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 어플-139화 (139/303)

〈 139화 〉# http‍s://t.me‍/‍Li‍n‍k‍M‍oa

팡팡팡!

“으히힣...... 히힣.”

윤다정은 베개 속에 얼굴을 파묻고 발길질을 했다.

애꿎은 이불이 구겨지며 두텁게 매질하는 소리가 났다.

“히이...... 헤헤......”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윤다정은 배게에 얼굴을 부비적거렸다.

“야, 뭐해에. 먼지 날려. 하지 마.”

뒤늦게 방에 들어온 윤유정이 손바닥으로 부채질을 했다.

윤다정은 언니를 보고 멋쩍게 웃었다.

“앗, 미안......”

“이제 너 화장실 써.”

“네엣~.”

윤다정은 여전히 새어 나오는 웃음을 막지 못한 채, 언니를 지나쳐 화장실 안으로 쏙 들어갔다.

“뭐야......”

윤유정은 헤실헤실 웃으며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는 동생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얘가 뭘 잘못 먹었나?

******

“진현 오빠......”

앵두 빛 입술.

화장실에 비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을 때, 윤다정의 시선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그녀의 입술이었다.

그 입술을 손가락으로 훑자 몇 시간 전의 광경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저 부탁 하나만 해도 돼요?’

솔직히 말해서, 윤다정은 오빠가 여행을 데려가 달라는 자신의 부탁을 안 들어줄 줄 알았다.

그냥 부탁도 아니고 무려 여행인데.

카페도 오픈한 지 얼마 안 돼서 바쁠 시기인데, 오빠의 시간도, 돈도 많이 잡아먹는 무거운 부탁이었다.

오빠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자신은 그냥 길에서 우연히 만난 고등학생 여자아이일 뿐. 오빠가 자신을 데리고 여행을 다녀와야 할 이유 따위는 전혀 없었다.

안 된다고 하면 아쉽지만, 그냥 포기하려고 했다.

‘토요일. 상관은 없는데...... 여행 어디로 가고 싶어? 설마 해외?’

그런데, 여행에 더해서 떼쓰듯 말한 2박 3일로 가자는 부탁까지 통과가 됐다.

그래서였을까.

너무 기쁜 마음에 순간적으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서, 윤다정은 오빠의 볼에 키스해버리고 말았다.

‘아...... 그으, 저....... 고, 고마워서 한 거예요.’

입술을 떼고 나서야 뒤늦게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라고 횡설수설하기는 했는데, 기분 나빴으면 어떻게 하지. 돌연, 그런 두려움이 몰려왔다.

애써 빨리 자리를 뜨려고 몸을 돌렸다.

‘다정아.’

오빠에게 손목이 붙잡혔을 때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저 다음에 무슨 말이 나올지 너무나 막막했다. 만약에 뭐 하는 짓이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

머릿속에 뒤죽박죽일 찰나, 그 뒤로 일어난 일은 윤다정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너만 하면 치사하잖아.’

뭐가 치사하다는 건지 뇌가 계산하는 와중에 오빠의 손에 이끌려 몸이 돌아갔다.

얼굴이 가까이 올 때까지도 윤다정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다.

하지만, 이윽고 입술에 오빠의 입술이 자신의 입술에 닿자, 윤다정은 그때서야 현실을 느끼기 시작했다.

심장이 터질 듯 두근거렸다.

조금만 맞닿았다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아......’

멍한 표정으로 입술을 쓸고 있자, 오빠가 어깨를 쳤다.

윤다정은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그 자리를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하아, 하아......”

손님용 방 안에 들어가 문을 닫은 뒤, 무아지경에 빠져 만화를 그렸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만화가 잘 그려졌던 몇 시간이었다.

만화를 그려 올리자마자, 오빠의 얼굴을 똑바로 볼 자신이 없어 톡으로만 간다고 이야기를 하고 집으로 왔다.

“으힣......”

지금 와서 생각해봐도 몇 시간 전 일어난 일이 실화인가 싶었다.

하지만, 입술을 매만지면 마치 화상을 입은 듯 그때 오빠와 나눈 키스의 감촉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두근거리는 감정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설마 오빠가 자기한테 키스를 해주다니.

대체 무슨 의미일까?

이 상태로 여행을 가면 어쩌면...... 어쩌면......!

“꺅, 어떡해...... 안 돼요, 오빠아......”

윤다정은 양손으로 볼을 감싸고 고개를 저었다.

뭐가 안 된다는 건지.

윤다정은 자꾸 야시꾸리한 상상이 나는 것을 느끼며, 여행 때 무슨 옷을 입을지 머릿속으로 고민했다.

굳이 옷장 안을 보지 않아도 될 만큼, 윤다정이 가진 옷가지의 수는 적었다.

집안에 돈이 모자란 만큼 윤다정을 저금에 신경을 많이 썼다. 평소에는 교복을 입으면 되고, 외출할 일도 별로 없었으니 있는 옷이 얼마 없었다.

다른 친구들처럼 받은 용돈을 옷에 다 쓴다든가 하는 일 없이, 엄마가 사주는 옷을 입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저금을 조금 깨서 옷에 돈을 조금 투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호텔에서 묵으면 같은 방을 쓰려나......?’

그렇다면 대, 대담한 속옷으로 유혹을......!

유혹을......

“유호옥...... 으흐음......”

윤다정은 발가벗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나름대로 조금 나온 가슴, 조물조물 만져보자 부드럽게 잡히는 느낌은 있다.

남자들은 큰 가슴을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자신은 평균 수준이었다.

뱃살도 살짝 있고, 막 섹시한 여자들처럼 라인이 아주 좋거나 각선미가 매우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뒤떨어지는 몸매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만, 아주아주 뛰어나지도 않다. 솔직히 말해서 유정이 언니 몸이 더 섹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 직원들중에도 되게 예쁘고 몸매가 좋은 사람이 많고......

‘아니야. 자신감을 가지자!’

어쨌든 자신은 오빠에게 키스를 받은 여자였다.

오빠도 마음이 있지 않을까.

윤다정은 얼른 몸을 씻고 나와서 쪼르르 엄마 옆에 딱 앉았다.

“엄마아~.”

“어, 다정아. 왜?”

“나 여행 다녀와도 돼?”

“여행? 무슨 여행?”

윤다정의 어머님, 윤나은은 딸의 갑작스러운 여행 이야기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에......”

윤다정은 엄마에게 여행에 대해서 잘 설명했다.

언제부터 가고, 어디로 가고 싶은지 등등. 대략적인 여행 계획에 대해 말했다.

“2박 3일 여수 여행...... 좋기는 한데, 남자랑 둘이 간다고?”

“아, 응. 카페 델리아 사장 오빠랑.”

윤다정의 대답에 윤나은은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사장님 되게 젊다고 하지 않았어?”

“응. 스물 두 살이래.”

“스물 둘...... 엄마는 조금 걱정되네. 혹시, 그 오빠가 너한테 여행 가자고 했니?”

엄마의 물음에 윤다정은 고개를 저었다.

“으으응~. 내가 부탁했는데, 그러면 오빠가 엄마한테 허락 맡고 오라고 했어.”

“아. 그래?”

윤다정의 말에 윤나은은 살짝 표정을 풀었다.

그럼에도 걱정은 가시지 않았다.

갈등하는 엄마의 표정을 보고 윤다정은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제바알...... 응? 그 오빠 엄청 착하고 좋은 사람이야. 엄마도 알잖아. 이거 준 것도 오빠잖아. 나 여행 가보고 싶어어.”

“그건 그런데, 가족끼리 가도 되잖니.”

엄마의 말에 윤다정은 고개를 저었다.

“가족끼리 가면 돈 많이 들잖아. 그 오빠 어엄청 부자라서, 오빠랑 갔다 오면 나 여행 공짜로 다녀올 수 있어.”

“그런데 그 부자 오빠가 왜 너 여행 비용을 대주게 된 거니?”

“전에 나랑 내기했는데, 나한테 져서 내가 언제 한 번 여행 데려가 달라고 했어.”

너무나 간곡해 보이는 딸의 표정에 윤나은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알았어. 유정이가 일하는 카페 사장님 맞지? 내가 한번 통화해 볼게. 가게 되면...... 꼭 매일 연락하고, 알았지?”

“헤, 엄마 사랑해에!”

윤다정은 기쁨에 엄마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윤나은은 그런 딸의 모습에 등을 쓸어주었다.

“얘는 이럴 때만 사랑해. 어서 가서 쉬어.”

“응!”

윤다정은 행복한 얼굴로 방 안에 들어갔다.

******

금요일.

오늘은 아침부터 스튜디오에서 작업한 예화는, 오후가 되어서야 스튜디오의 문을 닫고 길가에 나왔다.

손에는 노트북 가방이 들려있었고, 어깨에는 핸드백을 둘렀다.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돌아볼 만한 외모를 뽐내며 그렇게, 예화는 길가를 도도하게 걸었다.

“너희 아빠 또 여행 갔다고?”

“응. 이번에는 캄보디아 가셨어.”

”하여간 진짜 여행 좋아하셔~.“

”내 말이. 이러다가 집에 기념품 가게 차리게 생긴 거 알아?“

”너희 집에? 으핳. 없는 것보다는 좋지.“

”그건 그래. 다음에 우리 집 와서 좀 가져가라.“

예화는 절친인 강수정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침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참. 그런데 너 이사했다는 집은 어딘데, 나한테 그렇게 꽁꽁 숨기고 안 알려줘.“

”아~. 그냥 아직 덜 치워서. 너무 지저분해.“

”......그 남자랑 같이 사는 거지?“

”진현이? 당연하지. 그런데 그 남자가 뭐야, 그 남자가. 내가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이.“

휴대폰 너머로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예화는 수정이한테 들리지 않도록 미약하게 한숨을 내쉬고, 휴대폰을 귀에서 살짝 떨어뜨렸다.

‘빠져도 너무 빠졌어.’

대체 무슨 수를 썼길래 수정이가 저렇게 됐을까.

바람을 피우는 나쁜 남자지만, 그 점은 아직도 상당히 궁금했다.

”아무튼, 그래 네 남친. 너희 집에는 나중에 초대해준다고 치면, 언제 만나 우리?“

”아무 때나 만나면 되지. 일단은 밖에서.“

”알았어. 그럼 어디서 언제 만날지는 이따 톡하자. 나 이제 카페 앞 다 왔어. 슬슬 작업해야 돼.“

”아, 오케. 끊어~.“

”응~.“

띠로롱.

장예화는 전화를 끊은 뒤, 신호등을 기다리며 생각했다.

얼굴 때문에 만나나?

하긴, 몸도 좋아 보인다.

‘일리가 있어.’

생각해 보면 수정이가 처음에 그 남자를 뒷담깠을 때는, 그냥 너무나도 평범한 얼굴과 몸을 하고 있었다. 키는 좀 컸지만.

지금과는 완전 딴판이었다.

‘가만 근데 성형......도 아니잖아?’

예화는 처음 봤을 때 천진현의 얼굴과 최근에 본 천진현의 얼굴을 머릿속으로 비교했다.

그게 성형으로 될 건가 싶다.

어떻게 그렇게 자연스럽게 잘생겨질 수가 있지. 게다가 몸도 그렇게 좋아지는 성형이 있나?

‘키도 더 커졌지...... 아마. 원래는 이정도 됐는데.’

예화는 자신의 키와 옛날에 본 천진현, 최근에 본 천진현을 각각 비교하며 키를 가늠했다.

남자는 20대 중반까지도 키가 큰다는 말을 들었다. 근데 그것도 말이 돼야지 고작 2달 만에 그렇게 큰다고?

‘깔창인가?’

여러 가지 변수를 생각해 보던 예화는 고개를 저었다.

‘하아, 신경 쓰지 말자. 뭐 하는 거야.’

예화는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도 바쁘다. 이런 걸 하나하나 신경 쓰다 보면 끝이 없다.

예화는 그렇게 생각하며, 바뀐 신호의 횡단보도를 건넜다.

하지만, 신경을 끄는 건 끄는 거고, 카페에 들리는 건 다른 문제지.

딸랑딸랑.

예화는 카페 델리아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천진현의 카페라고 생각하면 살짝 마음에 안 들지만, 안에 들어가자마자 포근한 공기와 함께 아늑한 분위기가 자신을 감싸주는 걸 느끼면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역시 좋아...... 근데 1층은 자리가 없네.’

갈수록 인기가 높아지는 이 카페는 자리 경쟁이 꽤 치열했다.

‘2층은...... 아 있다.’

예화는 계단을 올라서 자리를 살펴보다가, 마침 중간쯤에 난 자리를 발견했다.

운이 좋다고 생각하며, 얼른 가서 노트북을 세팅했다.

그렇게 전원을 켤 찰나였다.

”흐으흥~. 흐흥~.“

장예화는 콧노래를 부르며 2층으로 올라오는 한 소녀를 발견했다.

교복을 입은 소녀. 매일같이 카페에 보이는 소녀였다.

‘오늘은 되게 기뻐 보이네.’

풋풋한 여학생이 기쁘게 웃고 있는 걸 보니 자신도 절로 흐뭇해졌다.

분명 보고 있는 만화의 여주인공도 딱 저런 느낌이었지.

그렇게, 여자아이는 장예화의 옆을 지나갔다.

흐뭇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고개를 돌리려던 찰나, 문득 장예화의 눈에 여자아이의 명찰이 눈에 들어왔다.

‘윤다정?’

어?

장예화는 멈칫하고서 자신을 지나가는 여자를 끝까지 바라보았다. 이와 비슷한 이름을 장예화는 최근에 본 적이 있었다.

이전 천진현을 몰래 따라가서 찍었던 사진.

수정이를 놔두고 천진현이 바람을 피웠던 여자. 그 여자가 떠올랐다.

분명 그 여자의 이름이 윤유정이었지.

장예화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여자아이를 다 스캔했다.

단발머리에 저 인상.

역시나, 비슷한 느낌이 든다.

장예화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다음 곧바로 카운터로 향했다.

천진현에게 가서 따질 때만 해도, 사진으로밖에 보지 않았던 천진현의 바람 상대의 이름을 자신이 알 수 있을 턱이 없었다.

알게 된 건 그 여자가, 천진현이 오픈한 이 카페에 근무하기 때문이었다.

“얼그레이 밀크티 한잔, 아이스로 주세요. 매장에서 먹을 거예요.”

“네에~, 3천 8백 원입니다~.”

단발머리의 여성이 생긋 웃으며 주문을 받았다.

카페의 제복 위로는 윤유정이라는 이름표가 달려 있었다.

‘역시.’

처음 봤을 때는 혹시나 했는데, 사진을 다시 찾아본 뒤 장예화의 생각은 확신으로 바뀌었었다.

저 여자가, 천진현의 바람 상대구나.

장예화는 폰에 있는 사진은 지웠지만, 혹시 모르니까 남겨둔 백업 파일은 아직 지우지 않았었다.

따라서 그녀의 손에는, 아직도 천진현이 저 윤유정이라는 여자와 딱 달라붙어서 함께 모텔 안으로 들어가는 사진이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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