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화 〉# https://t.me/LinkMoa
장예화?
오늘 예화네 아버님을 만나 카페 장소에 대한 조언을 받기로 한 건 맞다. 그런데 거기에 설마 예화가 직접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일단은 싱긋 웃는 표정으로 인사해오는 예화의 모습에 나 또한 마주 웃으며 인사했다.
“아, 예화씨 안녕하세요?”
“네, 오래간만이네요~.”
그야말로 청아하고도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장예화를 마지막으로 본 건 내가 수정이를 처음 히로인으로 만든 날이었지. 수정이의 가슴에 인연의 실을 꽂을 때, 그녀가 함께 내려왔었다.
“그러게요. 한 한 달 만인가요?”
“네, 그쯤 된 것 같네요. 아, 여기 앉으세요. 오늘 일찍 오셨네요?”
무엇하나 나무랄 곳 없는 이목구비에 청순미가 넘치는 미인.
델리아와 비교해도 꿇리지 않는 완벽에 가까운 여인의 미소였다.
예화는 검은색 생머리를 찰랑거리며, 맞은편의 빈자리를 가리켰다.
“10분 정도 일찍 도착하는 건 당연한 거죠. 그보다 예화씨는 여기 어쩐 일로......?”
예화는 우아한 움직임으로 커피를 쪼옥, 하고 빨아 마셨다. 앵두 빛 입술이 참 매력적으로 번들거렸다.
“오늘 ‘수정이 남자친구’분께서 카페 개점 장소를 알아본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평소에 카페를 많이 다니는지라, 좀 도움을 주려고 따라왔어요.”
“아하.”
예화는 유독 ‘수정이 남자친구’라는 단어를 강조해서 말했다.
흐음.
아무래도 수정이랑 예화가 친하고, 아버님들끼리도 안면이 있는 사이니까. 내가 수정이와 사귀는 것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예화씨 아버님께서는 아직 안 오셨나요?”
“아뇨. 아~ 마침 저기 오네요.”
나는 예화의 시선이 가리키는 끝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주스 두 잔과 조각 케이크 몇 조각을 들고 오는 한 깔끔한 인상의 중년 남성을 볼 수 있었다.
남자는 예화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나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어? 자네가 진현인가? 정훈이가 소개해준 수정이 남자친구.”
정훈은 수정이네 아버님의 이름이었다.
그나저나 수정이 남자친구라니. 아무래도 수정이네 아버님이 나를 그렇게 소개한 모양이다.
나는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네. 맞습니다. 천진현이라고 합니다.”
“아~ 맞구나! 그래. 만나서 반가워, 나는 장찬규라고 하네.”
장찬규라고 자신을 소개한 중년 남성은, 굉장히 활동적으로 보이는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굉장히 젊어 보였다.
수정이네 아버님보다는 덩치가 살짝 작았지만, 키는 비슷했고 마찬가지로 옷 위로도 몸이 좋다는 것이 느껴졌다.
둘이서 같이 헬스클럽이라도 다니는 건가......?
의심이 들 정도.
인사를 위해 맞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이 굉장했다.
“오. 자네도 운동을 좀 하나 본데? 몸이 좋아.”
“하하. 감사합니다.”
예화의 아버님은 내 몸을 훑더니 무언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일단 첫인상의 호감도 자체는 괜찮은 것 같다.
언젠가는 예화도 공략할 생각이니까...... 뭐, 계속 등급 때문에 못 하고 있기는 한데. 일단은 아버님과도 착실하게 호감을 쌓아 둬야지.
“자, 자리에 앉지.”
“아, 네.”
나는 예화의 맞은편에 앉았고, 예화의 아버님은 예화의 옆자리에 앉았다.
아버님은 가지고 온 음료를 하나 집더니, 내게 넘겨주었다.
“마침 오고 있다고 해서 주문했는데, 딱 맞게 나왔어. 이게 여기 시그니쳐 음료인데, 한번 마셔봐. 패션후르츠 주스야.”
“네, 감사합니다.”
어서 마셔보라는 눈빛을 하는 예화의 아버님에, 나는 쪼옥 하고 빨대로 주스를 빨아들였다.
시원하면서도 달콤한 망고의 맛.
톡 쏘는 살짝 시큼한 맛도 같이 올라왔다.
“맛이 어떤가?”
“네, 달콤하고 맛있네요. 망고 주스인 듯한데......”
“그렇지? 그 주스가 하나에 4천 원 돈이야. 요즘 음료값이 오르고 있어서 싼 편은 아닌데, 그렇다고 아주 비싼 편도 아니지.”
예화네 아버님은 가방에서 서류를 꺼냈다. 내가 수정이네 아버님한테 준 계획서였다.
“자네가 작성한 계획서는 나도 읽어봤어. 보니까 음료의 효능이랑 큰 매장으로 승부할 생각인 듯한데, 여기 이 매장 보이지?”
“네.”
“작년에 오픈해서 반짝하다가 지금은 사장이 가져가는 돈이 달에 300이 조금 넘을까 말까야. 자리가 안 좋은 것도 아니고, 큰돈을 투자해서 오픈한 것치고는 빈곤한 성과지.”
달에 300.
그 정도로 벌면 충분히 많이 버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히로인 어플을 얻기 이전에는.
“카페 시장은 명백히 블루오션이 아니야. 그런데도 할 마음이 충분하다면, 내가 최선을 다해 알아본 괜찮은 자리들을 소개해주지.”
지금은 주식을 조금만 만져도 일에 300보다 훨씬 벌 수 있다.
애초에 내가 카페를 하는 목적은 ‘하렘’을 위한 것도 크니까.
예화네 아버님은 마지막으로 적당히 발을 뺄 여지를 주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할 마음은 충분합니다. 장소만 잡으면, 오픈에 필요한 다른 준비들은 많이 해뒀습니다.”
어제는 하루종일 델리아의 무릎베개를 받으며, 함께 카페를 오픈하면 무슨 아이템들을 살지를 미리 정해두었다.
솔직히 아이템은 안 들어오고 델리아의 허벅지의 중독적이면서도 야릇고소(?)한 냄새만 뇌리에 남았지만, 뭐 어때.
다 델리아가 기억하고 알아서 해줄 것이다.
벌써 잉여인간이 되는 듯한데......
워낙 좋은 아이템들이 많아서, 히로인 어플 상점의 도움이 있다면 카페 건은 성공하기 싫어도 잘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 그렇다면...... 일단 여기는 어떤가?”
“여기라면, 이 카페 말씀이십니까?”
“음. 이 카페에서 만나자고 한 것도 다름이 아니라, 자네에게 보여주려고 한 거야. 이 지점도 얼마 전에 사장이 장사를 접을 생각을 하고 내놓은 지점이거든.”
나는 카페를 둘러보았다.
적당한 크기의 카페였다.
“......내부가 조금 더 컸으면 좋겠습니다.”
“계획서에도 그렇게 적혀 있긴 하던데, 정말 처음부터 그렇게 많은 금액을 투자해 크게 하려고?”
“네, 가능하다면 안쪽에 사무실도 하나 차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층이나......”
내 말에 예화네 아버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알았어. 계획서에 적어둔 만큼의 자금은 확실히 있겠지?”
“물론입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하. 하긴, 정훈이가 그렇게 칭찬을 하던데, 그 깐깐한 수정이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니 내 의심하듯 물어봐 미안하네.”
예화네 아버님이 호쾌하게 웃었다.
그런데, 왜인지 수정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부분에서 예화의 눈이 가늘어졌다.
“......?”
내가 예화를 쳐다보자, 그녀는 금방 표정을 원래대로 되돌리며 싱긋 웃었다.
진짜 예쁘네......
“일단 마저 먹고, 슬슬 돌아다니도록 하지.”
“네.”
“예화 너도 기껏 따라왔으니까 의견을 아끼지 말고, 알았지?”
“응. 당연하지~.”
음료와 조각 케이크를 금방 해치운 나는, 예화네 아버님을 따라서 많은 장소를 방문했다.
걷거나 버스를 타거나 하면서 근방 동네를 돌아다녔는데, 역시나 사람들의 시선은 죄다 예화에게로 쏠렸다.
대략 20곳이 넘는 장소를 드나든 끝에, 다행스럽게도 마음에 쏙 드는 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
꽤 괜찮다 싶은 장소는 몇 곳, 나쁘지 않다 싶은 장소 몇 곳. 그중에서 뭘 고를지 고민하던 찰나, 마지막으로 방문한 장소가 내 마음을 완벽하게 사로잡았다.
1층과 2층의 복층 구조로 된 음식점.
음식점을 개조해 카페로 만들면 딱 좋을 것 같은 장소였다. 행운추적자로 보아도 황금빛이 넘실거렸다.
지금은 영업을 중지했는지, 먼지만 날리고 있었지만...... 다음 임대자를 찾는 듯했다.
내가 바로 들어가면 딱 좋겠지.
1층, 2층의 복층 공간은 충분하고 넘칠 정도로 넓었고, 홀을 아주 알차게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에 더해 2층 바로 옆에는 때마침 자리를 비운 상담소가 하나 있었다.
상담소까지 개조해 같이 먹는다면, 카페와 연결된 개인 사무실을 넣는 것 또한 가능할 것이다.
흐흐.
벌써부터 내게 커피를 가져다주는 유정이 누나를 사무실에서 희롱할 생각에 입꼬리가 천장까지 올라갔다.
사무실은 그래도 좀 큼지막하게 만들어서, 다정이도 거기서 공부나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하자.
유정이 누나를 몰래몰래 희롱하면서, 옆에서 다정이랑 꽁냥거리면......?
‘완벽하다.’
나는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여기로 할 텐가?”
“네. 마음에 쏙 듭니다. 생각한 대로의 이상적인 구조네요.”
“흐음. 인테리어 가격은 상당히 많이 들 텐데......?”
“그 정도야 생각했던 바입니다. 덕분이 좋은 곳을 알아갑니다. 감사합니다.”
“아냐, 뭐. 나야말로 고맙지. 덕분에 정훈이한테 좋은 술 한번 얻어먹게 생겼어. 흐흐.”
낮게 웃는 예화네 아버님은 내 어깨를 두드리더니, 이내 시계를 확인했다.
“그럼 나는 슬슬 가볼까 하네. 일단 결정했으니, 연락하고 계약하는 것까지는 내가 좀 도와주도록 할 건데...... 오늘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고 내일도 생각이 변함없다면, 나한테 다시 연락 주게나. 내 사무실 중 하나가 여기서 안 멀거든? 내일은 거기 있을 테니, 그쪽으로 찾아오면 좋겠어.”
“아, 네. 알겠습니다. 오늘은 정말 감사합니다.”
내가 고개를 숙이자 아버님은 손사래를 쳤다.
우리는 미래의 내 카페가 될 빈 음식점에서 나와 버스 정류장 쪽으로 이동했다.
버스를 기다리며, 아버님은 예화를 바라보았다.
“예화 너는 이제 스튜디오로 갈 거야?”
예화는 기본적으로 가만히 있는 듯하면서도, 중간중간에 여기는 어떻고 저쩌고 하면서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었다.
무엇보다 마지막에 소개해준 이 장소 자체가 예화가 말해준 곳이기 때문에, 카페 개점 장소를 선택하는 데 엄청난 도움을 주 셈이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이렇게 예쁜 여자와 함께 돌아다닌다는 것만으로도, 토템 효과가 존재했다.
상쾌한 기분 업 같은?
“응. 이제 밥 먹고 가야지.”
“아 그래. 벌써 2시가 다 돼가지. 배고프겠어. 진현이 자네도 배고프지 않나?”
“네, 조금 고픕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예화네 아버님은 지갑에서 20만 원을 꺼내서 내게 건넸다.
“이건......?”
“나는 갈 곳이 있어서 같이 못 먹지만, 둘이서 맛있는 거라도 사먹- 아...... 자네 수정이랑 사귀지? 으음. 그러면 가지고 있다가, 다음에 예화가 수정이네 집에 놀러 가면 그때 다 같이 맛난 거라도 먹게나.”
나는 굳이 거절하지는 않고, 감사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인사를 하는데, 때마침 예화네 아버님이 탈 버스가 도착한 모양이었다.
“음. 그럼 가보지. 예화도 잘 들어가아~?”
아버님은 나와 예화에게 인사를 하고 버스 쪽으로 몸을 돌렸다.
“네, 안녕히 들어가세요.”
“응. 아빠도.”
버스가 출발하고, 정류장에는 나와 예화 둘만 덩그러니 남았다.
그렇게 예화의 아버님과의 만남은 순식간에 종료되었다.
‘좋네.’
이걸로 어디서 카페를 오픈할지 완전히 정했다. 내일 곧바로 계약을 진행하고, 빠르게 인테리어까지 맡기면......!
“진현씨?”
그렇게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생각하고 있자, 예화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 네.”
“저희 아빠가 준 돈 있잖아요.”
“아아~ 이거. 드릴게요. 여기......”
내가 돈을 내밀자, 예화는 고개를 저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살랑이는 머리가 영화의 여주인공처럼 아름다웠다.
“그걸로 저희 밥이나 먹어요.”
“......둘이서요?”
“네.”
예화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녀의 말을 듣고 나는 생각했다.
흠.
아무래도 오늘은 운수가 좋은 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