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화 〉# https://t.me/LinkMoa
삼겹살 전문 고깃집.
테이블 의자에 앉아 등을 끝까지 기댄 민지아는 빵빵하게 부른 배를 문질렀다.
“으아, 잘 먹었다아. 배불러어......”
하린은 그런 지아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신기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테이블은 완전히 깨끗해져 있었다.
“진짜 하나도 안 남기고 다 먹었네.”
오랜만에 고깃집에 와서 들뜬 건 충분히 알겠는데, 설마 그녀가 삼겹살 2인분에 찌개, 냉면, 모둠 고기까지 추가해서 전부 먹어버릴 줄은 몰랐다. 이렇게 깔끔하게 먹을 줄은 더더욱.
“으흐. 남기면 아깝잖아.”
“그래도 너무 많이 먹은 거 아니야?”
하린의 말에 지아가 피식 웃으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쯧쯔쯔. 다이어트는 내일의 내게 맡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
“그 배에 그만큼 들어가는 것도 신기하다.”
“그건 뭐어. 흐흐. 양은 나도 먹방하다 보니까 늘어난 것 같은데,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긴 해. 처음에는 깨작깨작 먹는다고 시청자들이 많이 싫어했거든. 이제는 거의 안 그래.”
지아는 그렇게 말하더니, 갑자기 자신의 먹방 경력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하린은 지아의 말을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리며, 그녀의 학창 시절의 모습을 생각해보았다.
확실히, 생각해보면 옛날에는 지아도 되게 소식했던 편이었지. 요즘에 갑자기 먹는 양이 확 늘어났을 뿐이었다.
“아이스크림 좀 떠 올까?”
“응? 어, 땡큐, 나 딸기 맛으로!”
“없으면? 그냥 내 맘대로 퍼온다.”
“웅.”
하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서 문득, 아까 봤던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릴 적 소꿉친구 진현의 향수가 묘하게 나는 얼굴.
그래서 옆 테이블을 바라보았는데, 자신들이 너무 오랫동안 먹은 탓인가.
‘아.’
아무래도 하린과의 이야기에 심취하여 음식을 먹는 동안 남자와 여자는 이미 식사를 마치고 간 듯했다.
옆 테이블에는 아까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하린은 잠시 남자의 얼굴을 상기하다가, 적당히 아이스크림을 퍼 지아에게 가져다주었다.
지아는 좋아하며 아아스크림을 받았다.
“넌 안 먹어?”
“응. 어차피 카페도 갈 거라며.”
“맞아, 그랬지.”
“아무튼, 좀 걷고 소화 시키고 나서 가자.”
“좋은 생각이옵니다.”
지아는 편안한 자세로 아이스크림을 할짝거렸다.
하린은 그녀가 다 먹기를 기다리다가, 이내 음식값을 계산하고 가게를 나섰다.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찬 공기가 들어온다. 지아가 몸을 떨었다.
“으우, 시원해라.”
“추운 게 아니라? 이제 곧 겨울이네.”
“으흐흐. 겨울에는 뱃살 가릴 수 있어서 좋아.”
뜬금없이 뱃살 타령을 하는 지아에 피식 웃은 하린은 아까 말한 대로 그녀와 함께 소화도 시킬 겸 거리를 걸었다.
“아, 얼마 나왔어?”
“이따 톡으로 보내줄게.”
“오케이~.”
걸으면서, 하린은 주변의 풍경 하나하나를 눈에 새겨넣듯 둘러보았다.
‘음......’
깔끔한 거리의 풍경과 세련돼 보이는 사람들의 패션.
이런 데에 살면 괜찮으려나?
얼핏 본 바로 일단 동네가 꽤 좋은 편인 것 같기는 했다.
거리도 그렇고, 뒷산도 있어서 집을 나온 다음 못 쓰게 될 호텔의 운동 시설을 대신에 운동도 가능해 보였다.
뭐, 헬스장을 끊으면 되긴 되겠지만.
그녀가 동네를 둘러보는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자취 문제 때문.
하린은 최근에 은주와 나눈 톡을 떠올렸다.
[ 은주 : 하린아, 우리 같이 살래? ]
[ 나 : 어? 같이 살자고? ]
[ 은주 : 응. 너만 괜찮으면, 우리 같이 살면 돈도 아끼고 좋을 것 같은데. ]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고, 자신이 집을 나서서 자취할 생각이라고 하자 은주가 먼저 해온 제안이었다.
빈말은 아닐 것 같았다.
이제 은주도 얼마 안 있으면 버클리 음악 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 귀국한다고 했으니까.
부모님 집으로 다시 돌아가도 되겠지만, 아무래도 그녀는 독립을 원하는 것 같았다.
‘다만.’
은주는 지금 미튜브가 굉장히 잘 나가고 있어서 충분히 혼자서 월세를 내도 부담되지 않을 능력이 될 터인데.
굳이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은, 아마도 자신이 당장 일자리 없이 몸만 나간다고 해서 그렇지 않을까 싶었다.
그녀가 나름대로 해준 배려겠지.
얼마 전에는 구독자 80만까지 달성했다고 하니까, 은주 입장에서는 굳이 돈을 아낀다고 둘이서 자취할 이유가 없었다.
[ 나 : 고마워. 일단 한번 생각해 볼게. ]
[ 은주 : 응. 잘 생각해 봐! ]
하린은 은주의 제안을 덥석 물지 않았다.
정확히는 고민이 되어, 일단 보류한 상태였다.
은주와는 어릴 때 굉장히 친했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연락을 유지하며 간간이 얼굴을 보기도 했지만, 역시 같이 사는 건 다른 문제니까.
인터넷에 찾아보니까, 같이 산 뒤에 절교까지도 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꽤 많이 들려왔다. 더 끈끈해졌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소수에 불과했고.
아직도 은주의 제안에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때마침 놀러 온 다른 동네.
이제는 11월 중순이니까. 슬슬 은주의 제안에 더해, 앞으로 살 곳도 생각을 해둬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었다.
“으, 춥다. 우리 이제 카페에 들어가면 안 돼?”
“그래. 가자.”
거리를 거닐면서 꽤 괜찮은 동네라는 판단을 마치고, 하린은 지아와 함께 카페에 들어갔다.
딸랑딸랑.
안으로 들어가자 찬 공기가 거짓말처럼 없어지고, 편안하고도 아늑한 분위기가 하린을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어.”
“대박, 따뜻해. 프흐, 이게 천국이지.”
생각보다도 분위기가 더 괜찮았다.
솔직히 말해서 미튜브에서 호들갑을 떨며 소개한 삼겹살 맛집은 아주 대단한 정도까지는 아니어서 살짝 아쉬웠는데, 분위기를 보아하니 이 카페는 삼겹살 가게보다는 더 좋지 않을까 싶었다.
“뭐 먹을 거야?”
적지 않은 메뉴의 수에 지아를 바라보자 그녀가 낮게 웃었다.
“흐흐. 그럴 줄 알고 리스트 적어왔지. 이대로 먹으면 완벽해!”
“준비성 철저하네.”
하린은 지아가 건내준 리스트대로 메뉴를 주문했다.
그렇게 가만히 메뉴가 나오기를 기다리다가 메뉴를 받고 빈 자리에 앉았는데, 문득 카운터 안쪽으로 한 남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아까 전 옆 테이블에서 본 사람. 진현을 닮은 남자였다.
‘어, 여기서 일하나?’
심지어 남자와 함께 있었던 여자도 보였다. 하린은 마침 딱 보이는 각도에 남자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오묘한 느낌.
하린은 그렇게 남자를 응시하다가.
‘착각이겠지.’
이내 결론을 내리고 시선을 거뒀다.
뭔가 미묘하게 다른 것 같기도 했다. 애초에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데, 알아볼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을까.
그리고 진현은 은주 사촌이니까. 어쩌면 그녀가 한국에 오고 난 뒤 다시 만날 일이 생길 수도 있었다.
하린은 휘낭시에를 한입 베어 물고 음료를 쪽, 하고 빨았다.
‘맛있네.’
이 카페도 미튜버가 영상에서 호들갑을 참 많이 떨었는데, 삼겹살 가게와는 다르게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린은 만족스러운 후식 시간을 보냈다.
“10개나 사게?”
“응. 너무 맛있어서. 진짜 대박.”
“그거 적어도 내일까지는 먹어야 맛있을 텐데.”
“부, 부모님도 드릴 거야.”
지아는 휘낭시에를 10개나 포장해서 나왔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로열 호텔로 돌아온 하린은 지아와 헤어져 그녀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지아가 준 휘낭시에 1개를 까먹으며, 다시 들렀던 카페와 자취 문제에 대하여 생각했다.
‘나쁘지 않을 지도.’
카페 덕분에 동네에 대한 평가도 덩달아 올라간 느낌이었다.
하린은 오늘 들렀던 동네를 자취할 동네의 후보로 넣고, 옷을 벗어 샤워하러 화장실로 들어갔다.
******
“으흥흥~ 흐응~.”
콧노래를 부르며 마늘을 볶는다.
알싸한 냄새가 은은하게 올라오는 가운데, 장예화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이제 새우랑 베이컨을 넣고......”
그녀는 요즘 들어 기분이 참 좋았다.
작곡은 날개가 달린 듯 잘 되었고, 햇살을 맞이하는 아침은 항상 상쾌했다. 지금까지 매일매일이 이렇게 즐거웠던 적이 있었을까.
그런 그녀의 미소를 만드는 데에 가장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띠로롱~ 띠로롱~
“아! 왔나 보다.”
이렇게, 그녀를 찾아오는 한 명의 방문자였다.
주방 부엌에 서 있던 예화는 하던 작업을 멈추고 후다닥 현관으로 달려갔다.
띠리릭, 철컥-
슬리퍼를 신고 문을 열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잘 있었어?”
싱긋 미소 지으며 그녀를 찾아오는 한 남자.
그를 보자 안 그래도 환했던 예화의 얼굴이 더더욱 환해졌다.
“아, 진현아! 응. 들어와.”
천진현.
예화가 그에게 처음 안긴 지도 이제 6일이 되었다.
그제는 부모님 댁에 들리느라 그를 만나지 못했지만, 처음 그에게 안긴 이후로 예화는 매일 그를 만나 극상의 쾌감을 맛보았다.
몸을 섞으니 자연스럽게 이야기도 많이 나누게 되고, 가끔 반말도 오가게 되었다.
그래도 표면적으로는 항상 존댓말이었는데, 어제 그와 이야기를 하다가 나이도 같은데 언제까지 서로 존대하냐는 말이 나오게 되어 앞으로는 말을 놓자고 했다.
“요리하고 있었어? 냄새 좋네.”
“응. 파스타. 점심 안 먹고 왔지? 좀만 기다려. 해줄게.”
예화는 다시 주방으로 달려가 볶은 마늘 위에 새우를 집어넣었다. 혼자 먹는 게 아니라 먹어주는 사람이 있으니 요리도 즐거웠다.
처음 그와 관계를 맺은 날 라볶이를 맛있었다고 해주어 더욱 의욕이 났다.
이러고 있으니 정말 여자친구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다가도, 예화는 갑작스럽게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수정이의 생각에 살짝 가슴이 아려옴을 느꼈다.
정말 들키면 어떡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