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화 〉# https://t.me/LinkMoa
“다정이가...... 어? 진짜로?”
유정이 누나의 눈이 동그랗게 뜨인다.
“네. 지금 숨어서 지켜보고 있네요.”
“장난치지 말고오.”
“진짜예요. 지금 골목 옆에 숨어있는데...... 아, 움직였다.”
주변 감지 스킬은 상당히 유용했다.
사용하는데 코인을 꽤 잡아먹기는 하지만, 한번 펼치면 반지름 20m 안에 있는 구형 내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 수가 있었다.
사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숨 쉬는 소리까지도 다 파악할 수 있었다.
엄청나게 많은 정보가 들어와 다 파악하고자 하면 머리가 깨질 듯 아프지만, 대상을 하나에 집중하면 별 상관이 없었다.
다정이의 시선이 이상해서 혹시나 하고 스킬을 펼쳤는데, 곧바로 주변 감지에 다정이가 걸렸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제가 감이 좋거든요. 막 시선이 느껴져요.”
말만 들으면 신뢰가 안 가지만,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자 유정이 누나도 내게 다가오는 걸 멈췄다.
“그런데 다정이가 왜......?”
“그러게요. 저희 관계를 의심하나 본데요.”
“그, 그럼 어떻게 하지?”
“앞으로 더 조심해야죠, 오늘은 못 하겠네요.”
“으응.”
나는 평범하게 유정이 누나를 바래다줬다.
“바래다줘서 고마워.”
“네, 들어가요. 누나.”
누나는 끝내 키스가 아쉬운 듯 내 입술을 봤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윽고 누나가 집 안으로 들어가고 몸을 틀자, 다정이가 후다닥 몸을 돌려 숨는 게 느껴졌다.
나는 마음속으로 쓰게 웃었다.
‘하긴 매번 데려다준다면서 늦게 들어가는 건 좀 그렇긴 했지.’
나는 다정이가 바라보는 와중에 햄버거 가게에 들러 대충 배를 채우고, 직원들의 몫의 아이스크림까지 사서 카페에 돌아왔다.
윤다정은 태연한 척 손님용 방에서 나왔고, 아이스크림을 한 입 떠먹고 미소를 지었다.
******
“그래도 수상해.”
미행으로 어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둘의 거리가 조금 가깝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주 가깝지는 않았고, 오빠는 언니를 그냥 평범하게 데려다주고 끝이 났다.
하지만, 그래도 수상하다.
어제는 어제일 뿐.
무언가 꺼림직한 느낌의 감.
자신의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목요일인 오늘.
학교가 끝나고 윤다정은 우선 가장 친한 아르바이트생인 백아린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봤다.
“너희 언니랑 사장님? 으음. 그야 친하겠지? 언니만 사장님을 반말로 진현아~ 하고 부르니까. 히이. 나도 그렇게 불러보고 싶은데...... 아, 이건 사장님한테는 비밀이다?”
윤다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평범하게 친하냐는 걸 물어보고 싶은 건 아니었다. 좀 더 그런 끈적한 관계가 있었냐는 게 궁금했다.
“음. 막 그렇진 않은 것 같은데, 유정 언니가 사장님 자리에 가면 좀 오래 있다가 오기는 하는데...... 그것만으로는 좀.”
퇴근할 때 데려다주기도 하는데?
“아, 그러네. 데려다주는구나. 확실히 그렇게 생각하니 수상하기는 하다. 근데 막 단정지을 정도인지는 모르겠어.”
제가 물어봤다는 거 언니한테는 절대 말하지 말아요!
“당연하지. 오늘은 뭐 만들어 줄까?”
“달고...... 아니,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응. 좀만 기다려?”
윤다정은 백아린에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받아 또 믿을 수 있는 다른 아르바이트생에게 물어보았다.
“하아.”
그리고 한숨.
얻은 거라고는 애매한 대답 뿐이었다.
‘그래도 다행이인......가?’
이렇게 아르바이트생들에게 물어보는 건, 자신이 진현이 오빠한테 직접 물어볼 용기가 없기 때문이었다.
만약 오빠한테 물어봤다가 오빠가 언니를 좋아한다거나, 이미 그런 관계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어떻게 하지?
지금 이렇게 물어본 것도 사실은 그런 게 아니라 다 오해였습니다~, 하는 행복한 확신을 얻고 싶은 윤다정만의 바람뿐이었다.
하지만 확신은 모르겠고, 계속 찝찝함만 남아있었다.
“하아......”
윤다정은 한숨을 쉬며 카페 자리에 앉았다.
왜인지 손님용 방에는 지금 가기가 싫었다. 비어 있는 자리에 적당히 앉아서 또 한숨을 내쉰다.
“진현이 오빠 바보오......”
탁.
“......?”
한숨을 내쉬고 진현이 오빠 바보라고 말하자마자, 문득 옆자리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윤다정은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와...... 대에박. 연예인인가?’
너무 예쁘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는 만화의 여주인공같이 아름다웠다.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는 나무랄 곳이 없었고, 입고 있는 옷도 너무나 세련됐다.
피부와 몸매까지 무엇 하나 빠질 것 없는 완벽한 여자.
감탄하며 옆자리 사람을 바라보고 있자, 그녀는 자신을 스캔하듯 보다가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너무 노골적으로 봤나......’
여자는 자리에서 벗어나 완벽한 각선미를 자랑하며 카운터 쪽으로 걸어갔다.
걷는 모습도 대박이다.
너무 예뻐서 계속 보고 싶었지만, 윤다정 또한 의자에서 엉덩이를 띄웠다.
시선이 이렇게 마주친 이상 옆에 있기는 껄끄러웠다. 애초에 잠깐 있다가 2층으로 올라가려고도 했고.
다정은 그렇게 손님용 방 안으로 들어갔다.
******
장예화.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인정할 것은 인정할 줄 아는 여자였다.
‘카페 델리아...... 괜찮네.’
사실 괜찮은 정도가 아니다.
아주 마음에 들었다.
내부의 분위기도 좋고, 커피의 맛도 일품이다.
대형 프렌차이즈보다도 맛있는 느낌.
풍미가 깊고, 마시면 또 마시고 싶은 끌림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카페 내부였다.
포근한 분위기 덕분인가, 카페에서 작업하면 생각 정리도 잘 되고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혹시나 자신의 컨디션이 좋은 건가 했었는데, 카페에서 나와 다른 카페에 들어가 보니 정말 이상하게도 편안한 느낌이 덜 했다.
다시 카페에 들어오면 편안한 느낌이 들고 말이다.
스튜디오에서 해야 할 게 아닌, 노트북으로만 해도 되는 작업은 보통 카페에서 하는데, 이 카페가 딱 안성맞춤이었다.
우연히 천진현과 마주친 날 쿠폰을 받고, 그래도 받았으니 한 번은 써야지 하는 생각에 딱 한 번만 공짜로 먹고 말 생각이었는데, 어느덧 커피와 빵 그리고 카페의 분위기에 취해 여기 말고 다른 카페는 가지도 않게 되었다.
만약 천진현 그 자식의 얼굴이 보였어도 올 만큼 매력적인 카페였는데, 자기는 일을 안 하고 아르바이트만 쓰는 것인지 그의 얼굴은 본 적이 없었다.
‘그나저나 취향 하고는......’
장예화는 카페의 아르바이트생들을 보고 혀를 찼다.
카페에 있는 아르바이트생은 죄다 여자였다.
까놓고 말해 잘생긴 남자 아르바이트생이 있는 편이 카페에는 훨씬 도움이 될 텐데.
이렇게까지 카페를 잘 준비했다면 그걸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도 굳이 여자만 놓은 걸 보면, 역시 사람에 대한 자신의 판단은 정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둥이, 쓰레기.
천진현에 대한 예화의 인식은 카페의 성공에도 변화하지 않고 있었다.
수정이는 왜 그런 애를 용서하고 사귀는 걸까.
이번 주만 해도 보낸 염장 사진이 10장이 넘는 걸 떠올린 예화는 머리가 지끈거림을 느꼈다.
심지어 그 중에는 볼에 뽀뽀하는 사진도 있다.
아니, 보통 친구한테 그런 걸 보내나?
그것도 솔로인 자신한테?
하지만 의외로 베프격인 친구한테 마음이 약한 예화는 그냥 수정이의 염장질에 ‘ㅎㅎ;;’ ‘그래 ㅎ’ 등의 답변만 보낼 뿐 크게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수정이가 행복해 보이니까.
‘조금 쉬고 할까.’
후우.
미약한 한숨과 함께 장예화는 헤드폰을 벗었다.
너무 또 귀를 오래 덮고 있는 것도 좋지 않았다. 적당히 하면서 10분 정도 쉬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겠지.
‘어디 보자...... 뭘 봐 볼까.’
장예화는 그렇게 평소에 보던 만화 사이트에 들어가 만화를 탐독했다.
[ 드래곤과 나 ]
“음, 후릅.”
식도를 넘어가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느끼며 예화는 만화의 제목을 클릭했다.
보아하니, 남자 드래곤이 현대에 와서 폴리모트를 하고 로맨스를 찍는 일상 만화였다.
평화로운 일상 만화는 제법 좋아한다.
작가 소개에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동시에 그리는 연습용 만화라고 돼 있는데, 내용물이 제법 괜찮다.
댓글을 보면 주인공이 너무 느끼하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리메이크 겸 수정을 한번 가한 모양인지 평이 좀 괜찮아졌다.
살짝 봤는데 그림 실력은 정말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일단 즐겨찾기를 해 두자.’
예화는 그렇게 커피를 홀짝이며 또 다른 볼만한 만화가 없는지 사이트를 뒤졌다.
‘진짜 맛있긴 맛있네.’
카페 내부의 분위기나 맛만 봐서도 카페가 흥할 거라는 건 거의 9할 이상 확신할 수 있었다.
수정이 남자친구의 카페라고 생각하면 좋아해야 해지만, 바람둥이의 카페라고 생각하면 싫은 마음이 든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해.
“진현이 오빠 바보오......”
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탁.
예화는 자기도 모르게 커피잔을 조금 강하게 놨다.
진현이 오빠 바보? 천진현?
옆을 돌아보자,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드는지 입술을 삐죽 내민 채 교복을 입고 있는 귀여운 여학생 한 명이 보였다.
카페에서 자주 보는 여자아이였다.
맨날 교복을 입고 이 시간에 2층으로 올라가던데, 오늘은 1층에 있네.
그나저나 진현이라니.
천진현 그 자식이 설마 고등학생도 건드리고 다니는 건가?
‘설마 아니겠지.’
예화는 마음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 새끼라면 그럴 리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