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화 〉# https://t.me/LinkMoa
“잘 들어가세요. 오늘 재밌었어요.”
“네, 진현씨도 잘 들어가세요.”
진현은 예화의 집 바로 앞에서 차를 세워주었다.
잊은 물건이 없는지 둘러본 예화는 이내 안전벨트를 풀었다.
“내일도 카페 나오실 거죠?”
자연스럽게 웃으며 물어보는 진현에 예화가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쳤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진현씨.”
“네?”
“저한테 쿠폰 주신다면서요.”
“?”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진현에 예화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저 다 저장해 놨거든요.”
타닥 탁.
휴대폰을 조작한 예화는 이전 진현과의 톡을 캡쳐한 사진을 한 장을 보여주었다.
휴대폰을 바라보자 진현도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예화씨가 저희 정사 훔쳐본 그 날. 제 잠바 가져다줬죠.”
“......”
“어떻게 할까. 으음. 예화씨가-.”
“아이씨, 하지 말아요. 안 받고 말지.”
예화는 진현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고개를 획 돌렸다. 진현이 당황한 듯 말했다.
“왜 그래요.”
“또 이상한 소리 하실 거잖아요.”
예화는 아까 전 진현과 나눴던 대화를 생각했다.
[ 저, 저희 키스한 거 수정이한테는 말하지 말아 주세요. ]
진현과 키스했다는 게 수정이한테 알려지면 도무지 수정이를 볼 자신이 없었다.
그동안 수정이한테 진현이 바람을 피운다고 화내면서 알린 게 누구인데, 정작 자신이 키스한다?
상상도 하기 싫었다.
[ 흐음. 어떻게 할까. ]
[ 서, 설마 말할 생각이에요? ]
[ 제가 입이 좀 가벼워서. 예화씨가 키스 한 번 더 해주면 안 말할게요. ]
진현은 그 대가로 키스를 한번 요구했다.
당연히 예화는 거절했다.
맨정신으로 허락할 리가 없었다. 키스했던 건 뭐랄까...... 그래. 그때의 분위기에 잠시 압도된 것뿐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더 기분 좋기는 했지만, 애초에 수정이의 남자친구였다.
‘내가 방심했어.’
애초에 진현의 어투도 장난식이었고, 절대로 안 된다고 하니 결국에 안 말하겠다고 결론이 났다.
“이상한 소리 아니에요. 줄게요. 다만 만들어 둔 쿠폰이 없어서. 아직은 기프티콘도 없고.”
“아.”
“그러니까 다음에 카페에 와서 저한테 먹고 싶은 메뉴 말하면 만들어서 주라고 직원한테 이야기할게요.”
“아무거나요?”
“네, 아무거나.”
고개를 끄덕인 예화는 이내 문을 열고 밖에 나왔다.
“저 갈게요......”
“네, 내일 봐요~.”
웃으며 인사하는 진현의 얼굴을 바라보며 문을 닫은 예화는 떠나는 차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하아......”
내가 미쳤지 진짜로.
집에 들어온 예화는 씻지도 않고 침대 위에 몸을 눕혔다.
손을 잡고 놀이기구를 같이 타지를 않나, 키스를 하지 않나.
솔직히 사과만 해도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입술을 허락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왜 바람둥이인지 알 것 같았다.
“......”
예화는 엄지로 입술을 한번 쓸었다. 그때의 장면이 다시 한번 머릿속에 재생된다.
이불을 팡팡 걷어찬 예화는 한숨을 깊이 내뱉었다.
“후아, 정신 차리자.”
앞으로는 이런 일이 다시는 없을 것이다.
내일부터는 다시 정상적인 일과로 돌아간다.
예화는 그렇게 다짐하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가끔 이렇게 바람을 쐬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다음에는 꼭 수정이랑 가야지.
예화는 화장실로 향했다.
******
“흐음......”
예화의 현 상태를 바라본 나는 턱을 매만졌다.
◆ 현 상태
- [ 호감도 : 45 ]
- [ 신뢰도 : 23 ]
- [ 연분도 : 35 ]
- [ 성욕 : 21 ] [ 식욕 : 26 ] [ 피로 : 25 ]
바닥을 기어 다니던 호감도 자체는 꽤 올라왔다.
디퓨저나 수정이와의 연기 플레이, 놀이공원의 손 잡기 덕분인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신뢰도가 낮았다.
키스도 어찌어찌 한 번은 했지만, 요즘 예화를 보면 오히려 살짝 나를 피해 다니는 듯했다.
그 키스 덕분에 바람둥이의 마수를 사전 차단하자......! 느낌으로 철벽은 아니지만 약간 방패를 들고 있는 느낌이었다.
카페에는 꼬박꼬박 나오면서, 나랑 눈이 마주치면 은근슬쩍 시선을 돌린다든지.
이전처럼 아예 상대도 안 하겠다는 건 아닌데, 뭔가...... 뭔가 그랬다.
‘그리고 예화 공략 스타일이......’
나를 꽈악 붙잡아 줘니까, 단순히 호감만으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냥 자박꼼을 미친 듯하면 언젠가 호감도 100을 채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긴 했지만, 공략 평가 점수를 좀 높게 받아보고 싶다.
그러면 외적으로도 뭔가, 능력적으로 신뢰를 받아 의지하게 만들 만한 이벤트가 필요할 것 같았다.
예화가 스스로 내게 의지하게 만들 만한......
‘키스는 되게 기분 좋았는데.’
예화의 혀는 수정이나 델리아, 유정다정 자매와는 또 다른 맛이었다. 살짝 튕기면서도 중독적인 뭔가...... 그런 맛.
아래 입은 대체 어떤 맛인지 상상하고 있을 그때,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또 변태모드 나왔다.”
“변태모드는 뭐야.”
“야한 생각 하는 모드!”
다정이가 심술궂은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왜. 또 삐졌어.”
“흥, 삐진 거 아니거든요~.”
“으이구, 이리 와봐.”
“헤헤.”
다정이를 무릎 위에 올려두자, 좋다고 내게 몸을 기대왔다.
“오빠. 이거 봐봐요. 짠~!”
다정이는 휴대폰으로 뭘 만지더니 내게 화면을 하나 보여주었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이거 뭐야. 너......”
“짱이죠? 방금 발표 났거든요. 오래전부터 준비한 거라서 그런지 성적 엄청 좋아요.”
헤실헤실 웃는 다정이의 얼굴과 함께 휴대폰 화면에는 놀랄만한 성적이 적혀 있었다.
[ 제 11회 겨울 만화 공모전 ]
- 전체 : 4위
- 로맨스 부문 : 1위
“와. 대박이네?”
“흐흫. 사실 아직 1 주차긴 하지만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다정이의 콧대는 하늘을 찌르도록 올라가 있었다.
“그래도 대단하다. 어떻게 그 많은 로맨스 만화들 중에서 1등을 해?”
“여기는 오빠랑 있었던 일이 아니라, 오빠가 해줬으면 하는 것들 다 때려 넣었거든요.”
“오오......”
그러니까 나는 다정이의 상상이 가득 담긴 이 만화를 보고 그대로 해주면 된다는 건가?
“그런데 이번 만화는 남자 주인공이 두 명이네. 뭐야, 너 다른 남자도 만나고 싶은거야?”
“바보야. 오빠 공모전 만화 안 봤죠!”
“아직은......?”
“다른 남자주인공은 저희 언니를 남자 버전으로 TS시킨 거에요. 로맨스는 역하렘이 있어야 인기가 많다고요.”
헉.
“오...... 세태와 야합했구나 너.”
“? 그게 뭐예요?”
“그런 게 있어.”
내가 별다른 말을 안 하자, 다정이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무튼, 다음 주에는 BGM도 넣을 거라 인기 더 올라갈 거예요.”
“BGM? 너 또 의뢰했어?”
“네, 그 언니 너무 착한 거 같아요. 제가 저번에 맡긴 거 있잖아요. 그 금액만큼 다시 후원으로 다 쏴줬어요.”
“헐, 그럼 공짜로 작업해준 거 아냐?”
“네, 진짜 대박이지 않아요?”
예화가 진짜로 만화를 좋아하긴 하나 보네.
“아! 그런데 저 그 언니 만나기로 했거든요. 오빠도 같이 갈래요? 자랑도 할 겸. 히히.”
“만난다고? 직접?”
“넹. 언니가 저 보고 싶다고 하던데.”
“언제 만나기로 했는데?”
다정이는 톡을 확인하는가 싶더니 내게 말했다.
“음. 다음 주요. 아직 시간이나 장소는 안 정했어요.”
“그래?”
“네, 원래는 요번 주말에 만나자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뭐 사러 간다고 했나? 아무튼, 무슨 일 있다고 평일이나 다음 주 주말에 만나는 걸로 연기했어요.”
“아하.”
안 그래도 예화랑 또 사적으로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수정이 도움을 받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먹이를 물어다 줬다.
‘가만 그럼 혹시?’
나는 다시 히로인 어플로 들어가 일반 히로인 목록에서 예화를 클릭했다.
현 상태 밑에는 없었던 이벤트들이 몇 개 생겨 있었다.
‘오.’
이런 식으로도 생성되는구나.
나는 내 위에 앉아있는 다정이를 꽈악 안았다.
“후아, 다정아 역시 넌 복덩이야.”
“가, 갑자기 뭐에요.”
“몰라, 그냥 너무 귀여워서.”
“말로만요......?”
다정이는 엉덩이를 비틀더니 나와 마주 보는 형태로 다시 고쳐앉았다.
“그럼 뭘 원하는데?”
“......알면서요. 움, 쫍......♡”
나는 다정이와 진한 키스를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