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화 〉# https://t.me/LinkMoa
“무슨 음료 사지?”
진현이 화장실에 다녀올 동안 예화는 근처의 가게에 들렀다. 데롯월드는 블록마다 핫도그와 같이 가벼운 먹거리를 파는 가게들이 꽤 많았다.
예화는 메뉴판을 보다가 적당히 진현이 좋아할 만한 음료를 주문했다.
“음. 피치 소다랑 망고 소다 한 잔 주세요.”
“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가게 직원이 힘차게 대답하며 음료를 준비하고, 음료를 받은 예화는 결제한 뒤 진현과 헤어졌던 장소 앞으로 왔다.
“아직 안 왔나?”
남자는 볼일 보는 게 빠르다고 들었는데.
진현은 아직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응?”
언제 오지 싶어서 고개를 돌리자, 저기 화장실 쪽에서 진현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웬 여자 2명이었다.
“......”
예화는 왜인지 살짝 기분이 나쁨을 느꼈다.
자기도 모르게 발걸음을 빠르게 하며 진현에게 다가갔다.
어느 정도 진현에게 가까워지자, 진현이 먼저 자신이 다가감을 알아채고 이쪽을 바라보았다.
“아, 예화씨.”
동시에 진현과 이야기하던 여자 둘 또한 예화를 바라보았고, 깜짝 놀란 표정을 한 그녀들은 진현에게 머리만 숙여 인사를 한 뒤 빠르게 자리에서 멀어졌다.
예화는 진현을 치켜 올려보며 물었다.
“누구예요?”
“아, 그냥 뭐. 모르는 사람이에요.”
“모르는 사람?”
“네, 갑자기 와서는 이따 저녁에 뭐 퍼레이드 같이 보지 않겠냐 그러던데요.”
흐응.
데롯월드 안에서도 그런 게 있구나.
예화는 살짝 신기함을 느끼다가도, 진현 정도면 그런 제안을 받을 만하다고 납득했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어떻게 하긴요. 예화씨가 있는데 당연히 거절했죠.”
예화는 음료수 두 개를 내밀었다.
“여기요. 피치랑 망고 중에 뭐 좋아하세요?”
“아, 전 피치. 고마워요.”
“아니에요.”
진현은 음료를 살짝 빨다가 말했다.
“예화씨, 우리 휴게실에서 마시면서 잠깐 쉴까요? 저 살짝 피곤한데.”
“휴게실이요?”
“네.”
여기 휴게실도 있나? 싶었는데, 진현을 따라서 어떤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자 하얀 색의 꽤 깔끔한 방이 나타났다.
“아...... 이런 곳도 있네요.”
“네, 지도에도 안 나와 있어서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더라고요. 아무도 없네.”
진현은 휴게실의 벽면 의자에 자리 잡고 앉았다. 예화는 테이블에 음료를 놓고 말했다.
“저도 잠시 화장실 좀......”
“네, 다녀오세요.”
다행스럽게도 여자 화장실이 딱히 붐비지는 않았다. 블록마다 화장실이 있고, 꽤 넓어서 그런가. 예화는 빠르게 볼일을 볼 수 있었다.
[ 강수정 : 사과는 잘했어? 내 말대로 별로 화 안 났지? ]
[ 강수정 : 왜 답이 없엉. 설마 나 없다고 그냥 헤어진 건 아니지?!? 진현이랑 같이 놀면 재밌을 거야! (๑˘ꇴ˘๑) ]
[ 강수정 : 저기요? ]
[ 강수정 : Hey ]
[ 강수정 : 똑똑똑~ ]
[ 강수정 : 우씨, 진현이도 톡 안 보고. ಠ‸ಠ 잘 놀고 있다고 알게! ]
“아......”
톡을 열자 수정이한테 30분~2시간 간격으로 수정이한테 메시지가 와 있었다.
타닥타닥.
사과도 했고, 잘 놀고 있어.
대충 그런 식의 내용으로, 예화는 얼른 수정이한테 답장을 보냈다.
그동안 진현과 노는 시간이 너무 즐거워 차마 톡 확인을 못 하고 있었다.
놀이공원에 오기 전에는 각자 어색하게 휴대폰만 볼 줄 알았는데, 설마 손까지 잡고 그렇게 놀이기구들을 마구 타게 될 줄이야.
“으......”
갑자기 진현과 손을 잡고 놀이기구를 타는 장면에 더불어, 진현이 수정이의 남친이라는 사실이 생각나 예화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때, 수정이한테 답이 왔다.
[ 강수정 : 뭐야 살아 있었넹. ㅋㅋ 암튼 잘 놀고 있다니 다행. 나도 방송하느라 스트레스 쌓일 때 진현이랑 데이트하면 확 풀리고 그래! ]
[ 강수정 : 그렇다고 진현이한테 너무 반하진 말고 ㅎㅎ 알았지? ]
“......”
갑자기 진현한테 반한다는 이야기가 왜 나오는가.
[ 예화씨, 안 무서워해도 돼요. ]
[ 지, 진현씨 지금......! ]
[ 손잡아 드릴게요. 이러면 안 무서울 거예요. ]
하지만, 좀전의 장면이 다시 생각나 예화의 머리를 어지럽혔다.
[ 나 : 안 반해 ㅡㅡ; 근데 너 아픈 건 다 나았어? ]
[ 강수정 : 아, 응 ㅋㅋ 이제 멀쩡함. 나 이제 영상 편집하러 갈겡! ]
수정이는 서둘러 자리를 뜨듯 톡을 마무리했다.
역시, 아프다는 건 구라였구나.
“휴우......”
눈가를 가늘게 뜬 예화는 휴대폰을 집어넣고 한숨과 함께 화장실에서 나왔다.
“분명 이렇게 갔지.”
화장실에서 나온 예화는 진현이 쉬고 있는 휴게실을 찾아갔다.
가는 길이 쉽지는 않았는데, 무슨 돌기둥 처럼 생긴 게 알고 보니 건물이라는 시나리오였나.
기둥 안쪽으로 걸어가 돌의 틈 사이로 들어가면 조형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나타나는데,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복도가 나온다.
그리고 복도를 걸어 들어가면 휴게실 방이 나온다는 구조였다.
예화는 휴게실 문을 열었다.
“저 왔...... 진현씨? 어?”
진현을 본 예화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현씨 자요?”
그는 벽면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조용하게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잠을 자는 중인 모습이다.
“......”
예화는 천천히 진현에게 다가갔다.
“진짜로 자나......?”
예화는 진현의 눈앞에서 예쁜 손을 마구 흔들어 보았다.
박수를 치듯 손을 움직여 보기도 하고 여러 모양을 시도해 봤지만, 그는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다만 규칙적으로 어깨를 들썩일 뿐이었다.
테이블 위에는 자신이 사 온 음료수도 한 3분의 1쯤 남아있었다.
“으음. 피곤했나보네......”
하긴, 아침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놀이기구를 계속 타왔다.
점심도 빠르게 먹었고.
마지막에는 오히려 자신이 진현을 이끌다시피 하면서 스릴 있는 놀이기구들을 순회하듯 탔으니.
육체적으로는 몰라도 정신적으로 피로할 수는 있었다.
“후우, 나도 좀 쉴까.”
아직은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데롯월드의 퇴장 시간은 10시니까. 그래도 꽤 여유가 있지.
“음......”
예화는 휴게실의 빈자리 중 어디에 앉을지 고민했다.
예전이었다면 망설임도 없이 진현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진 구석진 자리에 앉았겠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녀는 진현의 옆자리와 반대편 자리 중에서 고민하다가.
“......”
털썩.
이내 진현의 바로 옆에 엉덩이를 딱 붙이고 앉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향기.
그의 곁에 있어야 향기가 강하게 풍기기 때문이다.
그래.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진짜 신기하단 말이야.”
예화는 진현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정말로 그가 잔다는 걸 다시 한번 확신한 뒤에, 그의 근처에서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빨아들였다.
스읍.
“아......”
진현의 곁에서 공기를 빨아들인 예화는 마음이 안정되고 행복한 감각이 차오르는 느낌에 몸을 살짝 떨었다.
어떻게 이렇게 냄새가 좋을까.
효과가 뛰어난 것도 신기하다.
향수의 냄새가 이렇게 오래가는 것도...... 음?
“그러고 보니.”
진현은 오늘 딱히 향수를 뿌린 것 같지 않았다. 여기에 오기 전에 뿌렸다고 해도, 적어도 자신과 함께 다닌 다음에는 딱히 추가로 향수를 뿌린 것 같은 행동을 목격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향기가 오래 지속될까.
물론, 향수도 향기가 1~2시간만 지속되는 오 드 코롱부터 7시간까지도 지속되는 퍼퓸까지 종류가 다양하지만,
이토록 확실하고 진하게 향기가 지속되는 향수는 없다시피 했다.
게다가 추가로 뿌렸다면 향수 냄새 뿌린 시점에서 더 강해져야 하는데, 그의 냄새는 거의 일정했다.
꿀꺽.
예화는 다시 한번 진현의 눈치를 살피고는 아주 고개를 낮췄다.
진현의 한쪽 팔은 허벅지 위에 올려져 있었고, 다른 쪽 팔은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었다.
테이블 위쪽에 올려진 진현의 팔 가까이에 얼굴을 가져간 예화는 다시 한번 진현의 눈치를 살폈다.
‘자고 있어, 자고 있어.’
그는 도무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예화는 그대로 진현의 손 가까이에 얼굴을 가져다 대고 냄새를 맡았다.
킁킁.
“아......”
평소 풍겼던 냄새와 같은 냄새가 났다.
보통 손목에도 향수를 많이 뿌리긴 하지만, 손등이나 손가락의 냄새를 맡으면 향수가 아니라 살내음이 났다.
핸드크림?
그것과도 약간 느낌이 다른데.
킁킁.
이건 핸드크림이 아니라 살에서 나는 냄새 같았다.
‘그럼 이게 향수가 아니라 체취라고......?’
또다시 예화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렇다면 자신은 지금까지 진현의 체취를 필사적으로 맡아온 것인가.
‘그런데 이 냄새가 체취라면......’
왜 진현의 냄새만 맡으면 이렇게 마음이 이렇게 평온해지는 것인가.
그에게는 신비한 점이 너무 많았다.
심지어 오늘은, 그가 손을 잡아주니 무서움을 느꼈던 것도 금방 사라졌다.
예화는 다시 진현의 눈치를 살피다가, 이번에는 진현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려대 보았다.
또 뭔가 마음이 평온해지는 느낌이다.
옛날에 아빠나 엄마한테 칭찬을 받고 쓰다듬어지는 기분.
그의 냄새와 더불어서, 손도 참 신기했다.
“손도 되게 크네......”
냄새를 맡고 손을 위에 포개도 일어나지 않는 진현에 예화의 행동은 조금씩 대담해져 갔다.
손을 살살 움직여 자신의 손과 비교해보거나, 쪼물딱쪼물딱 만져보기도 했다. 너무 신기한 느낌이다.
그러기를 몇십 초쯤 됐을까.
옆에서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예화씨.”
“학!”
“지금 뭐 하세요......?”
“아...... 헉. 저 그게.”
예화의 머리가 귀신처럼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