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화 〉# https://t.me/LinkMoa
으으.
예화는 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매만지다가 이내 멀뚱히 그녀를 바라보는 천진현을 보고 아차 한 표정을 지었다.
“아,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그는 자신을 보고 고개를 갸웃하다가도 미소를 지었다.
친절해 보이는 미소였다.
“요즘 다시 카페에 나와주시더라고요. 한동안 안 나와서 질린 게 아닌가 걱정했어요.”
“아, 그게......”
예화는 순간적으로 말문이 살짝 막혔다.
[ 흐응. 그래요? ]
[ 사람은 제가 판단해요. 그쪽한테 제가 친하게 굴 이유는 없어요. ]
아무리 까칠하게 굴어도 그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는 한 치의 변함도 없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을 그때, 신호등의 불이 파란 불로 바뀌었다.
진현은 신호등을 한번 쳐다보더니 다시, 장예화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 건널 건데. 할 말 있으신가요? 점심 먹으러 갈 거예요. 괜찮으시면 따라오셔도 되고요.”
저번에 같이 먹을 때 분위기가 그렇게 안 좋았는데, 잘도 제안하는 그였다.
“......”
약간은 신기한 마음도 들었다.
어떻게 이렇게 계속 친절하지.
이래서 최악의 바람둥이인가?
‘내가 미쳤지.’
예화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거절할 수는 없었다.
선물까지 받았고, 무언가를 질문하려고 하는 건 자신이었다. 여기서 밥까지 거절하는 건 너무 비인간적이지 않을까.
“네, 그래요.”
“어, 진짜요?”
역으로 물어보는 그의 말에 예화의 눈이 가늘어졌다.
“......잘 지내보자면서요. 싫어요?”
“설마요. 같이 가요.”
진현은 횡단보도를 건넜다.
시원한 가을바람이 진현의 옷자락을 때렸다. 예화는 그런 그의 곁을 따라서 걸었다.
“예화씨는 무슨 음식 좋아하세요?”
“전...... 아무거나 잘 먹어요.”
“그게 제일 곤란한 대답인데.”
“진짜예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예화의 입맛은 의외로 폭이 넓어서, 싸구려 음식도 두루두루 적당히 잘 즐길 줄 알았다.
물론, 고급스러운 음식을 조금 더 좋아하긴 하지만.
“딱히 가리는 음식은 없어요, 진현씨 편한 곳으로 가요.”
“으음. 알았어요.”
진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계속해서 걸음을 이어갔다.
그런 그를 따라가는 예화는 왜인지 기분이 좋았다.
그의 살짝 옆에서 걸으며 계속 풍겨오는 냄새.
지금까지 맡지 못해 안달 난 그 냄새가 계속해서 풍겨왔다.
예화는 진현의 곁을 가까이 걸으면서 최대한 많은 냄새를 맡으려고 노력했다.
‘후아......’
최대한 진현에게 들키지 않는 선에서 냄새를 맡은 예화는 머릿속의 안개가 걷힌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시원한 청량감이 가을바람과 함께 차오른다.
“여기서 먹어요.”
“아. 여긴......”
예화는 진현이 멈춘 식당의 간판을 바라보았다.
예화도 종종 들리는 제법 괜찮은 한식당이었다.
예화는 진현을 슬쩍 쳐다보았다.
이 근처에 카페를 차린 지 얼마 안 됐을 텐데, 이런 곳도 알고. 심지어 저번 칼국수 샤브샤브에서 만난 걸 보면, 어쩌면 자신과 음식의 픽이 비슷해 보였다.
“싫어요?”
“아뇨, 좋아요.”
애써 평범한 표정을 한 예화는 진현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한 자리가 있어서, 곧바로 안내받을 수 있었다.
식당의 베스트 메뉴를 주문한 예화는 진현을 바라보았다. 진현 또한 예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진현은 예화에게 물었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이에요?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이던데.”
“아, 그게......”
예화는 그에게 선물 받은 디퓨저에 관해 이야기했다. 성능이 너무 좋아서, 더 얻고자 한다고.
그 이야기에 진현은 잘됐다는 듯 미소 지었다.
“아하, 다행히 잘 쓰셨나 보네요.”
“네, 그런데 효과가 너무 좋아가지고......”
“제가 말했잖아요. 특별한 거라고,”
진현의 웃음에 예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그 조금 더 주시면 안 될까요? 아! 물론 공짜로 달라는 건 절대 아니고 살게요. 아니면 그 브랜명이라도 좀...... 어디 제품인지 알고 싶은데, 도무지 안 나오더라고요. 상자에도 아무것도 안 적혀있고.”
예화는 그렇게 말하고 진현을 바라보았다. 그는 뭔가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안 되나요......?”
아쉬운 마음에 묻자, 진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안 되는 건 아닌데, 이게 브랜드명이 없어요. 제 지인이 수작업으로 만든 거라서.”
“아아, 핸드 메이드인가요?”
“네, 뭐 그런 거예요.”
“역시......”
예화는 납득했다.
어쩐지 누구한테 물어봐도 브랜드명이 안 나온다 싶었다.
“그럼 진현씨를 통해서 디퓨저를 좀 거래할 수는 없을까요? 제가 조금 더 비싼 값에 살게요.”
“하하. 저도 그러고 싶은데, 이게 지금은 재고가 없더라고요. 예화씨한테 드린 게 마지막 남은 하나에요.”
“아......”
예화가 아쉬움에 탄식을 내뱉었다. 진현은 그런 예화를 보며 미소 지었다.
“그래도, 다시 나온다고는 하니까, 재고가 생기면 제가 알려드릴게요.”
“아, 정말요?”
“네, 여기...... 제 명함이거든요? 이 번호로 톡이나 문자 한 번 주시면, 제가 새로운 제품 나올 때 알려드릴게요. 언제 나올지는 모르지만요.”
“아, 네, 고마워요.”
예화는 진현의 명함을 지갑 안에 잘 모셔두었다.
“한우 불고기 덮밥 나왔습니다~.”
“아, 네. 이쪽입니다.”
“맛있게 드세요~.”
곧이어 음식이 나오고, 예화는 살짝 아쉬운 감정 속에서 식사했다.
진전은 있었으나, 큰 성과는 없었다.
언제 나올지 모른다니.
그런 신세계 적인 기분은 지금까지 느껴본 적이 없는데......
그런데 디퓨저가 진현의 향수 냄새랑 비슷하다고. 혹시 향수라도 없냐고 물어보기에는 좀 그랬다.
‘아니, 물어볼까?’
예화는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저 그런데, 그 디퓨저 냄새 말이에요. 진현씨 향-.”
“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예화는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저번보다는 식사의 분위기가 훨씬 편안했다.
뭐, 그 이유는 자신이 진현에게 딱딱하게 굴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생각해 보면 진현은 항상 자신을 부드럽게 대하려고 했다. 맨날 얼음 같은 태도로 그를 대한 것은 자신이지.
어쩌면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은 아닐 수......
‘아니아니. 바람둥이야.’
예화는 진현이 수정이를 놔두고 다른 여자와 키스하고, 같이 모텔에 들어가는 장면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의 너무 안 좋은 평가는 좀 없앨 필요가 있을 것 같기도 하지 않을까?
여전히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예화의 안에서 진현의 평가가 약간은 상승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아, 잠시만요.”
“네.”
진현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네, 네. 아린씨. 아~ 아직도 안 왔다고요? 지금 바로 갈게요. 우선은......”
진현은 뭐라고 막 통화하더니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송해요. 약간 카페에 일이 생겨서, 먼저 일어나봐야겠네요.”
“아, 그런가요.”
“제가 살...... 아니다. 제 몫은 미리 계산하고 갈게요.”
진현은 그렇게 말하고 몸을 돌리려고 했다.
[ 음식 계산은 제가 하고 나갈게요. 하아, 얻어먹기도 싫네요. ]
문득, 저번 식사와 더불어 아웃백에서 그에게 했던 말이 괜히 생각났다.
예화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오늘은 제가 살게요.”
진현은 예화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외라는 얼굴을 했다.
왜인지 예화는 그런 진현의 표정이 재미있었다.
“아, 고마워요. 그 디퓨저는 재고 나오면 바로 알려드릴게요.”
“네.”
진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식당에서 나갔다.
진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예화는 남아서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쉽다, 너무.
그 디퓨저를 얻을 수 없고, 언제 다시 완성될지도 모른다니.
“그래도...... 뭐 알려준다니까.”
그래.
진전은 있다.
그냥 이전처럼 집중해서 열심히 작업하다가, 디퓨저가 나오면 보너스 느낌으로 사용을 하면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자신의 입장에서 편하기도 하...... 어?
그때였다.
혼자서 앉아 숟가락을 뜨던 예화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그녀가 앉아있는 자리의 대각선 의자.
그러니까, 천진현이 앉았던 의자의 옆자리.
외투가 하나 걸려있었다.
“......꼼꼼한 줄 알았는데, 이런 걸 두고 가네.”
어차피 오늘은 카페에 다시 돌아가서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가져다주자.
예화는 자리에서 일어나 반대편으로 가서 그의 외투를 손에 들었다.
들기 편하도록 접으려고 할 때, 문득 그녀의 코가 반응했다.
“아......”
향기.
외투에서 그의 향기가 났다.
디퓨저만큼 강렬한 향기는 아니지만, 은은하게 계속 피어오르는 향기.
예화는 주변을 슬쩍 둘러보다가 아무도 자신을 보지 않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살짝 더 내렸다.
킁킁.
“하아......”
역시 착각이 아니다. 그의 향기였다.
예화는 잠시 외투를 의자에 두고, 음식점의 입구로 걸어가 문을 밖을 내다보았다.
천진현.
그는 이미 멀리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예화는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서둘러 남은 밥을 해치우고, 짐을 챙겨 일어났다.
그리고 의자 위, 아까 전 접어서 올려둔 그의 외투를 바라보았다.
향기가 피어오르는 외투.
언제 다시 나올지 모르는 디퓨저.
‘꿀꺽......’
예화는 침을 삼켰다.
그녀는 스멀스멀 손을 뻗어 외투를 슬그머니 집어 들었다.
계산을 마치고 나온 예화는 그날 카페로 향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