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 어플-188화 (188/303)

〈 188화 〉# https‍:/‍/‍t.me‍/LinkMoa

시끌벅적.

사람들이 만연한 오후의 대형 PC방.

이른 시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던 아저씨나 대학생들에 더해, 학교가 끝난 미성년자들까지 합류하자 PC방의 공기는 금세 열기를 띠었다.

“야. 시~바 그걸 들어가냐. 미친 새끼이. 아!”

“아니, 병신아 호응을 하라고, 호응을~.”

“지랄~. 야, 들어가면 둘 다 뒤졌어. 하여간 이래서 실레기 새끼는.”

“지도 실버면서 뭐래 진짴.”

욕설이 난무하는 사람들의 대화.

그런 수백 개의 좌석에서 들려오는 소음들을 뚫고 PC방의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하나의 비밀스러운 문이 나오게 된다.

PC방의 가장 구석에 자리한, 열쇠를 가져야만 열 수 있는 굳건한 철문.

‘스트리밍룸.’

문 안으로 발을 디디면 PC방과는 분위기가 살짝 다른 별개의 장소가 펼쳐지게 된다.

알록달록 꾸며진 싱그러운 느낌의 장식들.

완벽한 방음 시설과 최고사양의 컴퓨터.

양쪽에 포진한 대형 조명과 고음질의 방송용 마이크와 헤드셋까지.

‘스트리밍룸’이라고 명명된 이 방은 ‘ZIA PC’라는 이름의 대형 PC방 주인인 ‘민지아’만이 들어올 수 있는 그녀만의 개인 공간이었다.

오늘은 방송을 쉬는 날이지만, 그래도 언제나처럼 그녀의 스트리밍룸에 출근한 민지아는 게임용 의자에 등을 푸욱 기댄 채 휴대폰으로 영상을 시청하고 있었다.

시청 중인 영상은 미튜브의 음식 리뷰 동영상.

츄릅, 하고 침을 삼킨 민지아는 곧바로 다음 영상을 재생했다.

[ 안녕하세요~! 여러분 모두 텅~하~! 굿텅TV의 굿텅입니다아!! 오늘은~ 최근 SNS에서 아주 뜨겁게 화제가 되고 있죠? 바로 마성의 카페! ‘카페 델리아’에 직접 한번 방문해 보려고 합니다! ]

카메라에 얼굴을 들이밀고 소개 멘트를 읊은 여자는 곧바로 카메라 화면을 전환했다.

[ 한 번 맛보면 그 맛에 뿅간다는 소문은 과연 사실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데요? 여러분 모두 저와 함께 고고씽! ]

꽤 큰 건물의 1, 2층에 자리한 커다란 카페.

카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또 간단한 멘트를 날린 여자는 카페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딸랑딸랑하는 소리와 함께 여자가 카페 안쪽에 들어서자 카메라 너머에서도 공기가 변했다는 게 느껴졌다.

[ 와아~ 여러분들 줄 좀 보세요! 지금 피크 타임이 아닌데도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아마도~ 대부분 테이크 아웃 손님이 아닐까 싶네요? ]

카페 델리아는 워낙 매장의 분위기가 좋다고 소문이 난 카페였다. 때문에, 홀 손님이 상당히 많았다.

요번에 테이크 아웃을 하면 전 메뉴 15% 할인이라는 정책을 카페에서 실행했는데, 워낙에 음료와 빵의 맛이 좋다 보니까 해당 정책으로 메뉴를 구매해 집으로 가져가 먹는 사람들이 대폭 늘어났다.

[ 메뉴판을 보니까 메뉴의 수가 적은 편은 아니네요. 흐으음...... 저는 일단 가장 유명한 메뉴들 있죠? 휘낭시에라든가. 그런 시그니처 메뉴들에 더해 제가 개인적으로 끌리는 메뉴들을 몇 가지 주문해 먹어보도록 하겠습니다아~! ]

곧이어 여자가 주문을 마쳤고, 화면이 전환되며 어느덧 여자가 주문한 메뉴들을 들고 있는 장면이 나타났다.

[ 주문한 메뉴들이 다 나왔습니다! 얼마 안 기다렸는데 따끈따끈하게 바로 나왔네요! 안에서 떠들면 좀 그러니까, 그냥 테이크 아웃으로 주문했습니다. 영수증 보이시죠? 15% 할인된 거. 정말로 포장하면 할인해 줍니다! 그래도 왔으니까 일단 카페 내부를 한번 둘러보기는 하고, 집에 돌아가서 먹어볼게요! ]

여자는 카페의 이곳저곳을 비춘 다음 카페에서 나왔다.

다시 화면이 전환되고 여자는 식탁 위에 음료와 빵들을 늘여놓으며 하나하나 무슨 메뉴인지 설명을 시작했다.

“아, 맛있겠다......”

군침을 흘린 민지아는 배를 살살 문질렀다.

[ 와......! 휘낭시에 이거 진짜 와아. 장난 아니네요. 뭐라고 해야 하지. 겉바속촉 있죠? 그걸 정말 완벽하게 구연해 냈다고 할까요? 맛도 너무 고소하니 달달하고...... ]

메뉴를 다 소개한 여자는 메뉴를 하나씩 맛보기 시작했고, 연신 감탄을 터뜨리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모든 메뉴를 맛본 여자는, 마지막으로 영상의 마무리 멘트를 날렸다.

[ 아~ 오늘은 ‘카페 델리아’의 메뉴들을 한번 먹어 봤는데요! 정말, 소문이 과장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메뉴들도 하나같이 정말 맛있었고, 매장의 분위기도...... ]

“흐으으.”

이제 더 이상 볼 내용이 없다고 생각한 민지아는 영상을 종료했다.

꼬르륵거리는 배를 느끼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먹고 싶다.

으아!

미치도록 먹고 싶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이 모든 것은 좋은 몸매를 유지하기 위하여, 또 자신의 성공을 위하여! 손대면 안 될 금기와 같은 것이다.

적어도 지금은 그랬다.

왜냐하면, 점심으로 치킨 먹었거든.

“다른 거, 다른 거.”

더이상 음식 영상은 안 되겠다.

그렇게 생각한 민지아는 다른 영상을 찾을 때였다.

“으흐음. 어디 또 볼 거 없...... 뭐야?”

위이이이잉-.

그때, 돌연 휴대폰이 진동하였다.

화면을 보니 모르는 번호였다.

민지아는 자신의 귀중한 쉬는 시간이 방해받았다는 생각에 눈살을 찌푸리다가도, 일단은 하이톤의 깔끔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

“야, 왜 아직도 안 와.”

하지만 상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런 하이톤의 목소리는 곧바로 깨졌다.

민지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맞다!

“아! 진짜 미안. 나 까먹었엉......”

“으유, 자기가 휴방인 날은 더 일찍 만나자면서. 그래서 어딘데?”

“나 지금 피방. 가까우니까 지금 금방 갈게! 진짜 쏘리쏘리.”

민지아는 곧바로 스트리밍룸 구석에 놔둔 운동 가방을 챙기고 겉옷으로 몸을 싸맸다.

요즘 살을 뺀다고 친구에게 운동을 배우기로 했는데, 까먹고 약속시간을 넘겨버린 것이다.

아직 전화는 끊어지지 않았다.

준비하는 와중 문득 궁금한 점이 생겨 민지아가 물었다.

“근데 왜 네 휴대폰으로 전화 안 하고, 다른 번호로 전화했어? 그거 호텔 전화지?”

“응. 내 이름 뜨면 안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헐......”

충격받았다는 얼굴로 민지아가 말할 때 저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튼, 너 지각한 만큼 2배로 운동할 거야. 시간 끌지 말고 빨리 와.”

“와, 선생님 그건 좀......”

“지금 통화하는 것도 다 계산되는 거 알지?”

“으, 알았엉. 미안해.”

자비가 없는 상대의 목소리에 울상을 지은 민지아는 입술을 비죽이면서도 최선을 다해 나갈 준비를 마쳤다.

스트리밍룸의 문을 열자, 시끌벅쩍한 PC방의 공기가 그녀를 덮쳤다.

통로를 가로질러 음식을 만들고 있는 아르바이트생에게 대충 수고하라는 말을 던진 후, 민지아는 밖으로 뛰쳐나왔다.

가는데 빠르면 5분!

지금이 벌써 약속시간을 20분이나 넘겼으니까, 도착하면 50분 더 운동해야 하는 건가!?

“미쳤띠......”

PT 선생님도 아니고 그냥 친구에게서 운동을 배우는 거지만, 그녀의 친구는 너무 자비가 없었다.

민지아는 그렇게 전력을 다해 뛰었다.

다행스럽게도, 4분 만에 약속 장소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하악, 허억, 나, 나 왔어......”

대한민국 최고급 호텔인 ‘로열 한즈 호텔.’

그 호텔의 별동 지하에 있는 호텔 직원 전용 헬스 시설에 도착한 민지아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의 맞은편에는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친구가 살짝 눈을 크게 뜨며 민지아를 바라보았다.

“어, 그래도 꽤 빨리 왔네?”

“그야, 학, 늦었, 으니까......”

헉헉거리며 부들거리는 무릎을 잡고 있는데, 그녀의 친구가 곧바로 입을 열었다.

“좋아. 옷 갈아입고 와. 바로 시작하자.”

감정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 여자치고는 약간 저음의 목소리이기도 했다.

눈매는 결코 부드럽다고 볼 수 없고, 얼굴에 표정이 잘 드러나지도 않았다.

몇 년을 봐도 겉면으로 보면 참 차가운 여자였다.

저러니까 친구가 별로 없지, 생각하면서도 민지아는 그녀가 결코 마음이 시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융통성이 조금 없기는 했다......

아직까지 옷을 갈아입으러 가지 않고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자.

민지아의 친구, 주하린이 입을 열었다.

“왜?”

고개를 살짝 갸웃하며 묻는 그녀의 모습에는 빨리 옷이나 갈아입고 오라는 무언의 압박이 존재했다.

민지아는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그으......”

“응.”

“지, 진짜로 지각한 만큼 2배로 운동 더 할 거야......?”

히잉, 울상을 쓰며 민지아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안 그래도 1시간 반 동안 운동을 하는데, 여기서 50분이 추가되면 진짜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민지아의 생각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어제도 토할 뻔했다.

하지만 주하린은 피식 웃을 뿐이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자비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무슨 당연한 걸 묻고 있어.”

“어?”

“무조건 해야지. 지금 떠드는 시간도 포함해 줄까?”

“아.”

젠장.

괜히 물어봤다가 본전도 못 찾았네.

민지아는 울상을 짓고 탈의실을 향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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