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5화 〉# https://t.me/LinkMoa
터벅, 터벅.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
진현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예화는 얼른 문틈 사이로부터 얼굴을 거두고 숨을 죽였다.
‘왜, 왜 갑자기......!?’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천진현.
그가 자신이 숨어있는 옷장을 향해 일직선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명백히 무언가 목적이 있어 보이는 움직임이었다. 이대로 온다면 분명히 이 옷장 문을 열 텐데......
설마 들켰나? 싶었지만 그럴 리는 없었다.
숨소리도 안 새어나가도록 조용히 있었다. 도중에 그가 눈치챈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면 옷을 챙기러 왔다는 건데, 하필이면 왜 여기인가.
이 안에는 들어 있는 옷들도 별로 없는데......!
터벅, 터벅, 터벅.
발걸음 소리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제발 여기가 아니길 바랬지만, 얼마 가지 않아 발걸음 소리는 정확히 예화가 숨어있는 옷장 앞에서 멈추었다.
‘으으......’
예화는 이를 아득 물었다.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다.
선공이라도 해야 하나?
아니면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척 발뺌?
예화는 찰나의 순간에 이 상황에서 가장 이득이 될 행동이 무엇인가 생각했다.
발뺌은 도무지 불가능하다.
지금 상황에서 옷장에 숨어있는 것을 들킨다면, 당연히 진현도 바보가 아닌 이상 그의 강간 성폭행이 들켰다는 걸 알아챌 것이다.
자신도 그에게 붙잡혀 심한 짓을 당할지도 모른다.
무조건 정면돌파밖에 없다.
그렇다면......!
‘역시 선공이 답이야. 우선은 턱을 가격하고, 그 뒤에 곧바로 가랑이를 찬다.’
그렇게 공격에 성공하면, 비틀거릴 때를 이용해 후속타를 날리고 달아나는 게 최선이리라.
전문적으로 도장에 다니며 격투기를 배운 것은 아니었지만, 예화는 어려서부터 몸을 철저하게 관리해왔다.
지금까지도 매일 같이 운동을 하고 식단관리를 하며, 이전에 아버지가 알려준 동작을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적어도 호신이 가능한 몸은 만들었다고 자부한다.
과연 키도 크고, 근육으로 덮인 몸을 가진 진현에게 타격이 잘 통할지는 의문이지만, 급소까지 단련할 수는 없으니까.
적어도 자신을 발견할 때 그가 당황할 것은 자명했다. 그리고 당황한 틈을 타 급소를 가격하면......!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문이 열리면 그때 곧바로 친다......!’
예화는 옷장 문이 열리는 것을 기다리며, 자세를 잡았다.
언제든지 뛰쳐나갈 준비가 끝났다.
그리고 마침내.
탁.
진현이 옷장 손잡이에 손을 얹는 게 느껴졌다.
예화는 긴장을 삼키고 차분하게 기다렸다.
곧이어 문이 열리기 시작하고.
끼이익-
서서히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진현의 얼굴도 똑바로 눈에 들어왔다. 수정이를 강간한 나쁜 남자!
예화는 곧바로 몸을 일으키며 주먹을 날렸다.
“어? 예화씨 지-.”
퍼억!
예화는 최대한의 힘으로 진현의 턱을 가격했다.
‘들어갔어......!’
진현은 하던 말을 끝까지 하지 못하고 얼굴이 젖혀졌다. 그의 말 따위는 들어줄 필요가 없었다,
지금이 기회다.
이제 곧바로 가랑이까지!
파악!
“아악! 예화씨 이게 대체 무스-.”
예화는 다리에 힘을 주고 진현의 가랑이 사이를 강하게 찼다.
무언가 다리에서 묵직한 걸 찼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런 걸 일일이 느낄 시간 따위는 없었다.
예화는 마지막으로 비틀거리며 겨우 일어서고 있는 진현의 가슴을 향해 돌려차기를 날렸다.
퍼억!
“크윽......!”
돼, 됐다......!
돌려차기에 맞은 진현이 마침내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쓰러졌다.
“수정아, 빨리! 지금이야!”
예화는 곧바로 방의 문 쪽으로 뛰며 수정이의 손목을 붙잡았다.
“빨리 나가자! 어서 신고-.”
이제 나가서 그를 협박, 강간 등의 죄로 신고하면 수정이는 진현에게서 벗어나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왜 그래, 수정아. 빨리 나가자! 회복하기 전에 나가야 해.”
수정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엄청나게 안 좋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너, 너, 너 뭐해......!”
“으, 으응?”
“진현이한테 뭐 하나고! 세, 세상에! 진현아, 괜찮아!?”
절망적인 얼굴을 한 수정은 예화의 손을 뿌리치고, 곧바로 진현에게 달려갔다.
아까 전 억지로 당했을 때와는 너무도 다른 반응이다. 진심으로 진현을 걱정하는 모습.
“어......?”
예화는 그 모습을 보고 살짝 멍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
“......”
나는 바닥에 누워 배를 매만졌다.
솔직히, 덤비는 선택지도 생각은 해봤는데, 정말로 이렇게 매섭게 공격할 줄은 몰랐다.
‘하기야 외모, 몸매를 제외한 신체 능력이 40대니까.’
수정이의 처음 히로인으로 삼았을 때, 그녀의 외모, 몸매를 제외한 신체 능력이 20대였다는 걸 생각하면 거의 2배에 가까운 수치였다.
물론, 내가 예화보다 훨씬 더 높은 능력치 가졌기 때문에 피한다면 피할 수 있는 공격이었지만, 여기서는 맞아주는 선택지를 택했다.
......M이라서 맞은 건 아니고, 그냥 그게 더 효과가 좋을 것 같아서.
과연 턱과 자지를 노리는 공격은 좀 살벌했기에, 그냥 맞아주지 않고 천리염기공으로 익힌 마력을 움직여 방어했다.
1성은 몸 내부에서만 마력을 움직인다면, 2성이 된 지금은 움직인 마력을 아주 얇게나마 몸 주변에 두를 수 있었다.
1성은 공격력은 강하지만 방어력은 약했다면, 2성은 방어적으로도 사용할 수 있었기에 급소를 맞았다 하더라도 별 타격을 입지 않는 게 가능했다.
물론, 충격 자체는 미약하게 전해진다.
자지에 이걸 정통으로 맞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살벌한 느낌이 드는 정도.
아무리 70이 넘는 신체 능력이라도 자지를 강하게 맞으면 좆되는 수가 있으니까.
수정이는 내가 공격받자 진심으로 놀라며 메신저를 보내왔는데, 나는 곧바로 괜찮다고 답해주었다.
그래도 걱정이 되는지, 내가 맞은 부분을 매만지는 손길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괜찮아 진현아?”
“응...... 후, 좀 아프긴 한데.”
나는 수정이의 부축을 받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고개를 드니 어느새 근처로 다가온 예화가 나를 경계하면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예화를 살짝 노려보며 말했다.
“아니, 예화씨. 이게 대체 무슨 짓입니까? 갑자기 공격하고......”
“무슨 짓이냐고요? 그쪽이야 말로......! 이 강간마!”
예화는 수정의 태도에 살짝 혼란스러운 듯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자신의 생각을 밀고나가는 듯했다.
곧바로 수정이가 예화를 향해 소리쳤다.
“강간마라니, 예화야. 진현이한테 대체 무슨 소리야!”
“무슨 짓이냐니 수정아. 응? 우리 빨리 나가자! 이러다가 진짜 늦어.”
“왜 그러긴! 예화 네가 진현이를......! 아니, 그보다 너 왜 여기 있어?”
“그, 그건 어, 네가 걱정돼서......”
예화는 우물쭈물 말하다가.
“수정아 내 앞에서는 저 남자 좋아하는 척 안 해도 돼. 증거 동영상도 다 찍어놨단 말이야! 빨리 경찰에 신고하러 가자. 응?”
“겨, 경찰? 신고? 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무슨 소리냐니, 너 저 남자한테 계속 협박-.”
“맞아요. 예화씨, 저랑 수정이는 그냥......”
“하, 그냥이라고요?”
예화는 내 말이 어이없는 듯 답하다가 이내 휴대폰 꺼내 탁탁, 하고 조작했다.
그다음 곧이어 화면을 돌려 우리에게 무언가를 보여주었다.
예화가 찍은 동영상이었다.
[ 빠는 실력도 형편없네. 쯧. 더 잘 좀 빨아봐. ]
[ 미, 미안해...... 더 잘할게...... 쮸웁, 쮸븁, 우붑...... ]
수정이가 가슴으로 내 자지를 감싸고 열심히 빨고 있는 모습이 나타났다.
『 아, 아니 예화 영상 찍고 있었어?? 』
『 응. 내가 너한테 빨라고 하니까 바로 휴대폰 꺼내서 찍던데. 』
『 이익, 왜 말 안 해줬어!! 』
『 너도 아는 줄 알았지~. 』
『 으으.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아......! 』
수정이는 당황 반 부끄러움 반으로 예화가 찍은 동영상을 바라보았다. 얼굴은 아주 빨개져 있었다.
솔직히 나도 당황했다.
화질이 너무 좋아서.
[ 가슴 좀 더 흔들어. ]
[ 쪼옥, 츕...... 파하, 이, 이렇게......? ]
예화는 과연 부자답게 아주 최신형 폰을 쓰는지, 클로즈업을 해도 화질이 매우 뛰어났다.
수정이의 핑크빛 유두와 가슴의 출렁거림, 앵두빛 입술, 불쌍한 듯 눈꼬리를 내리고 당하는 듯한 수정이의 표정.
내 자지의 모양까지 아주 선명하게 담겨있었다.
다른 의미로 당황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이겼다고 생각했는지, 예화가 당당하게 말했다.
“어때요! 이래도 강간이 아니라고 할 거예요? 증거는 충분해요. 어서 수정이를-.”
하지만 말이 끝나기 전에 수정이가 예화의 말을 끊었다.
“너, 너 우리 하는 거 다 찍은거야......?”
떨리는 말투로 말하는 수정이를 향해 예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다 찍었어. 그러니까 수정아. 이제 빨리-.”
“야, 야이. 바보야!”
수정이가 예화를 향해 버럭 소리쳤다.
“바, 바보?”
“그, 그거 그냥 컨셉 플레이 한거란 말이야......!”
수정이의 말에 예화가 당황했다.
“커, 컨셉 플레이? 그게 무슨......”
“세, 섹스 상황극 같은 거 한 거라고!”
“사, 상황극?”
“응...... 너무 많이 해서 평범하게 하면 단조롭단말야......”
수줍게 말하며 수정이는 나를 바라보았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코스프레 플레이를 하니까. 상황극을 많이 하는 건 팩트였다.
“맞아요. 예화씨, 그냥 그런 플레이를 한 거예요.”
“아, 아니 그럼 수정이는 협박받아서 억지로 사귀는 게......?”
예화가 이게 아닌데? 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질문에는 수정이가 대답했다.
“아까부터 계속 말했잖아! 아니라고.”
“지, 진짜로?”
“아. 진짜라니까. 후, 꼭 증거를......”
수정이는 예화를 보고 한숨을 내쉬다가, 뭔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내게 다가왔다.
“키스하자 진현아.”
여기서 갑자기 키스한다고?
하는데 수정이는 마치 과시하듯 내 입술을 쪼아왔다.
“움, 쪽, 쮸웁, 츄웁......♡”
혀와 혀가 섞이는 야한 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키-. 아......”
예화는 그저 멍하니 우리 둘의 키스를 바라보았다.
******
예화는 생각했다.
가만, 그럼 자신은 단순히 수정이와 남친 진현의 정사를 훔쳐보고 촬영한 변태가 되는 게 아닌가?
게다가 최근에 잘해주고 있는 진현을 향해 공격까지 한 미친 여자고......
‘으으......’
예화의 얼굴이 터질 듯 붉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