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 https://t.me/LinkMoa
옆을 바라보니 델리아가 쓰게 웃고 있었다.
그래도 감각이 50이나 되니까 내가 이런 탁 트인 장소에서 수정이의 기척을 눈치챌 리 없는데.
아마도 델리아가 몰래 수정이한테 뭐 기척 없애는 마법이라도 걸어준 듯하다.
“우리 수정이, 질투해?”
“흥. 당연히 질투하지, 우리랑 여행 왔는데. 기껏 수영복도 고민해서 골랐는데......”
“흐. 이리 와. 오늘은 이제 톡 안 할게.”
뒤에서 수정이를 꼭 껴안자, 그녀가 움찔하고 놀라더니 이내 내 안에서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역시 치사한 진현이. 알았어.”
수정이는 내게 폰을 다시 돌려주었다.
솔직히 이렇게 뻔뻔스럽게 나가는데도 불구하고 수정이의 신뢰도가 계속 올라가는 게 의문이기는 했다.
그냥 사실대로 다 말해서 그런가?
◆ 현 상태
- [ 호감도 : 100 ]
- [ 신뢰도 : 95 ]
- [ 연분도 : 86 ]
- [ 성욕 : 61 ] [ 식욕 : 22 ] [ 피로 : 25 ]
어느덧 수정이의 신뢰도는 95까지 올라 있었다.
신뢰도가 100이 되면 어떻게 될까. 그것도 호감도처럼 100을 만들면 고정되는 능력치인가.
뭐, 델리아한테 물어보거나 직접 찍어 보면 알 것이다.
“델리아도 잘 놀았어?”
내 물음에는 수정이가 대답했다.
“응. 이제 쉬고 있겠데. 델리아가 역시 아까 아침을 너무 많이 먹었나 봐.”
내가 델리아를 바라보자 그녀는 나와 수줍게 눈을 마주쳤다.
델리아는 아침을 너무 많이 먹었다기보다는, 그냥 앉아서 내가 움직이는 것을 구경하는 게 더 좋을 뿐이겠지만 굳이 그 부분을 수정이에게 지적하지는 않았다.
“그럼 이제부터는 나랑 놀자. 수정아.”
“응!”
나는 수정이와 함께 바다에 들어갔다.
******
“와우. 저 남자 몸도 좋은데?”
언덕 위에서 해변을 바라본 지나가 휘유, 하고 휘파람을 불며 감탄했다.
입술을 혓바닥으로 요염하게 핥는 것이,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와 같은 모습이다.
예슬도 지나의 시선을 따라 남자 일행을 바라보았다.
예슬은 남자의 몸을 바라보고 살짝 감탄하다가, 이내 여성들의 몸매에 입을 벌렸다.
“진짜네. 근데, 와아~ 여자들도 몸매 진짜 좋다. 특히, 갈색 머리 여자는 수영복도 되게 예쁜데? 되게 섹시하다.”
“야. 그래도 몸은 내가 더 좋지 않아?”
“그래그래. 어련하시겠어.”
자신감 넘치는 지나의 말에 은주는 한숨을 내쉬었다.
몸이 좋고 나발이고.
은주는 팔짱을 끼고 지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너. 진짜로 가게?”
“응. 진짜지 그럼 가짜야? 이거 봐. 짜잔~.”
지나는 가방 안에서 수영복을 꺼내, 과시하듯 둘에게 보여주었다.
“미친...... 수영복은 또 언제 준비했어?”
은주는 지나의 수영복을 보고 질린 표정을 지었다.
“우리 밥 다 먹고 너희들 호텔 방에 들렸을 때. 때마침 지하에 가게가 있더라고. 이건 운명이다! 싶어서 거기서 얼른 사 왔지.”
“미친. 갈데 있다고 해서 어디 갔나 했더니, 수영복 사러 간거였구나?”
“정답~.”
“아니, 그런데 이 수영복...... 세상에. 너무 과하지 않아? 무슨 수영복이 이래? 와...... 옆 가슴 다 보이겠다...... 어우.”
은주는 이게 천 쪼가리인지, 아니면 수영복인지 구분도 안 되는 ‘무언가’를 보며 기겁했다.
이게 소문으로만 듣던 그 마이크로 비키니인가?
유두와 유륜.
그리고 그 옆으로 조금만 더 가려주고 나머지는 완전히 오픈되어 있었다.
진짜로 이걸 입는다고?
그냥 누드나 다름없는데.
옆에서 보던 예슬이도 얼굴이 빨개졌다.
지나는 은주와 예슬의 반응을 보고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었다.
“쯧쯧~. 이래서 처녀들이란. 과하다가 아니라 섹.시.하.다. 어? 애들도 아니고~.”
“진짜 너는 대단하다...... 아니, 그리고 우리 애초에 해수욕장이 아니라 수족관 가기로 했잖아.”
은주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수족관은 너희 둘이 다녀와. 오늘만 봐주기로 했잖아? 미안~. 그런데 나 저 남자 못 따먹으면 인생이 없는 거야. 자지 헌터 지나의 이름이 운다고.”
자지 헌터는 에휴.
픽업에 아주 목숨을 걸었구나.
아니, 그냥 예쁜 금발 여자를 봤다고 알려주기만 했을 뿐인데 대체 일이 어쩌다 이렇게 됐지?
은주는 머리가 아파옴을 느끼면서도, 그래도 이게 지나지, 하고 납득할 수 있었다.
요 4년 동안 지나를 봐오면서, 이랬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게다가 신기한 건. 또 매번 픽업에 성공했다.
한 번 남자와 섹스를 마친 다음에는, 자기만의 기준으로 남자를 평가해 그대로 원나잇으로 끝낼지 섹프로 남길지 스스로 정하는 미친년이 바로 지나였다.
기준도 빡빡해서, 통과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하아. 그래도 너만 두고 수족관 가기는 좀 그런데...... 아! 예슬아, 지나가 뻘짓하는 동안 우리는 미술관이나 갔다 올까? 오늘 특별 전시한다는 말도 들었던 것 같은데.”
“오. 그거 좋다. 여기서 그리 멀지도 않지?”
“응.”
갑자기 스케줄이 바뀌어도, 보스턴에는 볼거리가 꽤 많았기에 다행이었다.
은주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지나를 바라보았다.
“뭐...... 그래. 오늘만 봐주는 거야. 아, 그리고 픽업 실패하면 바로 연락하고.”
은주는 휴대폰을 탁탁 치며 지나에게 말했다.
“오케이~. 근데 내가 실패할 리가 없잖아. 상식적으로. 픽업 현황 보고도 해줄게~. 남자의 테크닉 수준이 어떤지.”
“그건 필요 없는데......”
“에이, 너무 그러지 말고. 은주도 언젠가 애인 만났을 때 섹스를 테크니컬하게 즐겨야지. 처녀라고 수동적으로 ‘리, 리드 잘 해주세여......’ 이러면 안 돼. 남자를 휘어잡아야 한다고. 솔직히 지금까지 내가 알려준 지식들 도움 될 것 같지 않아?”
“......그렇긴 한데.”
은주의 반응에 지나가 음흉하게 웃었다.
“마침 한국 남자인데, 물건이랑 테크닉 괜찮으면 은주 너한테도 섹스 알려달라고 부탁해 줄까? 국적도 같으니 거리낌 없잖아.”
“미친. 됐거든. 빨리 가기나 해.”
은주가 기겁하며 고개를 저었다.
“흐흐. 언제까지 처녀로 살려고. 아무튼, 알았어. 저 남자는 대물일까 소물일까~. 내 생각에는 적당한? 아주 작지는 않고, 그래도 몸 보니까 중간 정도 크기일 것 같은데...... 뭐, 금발녀 애인 가로채는 기분으로 한번 즐겨야지.”
“하아...... 그래그래. 알아서 해라.”
“그럼 진짜로 간다~.”
“응.”
지나는 그렇게 자신만만한 미소를 남기며 해수욕장으로 떠나갔다.
은주는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지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남자를 바라보았다.
‘사이 되게 좋아 보이는데......’
남자는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같이 여행 온 여자와 해변에서 물을 뿌리거나 스킨쉽을 하며 놀고 있었다.
저절로 딱하다는 표정을 지어졌다.
솔직히, 지나에게 찍히면 별로 좋은 꼴을 못 본다.
지나와 섹스를 즐긴 다음에, 제발 자신과 사귀어달라고 매달리는 남자도 여럿 보았지.
지나의 유혹에 패배해 관계가 파탄 난 커플도 많다.
솔직히 말해서, 커플에게 지나는 일종의 재앙과 같은 존재였다.
‘미안해. 내가 예쁘다고만 안 했어도.’
스와핑을 즐기는 일부의 커플을 제외하면, 남자가 바람을 피우는 꼴이니까.
그렇게 해서 커플이 깨지거나, 사이가 멀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몇 남자는 여자친구에게 차인 다음 지나에게 매달리는데, 지나는 그런 걸 언제나 단칼에 거절했다.
지나는 픽업은 픽업으로 깔끔하게 끝내고, 한 번의 관계 뒤에는 바로 등을 돌리는 스타일이다.
왜 먼저 유혹해놓고 떠나냐고 해도 소용이 없다.
뭐, 남자 쪽에서도 이편이 깔끔하다고 꽤 좋아하는 사람도 꽤 있지만, 적어도 커플이 있는데 남자한테 대시해 기어코 육체관계를 가지는 게 좋다고는 할 수 없다.
몇몇 대물이나 압도적인 테크닉을 가진 남자와는 섹프로 지내며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육체관계를 즐긴다고는 하는데, 그마저도 마음을 주지는 않는다고 했다.
의외로 지금까지 진지하게 남자에 대해 진정으로 사랑을 느껴본 적도 없다고 했지.
결과가 안 좋으면 지금 해변에서 놀고 있는 저 남자와 여자도, 괜히 오붓하게 여행에 왔다가 관계가 파탄 난 다음 돌아갈 수도 있었다.
은주는 미리 남자에게 애도를 표했다.
‘그나저나 저 남자...... 으. 진짜로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한데...... 뭐지?’
왜 이리 익숙한 느낌이 드는 걸까.
남자의 얼굴을 보면 어디서 본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자꾸 들었다. 그런데 생각은 안 난다.
한국 남자 중에 아는 사람은 없는데, 어디 사진으로 봤던 배우나 뭐 그런 사람인가?
뭔가 떠오를락 말락 할 그때, 예슬이가 옆에서 말을 걸었다.
“은주야?”
“아? 어어...... 왜?”
“그냥. 멍하니 있는 것 같아서. 우리도 이제 가야지.”
“아, 그래. 응. 우리도 슬슬 가자.”
은주는 마지막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여자 둘과 손을 붙잡고, 뒤에서 껴안꺼나 하며 바다에서 즐겁게 웃고 떠들고 있었다.
“......역시 잘 모르겠네.”
은주와 예슬은 그렇게, 몸을 돌려 미술관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