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화 〉# https://t.me/LinkMoa
“카드 받았습니다~.”
생긋 웃는 윤유정의 얼굴을 보니 장예화의 의심은 완전히 확신으로 굳어졌다.
‘윤’으로 시작하고 ‘정’으로 끝나는 이름의 형식도 그렇고, 용모도 굉장히 비슷하다.
웃는 표정도 마찬가지.
무조건이라는 건 없겠지만, 둘은 자매일 확률이 높았다.
비단 외모와 이름뿐 아니라, 윤다정이라는 여자아이는 매일 같이 카페에 왔다.
보아하니 학교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카페에 오는 것 같은데.
‘매번 2층에 올라가서 뭘 하나 싶었는데......’
그녀가 직원용 창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장예화는 오늘 직접 목격했다.
일반인이 들어갈 수 없는 직원용 창구였다.
그런 곳을 매일같이 들어가는 걸 보면, 그녀의 지인이 카페의 직원이라는 건 이미 확정된 사실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지인이 윤유정이라면, 둘이 자매 관계라는 건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끄응......’
예화는 속으로 앓았다.
문득 저번 주의 일이 생각났다.
윤다정이라는 여자아이가 자신의 옆자리에 앉았을 때의 일.
그녀는 무언가 굉장히 삐진 표정을 하고서, ‘진현이 오빠 바보오’라는 말을 내뱉었었다.
천진현에 대한 평가 자체는 장예화의 마음속에서 쓰레기 바람둥이 그 자체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그에 대한 호기심 자체는 상당히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수정이를 구워삶았는가.
갑자기 변하게 된 외모와 몸매, 키.
그리고 카페의 대성공도 그랬다.
처음 봤을 때는 그냥 별 볼 일 없는 남자였는데, 무슨 일이 있었길래 갑자기 카페를 이렇게 차리고 성공을 시키는가.
아르바이트생들도 하나같이 친절한 사람들로 잘 뽑은 듯했다.
따라서 예화는 윤다정의 발언이 신경 쓰였다. 바보라는 게 대체 무슨 의미일까.
솔직히 별거 아닐 수도 있다.
일단 추론에 따르면 바보라고 말한 윤다정은 윤유정의 여동생이고, 그녀의 언니인 윤유정이 여기서 근무하니까.
카페 사장인 천진현에게 언니를 들먹이며 음료라도 공짜로 달라고 떼쓰다가 단순하게 퇴짜를 맞고 삐져서 바보라고 말했던 걸 수도 있다.
오늘은 그때와는 다르게, 기분도 아주 좋아 보이고 말이다.
‘그래. 후우. 신경 쓰지 말자.’
장예화는 애써 마음속으로 호기심을 털어버리고는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얼그레이 밀크티 아이스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얼마 걸리지 않아 나온 밀크티를 받아 장예화는 2층으로 올라왔다.
헤드폰을 끼고 작업을 시작하자, 이전까지의 잡다한 생각은 훨훨 날아갔다.
역시 이 카페가 작업은 잘 돼.
“후우......”
1시간이 조금 넘게 집중해서 작업한 뒤, 예화는 약간 숨을 돌렸다.
헤드폰을 벗고 간단하게 몸을 풀며 주변을 둘러본다.
여전히 사람이 많은 가운데에, 문득 직원용 창구가 열리며 사람 두 명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응?’
나온 사람은 둘 다 아는 얼굴이었다.
수정이의 남자친구인 천진현과 바람을 피웠던 상대인 윤유정.
장예화는 둘을 보고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가 속으로 생각했다.
‘천진현은 계속 직원 전용창구 안에 있는 건가?’
아마 그래서 그동안 자신이 그가 카페에 있는 것을 한 번도 못 본 것이리라. 일은 다 아르바이트생들한테 시키고, 그는 아마도 앉아서 놀기만 하는 모양이다.
그것까지 뭐라고 할 생각은 당연히 없었다. 돈을 주고 정당히 고용한 거니까.
장예화는 굳이 천진현과 눈을 마주치기 싫어 노트북만 계속 바라보았다.
천진현과 윤유정은, 웃는 얼굴로 무언가를 이야기하며 카페의 계단을 내려갔다.
여전히 둘의 관계가 의심이 가긴 했지만, 사장과 직원이니까. 같이 창구에서 나와 밑으로 내려가는 건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응......?”
그렇게 천진현과 윤유정이 내려간 다음 다시 마저 몸을 푸는데, 그때 또다시 직원용 창구 안에서 사람이 나왔다.
이번에는 윤다정이었다.
살금살금.
그녀는 묘한 발걸음으로 걸어서 좀 전에 내려간 천진현과 윤유정을 따라 계단 쪽으로 향했다.
계단에 도착한 그녀는 고개를 내밀어 1층을 빼꼼 바라보다가, 계단을 한 걸음 내려갔다가, 다시 고개를 빼꼼 내밀고 바라보다가를 반복하였다.
그러다가 이내 갑작스럽게 계단을 빠르게 내려가기까지.
‘뭐, 저렇게 움직이지......’
숨바꼭질이라도 하나.
흡사 누군가를 감시라도 하는 느낌이다.
‘진현이 오빠 바보오......’
“......”
감시라는 단어와 함께, 장예화의 머릿속에 윤다정이 내뱉었던 한 마디가 다시 한번 울리며 지나갔다.
호기심이 크게 자극되었다.
하지만, 장예화는 인내하며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신경쓰지...... 말자......’
윤다정은 예화의 시선에서 아예 안 보이게 사라졌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장예화는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가지고 올라온 밀크티를 마시며 노트북을 두들긴다.
결과적으로 예화는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
그러나.
다음 주 월요일도.
화요일도.
이어진 수요일, 목요일까지.
일주일 내내 천진현과 윤유정을 감시하듯 움직이는 윤다정을 바라보자 장예화는 도무지 신경이라는 것을 안 쓸 수가 없었다.
매일같이 5시 반이 조금 넘으면 천진현과 윤유정이 직원용 창구 안에서 같이 나왔으며, 윤다정은 조금 뒤에 나와 그 둘을 감시하듯 움직였다.
설마 스튜디오에서 먼저 작업한 뒤, 저녁에 카페에서 마무리하는 패턴이 이렇게 독이 되어 돌아올 줄이야.
금요일.
예화는 오늘도 카페 델리아 2층에서 노트북으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나왔다.’
이전과 다른 점이라면, 작업만을 위해 카페에 들리지 않았다는 점.
5시 반이 넘는 시간이 되자 직원용 창구에서 천진현과 윤유정이 나왔다.
그걸 본 장예화는 미리 노트북을 비롯해 가져온 물건들을 챙겨 가방을 쌌다.
조금 뒤에 나오는 윤다정.
윤다정은 예상대로 앞서 나간 둘을 신경쓰는 듯한 걸음걸이를 보여주며 둘을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장예화는 그녀의 뒤를 슬금슬금 따라갔다.
카페를 나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 횡단보도를 건너고, 길가를 걷는다.
대략 7분 정도를 지나자 허름한 골목이 나왔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한 번 따라간 이상 지금 돌아가는 건 좀 그랬다.
기본적으로 여기는 개발이 잘 된 도시지만, 이렇게 곳곳 낡은 장소들이 남아있었다.
‘언제까지 따라가야 어......?’
속으로 생각하던 예화는 골목을 돌다가 살짝 굳었다.
골목의 끝에는 고개를 살짝 내밀고 있는 윤다정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그녀의 모습이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한쪽 손으로 입을 막고 있다.
흔들리는 눈빛은 무언가에 굉장히 충격을 받은 듯했다.
시력이 좋았던 예화는 그녀의 표정을 다 담을 수 있었다.
슬픔과 놀람이 뒤섞인 표정.
뒤이어 그녀의 눈가에서는 닭똥 같은 눈물이 주륵, 하고 흘러나왔다.
‘운다고?’
장예화는 걸음을 서둘렀다.
윤다정은 이미 골목 너머를 본다고 정신이 쏠려 있었다.
장예화는 그냥 빠르게 그녀 쪽으로 다가가 골목을 돌아보았다.
‘아......’
키스.
천진현과 윤유정이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처음 천진현이 수정이가 아닌 다른 여자와 있는 장면을 봤을 때만큼의 충격은 없었다.
장예화는 재빠르게 휴대폰을 꺼냈다.
둘의 키스는 꽤 오래 이어져 충분히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참. 역시 사람은 안 바뀐다더니.’
대화의 여지가 없다.
이번에는 천진현과 대화할 필요도 없이, 곧바로 수정이한테 말해야 한다.
‘차라리 잘 됐어.’
과연 수정이도 두 번이나 바람을 피운 남자를 용서할 리가 없겠지. 이대로 깔끔하게 저 남자를 털어버리고 수정이도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나야 했다.
다만......
장예화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귀여운 인상의 아이.
둘의 키스 장면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걸 보면 이 윤다정이라는 여자애도 천진현을 좋아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하여간 이해할 수가 없어.’
왜 사람들이 저런 바람둥이를 좋아하는지.
아마도 외모에 끌렸을 것이 뻔했다.
이 불쌍한 아이한테 천진현 그놈의 실체를 다 말해줘야겠지.
사람 새끼라면 고등학생을 건드릴 리가 없지만, 저렇게 바람을 2번 피우는 걸 보면 사람 새끼가 아닐 수도 있었다.
미리 천진현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좋을 것이다.
윤다정은 큰 충격에 자신이 옆까지 온 줄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면 알아도 신경쓸 여력이 되지 않거나.
장예화는 윤다정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
진현 오빠의 키스를 받은 이후부터, 윤다정의 마음은 날아갈 듯 기뻤다.
매일매일이 즐거웠다.
학교에서도 계속해서 오빠 생각이 났고, 만화를 그리다가도 그때의 그 감촉이 생각나 몇 번이고 입술을 스스로 훑었다.
오빠와 통화를 나눈 엄마는 좋은 사람 같다며 여행을 허락해줬다.
오빠가 엄마의 인정을 받자 자기 일처럼 기뻤다. 윤다정은 하루하루를 행복감 속에서 살았다.
‘이렇게 따라가는 것도 오늘까지만 하자.’
금요일.
언니의 근무시간이 끝나고, 퇴근하는 언니를 데려다주는 오빠의 뒤를 따라가며 윤다정은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까지 둘의 관계가 수상하다고 생각해서 몇 번이나 따라갔는데, 오빠는 언니를 데려다주는 것 외에는 딱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건 앞으로도 마찬가지이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어......?”
집 앞에서 인사를 나누는 오빠와 언니를 바라보던 윤다정은 무심코 소리를 냈다.
갑자기, 두 사람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뭐야......?’
손만 흔들고 바로 헤어졌던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동시에 눈동자가 흔들렸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하다.
원래는 언니가 곧바로 문을 열고 들어가고 오빠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등을 돌려야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러지 않았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오빠는 언니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고, 언니의 얼굴은 무언가를 바라는 것처럼 간절했다.
이윽고,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짐과 동시에 언니가 까치발을 들었다.
‘아......’
만화를 그리기 위해, 수많은 만화와 영화 그리고 드라마를 섭렵한 윤다정이었다.
저 움직임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키스.
자신과 한 건 키스조차 아니었다.
어느 정도 먼 거리에서 슬쩍 보는 거지만, 둘이서 나누는 키스가 깊고 진하다는 것은 굳이 가까이서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둘은 서로를 끌어안고 격렬하게 키스를 나누었다.
‘오빠......가 언니랑......’
믿기지 않고, 믿고 싶지 않지만 자신의 눈을 통해 들어온 현실이었다.
윤다정은 입을 틀어막았다.
‘아파......’
쓰라린 감정이 온몸을 핥고 지나갔다.
눈물이 나왔다.
‘도와준다고...... 했으면서.’
윤다정은 전의 일식집에서 언니가 오빠와 잘 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말을 떠올렸다.
도와준다고 해놓고 왜 지금 언니가 오빠와 저렇게 키스를 나누는 것인가.
차라리 자신이 좋아하니 포기하라고 말했으면.
그랬으면......
‘포기할 수 있었을까?’
키스 장면을 보자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프고 눈물이 나온다. 그때서야 윤다정은 자신이 오빠를 얼마나 많이 좋아했는지 자각할 수 있었다.
언니와 오빠가 서로를 더 강하게 끌어안는 만큼, 윤다정의 마음은 더욱더 아프게 짓눌렸다.
그때였다.
낯선 손길이 어깨에서 느껴진 건.
“윤다정양 맞죠?”
윤다정은 뒤를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