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5화 〉# https://t.me/LinkMoa
로열 한즈 호텔 3층의 임시 대기실.
임의 스테이지의 천막 뒤에는 약간의 공간이 있었다, 메이크업을 받고, PPT를 넘겨보던 진수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거 문제 수정해야 하는 거 아니야? 솔직히 좀 양심 없는데.”
그 이유는 바로 마지막 퀴즈 때문.
3부의 퀴즈 타임 마지막 질문은 이전까지의 질문과 괴리감이 심해도 너무 심했다. 진수아 본인이 봐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다른 사람이면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맞은편에 앉아있던 그녀의 매니저 이다슬은 가차 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하나쯤은 그런 문제도 있어야지. 사람들이 너한테 관심이 얼마나 많은데, 아는 사람 분명 한 명쯤은 나올걸?”
“으음...... 몇 년 단위로 짧은 인터뷰에서만 한 번씩 언급한 내용을?”
“응.”
진수아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런가아?”
“아, 그렇다니까~.”
“하긴~ 스토커 같은 사람들이 좀 있긴 하지......”
눈을 감은 진수아는 지금까지 자신을 귀찮게 만들었던 빌런들을 떠올리며 몸을 떨었다. 그런 사람들이라면 능히 기억할 만도 했다.
진수아는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시선의 끝에는 바이올린이 있었다.
“근데 이거 비싼 바이올린 아니야? 아으~ 부럽다. 케이스부터 아주 고급지네.”
상품은 실제로도 꽤 비싼 물건이었지만, 진수아는 이보다도 좋은 바이올린들을 몇 개나 가지고 있었다.
괜히 호들갑을 떠는 진수아의 행동에 피식 웃은 이다슬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으유~ 돈도 많으면서.”
“세금이랑 기부가 반입니다~, 반~.”
진수아가 귀엽게 입술을 삐죽였다. 이다슬이 말했다.
“그럼 기부를 좀 줄여봐.”
“나도 그럴까 생각 중이야.”
“어? 진짜로?”
“응. 기부한 돈을 착실하게 쓰면 모르는데, 뭔가 좀 날려 먹는 느낌이라...... 차라리 내가 하나 열어보려고.”
“아~. 암튼, 이제 슬슬 준비하고 표정 관리해야겠다.”
“아, 응.”
시간이 거의 다 돼갔다.
진수아는 거울을 보며 얼굴을 풀었다.
그러다가, 다시 바이올린을 한 번 흘끗.
“근데 있잖아.”
“응.”
“저거 아무도 못 맞추면 나 가져도 돼?”
“으이구, 또 욕심쟁이 발동했어?”
“욕심쟁이가 아니라~, 다.다.익.선.”
참 아이러니한 동생이었다. 기부는 그렇게 하면서 저런 욕심은 또 있으니. 미소를 지은 이다슬이 고개를 저었다.
“안~돼. 못 맞춰도 추첨으로 돌릴 거야.”
“그랭?”
“응. 그리고 어차피 정답자 나온다니까~.”
“흐음......”
진짜로 정답자가 나올까?
진수아는 확신에 가까운 이다슬의 말을 들으면서도 여전히 긴가민가했다.
솔직히, 도무지 정답자가 나오리라는 생각이 안 들었다. 인간적으로 저걸 어떻게 맞추는가. 문제를 읽으면서도 야유만 없기를 바랐다.
분명 그랬는데......
“1등 상! 축하해요~!”
“하하, 감사합니다~.”
3부의 강연 겸 팬 미팅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찾아온 남자에게 경품을 건네주며, 진수아는 이다슬의 말이 옳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로 누가 맞추긴 하는구나.
심지어 눈앞의 남자는 문제의 정답을 말할 때 별달리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단어들을 휘리릭 분류했다. 무슨 쉬운 수학 문제 푸는 줄 알았다.
“그런데, 답은 어떻게 맞췄어요? 진짜 어려웠는데.”
문득 올라온 궁금증에 진수아가 남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남자는 음, 하고 말을 살짝 끌다가 대답했다.
“약간 감으로? 솔직히 말해서 찍었어요.”
“흐음~, 그래요?”
진수아는 남자가 쑥스러워서 그렇게 대답한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그게 아니면 그토록 정확하고 빠르게 분류할 수 없으니까.
“다됐다~.”
진수아는 남자가 준 종이에 사인을 마치고 건네주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사진도 한 장 괜찮아요?”
“물론이죠~!”
찰칵.
함께 사진을 찍고 남자에게 휴대폰을 건네주었다.
“평소에 노래 잘 듣고 있어요. 앞으로도 좋은 노래 부탁해요.”
남자는 감사하다는 말에 더한 가벼운 인사와 함께 미련 없이 뒤를 돌아 걸었다.
진수아는 멀어지는 남자를 보며 생각했다.
‘그런데 진짜 잘생겼네.’
지금까지 저런 팬은 본 적이 없는데.
마지막 문제의 정답을 맞출 정도라면 정말로 자신을 오래 봐온 팬이라는 건데, 그렇다면 지금까지 얼굴 정도는 기억하지 않을까 싶었다.
팬미팅도 있을 때마다 참석했을 테니까.
하지만, 기억에는 없었다, 저렇게 잘생긴 얼굴이라면 인상이 남을 법도 한데......
‘그래도,’
진수아는 어느덧 멀어진 남자의 등에 매달린 바이올린을 바라보았다.
바이올린 안에는 이번 연말 공연의 VIP석 티켓도 5장이나 들어있다.
“수아야. 끝났어?”
“아, 응. 가자.”
어쩌면, 앞으로 자주 볼지 모르겠다고 진수아는 속으로 생각했다.
******
지하 주차장.
“진짜로 그냥 찍었어요?”
경품으로 받은 바이올린을 멋지게 둘러매고 나타나자, 예화가 곧바로 질문해왔다.
“제가 감이 좀 좋아서.”
피식 웃으며 답하자, 예화가 나를 수상하다는 듯 흘기며 쳐다보았다.
“......진현씨 사실 진수아 덕후인거 아니에요?”
“흐. 어떻게 알았지?”
내가 장난스럽게 답하자 예화가 입술을 삐죽인다.
“아니......”
힐끔.
“저도 문제 전혀 못 맞히겠던데......”
또 힐끔.
예화는 바이올린을 자꾸 힐끔거렸다. 그녀의 눈빛이나 말투에는 명백히 부럽다는 뉘앙스가 스며들어 있었다.
하기야 적어도 300만 원을 호가하는 바이올린이었다.
케이스 안에는 진수아의 사인이 박혀 있었으며, 그녀가 작곡한 노래들이 담긴 악보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심지어 나중에 할 공연의 VIP석 티켓들까지 있으니, 바이올린을 제외한 부속 상품만으로도 100만 원을 넘기는 가치가 있었다.
진수아 공연의 VIP석 티켓은 경쟁률이 미친 듯 치열한 것에 더불어 비싸기까지 했으니까.
나는 예화를 바라보며 말했다.
“원하신다면 드릴 수 있는데~.”
내 말에 예화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어, 네? 진짜요?”
“흫. 농담.”
“......”
예화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탁탁탁.
“아, 어디 가요~.”
“빨리 와요!”
괜히 삐져서 빠른 걸음으로 자동차를 향하는 예화를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호감도가 꽤 높으니 싸늘하던 이전과는 반응이 달랐다.
나는 바이올린을 뒷좌석에 고이 모셔둔 다음, 조수석에 탑승했다.
“예화씨, 삐치지 말고~. 진짜로 드릴게요.”
“......또 농담인 거 아니에요?”
“아, 진짜로요. 그 대신......”
나는 말을 끌며 예화를 바라보았다.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나 곱게 뻗은 머리카락. 살짝 치켜 올라간 눈매가 참으로 매력적이다.
특히나, 오늘은 진수아의 강연회 겸 팬 미팅에 더해 저녁에 뮤지컬까지 보기 때문인지 힘을 줬다는 게 느껴졌다.
원판 자체가 사기인 얼굴이라 화장을 하지 않아도 빛날 정도인데, 지금은 아주 여신이 따로 없었다.
진수아를 보러 와놓고, 근처의 테이블에서는 예화를 힐끔거리는 남자들도 수도 없이 많았다.
그렇게 예화의 얼굴을 보고 있는데, 빤히 바라보는 걸 오해했는지 예화가 문득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키, 키스는 안 돼요.”
“?”
“......?”
내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웃하자, 예화는 잠시 멍해지더니 이번에도 얼굴이 터질 듯 붉어졌다.
“아, 아씨. 괜히 데려왔어.”
그녀는 곧바로 차를 출발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