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화 〉# https://t.me/LinkMoa
“헉......!”
예화는 짧은 탄성과 함께 노트북으로부터 고개를 들었다.
“지금 시간이-.”
곧바로 휴대폰을 켜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6시 28분.
점심을 먹고 와서 의자에 앉은 지 4시간이 넘도록 흘러있었다.
4시간이 넘도록 집중한 것이다.
이정도 시간 동안 집중한 적은 이전에도 많았지만, 이렇게 홀린 듯.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작업에 임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한 번도 일어서지 않고 계속 앉아서 작업했음에도 불구하고, 예화는 지금 몸과 마음이 너무나도 편안함을 느꼈다.
머리 또한 맑았다.
천진현이 선물해 준 디퓨저.
향기를 맡을 때마다 그 남자가 떠오르긴 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너무 은은하고도 좋은 향이었다.
향이 마음에 든 예화는 디퓨저를 노트북 책상 바로 옆에 두고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홀린 듯 작업에 임해, 그야말로 무아지경에 빠진 것만 같은 무서운 집중력을 보였다.
예화는 책상 위에 둔, 천진현이 선물해준 디퓨저를 손에 집었다.
“......”
[ 집중도 잘 되고, 마음도 안정시켜주고, 기분도 좋아지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고 해요. ]
샤브샤브 칼국수집에서 나와 천진현이 했던 말이 머릿속을 번개처럼 관통했다.
“진짜-.”
이건 대박이었다.
‘혹시 막 마약 같은 거 들은 거 아니야?’
문득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도 들 정도였다.
카페에도 분명 들어가기만 하면 마음이 막 포근해졌었지. 그 카페에 있는 비슷한 거라고 하니 납득은 되었다.
생전 이런 디퓨저는 본 적이 없는데, 대체 무슨 신비한 성분이 있길래 이러지?
게다가 아무리 봐도 그냥 식물 모형일 뿐인데, 향기가 계속 풍겨오는 것도 신기했다.
킁킁.
“아......”
콧속을 찌르는 향기.
냄새가 좋다. 뭔가 끌리고, 자꾸만 맡아보고 싶은 그런 느낌. 향기가 뇌 속에 가득 피어오르는 신비한 느낌이다.
좋은 냄새.
하지만, 동시에 바람둥이 나쁜 남자인 천진현의 냄새.
상반된 개념이 충돌하며 약간의 혼란이 왔다,
“그래도......”
킁킁.
예화는 다시 코를 킁킁거렸다.
뭔가......
뭔가 중독될 것 같은 향기였다.
“다시 집중하자.”
예화는 노트북 옆에 선물 받은 디퓨저를 내려놓았다.
어지간히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선물 받은 물건을 책상 위에 올려두는 일은 잘 없는 그녀였지만, 이 디퓨저는 자신의 근처를 차지하기 딱 좋은 물건이었다.
그날 예화는 스튜디오에서 밤이 될 때까지 작업했다.
마찬가지로, 홀린 듯 작업에 집중했다.
스튜디오에서 나올 때 디퓨저를 가지고 나온 예화는 그녀의 방에 도착해, 기존에 쓰던 디퓨저를 잠시 빼놓았다.
그리고 진현에게 새로 받은 디퓨저를 머리맡에 두고 잠들었다.
코끝에 은은한 향이 감돈다.
예화의 잠자리는 너무나도 편안했다.
******
“오빠아~!! 이것 좀 들어봐요!”
다정이가 요란스럽게 사무실 문을 열었다.
“진짜로 대바-. 아아앗!?”
진짜로 대박이에요! 라고 말하려던 다정이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양 볼을 부풀렸다.
사무실 책상 옆, 내게 딱 붙어서 입을 맞추고 있는 유정이 누나 때문이었다.
“언니이이! 아직 근무시간이잖아요.”
“츄웁, 쭙...... 히이, 다정아 왔어?”
내 품에 안겨 입술을 빨고 있던 유정이 누나는 다정이의 등장에 베시시 웃고는 천천히 몸을 떨어뜨렸다.
약간의 땀 냄새와 커피향이 섞인 유정이 누나의 몸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그럼 다시 갈게요, 사장님~?”
“이따 지문 찍고 올라와요. 누나.”
“응~.”
사무실을 나가며 유정이 누나는 다정이에게 혓바닥을 살짝 내밀어 놀리고는 카페로 사라졌다.
다정이는 유정이 누나의 도발에 입술을 삐죽이다가 내게 총총총 걸어왔다.
“오빠아, 저도 키스.”
“질투했어?”
“빨리요오.”
“그래, 이리 와. 그보다 아까 대박이라는 건 뭐야?”
“아! 이거이거, 저 그때 의뢰한 배경음악 2차 샘플 완성됐는데 어엄청 좋아요!”
다정이는 내 품에 안겨 아기새처럼 입술을 쪼아먹더니, 그 자세 그대로 톡을 켜고 BGM을 들려주었다.
사랑의 감성을 자극하면서도 톡톡 튀는 듯한 귀여움, 멜로디가 너무 아름다운 노래였다.
“되게 좋네.”
“그쵸오? 와, 저 어제 1차 샘플도 좋았는데, 이번 건 더 좋아요! 돈이 안 아까워요. 대박.”
행복한 미소를 짓는 다정이를 보니 나도 절로 미소가 나왔다.
어제와 오늘, 장예화는 카페에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걸 오히려 다행으로 여겼다. 그녀가 내가 선물해준 디퓨저를 제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디퓨저에 걸려있는 효과가, 카페에 걸려있는 효과보다 훨씬 강력하니 굳이 카페에 나올 필요가 없는 것이다.
‘확실히 2단계 효과가 좋기는 좋아.’
비단 집중과 안정, 행복뿐 아니라 영감 스티커까지 붙여줘서 그런가. 결과물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예화에게 디퓨저를 선물하기 전, 나는 실험 차원으로 집에도 스티커 효과를 다 부착해 보았다.
주택 공간 전체에 행복과 안정은 기본, 청결 유지, 공기 청정 같은 효과의 스티커까지도 전부 작업을 해놓았다.
피트니스 룸에는 집중 스티커를 추가로 부착해두는 등 각 방에 기능에 따라 스티커를 붙여 2단계의 효능을 미리 시험해봤는데, 과연 내 천리염기공의 수행 속도에도 영향을 줄 만큼효과가 뛰어났다.
물론, 2단계 위로는 3단계, 4단계 등 계속 상위의 단계들이 있었지만, 단계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가격이 기하급수적으로 비싸졌기에 아직 사용하는 건 이르지 않을까 싶었다.
100만이 넘는 코인이 있는 지금도, 4단계가 넘는 효과 하나를 부여한다고 치면 가격이 살짝 부담될 정도였다.
“오빠아, 고백씬 브금 흐르는데에, 저랑 고백씬 연습하지 않을래요?”
생각에 젖어 있자 다정이가 내 볼을 쿡 찌르며 흔들리는 눈동자로 말을 걸었다.
사무실 안에 예화가 작업한 아름다운 멜로디가 흐른다.
“다정이 진짜로 변태 다됐네.”
“변태가 아니라아, 오빠한테 물들었다고 해주세요.”
“지금 더 물들여줄게.”
“히이. 변태오빠야......”
나는 다정이를 안으며 몸을 겹쳤다.
******
“그럼 그걸로 확실히 결정한 거지?”
“으으으음...... 아아니! 잠깐만! 저것도 좀 보고.”
“흐. 그래. 천천히 봐, 천천히.”
“응!”
일요일.
나는 수정이, 델리아와 함께 자동차매장에 나와 있었다.
세련된 차들이 줄지어 있는 가운데, 수정이는 미리 점찍어 둔 자동차의 내부를 구경하거나 설명을 들으며 자신의 선택이 옳았는지, 아니면 더 나은 차가 있는지 검증해보는 중이었다.
오늘은 내 의견이 딱히 들어가 있지 않고 오로지 수정이나 델리아의 판단에 맡긴 상태였다.
사는 건 내 명의여도, 일단은 둘에게 선물할 자동차니까.
굳이 나서고 싶지 않았다.
둘이 자동차를 고르는 와중에, 나는 적당한 자동차 하나를 골라서 이미 계약을 마쳤다.
마음 같아서는 스포츠카를 하나 사고 싶었지만, 아직은 운전 실력이 조금 부족했다.
미리 뽑아놔도 되기는 하다만...... 내가 원하는 스포츠카는 가격이 워낙 비싸야지.
아무리 주식으로 돈을 쓱싹 끌어모은다고 해도, 스포츠카 수준이 되면 관리비가 좀 아까울 정도로는 나왔다.
미녀를 조수석에 앉히고 드라이브를 하는 건 남자의 로망 중 하나니까.
우선은 적당한 자동차 하나로 연습을 좀 해두고, 그다음에 맛깔나게 몰아야지.
원래는 특화 능력치로 운전 능력치를 상승시키려고 했는데, 그건 코인이 너무 아깝고. 집중 스티커 효과를 받으며 운전에 몰두하면 금방 실력이 늘지 않을까 싶었다.
“저어, 고객님 잠시만. 하나 더 작성할 게 있는데......”
“아, 네.”
직원의 부름에 따라가, 나는 서류를 조금 작성했다.
나의 경우. 차를 결정하는 데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행운추적자가 있으니까. 그냥 디자인이 괜찮은 것들 중에서 가장 행운추적자의 반응이 잘 오는 걸 골라 풀옵션으로 맞췄다.
작성을 다 하고 매장으로 나오자, 델리아가 내게 다가왔다.
표정이 살짝 비밀스러웠다.
“왜? 매장에 마음에 드는 차 없어?”
“아뇨, 그건 아니고...... 이제 딱 3일 됐습니다.”
“3일? 뭐-. 아아~.”
델리아의 말에 나는 탄성을 내뱉었다.
예화에게 선물한 디퓨저. 그걸 포장해 준 것은 바로 델리아였다.
델리아는 디퓨저를 포장함과 동시에 상자에 한 가지 마법을 사용했는데, 바로 그 상자가 언제 뜯어졌는지 정확히 알 수 있는 마법이었다.
지금 막 상자가 뜯어진 지 정확히 3일, 72시간이 지났다는 것이다.
“고마워.”
“아닙니다. 저 그럼 오늘......”
“응. 흐. 기대해.”
“네에......”
델리아는 수줍게 웃고는 다시 수정이한테 쪼르르 걸어갔다.
나는 델리아를 바라보다가 직원에게 물었다.
“저 화장실은 어디 있나요?”
“아! 이쪽으로......”
남자 화장실 안에 들어가 인벤토리에서 스티커 발급기를 구현화했다.
내가 발급하여 효과가 적용되고 있는 모든 스티커의 목록이 뜨고, 그 안에는 예화에게 선물한 디퓨저 또한 분명 들어있었다.
‘달콤한 과실을 줬으니까.’
이제는 그걸 잠시 빼앗아 갈증을 느끼게 할 차례였다.
나는 스티커 발급기에서, 예화에게 선물한 디퓨저에 적용된 스티커의 ‘효과 적용 해제’ 버튼을 클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