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화 〉# https://t.me/LinkMoa
[ 나 : 오늘 안 와? ]
[ 다정이 : 네, 오늘 그냥 집에서 할게요. ]
다음 주 월요일 저녁.
다정이는 카페에 나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충격을 받아서 그런 것 같은데, 조금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다.
‘그래도 유정이 누나가 잘해주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설마 학교에도 안 나갈 줄은 몰랐는데.
[ 나 : 근데 너 학교에도 안 갔다며? ]
[ 다정이 : 어떻게 알았어요? ]
[ 나 : 너희 언니가 말해줬지. ]
[ 다정이 : 아...... ]
[ 나 : 학교는 왜 안 간 거야? 어디 아파? ]
[ 다정이 : 그게, 저 감기 걸려서 열나요. ]
감기 걸려서 열이 난다.
진짜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 나 : 병문안 가 줄까? ]
[ 다정이 : 아뇨, 괜찮아요. ]
[ 나 : 그럼 죽이라도 시켜줄게, 그거라도 먹어. ]
[ 다정이 : 죽을 시켜준다고요? 배달이요? ]
[ 나 : 응. 밥은 잘 챙겨 먹어야지. 너희 주소로 보낼게. ]
[ 다정이 : 그럼...... 감사히 먹을게요. ]
나는 곧바로 톡을 끄고, 다른 어플을 실행했다.
******
목요일
여전히 다정이는 그동안 카페에 놀러 오지 않았다.
장예화는 역으로 계속해서 카페에 나왔다.
2층에 자리를 잡고 작업을 하는데, 뭔가 만족 하는 것 같았다.
‘아직 수정이랑은 화해를 안 한 상태지.’
다정이는 카페에 나오지 않고, 나와 수정이의 관계도 틀어졌다고 생각해 썩 만족스러운 것 같았다.
전에는 그냥 내 얼굴 자체를 안 보려고 했는데, 이제는 얼굴이 마주치면 아주 미약하게 비웃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자연스럽게 노트북을 바라보았다.
나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네 마음대로는 안 되지. 후. 등급만 오르면 진짜 딱 대라.’
등급을 올리기 위해서는, 공략을 완료해야 한다.
내일은 다정이랑 여행을 가기로 한 날이었다.
이전에 다정이와 키스를 하고, 다정이가 내게 여행을 제안한 날.
그 날 뜬 이벤트는 2개였다.
그리고 내일은 후자.
아마도 공략 전 마지막 이벤트겠지.
나는 다정이한테 톡을 보냈다.
[ 나 : 내일은 여행인데, 안 갈 거야? ]
내 톡에 다정이는 금방 답신이 왔다.
[ 다정이 : ㄴㄴ 갈 거예요. ]
[ 나 : 그러면 내가 너희 집 앞까지 갈게. 8시까지 집 앞에 나와. 알았지? ]
[ 다정이 : 네엥. ]
나는 대충 주식으로 돈을 불리고, 저녁에 와서 간단하게 짐을 쌌다.
다음 날 아침, 내가 집을 나서려고 하자 수정이가 삐진 표정을 하며 나를 배웅했다.
“바람 잘 피우고 와~. 흥, 3일 동안 못 보겠네.”
“뭔데. 예화한테 전염됐어?”
“바람둥이~.”
우우, 하고 야유를 보내는 수정이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아주 못 보는 것도 아니지. 진짜 보고 싶으면 말해. 내가 소환해줄게.”
“아, 맞아 아무 곳이나 막 불러낼 수 있지?”
“응. 리아도 잘 있고.”
“네, 진현님.”
델리아와도 인사를 나눈 나는 곧바로 다정이의 집으로 향했다.
다정이 집 앞에 도착하자, 다정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정이는 나를 바라보고는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아, 오빠.”
“오랜만이네.”
“그러네요. 히. 일주일만이네요.”
다정이는 관찰이라도 하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가, 무언가 만족스러운 듯 싱긋 웃었다.
내 얼굴을 직접 봤는데도 생각보다 멀쩡해 보였다.
“캐리어 뭐야?”
“이거요? 짐이요.”
“그건 아는데, 짐 많아?”
내가 묻자 다정이가 고개를 저었다.
“2박 3일이잖아요. 아주 많다기보다는 음, 그냥 캐리어가 끌기 더 편해서......? 오빠는 별로 짐 없네요?”
“그렇지 뭐. 아, 내가 끌어줄까?”
“괜찮아요. 제가 끌게요.”
나는 아공간 주머니 스킬이 있었기 때문에 직접 짐을 저렇게 무겁게 들고 다닐 필요가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아예 맨몸으로 온 건 아니고, 가방 하나 정도는 메고 있었다.
“저희 어디로 가요?”
“여수 가자며.”
“그건 알죠오. 그거 말고, 차 타고 가요?”
“차? 야. 오빠 운전 믿다가 사고 나는 수가 있다. 여수가 얼마나 먼데.”
“히이. 그래요?”
자동차로 가면 5시간은 운전해서 가야 하지 않을까.
다정이가 말한 여행 장소가 가까웠다면, 좋은 차를 뽑아서 드라이브라도 시켜주는 건데. 여수면 이야기가 달랐다.
차라리 KTX를 타는 편이 훨씬 낫지.
솔직히 운전이 귀찮을 것 같은 것도 있다. 운전면허증을 딴 다음에는 차를 한 번도 잡아본 적이 없으니 장롱이기도 하고.
뭐, 운전이야 특화 능력치를 개화해 올려주면 금방 늘 것 같지만.
“기차 타고 갈 거야. 따라와.”
“넹.”
우리는 근처의 지하철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가장 가까운 KTX 정류장까지 왔다.
다정이는 KTX 안에 들어가 눈을 빛냈다.
“헐. 여기 기차 안에 자판기도 있는데요?”
“생수 자판기야. 특실이라서 그래.”
“오. 특실이요?”
“응.”
특실이라고 해도 일반실이랑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았다. 생수가 무료라는 점과 좌석 간의 간격이 조금 더 넓다는 것 정도.
그래서 그런지, 가격 차이 자체가 일반실과 비교해 크게 나지 않았다.
[ 고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 열차는 여수엑스포역까지 가는 고속 열차입니다. 저희 승무원은 고객께서 편안히 여행할 수 있도록...... ]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자, 곧이어 안내방송이 들리고 열차가 출발했다.
나는 슬쩍 휴대폰을 돌려 얌전히 앉아있는 다정이를 찰칵 하고 찍었다.
“앗, 뭐해요.”
“사진 찍어.”
“저 찍은 거예요?”
“응.”
“가, 갑자기 왜요?”
“그냥 귀여워서.”
“......”
내 말에 다정이는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표정을 지었다. 약간 부끄러운 것도 같은데, 슬픈 것 같기도 하고, 좀 오묘했다.
나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너희 어머님한테 보고도 해야 돼서.”
“저희 엄마요?”
“응. 너 잘 있다고. 봐, 잘 나왔지?”
내가 어머님한테 전송한 사진을 보여주자 다정이는 슬쩍 손을 움직여 내가 어머님과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보려고 했다.
나는 휴대폰을 뒤로 뺐다.
“어허, 나쁜 손.”
“까비.”
“까비는 무슨.”
“히이. 그런데 저희 어디서 내려요?”
“방금 안내방송에서 나온 역. 여수 들어가 있었잖아.”
“아, 종점이요?”
“응. 그래도 아주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KTX를 타는 동안 다정이는 무언가 수첩 같은 걸 보고 피식피식 웃었다.
수첩을 바라본 다정이는 가끔씩 나도 흘끔흘끔 바라보았는데, 눈이 마주치면 슬쩍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흐아암......”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하품을 하고 눈을 감았다.
잠에 들지 않고 눈만 감고 있었는데, 다정이가 옆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자주 느껴졌다.
70에 달하는 감각 능력치는, 이런 느낌적인 느낌도 뛰어나게 해주는 건가. 굳이 주변 감지 스킬을 활성화할 필요도 없었다.
휴대폰을 하다가, 풍경을 감상하다가, 눈을 감고 있다가.
반복하고 있자, 기차는 어느새 종점에 도달했다.
[ 우리 열차는 잠시 후 마지막 역인 여수엑스포역에 도착합니다. 미리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빠르고 편안한 KTX를 이용해주신...... ]
KTX에서 내린 다음, 우리는 드디어 여수에 도착했다.
다정이는 캐리어를 끌며 한 손으로 몸을 감쌌다.
“으우, 바람......”
“추워?”
“괜찮아요. 시원해서 좋아요.”
근처에 있는 택시를 잡고, 예약해 둔 호텔로 출발했다.
“어디, 여동생이랑 여행 온 건가?”
“저 여동......”
“네, 여수가 볼 게 많다고 해서.”
“그러엄. 흐흐. 많지, 많아~. 저어기 낭만포차도 있고, 해상케이블도 꼭 타봐. 그나저나 남매가 아주 복 받았네. 얼굴들이 아주 훤해.”
“하하, 감사합니다.”
택시기사 아저씨와 가볍게 이야기를 나눈 뒤 우리는 호텔 앞에서 내렸다.
다정이는 내리자마자 내게 슬며시 물었다.
“왜 여동생 아니라고 말 안 했어요?”
“응? 뭐, 그냥 굳이 정정할 필요가 있나 해서.”
“그래요......?”
다정이는 살짝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나는 바람에 헝크러진 다정이의 머리를 살짝 정리해주었다.
“그만큼 친해 보였다는 거겠지? 가자.”
“네.”
로비에서 간단히 확인을 마친 나는 키를 받고 배정받은 방으로 올라갔다.
“와 대박. 진짜 수영장도 있네요?”
“수영장이라고 부르기에는 좀 작긴 하다. 거의 목욕탕인데.”
“그래도요. 와아, 이런 곳은 처음 묵어봐요. 경치도 진짜 좋아요. 바다도 다 보인다.”
“제일 좋은 방이니까.”
내 말에 다정이가 궁금하다는 듯 물어봤다.
“얼마에요?”
“1박에 55만원.”
“헐...... 55만. 그러면 2박 하면 110만 원이에요?”
“응. 그런데 이것도 많이 할인받은 거라, 원래는 1박에 80만 원 넘는다고 하더라고.”
우리는 호텔에 짐을 풀어놓고 나왔다.
“어디 갈까? 가고 싶은 곳 있어?”
“제가 조금 검색해봤는데, 아까 택시 아저씨가 말한 그 낭만 포차 거리랑 해상 케이블카가 되게 좋데요.”
“응. 나도 검색해봤는데, 그 둘은 저녁에 가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아. 저녁을 낭만 포차 거리에서 먹고, 케이블카는 밤에 타자.”
“......좋아요. 그럼 지금은.”
“그러게...... 흠. 배 한번 타볼래?”
“배요? 아, 좋아요.”
나는 다정이를 데리고 유람선을 탔다. 먼저 예약을 하고, 그사이에 맛있게 점심을 해치웠다.
택시 아저씨한테 들은 맛집 중 한 군데에서 먹었는데, 솔직히 말해서 그리 뛰어나지는 않았다. 뭐, 제법 먹을 만은 했다만.
“진짜 시원하다 그죠오. 바다 향기도 좋다.”
“멀미 안 해서 다행이네.”
“오빠는 멀미 있어요?”
“아니, 없어.”
다정이는 다행스럽게도 배멀미가 없는지, 이곳저곳을 왔다 갔다 하며 신기해했다.
배에서 내린 뒤 우리는 산책 삼아 여러 곳을 걸었다.
해상국립공원이라든가, 바닷가라든가.
“아, 오빠 이거 봐요. 조개껍질인가 되게 이쁘다. 그쵸, 앗-.”
찰칵.
다정이가 조개껍질을 줍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조개껍질을 주워 미소 짓고 있는 다정이를 카메라로 담았다.
“오, 또 잘 나왔다. 이거 봐봐. 너한테도 보내줄까?”
“......”
“다정아?”
지금까지도 몇 번이나 이렇게 찍었는데, 다정이의 반응이 이전과 달랐다.
다정이는 손을 쥐었다 폈다 하다가 입술을 살짝 떨었다.
“자꾸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해요.”
“응. 뭘? 아, 미안. 찍는 거 싫었어?”
내가 묻자 다정이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뇨, 그게 아니라...... 원래는 케이블카 타면서 말하려고 했는데......”
다정이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오빠 저한테 할 말 없어요?”
그리고 한 걸음 더 내게 가까워지며 말했다.
“전 많은데.”
다정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가만히 다정이를 바라보고 있자. 이윽고 다정이의 입이 열렸다.
“오빠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