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 https://t.me/LinkMoa
“슬슬 2성으로 넘어가도 될 듯합니다.”
“그런가?”
새벽.
탁 트인 개인 정원이 보이는 마루에 나와 천리염기공을 수행하고 있자, 옆에서 델리아가 말했다.
나는 가만히 앉아 몸 안의 마력을 움직였다.
내 정액에 단맛을 깃들게 하고, 정력을 폭발적으로 올려준 효심 깊은 기공 천리염기공(天理炎氣功).
무슨 무협지처럼 장풍을 만들어 쏘는 건 아직 불가능하지만, 지금까지 매일 열심히 수련한 덕분에, 나는 자유롭게 신체 내부의 마력을 움직이며 초인적인 힘과 정력을 가질 수 있었다.
처음 수련을 시작한 날에 비해 마력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매끄러워졌다.
기본 입문부터 12성까지의 총 13장으로 구성된 이 천리염기공에서, 나는 딱 입문과 1성까지 수련을 한 상태였다.
원래라면 진작 2성에 돌입해야 했지만, 요즘은 그냥 마력 일일 퀘스트를 한다는 의의에서만 수련했던지라 진도를 나가지 않고 있었다.
“음. 한번 해 볼까?”
“네.”
리아가 그렇게 말하면 해야지.
나는 인벤토리에서 천리염기공 서적을 꺼냈다. 팔랑팔랑 책을 넘기자 2성 수련법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수련법을 읽었다.
그리고.
탁.
“진현님?”
“......그냥 1성만 해도 충분한 것 같아.”
바로 덮었다.
천리염기공의 입문과 1성 수련의 경우, 책에 아주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이 적혀 있었다. 당연한 것일까, 그건 2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게 문제다.
글자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림과 함께 설명되어 있기도 했지만, 1성에 비해 그 분량이 열 배는 넘도록 차이가 나니 절로 귀찮음이 몰려왔다.
나는 다시 묵묵히 천리염기공 1성의 수련을 시작했다.
“진현님......”
델리아가 게슴츠레한 눈을 하고 나를 쳐다본다.
저 눈빛, 약간 짜릿한데?
“솔직히 1성만 돼도 충분하잖아.”
“아닙니다. 무기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진현님한테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혹시 히로인 어플 계속 쓰면 무슨 위험한 일이 일어나?”
“그건 아닙니다만...... 아! 강한 여성을 제압하여 공략할 때 진현님에게 그에 걸맞은 무력이 있으면 좋습니다.”
강한 여성......!
확실히 꼴릿한 울림이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강하다고 해 봐야 나는 능력치도 높고, 누가 와도 1성인 지금도 충분할 것 같은데.”
“......”
내가 그렇게 말하자 델리아가 살짝 삐진 듯 볼을 부풀렸다. 요즘은 이렇게 말을 안 들어주면 자주 귀여운 표정을 지어준다.
“알았어, 알았어. 해 볼게. 그래, 강한 여성. 2성, 3성, 12성 가서 델리아 보다 강해져야지.”
“저 말입니까?”
“응. 너 제압할 거야.”
“저, 저는 진현님이 명령만 하시면 언제든지......”
얼굴을 붉히고 슬쩍 옷을 내리는 델리아를 보니 이제 요망함이 하늘을 찌르는구나를 느꼈다.
“그럼 이리 와 델리아.”
“네......”
델리아는 쪼르르 와서 내게 안겼다.
자연스럽게 키스를 나눈 후 나는 입술을 떼며 말했다.
“리아가 하라고 했으니까, 네가 책임지고 나 자세도 잡아주고 알려줘. 알았지?”
“알겠습니다.”
델리아는 자세를 잡아준다면서 내 신체 이곳저곳을 더듬었다.
수정이가 델리아를 여우라고 했는데, 어쩌면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에이, 델리아가 그럴 리가 없지.’
언제나 순전히 나를 위해 생각해주는 참된 도우미였다.
나는 그렇게 델리아의 야한 지도를 받으며, 천리염기공 2성에 입문했다.
언제 쓰일 지는 모르겠다만...... 앞으로도 꾸준히 정진하기로 했다.
******
“사장님, 안녕하세요.”
“아, 채은씨. 오늘도 제일 일찍 오셨네요.”
“제가 아침이 빨라서요. 그리고 오늘은 신아 언니가 더 일찍 오셨어요.”
정채은의 말과 함께 이신아가 안쪽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안녕하세요~!”
“신아씨 안녕하세요.”
이신아는 굉장히 밝고 활기찬 여성이었다. 유정이 누나가 착한 친구라고 했는데, 할 말이 없어서 착하다는 게 아니라 진짜 착하다고 얼굴과 행동에 적혀 있었다.
나는 정채은과 이신아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두 분 아침은 드시고 오셨나요?”
“저는 안 먹고 왔어요.”
“저도......”
이렇게 일찍 출근하는데, 챙겨 먹고 오기는 힘들 것이다.
요즘은 나도 수정이와 델리아가 차려주는 아침을 맛보지 못하고 있으니까. 식사는 대부분 외식으로 때우게 된다.
나는 봉투 하나를 둘에게 내밀며 말했다.
“집에서 샌드위치랑 쥬스 좀 가져왔는데 드세요.”
“어? 와아, 감사합니다.”
“유통기한이 오늘 점심까지니까, 근무 중에 드시는 게 좋을 거예요. 그건 두 분이 드시고, 베이비슈는 여기 넣어둘 테니 오전반 분들이랑 같이 드세요.”
“흐흫. 네, 감사합니다아.”
그래서 요즘은 공식 휴식 시간인 점심시간의 점심 이외에도 이렇게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준비해주고 있었다.
나도 이렇게 아침을 때워야 하는 사실이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주말 아침에는 꼭 수정이와 델리아가 솜씨를 발휘해 맛있게 요리를 해준다.
평일의 경우 그 시간만큼 수정이가 더 방송이나 영상 편집에 힘을 쏟을 수 있다는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나름 괜찮았다.
“제가 닦을게요. 신아씨는 카운터 쪽 봐주세요.”
“아, 넷.”
나는 둘의 오픈을 조금 도와주다가, 유정이 누나가 출근한 다음 2층 사무실로 올라갔다.
저 둘이 너무 일찍 온 것뿐이지, 유정이 누나가 지각하는 건 아니었다.
누나는 금방 옷을 갈아입은 다음 똑똑, 하고 사무실 문을 두들겼다.
“사장니임~ 인사하러 왔어요~.”
“흐, 들어와요. 누나.”
누나는 생글생글 웃으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다음 갑작스럽게 표정을 변화시켰다.
뿔 난 얼굴을 하며 양 볼을 부풀린 표정은 화가 났다기보다는 귀여운 모습이었다.
“사.장.님?”
“왜 그러시죠?”
“난 왜 샌드위치 안 줘.”
“아, 깜빡했다.”
“뭐야아. 지금 채은이랑 신아만 편애하는 거지.”
조금 섭섭하다는 표정. 나는 피식 웃었다.
“편애하는 거 어케 알았어요?”
“우씨...... 나도 아침 안 먹고 왔는데에.”
“제가 누나를 편애했으면 했지 그 둘을 편애할 리가 없잖아요.”
나는 사무실 구석에 있는 냉장고를 가리켰다.
“사실은 더 좋은 거 주려고 숨겨놨어요. 냉장고 열어봐요.”
“어, 진짜......?”
냉장고 안에는 샌드위치에 더해 샐러드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유정이 누나는 기쁜 얼굴로 샌드위치와 음료, 샐러드를 꺼내서 테이블에 놓더니, 금세 다시 미소를 되찾았다.
“헤, 뭐야아.”
“기분 좋으면 이리 와요. 인사하게.”
“으응.”
누나는 쪼르르 내게 달려와 품에 쏙 안겼다.
그리고 입술을 겹쳤다.
“우움, 쪼웁, 진현아......”
“그동안 애교 숨기고 어케 살았어요?”
“몰라아~, 인사 더 해줘 빨리. 쭈웁, 쪽......”
입술을 쪼듯이 빠는 키스가 이어졌다.
누나는 30초 정도 내 입술을 맛보다가, 휙 하고 멀리 떨어졌다.
“하아~ 충전 다 했다.”
“벌써 끝?”
“너무 오래 있으면 이상하잖아. ......더 하면 못 참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못 참으면 어떻게 되는지 어제 봤으니까요.”
어제 책상 밑에서 내 자지를 빨아주게 된 건 격렬한 키스를 하다가 유정이 누나가 흥분해서였다.
사실은 다정이가 온 것도 노리고 한 게 아니라 묘하게 타이밍이 엇갈려서 그렇게 된 거였다. 원래는 조금 더 늦게 오는 다정이가, 수요일이라 학교가 일찍 끝나서 예상치 못하게 나타난 것.
다만, 펠라를 하는 와중에 다정이가 나타나면 떨 줄 알았는데, 계속해서 내 자지를 맛보던 모습은 좀 의외였다.
“그런데 2시간 뒤에는 방전되니까, 그때 다시 충전해줘야 해? 아, 애들 보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으니까 샌드위치만 가져가고, 샐러드는 이따 와서 먹을게. 고마워~.”
유정이 누나는 그렇게 말하고 손가락 키스를 내게 날린 뒤, 사무실에서 나갔다.
편의점에 있을 때보다 더 밝아진 누나의 모습에 흐뭇하게 웃은 나는, 이내 컴퓨터 전원을 켰다.
주식 거래가 열리기 전까지 대충 웹소설을 탐방하며 보던 나는 출근 시간이 되자 옷을 갈아입은 다음 위로 올라와 한 명 한 명 인사하고 가는 아르바이트생들의 모습에 또 미소를 지었다.
‘역시 외모가 개연성이다......’
만약 이전 외모였다면 저렇게 아르바이트생들이 다 인사를 하러 올까. 그들 대부분은 인사한다는 명목으로 내 얼굴을 눈에 새겼다.
“행운추적자야, 가즈아.”
드디어 주식 시장이 열리고, 나는 안경이 비춰주는 황금빛 길을 따라 돈을 불려 나갔다.
적당히 차트를 보고, 자매 덮밥 웹소설도 탐방하고, 톡도 하다 보니 시간은 금방 갔다.
‘그러고 보니 슬슬 차도 뽑아야지.’
내 수중에는 상당한 돈이 있었다.
로또 1등 3개 당첨으로 얻은 돈은 주택과 카페, 인테리어 등으로 거의 다 소모했지만 남은 돈으로 주식을 해 계속해서 불려 나갔다.
돈이 커진 만큼 앞으로는 더욱더 빠르게 불어날 것이다.
여기에 카페 매출까지 더해지면 히로인들을 먹여 살릴 걱정은 아예 안 해도 된다!
물론, 아직은 워낙 가오픈 때 쿠폰을 많이 뿌리고 해서 아직은 매출이 부족하지만, 슬슬 대박 날 조짐이 보였다.
카페 내부에 안정과 행복 버프가 걸려있어서 내부 손님도 많지만, 풍미와 끌림 버프까지 있어 착한 가격에 테이크아웃을 해가는 손님도 상당하다.
“끄하아아암......”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켠다. 그때, 사무실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
“오빠아~”
“들어와 다정아~.”
“네엥.”
다정이는 들어오자마자 손님용 소파 의자에 몸을 기댔다. 이전처럼 인사를 하고 바로 만화를 그리러 가는 게 아닌 나와 길게 이야기하고 싶다는 뜻.
오늘은 책상 밑에 유정이 누나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다정이와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정이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떠들었다.
어느덧 거리도 가까워져서 다정이는 내 바로 옆까지 다가왔다. 어제 이랬으면 저세상 갈 뻔했네.
한창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다가, 돌연 다정이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다정이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오빠아~.”
“응?”
콧소리가 다분히 섞여 있었다.
수정이는 저럴 때면 꼭 뭔가를 부탁하던데.
“저 부탁 하나만 해도 돼요?”
역시나.
“무슨 부탁?”
“그게에......”
다정이는 우물쭈물하더니, 대뜸 날짜를 말했다.
“10월 20일......!”
“10월 20일?”
“네, 제 생일이에요. 그날.”
“아하. 그래서, 생일선물 갖고 싶다고?”
다정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근데 음...... 물건 말고, 오빠 저번에 저랑 약속했잖아요.“
”응? 무슨 약속.“
”뭐에요. 까먹었어요? 애교하면 저 여행 데려다주기로 한 거 있잖아요......!“
나는 손뼉을 쳤다.
”아~. 그 기싱꿍꼬또? 옵빠아, 나 기싱꿍꼬-. 악!“
”아! 하지마요. 진짜아.“
”지가 애교라고 해놓고, 와아. 억울하네.“
”그, 그건 맞는데에...... 아무튼, 그거 말이에요.“
”응. 그거.“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다정이가 말했다.
”저 생일날 생일선물로 여행 데려가 주면 안 돼요?“
”생일날 여행? 10월 20일이면 날짜가......“
“토요일. 다다음 주 토요일이에요.”
토요일이라.
토요일이면 카페에는 유정이 누나도 없고 나도 없다.
카페를 혼자 놔두고 멀리 여행을 떠나는 게 살짝 불안하긴 하지만, 지연이 누나가 알아서 잘해주겠지.
지연이 누나는 주말 카페 매니저로 임명한 서른이 조금 넘는 누님인데, 나긋나긋하게 사람들을 잘 다루어주었다.
성향도 바르고, 행운추적자도 밝게 빛났으니 상관없을 것이다. 진상에도 잘 대응할 만큼 경험이 있고.
나에 대한 호감도와 신뢰도도 높았다.
“토요일. 상관은 없는데...... 여행 어디로 가고 싶어? 설마 해외?”
“그건 아니고...... 오빠 몇 박 며칠까지 가능해요?”
“카페가 있으니까. 한 1박 2일이 적당하겠지? 애초에 너도 학교 다녀야 하잖아.”
“1박 2일......”
다정이는 1박 2일이라는 단어를 되뇌이며 살짝 아쉬운 표정을 짓다가, 나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2박 3일......!”
“2박 3일?”
“안 돼요? 저어, 그 주 금요일이 개교기념일이에요. 금토일 가면 진짜로 딱 맞음. 이건 신이 내려준 기적이에요. 인정?”
“......”
“인정인정.”
다정이는 스스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2박 3일이라.
그렇다면 금요일 하루 유정이 누나의 대타를 구해야 했다.
지연이 누나한테 말하면 해줄 법도 한데.
“음. 뭐, 알겠어. 2박 3일로. 그럼 유정이 누나랑 어디 갈지 한 번 정해봐. 셋이 같이-.”
“아뇨.”
“응?”
다정이는 고개를 저었다.
“어, 언니는 빼고.”
오물거리는 입술이 달싹거리다가, 이내 결심한 것처럼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저랑 둘이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