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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인 어플-141화 (141/303)

〈 141화 〉# htt‍ps‍://‍t.‍m‍e/‍L‍i‍nkMoa

“바보야아. 그걸 또 예화한테 들키면 어떡해.”

금요일 밤.

사무실에서 퇴근한 뒤 집에 돌아와 마루 소파에 누워있자, 수정이가 내 옆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3백만 원을 호가하는 소파라 그런가, 가죽의 품질이 남다르다.

블랙룸에서 코인으로 뽑는 소파도 좋지만, 그건 디자인이 너무 한정적이어서.

“미안. 나도 설마 예화가 볼 줄은 몰랐지.”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막 처음부터 알고 있던 건 아니었다.

단지 의심은 가지만 확신은 생기지 않았을 뿐.

일주일 전에 다정이한테 키스한 다음 생겼던 이벤트 중 하나를 떠올렸다.

이벤트를 진행해야 히로인 공략 점수가 올라가기 때문에 수행은 필수였다.

키워드는 미행, 들킴, 알아챔, 키스, 고뇌 등의 단어를 포함해 여러 개가 있었다.

이벤트에 따라 다정이한테 유정이 누나와의 키스 장면을 들키기 위해서 주변 감지 스킬을 켠 채로 다정이가 잘 따라오는지 확인할 때, 갑자기 예화가 자리에서 일어나 따라와서 약간 놀랐다.

왜 여기서 예화가 따라오나 싶었는데, 예화가 전에 나와 유정이 누나가 함께 모텔에 들어가는 장면을 봤다는 점을 상기해 이해할 수 있었다. 키워드에 알아챔이 있으니까. 게다가 수정이가 여자친구라는 점도 알고 있고.

요즘 맨날 카페 2층에 앉아서 내가 내려갈 때마다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길래 혹시나 했는데, 그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었다.

‘다정이는 그래도 뭐, 잘 되겠지.’

유정이 누나와 키스를 하면서도 주변 감지 스킬로 다정이가 눈물을 뚝뚝 흘리는 장면을 느낄 때는 가슴이 좀 아팠다.

아마 예화에게 나에 대해 듣고서 더욱 슬퍼하겠지. 그래도 이벤트로 나온 사건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잘 풀릴 것이다.

예화가 나와 유정이 누나가 키스하는 장면을 본 것도 그리 걱정은 되지 않았다.

애초에 수정이가 완전한 내 편이니까.

예화한테 바람......이 아니지. 참. 하렘을 차리는 과정을 들키게 되더라도 별다른 타격이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되긴, 히잉. 또 너랑 이야기해 본다고 했지.”

수정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입술을 삐죽였다.

예화는 다정이와 이야기를 한 후 곧바로 수정이한테 전화를 때린 모양이었다.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인다.

나는 몸을 일으키며 수정이의 어깨를 주물렀다.

“왜 그렇게 표정이 안 좋아. 예화랑 통화하면서 무슨 일 있었어?”

“으으응~. 아무 일도 없었어.”

말로는 아무 일도 없었다면서, 수정이의 표정은 계속 물어봐달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나는 수정이를 부드럽게 쓸었다.

“어허, 빨리 말 해봐.”

“우웅, 그게 예화가아~.”

“예화가?”

수정이가 내게 몸을 기대며 말했다.

“내가 너랑 이야기해본다고 하는데, 계속 그럴 필요도 없다고. 그냥 너랑 헤어지는 게 맞는 거라고 막,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헐. 예화가?”

그렇게까지 말했을 줄은 몰랐다.

“응......”

“그래서 뭐라고 했어?”

“우리 일이니까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했지.”

“잘했네.”

하지만 수정이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나쁜 남자랑 만나면서 나도 이상해진 거라고 막 너 비하하는 거 있지?”

“진짜?”

“응. 그래서 조금 싸웠어...... 만나면 다시 금방 화해하겠지만.”

수정이는 내게 몸을 부비적거리며 말했다. 호감도 한자릿수는 역시 생각 이상으로 낮은 수치였다.

“혹시 예화가 너희 부모님한테 말하는 거 아니야?”

내 걱정에 수정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확실히 잘 말했으니까, 부모님한테 알려지지는 않을 거야.”

“그래?”

“응. 예화는 말 안 한다고 하면 안 말하니까.”

수정이가 단언하니 그 점은 다행이었다.

‘부모님, 그리고 예화라......’

유정이 누나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예화가 내 주변에 은근 많이 관련된다.

안 그래도 다음 등급이 되면 곧바로 예화를 등록하려고 했는데, 예화를 함락시키면 시끌시끌하게 끼어드는 일도 없어져 부모님 문제도 일단은 좀 해결되지 않을까.

수정이의 정수리에 코를 대고 생각하고 있자, 수정이가 몸을 떨었다.

“아흫, 간지러워. 그래도 이번에 예화가 본 게 오히려 좋을 수도 있어.”

“응? 왜?”

“예화가 호기심 왕이거든. 윤다정이었지? 걔랑 유정이 언니랑도 잘 풀고 내가 또 너랑 아무렇지도 않게 화해했다고 말하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 미칠 지경일걸? 그걸 또 잘 이용하면 뭐가 될 수도.”

“오.”

생각해 보면 그럴 것 같다. 호기심이 별로 없다면 애초에 다정이를 따라오지도 않았을 테니까.

내가 예화에 대해서 생각하자 수정이가 덧붙였다.

“그래도 예화 착한 애야. 나랑 가장 친한 친구였고, 나 방송하라고 추천해준 것도 예화고......”

“그래.”

“근데 너 욕한 건 나쁘니까 혼내주라.”

수정이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혼내 달라고?”

“응.”

“어떻게 혼내줄까, 이걸로?”

자랑스러운 내 분신을 가리키자 수정이가 무슨 소리냐는 듯 말했다.

“그건 혼내는 게 아니라 상이잖아.”

아, 그러니.

애초에 딱히 막 혼낼 생각은 없었다. 단지 콧대 높은 얼굴을 쾌감에 허덕이는 얼굴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강하게 든다.

확실히 이번에 수정이한테 그런 식으로 말한 건 아니긴 하니까...... 아.

사랑의 채찍?

문득 저번에 얻은 채찍이 떠올랐다.

하지만 뭐, 지금은 일단 다정이랑 유정이 누나부터 어떻게 해야 한다.

“아무튼, 나 때문에 힘들었겠다.”

“맞아. 그러니까 치유가 필요해. 안아줘 빨리.”

“이렇게?”

“더 쌔게.”

내가 더 강하게 팔을 두르자, 수정이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예화가 이런 기분을 알까 몰라.”

“알게 해주게?”

“응. 근데 나 먼저......”

수정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티셔츠와 바지를 벗으니, 수정이는 속옷 차림이 되었다.

커다란 가슴과 말랑한 배, 탐스러운 허벅지가...... 응?

거기에 더해 발기한 핑크빛 유두와 앙다물어진 보지가 보였다. 수정이는 몸을 살짝 비비며 나를 바라보았다.

“이, 이번에 새로 샀어.”

“속옷이 아니라 섹스 복인데 완전?”

브라는 유두가 있는 곳이 뻥 뚫려 있었고, 팬티도 보지가 보이게 되어있었다.

“아, 아무튼 빨리 침대로 가자......!”

수정이는 내 손목을 잡고 블랙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블랙룸 포탈은 방 하나를 잡고 그곳을 포탈룸이라고 칭해 거기에 설치해 두었다. 당연히 포탈룸은 보안을 확실히. 철문으로 지문인식과 비밀번호까지 필요하도록 만들었다.

델리아는 지금 블랙룸에 없고 자기 방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었다.

나는 수정이에게 끌려가며 다정이를 떠올렸다.

다정이는......

‘일단은 유정이 누나가 잘해주겠지.’

******

윤다정은 너털너털한 걸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어깨는 축 처져있고, 심신은 다 지쳐 있었다. 1시간 전까지만 해도 기쁨에 가득 차 있던 얼굴에는 슬픔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진현이 오빠.

바보.

허름한 집이 있는 골목에 다가가자, 진현이 오빠와 언니가 키스를 나누는 장면이 재생되었다.

오빠가 자신에게 해주었던 것보다 훨씬 더 강렬한 키스. 특별한 사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키스였다.

바보 같아.

자신에게도 기회가 있다고 잠시나마 생각했던 자신이 바보 같았다.

심지어 유정이 언니가 아니더라도 오빠는...... 오빠는.

윤다정은 입술을 깨물고는 빠른 걸음으로 집 앞까지 걸어갔다.

머릿속에 조금 전에 예쁜 여성한테 들었던 말들과 그녀가 보여주었던 사진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씨이......”

어떻게 집에서 나올 때와 들어갈 때 이렇게 감정의 차이가 있을 수 있을까.

윤다정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신발을 보니 엄마는 아직 안 왔고, 집에는 언니만 도착해 있었다.

현관에서 신발을 정리한 다정은 힘없는 발걸음으로 방 안에 들어갔다.

“다정아, 왔어?”

“......언니.”

언니의 얼굴을 보자 또 아까 전에 보았던, 오빠와의 키스 장면이 생각난다.

자연스럽게, 윤다정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었다.

“왜 그래, 다정아.”

왜 그러냐니.

윤다정은 언니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슬프다고 언니한테 뭐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애초에 바보 같은 건 자신이니까.

게다가, 게다가......

“......나 다 봤어.”

“뭘......?”

“언니가 오빠랑 뭘 했는지.”

“아......”

윤다정은 용기를 내서 말했다. 무슨 반응을 보일까 싶었는데, 언니는 그다지 놀라는 기색이 아니었다.

“미안해. 다정아.”

“뭐가아......”

“미안해. 도와주겠다고 해놓고......”

윤다정은 자신을 안으려는 언니에게서 한 걸음 물러섰다.

윤다정은 고개를 저었다.

“그, 그것만 또 문제가 아니야. 언니도...... 그 어떤 언니가 나, 나한테 말해줬어, 막. 진현 오빠는 이미 여자친구 있다고, 나한테 막 사진도 보여주고 했단 말이야. 그, 그 언니가, 언니도 그냥 잠깐 노는 바람 상대라고......”

“알고 있어.”

“어?”

알고 있다고?

윤다정은 언니의 말에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알고 있다는 게 무슨 뜻이지.

“잠깐 노는 바람 상대인 건 틀렸지만.”

윤다정은 언니의 말에 더욱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언니를 바라보았다. 언니는 미소를 지으며 다정이의 손목을 잡았다.

“다정아, 할 말이 있어. 이리 와봐. 응?”

윤다정은 언니 앞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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