 이름을 꾸욱 눌렀다.
나온 몇 가지 메뉴들 중 편집하기 버튼을 선택.
이름 칸을 터치해.
탁, 타닥-
무언가를 누르려다가 살짝 고민에 빠졌다.
‘그, 그래도 하트는 좀 뭐하지......?’
괜히 자신만 너무 신난 것 같다.
그렇게 특수문자들을 살펴보다가 한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 그래.
별표로 타협하자.
예화는 특수문자 기호중 별을 찾아 입력한 뒤 수정 완료를 눌렀다.
[ 수정한 내용이 저장되었습니다. ]
다음으로, 다시 진현과의 톡방에 들어갔다.
[ 진현이☆ : 아, 모레 우리 1박 2일 가기로 한 것도 잊지 말고, 알았지? ]
“응.”
예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좀 부족한 것 같기도 한데,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뭔가 나은 것 같았다.
[ 나 : 안 잊어버려. 수정이한테 나랑 가는 거나 절대 들키지 마! ]
[ 진현이☆ : ㅋㅋ 걱정마. ]
그래도 살짝 안도감이 드는 그의 대답에, 예화는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이틀 뒤가 기대되었다.
******
“귀엽네.”
예화의 답장을 확인한 나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마저 걸었다.
이제 이전의 그 앙칼졌던 태도는 사라지고 예화는 귀엽고 야한 소녀로 변모했다.
‘덮밥을 하면 예화는 위가 좋을까, 아래가 좋을까.’
밥이냐 소스냐.
그게 문제로다.
그렇게 앞으로 예화와 할 3P 생각을 부풀리다 보니, 집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커다란 주택의 모습.
예전에는 꿈만 꿨는데, 이제는 너무 익숙했다.
주택은 차고를 통해서도 들어갈 수도 있고, 계단을 올라가 1층 정원으로도 들어갈 수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후자가 더 편했다.
“여기에다 심을 거야?”
“네, 언니 아 그건 여기에......”
정원 마당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썬룸의 문을 연 채로 쭈구려 앉아 사이좋게 이야기하고 있는 델리아와 수정이가 보였다.
델리아는 내가 오는 걸 알고 있었는지 안에 들어서자마자 싱긋 눈웃음을 지으며 인사했고, 수정이는 나를 발견하고는 반색하며 달려왔다.
“아, 진현아! 왔어?”
“응. 뭐 하고 있었어?”
내가 묻자 수정이가 웃으며 대답했다.
“리아가 식물 심는다고. 그거 좀 도와주고 있었지.”
“식물? 식물을 11월에도 심나?”
“응. 11월이 또 중요하다던데.”
“아, 그래?”
어차피 식물은 리아가 잘 알 테니까.
요즘에 리아 덕분에 정원은 물론 집 방마다 괜찮은 화분들이 하나씩 있어 허전하지는 않았다.
“그보다.”
그렇게 식물을 떠올리고 있자, 수정이가 내 옷깃을 꾹꾹 잡으며 장난스러운 미소와 함께 물었다.
“예화는 좀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