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 어플-176화 (176/303)

〈 176화 〉# ht‍t‍p‍s‍:/‍/‍t‍.me/Li‍n‍kMoa

로열 한즈 호텔에서 10분 정도 자동차를 몰고 가면, 커다란 뮤직몰이 있는 백화점이 나온다.

국내 최대 규모의 음악 전문 상점.

온갖 악기들에 더불어 작곡에 관련된 장비들도 아주 많은, 이른바 우리나라 음악 상점의 성지와 같은 곳이다.

오후 2시가 조금 안 된 시간.

저녁에 있는 뮤지컬 공연을 보기 전까지 남은 시간을 나와 예화는 쇼핑을 하며 보내기로 했다.

정확히는 내가 예화의 일정에 어울리는 것이었다. 오늘 얻어먹는 쪽은 내 쪽이니까.

물론, 바이올린을 제외하면 말이다.

“아~. 강연 진짜 잘 들었어요.”

터벅, 터벅.

자동차에서 내려 주차장을 걸으며 내가 말했다.

“경품도 얻고, 진수아 실물도 보고.”

“......”

“진수아 되게 예쁘더라고요.”

“......”

하지만 옆에서는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예화의 앙증맞은 입술을 앙, 다물어져 있다.

“예화씨는 잘 들었어요?”

“......몰라요.”

감상을 질문으로 바꾸자, 대답은 들려왔지만 조금 짧았다. 나는 피식 웃었다.

“아직도 삐졌어요? 왜 혼자 부끄러워하지.”

“삐진 거 아니거든요......!”

“부끄러운 건 맞네.”

고개를 획 돌려 나를 바라보는 예화의 표정에는 여전히 쪽팔림이 서려 있었다.

혼자서 내가 바이올린을 주는 대신 요구할 게 키스라고 오해하고, 스스로의 부끄러움에 먹혀 얼굴이 빨개진 모습이었다.

호감도가 높아지니 반응이 하나하나 아주 흐뭇하다.

내 말에 예화는 잠시 몸을 떨더니, 이내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강연 괜찮았냐고요?”

“네.”

예화는 지하 주차장 엘레베이터 코너의 의자에 앉았다.

그녀의 옆에 엉덩이를 대고 앉자 예화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약간 뜸을 들였다.

“으음, 좋긴 좋았는데......”

“좋긴 좋았는데?”

“살짝 아쉬웠어요.”

“어? 왜요?”

약간 의외의 대답이다.

내가 눈을 크게 뜨고 묻자, 예화가 말했다.

“그냥 음...... 진수아가 너무 뛰어나서? 제가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가.”

이야기하는 예화의 표정은 사뭇 진지해 보였다. 그녀는 인기 싱어송라이터인 진수아와 그녀 자신을 비교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화 작곡 시작한 지 1년도 안 됐다며.’

좀 많이 비약이 아닌가 싶었지만, 나는 일단 위로의 말을 건네기로 했다.

“왜 부족해요. 예화씨 곡도 되게 좋은데. 솔직히 작곡 쪽으로는 진수아한테 꿇릴 게 없어 보여요.”

“......?”

대충 건넨 말인데 이번에는 예화의 눈이 크게 뜨였다.

“제가 무슨 곡 썼는지 알아요?”

“? 당연하죠.”

“거짓말하는 게 아니라?”

“그런 거로 거짓말을 왜 해요.”

당연하다는 듯 말하자 예화가 못 믿겠다는 듯 바라보다가, 곧바로 물어왔다.

“그, 그럼 제 곡 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게 뭔지 말할 수 있어요?”

예화의 질문에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저는 호수의 꿈이 제일 좋더라고요.”

“아, 그......래요?”

“피아노 멜로디가 되게 아름다워요. 베이스로 깔린 첼로도 좋고. 그리고......”

한창 말을 하는데, 예화의 표정이 좀 재미있었다.

“왜 그렇게 봐요.”

“아뇨, 그냥......”

“아, 엘리베이터 왔다. 올라가요.”

“네......”

우리는 위층을 향했다.

******

“되게 넓네.”

올라가자마자 눈동자에 비친 광경은 과연 뮤직몰이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선두의 그랜드 피아노들이 화려하게 시선을 사로잡았으며, 그 위로 높은 천장과 함께 저 멀리까지 뻗어있는 악기들의 향연은 과연 장대하다고까지 느껴졌다.

“오늘 뭐 살 거예요?”

“음, 일단 건반이랑......”

내가 묻자 예화는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살 목록들을 휴대폰에 메모해 둔 모양인데, 우리는 그녀의 메모장을 따라 매장을 차례대로 둘러보았다.

솔직히, 악기에 대해 자세하게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내게는 그 이상의 사기 효자 아이템 행운추적자가 있었기 때문에, 쇼핑에는 확실히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일단은 예화의 의견을 듣고, 그녀가 고민하는 물건중에서 행운추적자가 더 강하게 반응하는 것을 추천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한창 매장을 돌고 있자 예화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루하지는 않아요?”

“별로 안 지루해요. 이런 곳은 또 처음이라. 왜요?”

“저기 프레즐 있어서. 먹을래요?”

나는 뭘 사지도 않는데 워낙 열심히 예화의 쇼핑을 도와줘서 그런가. 예화의 태도가 조금 더 순둥하게 바뀌었다.

나야 어차피 가벼운 마음이다.

오늘 할 건 다 했으니까, 나머지는 그저 편안하게 데이트를 즐길 뿐이었다.

“예화씨는 뮤지컬 자주 봐요?”

“음. 가끔? 보통 굳이 와서 보지는 않아요. 미튜브로 음악만 듣죠.”

쇼핑이 끝나고 우리는 계획에 맞춰 뮤지컬을 보았다. 티켓 한 장당 10만 원이 좀 넘는다는데, 솔직히 말해서 막 재밌지는 않았다.

그래도 바로 옆의 예화 얼굴을 구경할 수 있었던 건 나름 쏠쏠했다.

“진현씨는 무슨 음식 좋아하세요?”

“저는 아무거나 잘 먹어요.”

“......저번에 그런 대답이 가장 곤란하다면서요.”

“흐. 굳이 따지자면 한식?”

“아, 그럼......”

뮤지컬이 끝난 뒤, 예화는 저녁까지 사주었다.

꽤 고급스러운 한정식 음식점이었다. 바이올린을 주기로 해서 그런가. 이런 식의 계산은 아주 착실했다.

“맛 괜찮아요?”

“오. 좋은데요?”

“그죠. 엄마랑 몇 번 와봤......”

예화는 쇼핑에서 상당히 많은 금액을 썼는데, 그게 딱히 부담되는 얼굴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이쯤 되니 그녀의 자산이 어느 정도인지도 궁금했다.

“여기서 내려주면 돼요?”

“네, 카페 마감은 보고 들어가려고요. 오늘은 재밌었어요. 조심히 들어가요.”

“네......”

어쨌든 성공적으로 데이트를 마친 나는 예화와 카페에서 헤어졌고, 카페 상태를 점검한 다음 곧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내게 예화의 냄새가 좀 난다는 수정이에게 그대로 정액을 쪽 빨렸다.

******

“후아~.”

완연한 밤이 찾아왔다.

겨울이 가까워서 그런지, 이제는 해가 지는 시간이 빨랐다.

간단하게 몸을 씻은 뒤 침대에 누운 예화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오늘 하루를 회상했다.

알찬 하루였다.

진수아의 강연회도 갔다 오고, 뮤직몰에서 쇼핑도 했고, 뮤지컬도 보고......

하루종일 돌아다녔는데도, 별로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힐링 된 느낌. 신기하게도 진현과 함께하면 항상 그런 느낌이 들었다.

놀이공원에서도, 이번에도.

다만, 이번에는 놀이공원과는 조금 다른 느낌도 들었다.

가장 놀란 건, 그가 자신의 곡을 다 듣고 있었다는 것이다.

“작업용 멘트......”

진현이 스스로 말한 이야기였다.

진수아와 비교하여 그가 위로의 멘트를 건넬 때,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자신은 부끄러움에 그런 멘트 없어도 멘탈이 충분히 강하다고 한번 튕겼다,

그는 그냥 작업용 멘트였다며 웃어 넘어갔다.

예화는 그가 준 바이올린을 바라보았다.

소개는 대충 300만 원이 넘어가는 바이올린이라고 되어있지만, 솔직히 400만 원도 넘는 가치를 지닌 악기였다.

보통 이런 걸 선뜻 줄 수 있을까.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몇백이 넘는 가치가 있었다. 심지어 진수아의 사인이 있는 한정판이라, 팔기만 하면 그 이상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그가 바이올린을 준 대신 한 부탁.

그런 부탁을 한 이상 그게 단순한 작업용 멘트일 리는 없었다.

예화는 눈을 감았다.

‘어떤 식으로 할까......’

예화는 진현의 부탁을 생각하며 잠들었다. 오늘은 왠지 잘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

“흐흥. 흐흥~.”

월요일 아침.

예화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거울을 바라보았다. 토요일부터 예화의 기분은 계속 업 상태였다.

“이렇게 입고 가면 되겠지?”

깔끔한 느낌의 가을 패션을 완성한 예화는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평소에 톡을 나누는 ‘드래곤과 나’의 만화 작가를 만나는 날이었다.

고등학생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만화를 잘 그리는지.

최근에는 공모전에도 신작 만화로 참가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이미 새로운 BGM을 그녀에게 전달했고, 내일이면 2주차 순위가 발표되는데 지난주보다도 전체순위가 더 상승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설마 가까이 살았다니.”

멀리 살아도 자신이 그녀의 집 근처까지 가려고 했는데, 놀랍게도 ‘드래곤과 나’ 작가는 요 근처에 사는 것 같았다.

어느 역이 가장 가까운지 적어보자고 한 예화의 톡에, 둘은 서로 같은 역을 대답했다.

‘카페를 소개해 줄까?’

예화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만약 가까이 산다면 카페 델리아는 무조건 가야 할 최고의 카페였다. 작업도 잘 되고. 진현도 단골이 늘어나면 좋아할 것이다.

오늘은 이 언니가 많이 사줘야겠다.

예화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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