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화 〉# https://t.me/LinkMoa
윤다정은 요즘 기분이 매우 좋았다.
우선, 아침이 상쾌했다.
이전부터 꿔왔던 악몽은 진현이 오빠를 만난 뒤로 말끔하게 사라졌다. 맑은 머리와 개운한 몸으로 맞이하는 상쾌한 아침은 너무나도 행복했다.
“벌써 일어났니~?”
“응.”
엄마나 언니의 기분도 매우 좋아 보였다.
식당과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동시에 했던 언니는 이제 즐거운 얼굴로 카페에 출근했다.
엄마는 여전히 식당에서 힘들게 일하고 계시긴 하지만, 진현이 오빠의 선물 덕분에 피로가 눈에 띄게 줄었다.
뭐 영양제 비슷한 거라고 했는데 뭘까.
엄청 비싼 거 아닌가.
엄마도 그런 걸 물었지만, 진현이 오빠는 가격 같은 건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엄마는 좋은 거라면 뭐든지 자신과 언니에게 양보하려고 해서 같이 먹자고 했지만, 정중하게 사양했다.
“다녀오겠습니다아~.”
“조심해서 다녀오렴.”
윤다정은 기쁜 마음으로 학교에 갔다.
“야. 거기 가봤어?”
“거기가 어딘데.”
“다정이 언니가 준 쿠폰 카페.”
“아. 거기 졸라 좋음. 커피 개존맛.”
“네가 커피 맛을 어케 알아.”
“지랄~. 모르는 건 너겠지.”
진현이 오빠가 나눠준 쿠폰은 같은 반 애들한테 뿌렸다. 교무실에 찾아가 담임 선생님이나 같은 교과목 선생님들한테도 줬는데, 반응이 되게 좋았다.
진현이 오빠가 잘되면 좋으니까.
학교 시간에는 수업을 열심히 듣는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는 만화를 어떻게 할지 구상하거나 오빠랑 톡을 나눈다.
“아. 다정이 왔어?”
“네, 오빠는 위에 있어요?”
“응.”
“언니는요?”
“안에서 뭐 옮기는 거 돕고 있는 거 같던데, 불러줄까?”
“아, 괜찮아요.”
학교가 끝나자마자 버스를 타고 카페로 향하자 아르바이트생 한 명이 반갑게 맞이해줬다. 아르바이트하는 카페 직원들은 다 즐거워 보였다.
“뭐, 마실래?”
“으음. 저어, 흑당버블티요. 아 근데 펄은 빼주세요.”
“버블티에서 펄을......? 응, 알았어. 위에서 조금만 기다려? 가져다줄게.”
“아니에요. 여기서 기다릴게요.”
“응.”
생긋 웃은 여자는 음료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나눈 사람은 백아린이라는 아르바이트생 언니였다.
자신을 살짝 애 취급하는 느낌이 들어 그 부분은 살짝 아쉽지만, 그래도 얼굴도 예쁘고 마음씨도 엄청 착한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카페에는 미인이 많네.’
아니, 미인이 문제가 아니라 생각해 보면 죄다 여자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자, 여기. 펄은 다 뺐어.”
“감사합니다.”
윤다정은 인사를 하고 카페 2층으로 올라갔다.
직원용 창구에 들어가 안쪽을 바라보자 고급스러운 문이 하나 보인다.
윤다정은 지갑에서 주섬주섬 카드를 꺼냈다.
삐빅.
왼쪽 벽에 있는 검정 단말기에 카드를 찍자, 삑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철컥.
오빠가 머무는 개인사무실이 있는 복도는 카페 직원 전용 카드키가 있어야만 이렇게 문을 열고 들어갈 수가 있었다.
딱히 직원이 아닌데도, 자신에게 흔쾌히 카드키를 준 진현이 오빠를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거 우리 카페 카드인데, 만약 나 없더라도 쉬고 싶으면 문 열고 들어가서 손님용 방 자유롭게 써.”
“어, 카드키요? 이거 저한테 그냥 줘도 돼요?”
“그러엄.”
윤다정은 똑똑하고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응. 들어와.”
곧바로 대답이 들리고, 컴퓨터 모니터를 보고 있는 진현이 오빠의 모습이 보였다.
‘잘생겼다.’
처음 봤을 때도 상당히 잘생겼었는데, 지금은 그때보다도 더욱 잘생겨진 느낌이다.
콩깍지가 낀 건가?
모니터를 보고 뭔가 타자를 열심히 치고 있는데, 집중하는 모습도 되게 멋있었다.
“다정이 왔어?”
“네에.”
“응. 방에서 편하게 있어.”
오빠의 말에 윤다정은 생긋 웃고는 사무실에서 나와 손님용 방에 들어갔다.
손님용 방은 사무실만큼은 아니었지만, 상당히 넓었다.
사무실은 완전 사무용 공간처럼 생겼는데, 손님용 방은 카페와 비슷하게 디자인되어 있었다.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의 데코레이션.
신기하게도 여기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다.
집에서보다도 그림도 훨씬 잘 그려지고, 공부도 잘됐다.
환경이 좋아서 그런가?
음료도 무료고......
정말 천국이 따로 없었다.
‘아니. 음료는 조금 자제해야지.’
오빠가 사양하지 말고 마음껏 마시고 먹어도 된다고 했지만, 너무 많이 마시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자신은 무료로 먹는다고 해도, 애초에 이 카페가 오빠 거니까. 다 오빠 돈에서 나가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방심하다가는 뱃살도 튀어나올 수도 있다.
‘이제 그려야지.’
윤다정은 태블릿을 컴퓨터에 연결하고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손님용 방에는 컴퓨터도 마련되어 있어서 태블릿과 USB만 가지고 다니면 되었다.
자신을 위해 컴퓨터에 그림용 프로그램까지 구매해 설치해준 오빠를 생각하니, 다시 한번 고마운 마음이 두근거리는 감정이 피어났다.
‘여기는 살짝...... 구도를 바꾸자.’
그리고 있는 만화의 종류는 2가지였다.
하나는 공모전 준비용 만화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 올리고 있는 일상 만화. 일상용 만화는 오빠를 남자주인공의 모티브로 삼아서 그런지, 쥔 팬이 아주 깃털처럼 날아다녔다.
‘아. 벌써 다섯 시가 넘었네.’
눈을 떠보니 순식간에 1시간이 넘게 지나갔다.
마음이 편안한 카페, 행복한 카페.
윤다정에게 진현이 오빠의 카페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러나.
항상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그 행복과 편안함을 방해하는 무언가가 존재했다.
삐빅-
타박타박.
복도 문을 여는 소리와 함께 발소리가 들린다.
아린이 언니한테 물어보니까 보통 아르바이트생들이 퇴근하거나 할 때는 꼭 사무실에 들러 인사하고 퇴근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자신이 아직 학교에 있는 2시쯤의 일.
그 이후는 이 복도에 오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가끔 아르바이트생이 오빠한테 음료나 과자를 가져다주거나, 무언가를 물어보러 오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짧은 시간 잠깐 들리듯 왔다 갈 뿐이다.
특이하게도, 이 발소리는 사무실 앞에서 멈추고 들어가 한참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5분, 10분.
15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자, 윤다정은 속이 부글부글 끓는 느낌을 받았다.
결국, 자리를 발차고 일어나 자신이 사무실 앞에 섰다.
후우.
일단 심호흡 한번 하고.
똑똑.
“오빠아. 들어가도 돼요?”
“아, 응 들어와.”
문을 노크하자, 곧바로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린다.
들어가자마자 윤다정은 안을 빠르게 훑었다.
진현이 오빠와 그리고......
‘유정이 언니.’
언니의 볼은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언니와 오빠. 둘 사이에는 미묘한 분위기마저 흐르고 있었다.
“언니?”
“아, 다정아...... 왜에?”
“그냥 퇴근할 때 됐겠구나 싶어서 왔어.”
“으응. 이제 막 가려고. 진현이가 데려다준다는데, 너도 같이 갈래?”
데려다준다.
다른 아르바이트생들도 얼마나 많은데, 왜 하필 언니만 바래다주는 것일까.
물론, 자신도 항상 바래다주기는 한다만......
“......그래? 난 괜찮아. 그림 좀 더 그리다 갈게. 괜찮죠, 오빠?”
“응. 괜찮지. 편하게 있어.”
진현이 오빠는 방에 들어가 겉옷을 걸치고 나왔고, 언니는 이미 갈아입은 후였다.
언니의 원래 퇴근 시간은 5시 20분.
그런데, 대부분 뭘 하는지 사무실에 있다가 그보다 몇 시간이나 늦게 퇴근했다.
어떨 때는 9시를 넘기기도 하였다.
제시간에 퇴근하는 날에는 이렇게 진현이 오빠가 데려다주는데, 고작 10분 거리를 뭘 그렇게 오래 걸리는지.
오빠도 언니를 데려다주고 오면 항상 돌아오는 시간이 늦었다.
그제는 언니를 바래다준다면서, 2시간이나 지나서 돌아왔지.
“다녀올게?”
“네. 아 참 언니, 우리 쓰레기봉투 없어.”
“아, 응. 사서 들어갈게.”
유정이 언니는 그렇게 대답하고 진현이 오빠와 나란히 걸어 나갔다.
역시......
윤다정은 카페를 내려가는 언니와 오빠를 바라보았다.
문을 열었더니 느껴지는 어색함.
상기된 얼굴.
그랬다.
언니가 수상하다.
******
“진현아아, 모텔 가고 싶지 않아?”
카페에서 어느 정도 떨어지자 유정이 누나가 교태를 부리며 내게 들러붙는다.
“가고 싶은 건 누나 아니에요?”
“히. 그래서 싫어?”
“싫은 건 아닌데...... 누나. 저한테서 조금 떨어져서 걸어요.”
“어, 어어......?”
가까이 붙어 내게 애교를 부리려던 유정이 누나를 살짝 밀쳐내자. 누나가 충격을 받은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에이, 그런 표정 하지 말고요.”
“그럼 왜......?”
상냥한 표정을 짓고 누나를 바라보자, 유정이 누나는 상처받은 고양이 같은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슬금슬금 다시 거리를 좁혀오는데, 나는 더욱 유정이 누나한테서 거리를 벌렸다.
누나의 표정이 점점 안 좋아질 찰나, 내가 입을 열었다.
“다정이가 저희 따라오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