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화 〉# https://t.me/LinkMoa
하렘 카페를 만드는 게 목표라서 그렇다.
라고 솔직하게 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야 예쁜 여자들이 많은 편이 손님 모으기가 쉽잖아요.”
“흐으음...... 그으래?”
수상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유정이 누나.
“내 생각에는 남자도 있는 편이 여자 손님도 잡을 수 있어서 좋지 않을까 싶은데.”
유정이 누나의 말에는 나도 동감한다. 분명 훈남 알바도 있는 편이 남녀 손님 모두를 고루 모으기에는 훨씬 더 유리하겠지.
보통이라면.
나의 경우에는 손님 문제를 히로인 어플 아이템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굳이 땀내 나는 남자를 매장에 놓을 필요가 있을까?
꽃밭!
나는 꽃밭이 좋다......!!
여자만 있어도 장사에는 전혀 문제가 없도록 만들 수 있으니까. 아름다운 꽃밭 속에 나 혼자 누워서 향기를 맡아야지.
하렘 만세!
“일단 생각은 좀 해볼게요.”
생각만.
“진짜로 생각만 해볼 표정인 거 알아?”
어떻게 알았지.
“큭큭.”
“뭐가 그렇게 웃겨어, 뭐가.”
내가 갑자기 정곡을 찔린 내가 웃자, 유정이 누나도 내 어깨를 톡톡 치며 피식 웃었다.
우리는 그렇게 웃으며 아르바이트생 자료를 정리했다.
“끄으응~.”
“피곤해?”
“그냥. 좀 뻐근해서요.”
기지개를 켜자 옆에서 유정이 누나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제 면접 다 끝난 건가?”
“네. 나머지 사람들은 다 잠수라고 보면 되겠죠.”
이미 마지막 면접자가 나간 지도 20분이 지났다.
이 뒤로는 그냥 안 온다고 보는 게 맞겠지.
혹사니 해서 좀 전에 오지 않은 사람들한테 문자를 다 돌려봤는데, 죄다 연락을 씹을 뿐이었다.
못 오면 그냥 못 오겠다고 하면 되지 왜 연락을 씹는가도 싶었지만, 나도 이전에 알바를 구할 때 그랬던 적이 있어서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래도 생각보다 많이 왔어요. 11명이나 올 줄은 몰랐는데.”
“그러게. 다 괜찮아 보이기도 하고. 그럼 이제 다정이 부를까? 다 끝났다고.”
“아뇨, 잠시만요.”
“응? 왜? 어디가?”
“잠깐만 거기 앉아있어 봐요.”
나는 옆에 방문을 열고 들어가 블랙룸 포탈을 소환했다. 그리고 후딱 블랙룸에서 미리 챙겨둔 종이백 두 개를 챙겨서 나왔다.
“누나 이거 한 번 입어봐요.”
나는 유정이 누나한테 종이백 하나를 건넸다.
“입어보라고? 뭔데?”
“카페 유니폼 나온 거예요.”
“어? 너 유니폼도 만들었어?”
유정이 누나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본격적으로 하려면 유니폼 정도는 있어야죠.”
유니폼 디자인도 수정이네 아버님이 다 연결해 주셨다.
솔직히 수정이네 아버님 스타일상 그냥 처음 한 번만 도와주고 방치해둘 줄 알았는데, 호감도가 높아서 그런가 오히려 먼저 연락해서 유니폼은 맞췄냐 뭐했냐 하며 나를 아주 잘 챙겨주셨다.
물론 연결만 해주고 나머지 디자인이나 뭐나 하는 건 다 내가 해야 했지만, 그건 디자이너와 델리아랑 같이 머리를 맞대고 생각할 수 있었다.
밝은 와이셔츠에 검정 멜빵 치마.
약간 오피스룩 비슷한 느낌을 내서 튀지 않으면서도 은은하게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내는. 상당한 꼴림을 자랑하는 룩이었다.
솔직히 내 취향이 다분히 들어갔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개인 카페들은 그냥 개인 사복에 앞치마만 걸치는 경우도 많으니까.
제복 야스는 못 참지.
“한번 입어봐요. 누나.”
“치수는......”
“당연히 사이즈 별로 있죠. 다 가져왔으니 맞는 사이즈로 골라 입으면 돼요.”
“올. 꼼꼼한데.”
유정이 누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기 사이즈에 맞는 유니폼을 꺼냈다. 유니폼의 포장을 뜯고 방을 두리번거린다.
“......그런데 어디서 입지.”
“제가 아까 들어갔던 방에서 입어요.”
“아, 응.”
유정이 누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차분하게 누나가 나오길 기다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렸다.
오피스룩 같으면서도 너무 날카롭지 않고 잔잔한 느낌. 누나가 입어서 그런지 생각보다도 훨씬 더 잘 나왔다.
“좋다. 진짜 잘 어울려요.”
“그래?”
유정이 누나가 밝게 웃는다.
아 미소 예쁘다.
이럴 때가 바로 기회지.
찰칵.
“뭐, 뭐해에?”
미리 대기시켜둔 휴대폰으로 누나를 찍자, 누나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기념 촬영이요. 오. 잘 나왔다.”
“뭣? 기념 촬영? 잘 나왔다고? 봐봐. 야앗. 갑자기 찍으면 어떡해. 빨리 보여줘 봐. 이상하게 나온 거 아니야? 빨리 삭제해.”
“아 뭘 삭제해요. 흐흫. 가만히 있어 봐요. 톡으로 보내줄 테니까. 아, 빨리 손 내려요.”
“씨이......”
내가 누나와의 키 차이를 이용해 휴대폰을 번쩍 들자, 누나는 내 폰을 잡으려고 손을 뻗다가 이내 체념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표정에는 억울한 기운이 다분했다.
띠링-
나는 곧바로 누나에게 톡으로 사진을 보내줬다.
“어때요 잘 나왔죠?”
“......잘 나오긴 무슨. 표정이랑 자세랑 다 이상한데......”
사진을 살펴본 누나는 입술을 삐죽였다.
“예쁜데 뭐가 이상해요. 그보다 사진 보고 디자인이 뭐 마음에 안 든다거나 하는 부분 있으면 말 해봐요. 아. 옷이 일 못 할 정도로 너무 불편하거나 하지는 않죠?”
“아, 응. 불편하지는 않아. 디자인도 좋은 것 같고...... 그런데 유니폼은 대체 언제 만들었어?”
“여행 가기 전에 오더 넣었죠.”
내가 말하자 누나가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편의점 알바 할 때는 뭐 하는 거 엄청 귀찮아하지 않았나...... 진현이 너 진짜 달라졌네.”
“그래서 싫어요?”
“그, 그런 건 아닌데......”
내가 성큼 다가가자 유정이 누나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나는 누나의 손목을 낚아챘다.
“왜 멀어져요. 아직 안 끝났어요. 앞치마도 매줄게요.”
“앞치마......?”
나는 또 하나의 종이백에서 앞치마를 꺼냈다.
이 룩은 앞치마가 없는 편이 훨씬 예쁘지만, 그래도 카페 일을 하면서 뭐가 많이 튈 수도 있으니까.
앞치마까지 입어주는 게 카페 유니폼의 정석이었다.
나는 누나와 마주 본 채로 앞치마를 입혀주었다.
앞치마에 팔을 넣어주고, 뒤로 끈을 두른다.
“꼭 이 자세로 입어야 돼......?”
“네.”
“뒤로 하는 편이 더 편할 텐데......”
“저한테는 이게 더 편해요.”
“......”
마주 본 채로 앞치마를 매주자, 마치 포옹하는 듯한 자세가 된다.
나는 유정이 누나 허리 뒤로 양팔을 두른 채로 앞치마 끈을 매주었다.
나와 유정이 누나는 키 차이가 20cm도 넘게 났기 때문에, 누나가 내 품 안에 쏙 들어오는 모양새였다.
사륵사륵.
면접 보는 동안에 리모델링은 잠시 쉬는 상태라 방 안에서 끈을 묶는 소리만 났다.
유혹의 향기까지 켜둔 상태라 그런지, 내 팔이 누나의 옆구리를 스칠 때마다 누나의 몸이 움찔거리는 게 바로 느껴졌다.
“진현아......?”
“왜요?”
“이, 이제 다 맨 거 아니야......?”
앞치마를 매는 데는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끈은 진작에 다 묶었는데도 나는 계속 누나 뒤로 손을 두르고 있었다.
유정이 누나의 말에 나는 오히려 누나를 더 꽉 껴안았다.
누나의 몸이 흠칫 떨렸다.
“맞는데, 조금만 더 이러고 있어요.”
******
‘또야......’
두근두근.
진현이에게 꽉 안기게 되자 유정의 가슴이 세차게 두근거렸다.
이전에 영화관에서 느꼈던 두근거림. 아니, 그보다도 더한 두근거림이었다.
솔직히 그때는 그 순간만 그랬지, 집에 돌아와서 다시 생각해 보면 그다지 좋게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요즘은 달랐다.
진현이에게 처음 안긴 뒤로.
진현이 생각만 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웃음이 나오고 그랬다. 만날 때만 그런 게 아니라, 언제 어디서 생각해도 그랬다.
매일매일 힘들게 일해 왔는데, 진현이 품에 이렇게 안기게 되자 뭔가 그런 힘든 느낌이 씻은 듯 날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냄새는 또 왜 이렇게 좋아아......’
하아......
남자다우면서도 너무 중독적인 체취였다. 나한테 냄새 패티시가 있었나 의심이 될 정도.
게다가 키와 덩치도 좋아서, 마치 꽈악 부서지듯 안기는 듯한 이 느낌이 너무 좋았다.
하지만.
하지만......
“이, 이제 됐지......?”
유정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진현을 살짝 밀어냈다.
계속 이러고 있고 싶지만, 그러면 안 됐다.
다정이가 있으니까.
솔직히 다정이가 진현이를 좋아하는 게, 어린 마음에 그냥 멋있어 보이는 오빠를 가볍게 어울리고 싶어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우연히 보게 된 다정이의 일기.
매일매일 적는 일기에는 꼭 진현이가 등장했다. 오늘은 무슨 대화를 나눴고, 오늘은 만나서 같이 뭘 했고 놀았고 등등 여러 가지로.
평소 톡을 볼 때 다정이의 얼굴만 봐도, 그 톡이 진현이에게 왔는지 다른 사람한테서 왔는지 구분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긴, 만화의 남자주인공을 진현이를 모티브로 변경한 것만 봐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진현은 유정을 풀어주지 않았다.
“아직 안 됐는데.”
“무슨...... 조금만이라며.”
“제 조금이 많이 길어요.”
능청스럽게 웃는 진현을 유정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진현은 그런 유정과 눈을 마주치다가 마치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말했다.
“그럼, 키스해주면 풀어줄게요.”
키스.
유정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과거의 장면들이 재생되었다.
자신이 영화관에서 진현에게 했던 첫 키스, 그리고 황홀했던 모텔에서의 키스.
가슴이 세차게 두근거림과 동시에 아파왔다.
‘진짜로 나쁜 남자......’
기껏 마음을 다잡고 포기하려고 하는데.
겉으로는 다정이와 그렇게 사이좋게 눈앞에서 염장을 지르면서, 다정이 몰래 자신에게 이렇게 들이대다니.
역시 진현이는 바람을 피우는 나쁜 남자였다. 그것도 피가 섞인 자매를 상대로.
“키스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왜 말이 안 돼요. 그보다 더한 짓도 했잖아요.”
“그건...... 그리고 지금은 다정이도 있잖아.”
“다정이 지금쯤 열심히 만화 그리고 있을 거예요. 절대 몰라요.”
다정이가 자신과 진현이가 이러는 걸 알면 대체 무슨 표정을 지을까.
역시나 가장 좋은 건 다정이한테 진현이가 이런 나쁜 남자라는 걸 알리고......
알리고......
‘알리면 어떻게 되지?’
윤유정은 문득 생각했다.
만약 알려도, 그래도 여전히 다정이가 진현이를 좋아한다면?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진현이를 똑같이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알린다고 해서 진현이가 자신에게 계속 들이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오히려 다정이한테 상처만 늘어날 뿐이겠지.
그리고 싫어하게 된다고 해도, 지금 바로 말하는 게 맞는 걸까.
이제 공모전도 얼마 남지 않았고, 지금은 다정이에게는 너무나도 중요한 시기였다. 진현이한테 완전히 빠져있는 다정이는 만화에 대한 물도 올라서 최근 더욱 만화에 생동감이 풍부해진 상태이다.
이럴 때 다정이한테 충격을 주면, 혹시 공모전에서도 흔들리고 다정이의 미래 자체가 크게 불투명해질 수가 있지 않을까.
‘답이 없어......’
역시 가장 좋은 선택지는, 자신이 진현이를 강하게 차단하는 것뿐이다.
철벽을 치고, 들이대지 못하도록 하는 게 맞다.
다른 남자들한테 그랬던 것처럼.
이러지 말라고, 싫다고.
근데......
두근두근.
그러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지금 이런 행위에 미묘한 희열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이 거센 심장의 고동은 그러한 선택지 자체를 차단해버렸다.
그림도 공부도 다정이보다 안 되지만, 진현이가 다정이보다 자신을 더 원한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상할 정도로 흥분이 되었다.
‘미안해 다정아......’
게다가, 따지고 보면 진현이한테 먼저 고백한 것도 먼저 좋아한 것도 내가 아닌가.
키스 정도는 괜찮겠지......?
“그, 그래도 안 돼에......”
결국, 윤유정이 내뱉는 건 아주 미약한 반발뿐이었고.
“안-. 우움, 쭙, 쪼옥......”
약한 가드는 금방 벗겨져서 진현의 침입을 허락했다.
유정은 까치발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