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화 〉# https://t.me/LinkMoa
하지만 내가 수상한 사람이라는 걸 다정이는 지금 모르고 있다.
가엾게도. 호감도 100을 찍은 다음에야 알게 되겠지.
이미 맛깔난 사탕을 들고 흔드는 나를 따라, 다정이는 차에 올라탄 후였다. 그래도 행복하게 해줄게 다정아.
“아. 그러고 보니 너, 나 심쿵하게 해준다고 하지 않았어?”
“윽.”
“다정이 애교 한번 볼까?”
“주, 준비는 했는데 그게에......”
애교 이야기를 꺼내자 다정이의 낯빛이 대번에 안 좋아졌다.
이 요망한 것이 어디서 어물쩍 넘기려고!
톡에서 잠깐 지나가듯 꺼낸 이야기여서 그냥 넘어갈 생각이었겠지만, 그렇게는 안 되지.
“뭐, 하기 싫으면 하지 마. 대신 다음에도 여행은 다정이 빼고 가야지. 아아~, 아쉬워라. 너무 아쉽다.”
“우씨, 해요! 할게요오!”
다정이는 한다고 빽 소리치더니 이내 커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붉게 달아오른 양 볼이 인상적이었다.
주변에 자신을 보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 다정이는 귀여운 눈망울로 나를 치켜 올려다보았다.
“오, 옵빠아 나 꿍꼬또, 기싱꿍고또......”
헐.
“푸흡!”
“아 왜! 왜 웃어요! 아씨, 진짜아 괜히했어......”
다정이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뭐, 미튜브에서 보고 따라 한 건가.
이건 어쩔 수가 없다.
자동으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너무나도 예상하지 못한 공격이라서 그런가.
유행이 지나긴 했지만, 그래도 다정이가 하니까 되게 귀여웠다.
“아냐, 귀여워서 그래, 귀여워서. 아이 귀엽다~.”
“아, 진짜 다시는 안 해요.”
“왜, 여행 데려가 줄게. 합격합격.”
여행 이야기가 나오자 부끄러움에 몸을 비틀던 다정이가 다시 얌전해졌다.
“진짜요?”
“응. 근데 그렇게 여행 가고 싶었어? 나 솔직히 진짜 할 줄은 몰랐는데.”
다정이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그럼, 오빠가 자랑한다고 매일 사진을 20장씩 보내는데. 당연히 가고 싶죠.”
“흐음. 일리가 있네.”
내가 사진을 좀 많이 보내긴 했지.
매일 다정이랑 유정이 누나한테 사진을 엄청나게 보내며 톡을 나눴다.
“그런데 언제요? 오빠 막 100년 뒤에 여행 가자~ 이런 소리 하면 안 돼요. 알죠?”
내가 초딩도 아니고 그런 장난을 칠까.
날짜는 뭐, 되도록 다정이 공략을 마친 다음이 좋겠지.
여행을 가면 당연히 섹스가 뒤따라야 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다정이와 순애 섹스가 가능하거나, 섹스할 정도의 사이가 되면 가는 게 좋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다정이, 생일이 10월이라고 했지?
유정이 누나랑 다정이 공략을 모두 끝내고 자매덮밥 여행으로 다녀와도 참 좋을 것 같다.
“올해 안에는 데려가 줄게.”
“헤헤, 저 기억했어요?”
“이제 로또 사자. 오늘은 5천 원 살 거야 만 원 살 거야?”
“여기요. 5천 원어치만 살게요.”
나는 다정이가 준 돈을 받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케이. 빨리 사고 데이트해야지.”
“데, 데이트요?”
“그럼 데이트 아니야?”
“마,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베시시, 하고 수줍게 웃는 다정이.
나는 뒤로하고 나는 복권 판매점으로 향했다.
아. 귀여우니까 4등 당첨 용지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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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 델리아에서 함께 할 아르바이트생을 모집합니다. ]
파트타이머 부문
연령 : 20세 이상
성별 : 여성
학력 : 무관
우대조건 : 유관업무 경험자, 장기근무 가능한 분, 인근 거주자
담당 업무 : 매장 관리, 음료 제조, 고객 응대
시급 : 11,000원
복리후생 : 4대 보험, 유니폼 지급, 직원 할인 적용
근무 요일, 기간, 시간 : 협의 가능
2. 바리스타, 베이커리 부문
연령 : 20세 이상......
타닥타닥.
컴퓨터 앞에 앉아 한창 아르바이트 모집 사이트에 모집 글을 적는다.
내가 컴퓨터로 게임이나 야동 이외의 다른 걸 하게 되다니. 일단 컴퓨터를 켰다 하면 옆에 오나홀을 대기시켜 놓고 미연시를 실행했는데.
나도 히로인 어플 덕분에 많이 성실해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내 성실함을 방해하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수정이었다.
“우우~. 델리아만 편애한다아. 우우.”
귀여운 음성이 좌우에서 들려왔다.
자고로 작업할 때는 개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했는데, 수정이는 옆에서 꾸준히 나를 방해했다.
내 수정이가 악질이 되다니.
“진현이 나쁜놈. 평생 사랑해준다고 했으면서, 델리아만 편애한다아. 우우.”
입술을 내밀고 볼은 빵빵하게 부풀린 수정이.
수정이는 샤샤샥 빠른 움직임으로 내 왼쪽으로 갔다가, 오른쪽을 갔다를 반복하며 양 귀에 대고 말했다.
“카페 델리아, 이름 결사반대~.”
“......”
“편애 반대~. 우우우...... 아앗!”
참다가 못한 내가 수정이의 손목을 탁, 하고 낚아채자 수정이가 나를 살포시 바라보았다.
마주한 눈망울이 호숫가에 돌을 던진 것처럼 흔들렸다.
“그, 그래도 반대...... 뽀뽀해도 반대......”
“수정아 왜 그래. 카페 이름 나 혼자서 딱 결정한 것도 아니잖아.”
“그래도오. 왜 카페 이름이 델리아야아. 힝. 나느은......?”
수정이가 입술을 삐죽이며 말한다.
하긴, 질투가 날만은 했다. 나는 수정이를 꼬옥 안아주었다. 수정이는 얌전히 내 품에 안겨서 토닥임을 받았다.
그때 옆에서 델리아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후훗......”
“헐. 진현아 지금 저 웃음소리 들었지? 대박. 지금 비웃은 거야.”
“우리 착한 델리아가 비웃을 리가 없어.”
“와아, 진현이 진짜 델리아의 여우같은 면을 모르는구나. 편애봐...... 진짜로 힝. 난 질렸다 이거지.”
비운의 여주인공처럼 가련한 표정을 한 수정이가 내 품 안에서 앙탈을 부렸다.
나는 피식 웃으며 수정이의 볼을 쓰다듬었다.
“그럼 이렇게 하자. 다음에는 네 이름 들어가는 것도 만들어 줄게. 으음~. 뭐가 좋을까. 수정 PC? 아. 크리스탈 PC방? 어때? 괜찮다.”
“우움? 그건 좀 괜찮을 지도......?”
“얼마나 좋아. 그러니까 삐진 것 좀 풀어. 카페 델리아도 어감이 좋잖아, 어감이.”
수정이는 입을 오물거리며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입술을 내밀었다.
“뽀뽀해주면.”
“아까는 해줘도 싫다면서?”
하지만 당연히 나는 수정이의 입술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헤헤.”
“나 다시 작업할 게 델리아랑 같이 놀고 있어.”
“히. 이름 잊으면 안 돼?”
“오키.”
수정이는 내 품에서 벗어나 다시 델리아에게 갔다.
토요일 저녁.
다정이와 데이트를 마치고 돌아온 나는 수정이, 델리아와 함께 모여서 카페 이름을 궁리했다.
카페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으면서도, 또 중요했다.
어차피 카페의 간판과 카페 장소 자체에 히로인 어플의 아이템으로 버프를 걸 예정이기 때문에, 이름이 어떻든 사람들은 카페에 자주 들리게 되어있었다.
카페 이름이 똥통 카페, 테스형 카페, 빅자지 카페 같은 거라도 매출은 나오겠지.
아. 빅자지면 신고를 먹으려나.
하지만, 그래도 처음 오픈하는 카페고, 유정이 눈나가 일할 곳인데.
하물며 다정이나, 내게 임시 명함을 받아 간 보스턴의 그 포니테일녀를 포함해 여러 히로인이나 예비 히로인들이 놀러 올 곳이었다.
이왕이면 이름이 예뻐야 좋지 않겠는가.
그래서 예쁘고 어감이 좋거나 센스 있는 이름을 찾기 위해 수정이랑 델리아와 함께 이름을 고민해보았다.
뭐 발할라, 페로몬, 하모니, 삼정, 우사미, 아모레, 러브, 쉼터 등등 여러 가지 의견이 있었는데......
갑자기 델리아가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제 이름을 딴 델리아 카페는 어떤가요......? 라고 의견을 냈고, 의외로 괜찮은 어감에 곧바로 후보로 채택되었다.
카페 자체는 유정이 누나를 매니저로 내세울 생각이기 때문에, 나는 어떤 이름이 좋겠냐고 유정이 누나한테 5개의 이름 후보들을 보냈다.
물론, 누나도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달라고 했다.
그리고.
[ 유정이 누나 : 나는 작명센스가 구려서 Σ( ̄□ ̄;) 보낸 후보들중에는 카페 델리아가 제일 좋은 것 같아. ]
유정이 누나한테 그렇게 답이 온 것이다.
카페 델리아라고 하면 다른 히로인들이 질투할 수 있지만, 나중에 다른 히로인들에게도 그녀들의 이름이나 별명을 딴 무언가를 만들어주면 그래도 좋아할 것 같았다.
뭐, 좀 전에 말한 크리스탈 PC방이라든지.
[ 유정이 누나 : 그런데 델리아가 무슨 뜻이야? ]
이 질문에는 그냥 대답을 회피했다.
누나가 두근두근 비밀 연애라는 공략 스타일을 가지고 있고, 그런 성벽이 있긴 한데, 그렇다고 지금 바로 델리아나 수정이랑 이렇게 깊은 관계라고 말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기껏 높아진 호감도가 깎이는 수가 있다.
아마 두근두근 비밀 연애라는 공략 스타일이 생긴 것도 여동생 때문이 아닐까.
여동생을 아끼지만, 누나의 성향을 보면 열등감도 조금 가지고 있는 듯하다. 나를 여동생과 이어주고 싶은 마음과 도리어 뺏어서 가지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는 거겠지.
그 부분을 잘 파고들면 자매덮밥을 하는 것도 수월할 것이다.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 자매덮밥~. 으흥흥~. 으흥~.”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미래에 유정이 누나와 다정이를 따먹을 생각을 하고 모집공고를 적자, 손가락에 날개가 달린 듯 금방 다 적어졌다.
“끝났드아.”
공고를 올리고, 컴퓨터에서 눈을 뗀 나는 옆을 바라보았다.
수정이랑 델리아는 없었다. 아마도 둘이 블랙룸에서 이야기하는 중이겠지.
나는 휴대폰을 꺼내 톡에 들어갔다.
[ 다정이 : 헐. 오빠 대박. 4등 당첨 됨. 오빠 혹시 막 신의 손 그런 거 아니에요? ]
[ 다정이 : ( 사진 ) ]
피식.
사진에는 내가 고른 수동 번호에 4개의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귀욤귀욤한 다정이한테 답장을 보낸 나는 곧바로 유정이 누나한테도 톡을 보냈다.
[ 나 : 누나 공고 올렸어요. 면접 볼 때 누나도 와서 같이 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