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화 〉# https://t.me/LinkMoa
장예화의 눈썹이 찌부러졌다.
기껏 기쁜 마음으로 점심을 먹으러 온 그녀였다. 맛있는 샤브샤브 칼국수로 배울 채울 생각에 싱글벙글했는데, 운도 없어라.
천진현.
아무리 얼굴이 잘생기고 키가 크다고 해도, 저 얼굴을 보면 수정이가 아닌 다른 술 취한 여성과 모텔에 들어가는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거기에 더해 이전 아웃백에서 수정이와 했던 통화까지도.
천진현의 바람 사진을 톡으로 보내주고, 수화기 너머로 들었던 수정이의 서러운 목소리.
어찌어찌 둘이 화해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가 바람을 피워 수정이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최근에는 그 바람 상대의 고등학생 여동생까지......!
뭐, 여동생의 경우야 그가 아무런 짓을 하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반했을 수 있었다. 천진현이 겉으로 보기에는 잘 생겼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쳐도 윤유정이라는 여성과 두 번이나 바람을 피운 것은 결코 정당한 일이 아니었다.
최악의 바람둥이.
그게 지금 예화가 천진현에게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이었다.
“......안녕하세요.”
천진현의 인사에 대답은 했지만, 예화의 입에서 나온 단어에는 쌀쌀함이 묻어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무시하고 싶었지만, 전처럼 인사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 않냐고 귀찮게 발목이 붙잡힐 수 있었다.
잠시 천진현을 쳐다본 예화는 휙, 하고 몸을 돌려 반대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
오늘 칼국수 샤브샤브 먹고 싶었는데.
그런데 뒤에서 자신에게 따라붙는 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어디 가세요.”
“따라오지 마세요.”
“점심 먹으려던 거 아니었어요? 우리 같이 먹어요.”
“무-. 네에?”
남자의 말에 예화 우뚝 걸음을 멈췄다. 기가 막힘과 동시에 당황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남자를 바라보자 그는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혹시 이 남자는 바본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티를 내는 만큼 그도 자신이 그를 싫어한다는 것쯤은 알 수밖에 없었다.
“같이 먹자고요? 제가 왜요.”
“아는 사이니까. 같이 먹으면 좋죠. 예화씨 여기서 먹으려고 하셨잖아요.”
“......아닌데요.”
“거짓말 안 하는 줄 알았는데, 잘하시네.”
빠득.
장예화는 이빨을 깨물었다.
“맞아요. 먹으려고 했어요. 했는데, 먹더라도 저 혼자 먹을 거예요.”
“혼자서 2인분 어치 드실 수 있으세요?”
“?”
2인분?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예화가 진현을 바라보자, 그가 음식점의 유리 벽면을 가리켰다.
“저도 여기 종종 오는데, 요번에 방침이 바뀌었는지 이제 2인분부터만 주문을 받더라고요. 혼자서 와도 2인분 어치 시켜야 해요.”
예화는 빠르게 음식점의 벽면을 살폈다.
진짜네.
아니, 전에는 분명 여기서 혼밥한 기억이 있는데. 유리에는 명백히 2인분 이상부터만 주문 가능이라는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샤브샤브 칼국수라서 포장하기도 애매하다.
손님이 너무 많아서 그런가.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 남자가 한 마디를 더했다.
“그러니까 같이 먹어요. 여기 맛있잖아요.”
“......”
예화는 진현의 말에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
후루룩, 후룩.
칼국수를 입에 넣은 나는, 면을 씹으며 속으로 입맛을 다셨다.
어찌어찌 들어와 같은 테이블에 앉기는 했는데, 분위기는 그야말로 얼음 그 자체였다.
‘진짜로 철벽 실화냐.’
테이블에서는 칼국수를 먹거나, 고기와 채소를 육수에 데치는 소리만 날 뿐이었다.
처음에는 말도 많이 시도했다.
언제까지 그렇게 쌀쌀맞은 태도를 할 거냐.
수정이랑 지금 잘 지낸다고 말해봐도, 그건 수정이일 뿐이고 자기가 나를 대하는 태도와는 상관없다고 한다.
뭐, 사람은 스스로 판단한다나.
무슨 말을 걸어도 짧게 대답할 뿐이고, 아예 호감도를 올릴 만한 틈을 주지 않았다.
현재 나는 73의 외모와 몸매 능력치를 가지고 있었다. 승급하면서 ‘전 능력치’가 3씩 올라 기존보다 높아진 것이다. 거기에 더해 매력과 카리스마 등의 능력치들도 73에 자리하고 있었다.
가만히 길거리를 걸어 다니기만 해도 이목이 쳐다보는 여자들이 많고, 어느 가게에 가서든 호의 가득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예화는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다.
‘역시 평범하게는 안 되겠네.’
대화 몇 마디로 아주 내핵에 박힌 호감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럴 줄 알고, 나도 가져온 게 있지.
얼마 후.
“후우.”
탁.
예화는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딱 1인분 어치의 양을 깔끔하게 해치웠는데, 나도 예화의 속도에 맞춰 먹었기에 동시에 식사를 끝낼 수 있었다.
“제가 살게요.”
“아뇨. 각자 내요.”
결국, 더치페이한 예화는 계산을 마치자마자 문을 나섰다.
“그럼 전 이만.”
그야말로 칼국수 샤브샤브만 딱 먹기 위해 합석한 셈.
나는 곧바로 몸을 돌리려던 예화를 불러세웠다.
“예화씨 잠시만요.”
예화의 표정에 불만이 서렸다. 딱 왜 부르냐는 얼굴이었다.
“......뭐죠?”
“이거 하나 드릴게요.”
“......이거?”
나는 품 안에 손을 집어넣고 ‘나만의 아공간 주머니’ 스킬을 발동했다.
그리고 주머니 안에서 미리 준비해둔 상자를 하나 꺼내 예화에게 건넸다.
“이게 뭐예요?”
눈을 치켜뜬 예화의 눈망울에는 궁금증이 담겨있었다. 내가 무언가를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다.
“예화씨 요즘 제 카페에 거의 매일 카페에 들리시잖아요.”
움찔.
실컷 그렇게 철벽을 쳐놓고 카페에 매일 들린다는 것이 아이러니한 건 그녀 자신도 아는지, 예화는 몸을 살짝 떨었다.
그러나, 이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죠.”
“카페에 있으면 막 마음이 편안해지고 그러지 않나요?”
예화는 이 또한 마찬가지로 인정했다.
“그렇긴 해요,”
“그런 효과가 있는 거예요. 그거. 뭐, 카페 것보다 그게 훨씬 효과가 좋지만요.”
나는 예화에게 넘겨준 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 효과요?”
“네, 디퓨저인데, 집중도 잘 되고, 마음도 안정시켜주고, 기분도 좋아지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고 해요.”
예화는 작은 상자를 살펴보다가 다시 내게 물었다.
“그런데, 이걸 왜 저한테?”
“그냥 좀 잘 지내보자고요. 카페도 매일 나와주시니 VIP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받아요.”
예화는 충분히 VIP 선물을 받을 만했다.
실제로 예화 덕분에 매출이 조금은 오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엄청난 미녀가 매일 2층에 앉아있는데, 예화를 보러 들르는 손님이 몇 명쯤 있지 않을까. 옛날의 나라면 그랬을 듯하다.
“저 집에 디퓨저 많은데.”
“그건 좀 특별한 거예요.”
“흐응. 그래요?”
못 믿겠다는 표정. 나는 피식 웃었다.
“나중에 가서 더 달라고나 하지 말아요. 그거 되게 귀한 거니까.”
“하, 안 그래요. 아무튼, 뭐...... 받았으니 잘 쓸게요. 고마워요.”
고맙다고는 하네.
예화는 다시 그럼 전 이만, 하고 말하고는 몸을 돌려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이내 다시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다.
인벤토리에서 스티커 발급기를 꺼내 저 디퓨저에 적용된 효과들을 다시 확인해보았다.
[ 효과 부여 : 스티커, 안정 2단계 ]
[ 효과 부여 : 스티커, 행복 2단계 ]
[ 효과 부여 : 스티커, 집중 2단계 ]
[ 효과 부여 : 스티커, 영감 2단계 ]
[ 효과 부여 : 스티커, 끌림 2단계 ]
[ 효과 부여 : 스티커, 중독 2단계 ]
[ 효과 부여 : 물건, 향기 2단계 ]
- 해당 효과가 부여된 물건에서는 향기가 나게 된다.
예화에게 선물한 디퓨저는 내가 수많은 효과를 부여한 특수한 디퓨저였다.
아니, 애초에 디퓨저도 아니지.
그냥 조금 예쁘고 작은 식물 모형에 ‘향기’가 나도록 스티커를 부착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향기 스티커에 추가로 집중, 영감, 안정, 행복, 끌림 그리고 중독 스티커를 부착했다.
그렇게 되면 디퓨저에서 나는 향기를 맡을 때, 나머지 집중, 영감 등등의 스티커 효과가 발동되는 방식이었다. 물론, 끌림과 중독 효과도.
1단계가 아닌 2단계의 효과였기 때문에 성능은 확실할 것이다.
저 디퓨저의 효과를 예화가 누리기 시작한다면, 예화가 더이상 카페에 올 필요성이 없어지기도 하지만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애초에 발급한 모든 스티커는 스티커 발급기에서 그 효과를 끊어버리는 게 가능했으니까. 물론, 원할 때 다시 효과가 적용되도록 하는 것도 가능했다.
저 작은 디퓨저 하나에만 2만 코인이 들었지만, 딱히 아깝지는 않았다.
이게 예화를 공략하기 위한 첫걸음이 될 테니까.
무엇보다.
저 디퓨저에 부여된 향기는 바로 내 ‘체취’였다.
향기 효과 부여 스티커는 물건에 온갖 종류의 향기를 부여할 수 있는 스티커였다.
가령 ‘딸기향’ 같은 것을 지정해 부여할 수도 있지만, 발급기에는 내 체취를 입력해 그걸 부여하는 것도 가능했다.
유혹의 향기 덕분에 내 체취는 거의 페로몬 덩어리나 다름없었다. 그냥 맡아도 되게 좋은 향.
원래는 좀 구릿한 땀 냄새가 났는데, 스킬 덕분에 아예 향긋한 냄새로 바뀌어 버렸다.
예화의 공략 스타일 이름은 ‘나를 꽈악 붙잡아 줘.’
그동안 예화의 공략 스타일에 대해 생각해 보다가 하나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저 스타일에서 ‘나’라는 건 ‘예화의 전부’로 해석할 수도 있었다.
마음이든 몸이든.
서서히 예화의 전부를 내 색으로 물들여야 한다.
******
“하아아......”
스튜디오에 돌아온 예화는 간단하게 손을 씻고 양치를 마쳤다. 푹신한 의자에 몸을 기댄 채 한숨을 쉬고 방금전 일을 생각했다.
천진현.
하필이면 행복한 점심시간에 그 남자랑 마주치다니.
샤브샤브 칼국수를 먹기는 했지만, 분위기 때문에 영 불편하기는 했다.
뭐, 분위기를 싸하게 만든 건 대부분 자신의 단답 때문이기는 했지만......
‘그 남자는 화가 없나.’
생각해 보면 엄청나게 까칠하게 굴었는데, 별달리 화난 모습은 비춘 적이 없었다. 편의점 앞에서 마주했을 때 자신이 그를 무시하고 지나쳤을 때 살짝 굳은 표정을 보여준 것 빼고.
심지어 뭔 선물까지 주는가.
“이건 또 왜 받았어.”
예화는 핸드백에서 진현이 준 디퓨저를 꺼냈다.
거의 완벽주의자인 예화인 만큼 디퓨저는 여분 것까지 전부 준비되어 있었다. 어느 방에는 어느 디퓨저를 쓰고, 미리미리 여유분까지 준비해둔 예화였다.
그래도 받기는 했으니까.
일단 읽어라도 보자.
저번에 쿠폰까지 주는 걸 보면 뭐 다른 사람을 은근 챙겨주기는 하는 것 같은데, 수정이가 그런 것 때문에 반했나.
‘진짜 미쳤지.’
고개를 저은 예화는 다시 디퓨저를 바라보았다.
의외의 면이 있기는 해도, 여전히 자신의 마음속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최악의 바람둥이였다.
“최고급 디퓨저...... 뭐 브랜드는 없나?”
딱히 마크나 상표 같은 것도 없이 박스에 최고급 디퓨저라고 적혀있을 뿐이었다.
“아. 있다. 아, 아니네. 효과 지속시간...... 어? 3일?”
박스 뒷면에는 디퓨저 효과 지속시간이 나와있었는데, 고작 3일에 불과했다.
이거 맞아?
진짜로?
예화는 해당 문구를 다시 한 번 읽어봤다.
그런데, 3달도 아니고 3주도 아니고 정말로 3일이었다.
“무슨 디퓨저가 3일밖에 지속이 안 돼.”
참나.
특별한 디퓨저라더니.
이래서 특별했구나?
예화는 자신에게 디퓨저를 넘겨주던 천진현의 얼굴을 떠올리고 코웃음을 쳤다. 그럼 그렇지.
“그래도 일단 한 번 써볼까.”
3일밖에 안 되면 오히려 시험해 볼 만 했다.
사각사각.
예화는 그렇게 상자를 뜯고 안의 포장을 벗겼다.
안에는 엄지 정도 크기의 작은 식물 모형 물건이 나타났다.
“이게 디퓨저?”
뭐 액체 같은 것도 아무것도 없는데.
그렇게 생각할 찰나.
“어......?”
예화의 콧속으로 디퓨저의 향기가 들어왔다.
“이 냄새......”
킁킁.
예화는 다시 한번 디퓨저의 냄새를 맡았다.
그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거...... 천진현 냄새잖아?’
기억하기 싫어도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천진현이 나쁜 놈이기는 해도, 외적으로는 아주 합격점이었다.
얼굴과 키, 몸을 제외하더라도 옷을 입는 거나, 특히나 냄새가 또 괜찮았다.
무슨 향수를 쓰나 싶었는데, 이 디퓨저에서 같은 냄새가 나는 걸 보면 이 디퓨저를 만든 회사에서 파는 향수를 쓰는 건가.
“냄새는 되게 좋긴 한데, 스읍......”
하아.
예화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필이면 냄새를 맡을 때마다 천진현의 얼굴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