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화 〉# https://t.me/LinkMoa
나는 의지로 수정이한테 답변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하면 답변이 가능한지, 머릿속에 근본적으로 떠올랐다.
뭐, 저번에도 한 번 해봤지만.
답변하는 건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가능했다.
『 ㅋㅋㅋㅋ 아, 웃겨. 어떻게 할까아~? 부모님한테 말하라고 할까~? 말까~? 으히히. 』
깔깔거리며 웃는 장난스러운 메시지가 머릿속을 울렸다.
우리 수정이.
아주 그냥 즐기고 있네.
예화는 수정이가 지금 자신의 톡을 확인하고, 충격에 빠져있느라 아무 말도 못 하는 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각오하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도 겉으로는 당황하고도 긴장한 표정을 유지하면서, 수정이와 마저 메시지를 나눴다.
『 사랑해 수정아. 세상에서 제일~. 』
내가 답변을 보내자, 이번에는 조금 느리게 답장이 날아왔다.
『 진짜아...... 내가 거짓말이라도 속아준다. 그런데 진현아, 너 예화한테 관심 있다고 했지? 』
『 응? 있지. 매우 많이. 』
안 그래도 공략하고 싶었는데, 오늘 같이 밥을 먹으며 미모를 보니 공략하고 싶은 마음이 더 올라갔다.
저 예쁜 얼굴......
앙칼진 태도......
도도함......
언젠가는 반드시 쥬지로 교육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수정이한테 또 메시지가 왔다.
『 그럼 내가 도와줄까? 』
『 어? 도와준다고? 그럼 나야 좋은데, 갑자기 왜? 질투할 줄 알았는데. 』
언젠가 예화를 공략할 때가 오면, 나는 수정이가 고분고분하기보다는 오히려 질투 때문에 방해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걸 도와준다고?
『 응. 질투야 나는데, 어차피 진현이 너어, 내가 안 도와준다고 해도 예화한테 손대는 변태잖아. ㅡ.ㅡ 그럼 그냥 나 모르게 말고, 내가 알고 있는데 손대는 편이 더 좋아.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예화도 너무 도도해. 평소에 나랑 놀때도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너랑 섹스해서 참맛을 보면 더 행복해하지 않을까? 가는 모습도 좀 보고 싶고...... 』
수정이는 200자를 아주 알차게 꽉꽉 채워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잠시만.
섹스의 참맛?
행복?
가는 모습?
대체 이 암컷타락적인 발언은 무엇인가.
수정아 너도 나와의 섹스에 완전히 중독되어 버렸구나.
『 아무튼, 도와준다면야 나야 너무 좋지. 그런데 어떻게 도와주게? 』
『 그건 비~밀, 일단 지금은 이 상황을 넘겨야 하니까 연기 좀 할게? 바람피워도 여자친구가 아무렇지 않아 하는 건 이상하잖아. 일단은 슬퍼하다가 재결합하는 식으로 가자. 』
『 응. 그래 수정이 편한 대로 해. 』
“지, 진현이가......? 바람이라고......?”
나와의 메신저가 끝나자 마자, 휴대폰 너머로 충격과 실의에 빠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연기 개 잘해.
예화는 어느덧 휴대폰 볼륨을 높이고 나까지 들을 수 있도록 휴대폰을 테이블 가운데에 놨다.
스피커 모드는 아니었기 때문에, 다른 자리에까지는 들리지 않았다.
예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놈이 다 너 이용하려고 한 거야. 충격적이겠지만, 수정이 네 마음이 더 커지기 전에 알아서 다행이다. 사귄 지 3주도 안 됐는데 이렇게 바람피울 정도면 진짜 최악의 쓰레기인 놈이야.”
최악의 쓰레기......
『 이미 마음은 다 커졌는데 흐핳. 』
『 야. 이걸로 오늘치 메신저 7번 다 끝났다. 아무튼, 너한테 맡길게? 수정이 파이팅~! 』
이제는 사랑의 메신저가 끝나서 수정이로부터 답은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휴대폰 너머로 그녀의 열연이 들려왔다.
수정이는 막 충격받았다는 말투로, 그럴 리 없다고 부정하다가도 예화의 말과 논리에 어느정도 긍정하는, 아주 비련의 여주인공 연기를 했다.
방송하더니 연기도 일품이었다.
“진현이, *흐윽* 이 나쁜 자식. 다른 여자나 만나고.”
이건 진심인가?
아무튼, 뭐.
예화는 수정이의 말에 긍정해주며, 침착하게 말했다.
“수정아 이거 너희 부모님한테도 말해야 해. 원래는 아르바이트하던 젊은 남자가 갑자기 카페 창업이라니? 자금 문제도 그렇고, 분명 너희 아버님께서 도와주신 거 같아.”
그건 내 돈 맞는데, 로또 당첨돼서.
뭐, 일단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그나마 자연스럽기는 하다.
“앞으로도 기생할 수도 있어, 다시는 이런 짓 못 하도록-.”
“으으응~. 말하지마, 예화야.”
“어? 왜......?”
“그래도 한순간 실수였을 수도 있는데...... *훌쩍* 나는 진현이 믿어...... 내가 직접 진현이랑 만나서 이야기하고 결정할게...... 사진이랑 녹음도 다 지워줘......”
수정이의 말에 예화는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수정아. 이런 놈은 용서하면 안 돼. 칼같이 잘라야 한다고.”
진짜 매우 맞는 말이다.
나는 속으로 백번 천번 예화의 말에 고개를 주억였다.
“그래도오...... 이건 나랑 진현이 문제잖아? 알려준 건 고마운데...... 우리끼리 해결할게. 그리고 카페 창업은 다 진현이 돈 맞아아.”
“그, 그건 그러면 다행인데......”
그런데도 예화는 못마땅하고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쳤다.
계속해서 설득을 진행했지만, 수정이의 확고한 반대에 예화는 이내 끄으응, 하며 앓다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알았어. 수정아. 이건 너한테 맡길게.”
******
“수정이가 착해서 봐준 줄 아세요. 쯧...... 음식 계산은 제가 하고 나갈게요. 그쪽한테 준 20만 원, 아빠가 준 돈이지만 이제는 그쪽 거니까요. 하아, 얻어먹기도 싫네요.”
장예화는 나를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흘기더니, 내 앞에서 사진과 녹음을 다 지운 다음 쿵쿵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흐음.
어찌어찌 해결은 됐는데......
나는 반대쪽 접시를 바라보았다.
아깝네.
장예화가 먹다 남긴 토마토 샐러드와 함께 그녀의 포크가 눈에 들어왔다.
식욕과 동시에 변태적인 성욕이 끌어올랐다.
나는 접시를 내 쪽으로 해서 예화의 포크로 토마토 샐러드를 냠, 하고 먹은 다음 포크를 빨았다.
“아, 내 정신 좀 봐. 손수건을 두고......”
“아.”
“아......”
아, 젠장 실화냐......?
장예화는 손수건을 챙기고, 이번에는 정말로 짐승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본 뒤에 밖으로 나갔다.
말 한마디 없었다.
“인생.”
나는 휴대폰을 켜서 히로인 어플에 들어갔다.
장예화.
그녀의 전체적인 능력치를 볼 수는 없지만, ‘편법’으로 호감도와 신뢰도는 확인할 수 있었다.
인물, 서브 히로인, 일반 히로인을 등록할 때 기본적인 프로필이 나오기 때문이다.
나는 일단 서브 히로인에 들어가서 예화의 프로필을 확인했다.
예화는 일반 히로인으로 등록할 생각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등록할 수는 없었다.
[ 이름 : 장예화 ]
[ 나이, 성별 : 22세, 여성 ]
[ 성향 : 중립, 기회주의자, 노력가, 예술가 ]
[ 직업 : 임대 사업자, 대학교 휴학생 ]
[ 호감도 : 04 ] [ 신뢰도 : 03 ] [ 연분도 : 14 ]
“와......”
이렇게 낮은 호감도와 신뢰도는 생전 처음 본다.
그냥 우연히 지나치다 마주한 초등학생도 이것보다는 높지 않을까. 수정이도 처음에 호감도가 8~9였던 걸 생각하면, 가히 엄청난 수치였다.
그래도 0이나 1이 아닌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나.
뭐, 어차피 낮은 호감도와 신뢰도는 코인으로 올리기 쉬우니까......
하지만 예화는 어떻게 공략해야 할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그래도 수정이가 도와준다고 했지.’
일단은 그래.
델리아, 다정, 유정의 공략부터 완벽하게 끝내자.
나는 음식을 마저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내가 너무 오지랖을 부렸나?”
예화는 거리를 걸으며 생각에 빠졌다.
절친 수정이.
그리고 바람을 피운 쓰레기.
수정이와 그 남자가 잘되고 있는데, 괜히 관계를 비튼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뒤늦게 살짝 들었다.
연애에 관해서는 잘 모르니까.
‘아니야. 분명 잘한 걸 거야.’
하지만 생각은 금방 들어갔다. 역시 좀 더 따끔한 맛을 보여주었어야 했는데...... 수정이가 그 남자랑 둘이 만났을 때 심한 짓을 당하기라도 한다면?
‘에이 설마.’
수정이네 아버님까지 만났는데, 그런다면 정말로 정신이 나간 것이다.
뭐, 맨정신으로는 바람을 피우지 않겠지만......
“수정이는 너무 착해서 탈이야.”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달라.
그게 수정이가 내린 결론이었다. 어쩔 수 없이 흔적들은 모두 지웠다. 수정이의 말 대로 이건 둘의 문제이기도 하고.
‘컴퓨터에 남은 백업 사진이 있긴 하지만......’
그건 지울 생각이 없었다.
수정이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 달라고 했으니, 아무에게도 말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남자가 자신에게 허튼짓을 할지도 모르니까 보험은 가지고 있어야지.
‘나도 남자 잘 만나야 하는데.’
예화는 미래에 자신이 누구와 만나리 상상해 보았다.
역시, 감도 오지 않았다.
눈이 높아도 너무 높아서 그런가.
얼굴도 잘생기고, 키도 크고, 목소리도 좋고, 무엇보다 그냥 자신보다 능력이 훠얼~씬 더 뛰어난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지할 수 있고, 모든 걸 주고 맡길 만한 그런 사람.
‘있냐?’
없네.
‘뭐, 언젠가는 찾아오겠지......’
억지로 눈을 낮출 생각도 없었다.
일단은 작곡의 꿈.
오늘은 기분이 싱숭생숭하지만, 그 덕분에 영감이 조금 떠오를 것 같다.
예화는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