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 어플-168화 (168/303)

〈 168화 〉# htt‍p‍s://t‍.me/‍L‍inkMoa

수정이가 못 나온다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예화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아니, 그럼 둘이서만 간다고?

놀이공원을?

그보다 왜 못 나오지?

“아침에 수정이 깨우는데, 오늘은 아프다고 못 가겠다고 하더라고요.”

“아...... 수정이가 아, 아프다고요?”

“네, 갑자기 머리가 너무 아프다고 했나? 아무튼, 자기는 힘드니까 저희끼리 갔다 오라고......”

“아, 그, 그래요? 자, 잠시만요.”

예화는 서둘러 휴대폰을 꺼냈다.

아프면 어쩔 수 없긴 한데......

‘이렇게 갑자기?’

수정이를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어제까지만 해도 그렇게 멀쩡했는데 갑자기 아프다는 게 좀 이상했다.

예화는 수정이한테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 전화를 받지 않아 음성사서함으로...... ]

‘야! 왜 안 받아......!’

신호음이 아무리 울려도 수정이는 전화를 받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톡이라도......!

[ 나 : 수정아, 오늘 아파서 못 나온다고? 많이 아파? ]

초조한 마음으로 답장을 기다리는데, 다행스럽게도 이번에는 30초 만에 답이 왔다.

[ 강수정 : 응, 나 오늘 머리가 좀 아파서, 에궁...... (ᗒᗣᗕ)՞ ]

[ 나 : 어떡해. 많이 아파? ]

[ 강수정 : 아냐, 하루 쉬면 괜찮아질 것 같아. 어쩔 수 없으니까 진현이랑 둘이서 잘 놀다 와! ٩(*•̀ᴗ•́*)و 하고 싶다는 사과도 하고. ㅎㅎ ]

“......”

수정이의 메시지에 예화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럼 그렇지!

전화를 안 받는 것도 그렇고, 톡의 말투를 봐도 그렇고.

아주 고의성이 풀풀 느껴지는 답이었다.

하지만 본인이 아프다는데 뭐.

[ 나 : 그래^^; 잘 쉬어 ]

예화는 그렇게 톡을 마무리했다.

같이 가자고 할 때 느낌이 살짝 싸하긴 했는데, 설마 이렇게 될 줄이야.

대체 어떤 여자가 자기 남자친구를 다른 여자랑 둘이 놀이공원에 보내는가.

‘여기 있네.’

한숨을 내쉰 예화는 앞을 바라보았다.

백미러를 보고 있는 진현과 눈이 마주쳤다.

“수정이 전화 안 받아요?”

“아, 네에. 근데 괜찮아요. 톡은 답이 와서......”

그 답이 둘이서 놀이공원에 잘 갔다 오라는 거지만.

어색함의 침묵이 이어졌다.

정말로 둘이 갔다 와야 하는 건가.

커플 사이에 껴있는 것도 좀 그렇지만, 수정이가 쏙 빠져버리니 더욱 어색했다.

‘그야 어제 그런 짓을 했는데......’

예화는 진현에게 한 짓이 생각나 다시 얼굴이 붉어졌다. 진현이 자신과 둘이 가는 걸 싫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괜히 둘이 가면 더 어색한 게 아닐......

“예화씨.”

“네?”

“저랑 가기 싫죠?”

어?

갑작스러운 말에 진현을 바라보자, 그는 쓰게 웃고 있었다.

“예화씨가 저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건 알고 있어요. 저는 가고 싶긴 한데, 예화씨가 싫으면 그냥 잠시 요 근처 드라이브만 좀 하다가, 다시 카페나 예화씨 집 앞에 내려드릴게요. 수정이도 어차피 계속 집에 있을 거고 하니-.”

진현은 자신이 하는 걱정을 반대로 하고 있었다.

예화는 풋, 하고 웃었다.

“그냥 가요.”

“네?”

“그, 그냥 가요. 저도 오늘은 좀 즐기고 오기로 마음먹었으니까...... 그리고 진현씨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아니라 그, 그동안 오해가 좀...... 기껏 받았는데 표도 좀 아깝고?”

드물게 예화는 살짝 횡설수설하며 말했다.

사실 표가 그리 아깝지는 않았다. 내 돈 내고 산 표도 아니고, 이런 표야 얼마든지 구할 수 있으니까.

이번에는 진현이 피식 웃었다.

“진짜죠? 그럼 저 출발합니다?”

“네.”

“그런데 계속 뒷자리에 계실 거?”

“아, 자리 옮길게요.”

예화는 뒷좌석 문을 닫고, 다시 앞 좌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

앞으로 자리를 옮긴 예화는, 그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을 뻔했다.

옆에 바로 진현이 있어서 그런가, 앞 좌석에서는 그의 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무심코 침을 삼킬 뻔한 예화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이상하게도 이 냄새를 맡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행복감이 든다.

“안전벨트 매셨으면 출발할게요.”

“네.”

혹시 진현이 눈치채진 않겠지. 살짝만 더 왼쪽으로 자리를 옮긴 예화는 그대로 푹신한 가죽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

데롯월드 까지는 차를 타고 30분 정도를 가면 되었다.

‘운전 스무스하고~.’

좋은 차라 그런지 굉장히 안정적으로 굴러갔다.

거의 장롱에 처박혀 있던 수준의 운전면허지만, 요 며칠 사이에 운전 실력을 크게 늘릴 수 있었다.

운전 실력을 키우는 거야 뭐.

밤에 델리아나 수정이를 데리고 드라이브를 하기도 하고, 낮에 카페에 차를 끌고 가 가끔 몰고 들어오는 것으로 쉽게 늘릴 수 있었다.

집중을 비롯한 여러 스티커의 효과 덕을 톡톡히 본 것이다.

특히 충격 흡수 등의 기능성 스티커까지 차에 부착하여 사고의 위험과 두려움을 없애니 심리적으로도 참 편안했다.

“시간이 살짝 남았는데, 아침은 드셨어요?”

입장은 9시 30분부터 가능한데, 데롯월드 주차장에 주차하고 나오니 시간이 아직 9시가 조금 안 돼 있었다.

내 물음에 예화는 고개를 저었다.

“아, 아뇨. 오늘은 못 먹고 나왔어요.”

“으음, 그럼 간단하게 뭐 좀 먹어요. 괜찮죠?”

“네에.”

밖으로 나오니 커다란 데롯타워의 위용이 우뚝 보인다.

우리는 근처의 식당을 찾아보다가 예화의 추천으로 미국식 아침밥 식당에 들어가 간단하게 배를 채웠다.

다른 게 아니라 상호가 그랬다.

예화는 샐러드나 샌드위치를 시켜 거의 풀떼기만 냠냠 먹었다.

나는 소시지에 스테이크 덮밥까지 시켜 먹었는데, 가끔 침을 꿀꺽 삼키며 유혹을 참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동안 정말 죄송해요. 제가 너무 심하게 굴고, 그으...... 특히 어, 어제는.”

아침을 먹는 동안 예화는 계속 나를 보고 우물쭈물하다가, 이내 용기를 낸 듯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을 꺼내나 했는데, 요전까지 태도의 사과였다.

어제라는 단어를 말하는 예화는 귀까지 빨개져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손을 저었다.

“에이, 괜찮아요. 예화씨도 당황하셨을 텐데요 뭐. 그리고 예화씨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딱히 사과 안 하셔도 돼요.”

“아......”

오히려 미안한 건 나다.

사실 디퓨저부터 시작해 어제의 행위까지. 전부 노린 거였기 때문에, 그녀에게 사과를 받을 만한 일은 전혀 없었다. 사타구니를 처맞을 줄은 몰랐지만.

“정 미안하면 오늘 재미있게 놀아봐요.”

“아, 네, 네. 그래요.”

오렌지 쥬스로 시원하게 목을 축인 우리는 식당에서 나왔다.

이제 딱 시간이 맞았다.

데롯월드 안쪽으로 들어가 미리 예매해뒀던 예매권을 보여주며 입장했다.

프리미엄 패스라는 것도 할인받을 수 있어 그것 또한 구매했는데, 꽤 가격이 나감에도 불구하고 아침까지 포함해 전부 예화가 계산했다.

“와아, 엄청 넓네요.”

“그러게요. 예화씨는 뭐 좋아하세요? 종류 되게 많은데, 으음. 롤러코스터 종류?”

“아, 그, 그건...... 아! 이, 이건 어때요?”

롤러코스터 등 스릴 있는 놀이기구를 가리키자 예화는 곧바로 화제를 전환해 버렸다.

그녀는 VR모험 같은 어드벤쳐 놀이기구를 골랐다.

“음......”

“......별로예요?”

“아뇨, 재밌겠네요. 바로 갈까요?”

“네.”

우리는 평범한 연인처럼 데이트를 즐겼다.

오랜만에 놀이공원에 오니 나도 꽤 즐거웠다.

예화가 워낙 미인이라 그런가, 같이 걷고 있으면 주변의 시선이 잠깐씩 쏠리는 현상이 상당히 많이 일어났다.

“진현씨 옆, 옆!”

“아, 네.”

뭐 총을 쏘는 놀이기구도 있었는데, 예화는 생각보다 잘 몰입해서 즐겼다.

그리고 슬슬 탈 것들이 떨어져갔다.

******

순수하게 즐겁다는 기분을 예화는 오랜만에 느꼈다.

‘아빠 말이 맞았네.’

평소에 워낙 단조롭게 스튜디오와 카페를 오가며 작곡만 하는 일상을 보내서 그런가, 오랜만에 이렇게 나와서 색다르게 환기를 시켜주니 너무 즐거웠다.

왜 아빠가 여행을 자주 다니는지 알 것 같은 하루였다.

솔직히, 진현과 둘이서 노는 게 어색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래도 그동안 매일 카페에 들려 얼굴을 보는 사이라 그런지, 아니면 진현이 되게 잘 웃고 붙임성 있게 해줘서 그런지.

의외로 진현과 노는데 어색한 기류는 별로 흐르지 않았다.

오히려 되게 친한 친구 같은 느낌이다.

‘마음이 편안해서 그런가......?’

예화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많은 되게 시끄러운 풍경.

여러 나레이션과 가끔 들리는 비명들이 정신이 없는 와중에, 진현이 있으면 그러한 정신없음이 굉장히 아늑하게 바뀐다.

“예화씨~, 여기!”

“아......”

지금처럼.

진현은 음료수 두 개와 츄러스 두 개를 양손에 들고 다가왔다.

그가 가까이 오자 다시 포근한 느낌이 예화를 물씬 감쌌다.

이제는 이게 그의 냄새 때문인지 아닌지도 모를 진현 특유의 분위기에 예화는 중독될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자, 이거. 예화씨도 먹어봐요. 진짜 맛있어요.”

“아, 네에.”

냠.

진현에게서 받아 예화는 달달한 츄러스를 입에 물고 오물오물 씹었다. 슬쩍 눈을 돌려 진현을 바라보자 그는 웃는 얼굴로 자신을 똑같이 바라보고 있었다.

“......”

웃는 얼굴을 볼 때면 굉장히 잘 생겼다는 느낌이 들었다.

‘피부도 되게 좋고...... 콧대도 높네.’

외모를 따지냐 안 따지냐를 묻는다고 하면 예화는 단연 따지는 편이었다. 그것도 엄격하게. 이상형을 생각해 보면 큰 키에 좋은 몸, 잘생긴 얼굴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그걸 다 만족하고 나서 뭔가 이렇게...... 음. 특별함이 있는 사람이 좋았다. 나보다 더 잘난 사람?

그렇게 놓고 본다면 진현은 꽤 예화의 이상형에 부합하는 사람이었다.

지금까지는 너무 안 좋은 사람이라는 필터를 쓰고 봐서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그 필터가 벗겨지니 좋은 부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근데 수정이 남친이잖아.’

그랬다. 이미 임자가 있는 몸.

게다가 바람을 피우는 남자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수정이를 통해 바람이 아닌 양다리라는 말을 들었지만...... 솔직히 그거나 저거나 사귀는 입장에서는 똑같지 않은가.

그래도 역시 예화는 한 사람만을 바라봐 주는 사람이 좋았다.

‘그런데 양다리라니......’

돌연 수정이와 진현이 나누었던 정사와 키스 장면이 또다시 재생됐다.

수정이는 진현이 양다리를 걸치는데도 불구하고, 그, 그런 짓을 할 만큼 좋다는 건가?

“제 얼굴에 뭐 묻었나요?”

“아, 아뇨. 아니에요. 아무것도.”

츄러스를 다 먹고도 예화는 진현과 함께 벤치에 앉아있었다.

오늘 뭔가 많이 먹는 느낌이다. 점심도 그렇고.

‘살찌겠다.’

이 지방들을 원래대로 돌려놓으려면 아무래도 며칠간 더 열심히 운동해야 할 것 같았다.

“진짜 많이도 탔네요.”

“그러게요.”

지도를 바라보니 이제는 남은 탈 만한 게 별로 없었다.

아침 일찍 오픈 시간부터 돌아다녔기 때문에, 모험 종류나 별로 안 무서운 기구는 거의 다 탔다.

이제 남은 건 스릴 있는 놀이기구뿐.

그때, 때마침 바로 옆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꺄아아아악-

바이킹이었다.

용케도 저런 걸 타는구나. 멍하니 사람들의 비명을 반주삼아 바이킹을 바라보고 있자, 진현이 말했다.

“저거 탈래요?”

진현의 말에 예화는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그, 아까 말했다시피 제가 저런 건 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중학생 때 아빠랑 같이 놀이공원에 왔다가 울고불고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고등학생이 돼서 괜찮겠지 싶어 한 번 타려고 앉았는데, 트라우마라도 있는지 너무 무서워서 곧바로 시작하기 전에 내려갔던 기억도 있다.

사람들은 저런 게 참 재밌다는데, 예화는 그런 즐거움을 살아생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때 진현의 목소리가 또 다시 들려왔다.

“딱 한 번만 타봐요.”

“......네?”

“저 믿고 한 번만 타봐요.”

이상하게 믿음이 가서 그렇다고 대답할 뻔했다. 진현의 곁에 맴도는 향기와 분위기는 가히 마법적이었다.

예화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저었다.

“저, 저 진짜 못 타는데......”

“괜찮아요. 보기만 저렇지 진짜 별거 아니에요.”

“아, 아니......”

“일단 줄만 서보고, 도무지 안 되겠으면 중간에 나와요. 네?”

프리미엄 패스는 줄 없이 바로 입장할 수 있게 해주지만, 그걸 산 사람들이 꽤 돼서 패스 줄도 따로 있었다.

물론, 파격적으로 줄어 한 3~5분 정도만 기다리면 대부분의 놀이기구들을 탈 수 있었다.

“......”

예화는 생긋 웃는 진현의 표정을 보며, 역시나 그가 악질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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