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 https://t.me/LinkMoa
델리아가 선택한 양식 가게의 음식은 나름대로 입맛에 잘 맞았다.
공항 안이라서 그런가, 기존 음식점들보다는 가격이 더 비싼 느낌이기는 했다.
하지만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오물오물 파스타를 씹는 델리아를 보면, 역시 가격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애초에 비싼 만큼 맛이 더 좋기도 했고.
“어떻게, 시간 많이 남았는데 우리 미리 안에 들어가 있을까?”
“응. 그러자.”
아직 비행기를 타기까지 2시간 가까이 남아 있었지만, 우리는 보안 검사를 받고 게이트가 있는 구역으로 발을 들였다.
환전은 미리 1천 달러씩 해서 현금으로 수정이와 델리아에게 각각 나눠준 상태였다.
자칫 부족할 수도 있는 금액이지만, 어차피 해외에서도 마스터카드로 다 계산이 되기 때문에, 현금은 그다지 쓸 일이 없었다.
수정이는 원래부터 마스터카드를 가지고 있었고, 델리아도 신분증을 만들자마자 그녀 명의의 통장과 함께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나는 델리아의 통장에 5백만 원을 입금해 주었다.
카페 인테리어가 다 끝나고 본격적으로 오픈한 뒤 델리아를 비서로 고용하면, 그때부터 월급을 팍팍 주면 되겠지.
어차피 비서 일보다는 눈요기 및 섹스담당이 되겠지만......
“진현아. 뭐 가지고 싶은 거 있으면 사줄게. 한번 골라봐. 델리아도 사줄까? 이거 어때?”
수정이는 나와 델리아를 끌고 각종 면세점을 돌아다니며 쇼핑 모드로 들어갔다.
델리아도 수정이를 곧잘 따라다니며, 같이 뭐가 좋고 어떻고 하면서 의견을 나눴다.
“나는 게이트 앞 의자에 앉아있을게.”
“왜에에~ 같이 구경하자아.”
“쇼핑, 노잼......”
“흥.”
수정이는 입술을 삐죽이더니 그럼 델리아라도 같이 가자 하고서, 둘이서 공항 면세점들을 돌아다녔다.
뭐, 정작 20분 정도 뒤에 나타나더니, 살만한 게 별로 없다며 내 옆에 엉덩이를 딱 붙였지만 말이다.
수정이랑 델리아는 내게 달라붙은 채로 각자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대단한 미녀 둘이 양쪽에서 한 남자의 어깨 위에 머리를 기대고 있는 모양새라, 근처의 사람들은 힐끔힐끔 우리를 쳐다보았다.
나는 웹소설을 찾아보다가 옆에서 수정이가 깔깔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뭐 봐?”
수정이를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묻자, 그녀가 이어폰 한쪽을 빼면서 웃었다.
“응? 아. 미튜브.”
수정이는 슬쩍 휴대폰을 돌려 내게 화면을 보여주었다.
화면 속에는 한 여자 스트리머가 광기에 젖은 표정으로 FPS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진현이도 볼래?”
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수정이는 이어폰 한쪽을 내 귀에 살포시 꽂아주었다.
[ 오케이~ 커트! 으하핳! 버러지들~! 다 뒤져라앗~~!! 아하핳핳핳! 개~모~태~~ 진짜로 쉽다, 쉬워~ 세상에서 게임이 제일 쉽네~~ ]
‘헐.’
이어폰을 꽂자마자 하이톤의 음성이 버럭버럭 들려왔다. 광기에 젖은 건 비단 표정뿐만이 아니었다.
‘얼굴은 되게 예쁜데.’
핑크색 머리카락은 어깨 아래까지 내려오고, 앞머리도 상당히 풍성했다.
흔히 조명과 보정빨이라고 해야 하나.
그걸 제외하고 보더라도 이목구비 자체가 굉장히 뚜렷했다.
어여쁜 콧날과 사랑스러우면서도 앙칼진 눈매는 절로 남심을 자극했다.
목소리도 참 좋은데...... 대체 저 광기에 젖은 컨셉은 뭐지?
내 혼란스러운 표정을 봤는지 수정이가 킥킥, 하고 웃었다.
“얘가 걔야.”
“걔? 누구?”
“전에 진현이 네가 질투했던 사람.”
내가 질투한 사람?
고개를 갸웃하자 수정이가 내 옆구리를 콕, 하고 찔렀다.
“왜 전에 있잖아~. 우리 남산타워 데이트 갔을 때 피시방에서.”
“피시방에서? 아아......! 그 채팅으로 너 개 못한다고 했던 사람?”
“......나 잘하거든.”
“그래그래. 아무튼, 그 사람. 반포동 교회오빠?”
닉네임이 워낙 강렬해서 외우고 있었는데, 수정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얘 되게 잘 나가. 구독자도 거의 100만 다 돼간다?”
“헐. 수정이 20배네.”
“맞아. 근데 방송 엄청 열심히 하니까. 얼굴도 이쁘고, 충분히 그럴만해.”
확실히 이 핑크머리 스트리머는 미튜브 영상 내내 텐션이 굉장히 높았다. 영상편집도 되게 웃기고 깔끔하게 잘 되어있는 느낌이었다.
빠져들 듯 영상을 보자, 어느덧 5분이 훌쩍 지나 영상이 끝나있었다.
“오. 댓글도 써주네?”
“응. 얘도 내 영상에 맨날 댓글 남겨주거든.”
수정이는 댓글을 남긴 다음, 뭐 다른 볼 동영상이 없는지 찾았다. 어차피 비행기를 타려면 한참 남았기에, 나도 계속 수정이의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그때, 내 시선을 사로잡는 한 동영상이 나타났다.
“잠깐만. 이건 뭐야?”
“응? 뭐?”
“이거, 이거.”
썸네일 어그로가 미쳤다.
그랜드 피아노 옆에 섹시한 몸매를 한 여성이, 무슨 코스프레 의상을 입은 채로 서 있었다.
노출도가 많은 의상은 아니었는데, 여성의 몸매 자체가 워낙 좋았기 때문에 남자라면 클릭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묘한 마력이 담겨 있었다.
“아. 이 사람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OST 같은 거 커버하는 미튜버인데, 항상 코스프레 하고 연주하더라.”
“보자.”
“응?”
“보자.”
“......”
수정이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이내 영상을 클릭했다.
영상 속 여성은 말 그대로 그냥 코스프레를 한 채로 피아노를 연주했다.
피아노 실력은 또 아마추어인 내가 듣기에도 굉장해서, 나와 수정이는 빠져들 듯 음악을 감상했다.
“되게 잘 친다.”
“응. 이 사람 완전 초신성이야. 영상 올리기 시작한 지 1년도 안 됐는데, 벌써 구독자가 50만 명을 넘어. 코스프레를 해서 조회수가 되게 높은데, 피아노까지 잘 쳐서 그런 것 같아.”
“근데 얼굴은 공개 안 하네?”
몸매도 좋고 피아노도 잘 친다.
다만, 아쉬운 점은 가면을 썼다는 것. 그래서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응. 맨날 가면 쓰고 나오더라. 피아노뿐 아니라 바이올린, 플롯, 클라리넷도 부는데, 한 번도 얼굴 공개를 안 했어.”
피아노만 치는 영상에서는 얼굴 전체를 가면을 쓰고, 플롯이나 클라리넷 등 입을 이용해야 하는 영상에서는 입 부분만 나오고 코 위로 가려주는 가면을 썼다.
턱선과 입만 봐도 상당한 미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디 보자 채널 이름은......
‘EJ Music?’
구독자는 62만.
확실히 시작한 지 1년도 안 됐다고 하는데, 그야말로 파격적인 구독자 수였다.
나도 이따가 구독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한 채, 나는 수정이에게 다시 이어폰을 돌려주었다.
******
“인천공항에서 시애틀 터코마 국제공항으로 가는 항공편, OZ271 탑승 시작합니다~!”
여성 승무원이 소리치고,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우리 이거 타면 되는 거지?”
“응. 1회 경유라서 시애틀을 거쳤다가, 보스턴까지 가는 거야.”
수정이랑 델리아가 선택한 여행은 미국여행이었다.
사양하지 말고 여행지를 고르라고 하니까, 정말로 사양은 1도 없이 제일 비싼 여행지를 덥석 하고 골랐다.
‘비행기 푯값만 천만 원 넘는 거 진짜 실화냐......?’
퍼스트 클래스가 아니라 비즈니스 클래스임에도, 세 명분의 표를 끊으니 가격은 내 상상을 아득히 초월했다.
마음 같아서는 이왕 비싸게 가는거 퍼스트 클래스를 예매하고 싶었는데, 자리가 만석인지 예매가 안 되어서 어쩔 수 없이 차선책으로 비즈니스 클래스를 골랐다.
“와. 자리 되게 좋다아. 이게 진짜 퍼스트 클래스가 아니라고? 비행기 표 얼마야?”
“너 들으면 기절할걸.”
사실 비즈니스 클래스만 돼도 이코노미 클래스의 자리보다는 훨씬 좋고 넓었다.
굳이 퍼스트 클래스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쾌적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나도 지금껏 이코노미 클래스 밖에 타보지 못했던지라, 비즈니스 클래스 좌석에는 약간 신세계 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진현아. 우리 같이 사진 찍자.”
“아, 그래.”
찰칵.
수정이는 신나서 휴대폰으로 셀카를 찍거나, 함께 사진을 남겼다.
요즘에는 데이트하거나, 요리를 만들거나.
뭘 할 때마다 나랑 같이 사진을 찍는 게 습관이 되었다. 덕분에 태생적 아싸였던 나도 이제 카메라 플래시가 꽤 익숙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