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화 〉# https://t.me/LinkMoa
고깃집에서 나와 진현을 따라가는 동안 유정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머릿속이 어지러운 가운데, 옆구리를 붙잡은 진현의 손길만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이리 와요. 누나.”
어느덧 유정은 진현의 손을 붙잡고, 그에게 안기듯 기댄 채 길가를 걸었다.
“4층 6호실입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
정신을 차려 보니 유정은 진현과 함께 모텔 건물 안에 도착해 있었다.
진현은 익숙한 듯 모텔의 방을 배정받았고, 유정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어, 어떻게 해......!’
유정의 심장이 마치 스테레오처럼 뛰었다.
쿵쾅쿵쾅.
이토록 긴장된 적은 처음이었다.
“항, 앙, 오빠! 앙, 더 쌔게......!”
4층에 내려 복도를 걷자, 하이톤 여성의 신음이 벽을 통과해 들려왔다.
희미한 소리였지만, 유정의 귓가에 생생했다.
아직 야심한 밤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여러 커플들은 힘을 쓰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 나도 이제 저런 짓을 당하는 거야......!?’
약간의 두려운 마음과 함께 동시에 피어오르는 이상야릇한 느낌.
진현에게 매달리듯 걸으니, 어느새 배정받은 방문이 열렸다.
“누나.”
“어, 어어......?”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진현은 문을 닫고, 유정의 어깨를 붙잡았다.
양어깨에 느껴지는 묵직함.
흠칫 놀라서 진현의 얼굴을 바라본 그때.
갑자기 진현의 얼굴이 크게 보였다.
“웁? 으읍. 쭙.”
말랑한 감촉과 술 냄새.
눈을 감을 새도 없이, 입술이 파르르 떨려왔다.
입술과 입술만 맞닿는 가벼운 키스. 몇 초간 부드럽게 유정의 입술을 쪼아먹은 진현은 곧이어 몸을 뒤로 뺐다.
“싫어요?”
“그, 그게......”
싫지는 않다.
다만, 다만......!
“아, 아직 마음의 준비가아...... 이런 건 저기 조금 나중에......”
개미가 기어가듯 작은 목소리로 말하자, 진현이 유정의 등을 부드럽게 쓸었다.
빳빳하게 굳었던 몸이 조금 풀어졌다.
“누나 아까 고깃집에서 막 고백했잖아요. 이런 걸 원한 거 아니었어요? 영화관에서도 저한테 먼저 키스하고. 사실은 남자가 고팠던 거 아니에요?”
“나, 남자가 고팠다니......! 무슨, 그런 거 절대 아니야아. 그리고 나...... 난 네가 나 안 좋아하는 줄 알고, 다정이 도와주기로 했단 말이야아......”
“다정이요?”
진현이 고개를 갸웃하자 유정이 끄덕였다.
“으응. 오늘 보니까 다정이가 너 좋아하는 것 같고, 너도 다정이 좋아하는 줄 알고......”
“왜. 누나가 다정이를 도와줘요.”
“......그건, 그냥 다정이가 행복하면 좋겠으니까......”
아빠라고 부르기 힘든 사람이 집을 나가고, 유졍과 다정, 엄마는 모든 걸 잃었다.
그때는 유정도 정신적으로 굉장히 힘들었을 때였다.
다정이도 힘든 건 마찬가지였을 텐데, 괜한 짜증에 다정이한테 굉장히 험악하게 굴었었지.
그런데, 다정이는 그런 거친 태도를 다 참아내면서 자신과 엄마를 굉장히 잘 보조해주었다. 가장 어렸지만 굉장히 성숙했다.
지금에 와서도 다정은, 옛날 자신이 취했던 태도에 대해 하나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진현은 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말했잖아요. 지금은 누나가 더 좋다고.”
“지금은? 그건 뭐야아......”
아까부터 걸렸던 말투다.
‘지금은’이라니, 그게 대체 뭔가.
“으음. 말 그대로, 지금은? 다음에는 변할 수도......?”
말을 흐리는 진현의 태도에 유정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너어...... 나쁜 남자네......”
유정이 시무룩하게 말했다.
그러면 설마 그냥 몸이 목적인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뛰는 이 상황과 자기 자신이 신기했다.
“......오늘은 이걸 노리고 접근한 거야? 나, 나랑 야한 짓 하려고......?”
“설마요. 그냥 평범하고 누나랑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는데, 누나가 많이 지쳐 보이셔서요. 제가 풀어드리려고요.”
“풀어준다고......? 어떻게.”
“섹스로요.”
“......”
어안이 벙벙하다.
이런 말은 정말 살아생전 처음 들어봤다.
세, 섹프를 가진 친구들도 있기는 한데......
“정말로 싫으시면, 저도 여기서 그냥 그만둘게요. 근데 저랑 하면 분명 기분 좋을 거예요.”
그렇게 말하며 진현은 뒤로 물러섰다.
진현은 검은 비닐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리고 방에 있는 새 종이컵 두 개에 무언가를 따라서 유정에게 건네주었다.
“자, 이거 받아요.”
“이게 뭐야......?”
“숙취해소제에요. 성능 대박 좋은 거. 아, 이건 가글이고요.”
그러고 보니 중간에 잠깐 편의점에서 들려서 뭘 사는 것 같기는 했다. 그때 가글이랑 숙취해소제를 산 건가?
워낙 경황이 없어서 그냥 뭔가를 사나보다 하고만 있었다.
윤유정은 컵을 들고 우선 가글을 했다. 입가에 상큼함이 돌았다.
그다음으로 진현이 준 숙취해소제를 마셨다.
“곧바로 정신이 들 거에요.”
숙취해소제는 특이하게도 굉장히 맛있었다.
약간의 포도맛? 음료를 마시는 기분이다.
“어......?”
그리고 신기하게도, 정말로 마시자마자 머리가 화악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약간 울렁거렸던 속도, 어질어질하던 기분도 사악 날아갔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숙취해소제가 원래 이런 건가? 다음에 무슨 제품인지 물어봐야겠다.
유정은 진현을 바라보았다.
‘아......’
두근거림이 술 때문이 아닐까, 유정은 그런 생각도 조금은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전히 진현의 얼굴을 보니 가슴이 뛰었다.
진현도 지금 다정이가 아닌 자신을 원하고 있었다.
“......”
다정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진현은 ‘지금은’이라고 했지.
어, 어쩌면 오히려 하루뿐인 관계이기 때문에 더 괜찮지 않을까. 하루 정도는, 이 두근거리는 감정에 조금 더 몸을 맡겨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할 거예요?”
한창 생각하고 있는데, 진현이 미소를 짓고 다가왔다.
마치 이미 무슨 답을 내릴 줄 알고 있다는 듯이.
유정은 다가오는 진현을 보다가, 이내 고개를 푸욱 숙였다.
“사, 살살 해줘......”
‘아......’
말이 떨어지자마자 얼굴을 쓰다듬는 손길이 느껴지고, 말랑하고 부드러운 무언가가 입술에 닿았다.
“우움. 움. 쪽......”
술 냄새에 덧씌워진 포도 음료의 향.
진현이도 숙취해소제를 마셨는지, 약간의 포도 냄새가 났다.
처음 진현과 키스를 했을 때는 내 쪽에서 했었지.
영화관에서 나눈 키스는 분명 카라멜 팝콘의 향이 났다.
쪼옥, 톡.
쪼고 깨물 듯 입술을 진하게 맞댄다. 숨결과 숨결이 섞임과 동시에 진현의 혀가 입안으로 거칠게 들어왔다.
“하웁? 쪼옥, 쭈웁. 쯉......”
듬직하게 잡은 두 손이 어깨를 감싸는 게 짜릿했고, 혀와 혀가 엉킬 때마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이게 바로 키스구나.
영화관에서 처음 했을 때는, 분명 무언가 들끓는 성욕에 머리가 마비되어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그때의 입맞춤은 몸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이상야릇한 느낌과 쾌감에 머리가 녹을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의 타액과 혀가 섞이는 이 느낌이 너무 야했다.
“우움, 쪼옥, 프하아, 하아, 진현아아...... 웁. 쪼옥, 쭙.”
숨이 벅찰 정도로 계속 입을 맞췄다.
진현의 혀의 움직임은 너무 능숙해서, 머리가 새하얗게 변할 때까지 전혀 저항할 수 없었다.
입술 옆으로 서로의 침이 섞인 타액이 흘러내리고, 점점 온몸에 힘이 빠져나갔다.
“하아, 너어... 하아. 많이 해본 거야......?”
왜 이렇게 잘하냐는 뜻이었다.
머릿속이 완전 백지가 되었다.
“비밀이에요.”
“......”
게슴츠레한 눈으로 쳐다보는데, 갑자기 진현의 손이 등 뒤로 내려갔다.
지이익, 투둑.
진현은 익숙한 듯 유정이 입고 있는 원피스를 내리고, 브라의 후크까지 풀어버렸다.
“앗. 자, 잠깐......”
“왜요. 계속 키스만 할 거 아니잖아요?”
“그, 그래도 지금 너무 밝은......! 하웁. 쯉.”
불 끄고 옷을 벗으면 안 되겠냐고 말하려고 했는데, 진현에 의해 아무 말도 못 하게 입이 막혀버렸다.
진현은 능숙한 손길로 키스를 하면서 유정의 원피스를 내렸다.
다른 남자에게 한 번도 드러난 적 없는 봉긋한 가슴과, 예쁜 핑크빛 유두가 모습을 드러냈다.
유정은 본능적인 부끄러움에 가슴을 손으로 가렸지만, 이내 진현의 손길에 저지당하고 말았다.
‘하으으......’
진현이와 잘 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해놓고,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다는 걸 알면 다정이가 대체 무슨 반응을 보일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유정은 어느새 스스로 혀를 움직이며, 까치발까지 들고 진현과 입을 맞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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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늦네......”
윤다정은 곧장 집에 와서 마저 만화를 그렸다. 벌써 만화를 그린 지 시간이 꽤 지났는데, 언니는 집에 돌아올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만화를 그리는 것도 집중이 잘 안 됐다.
이유가 뭘까.
밖에서 많이 돌아다녔으니까 조금 졸리기도 하고, 너무 움직였더니 피곤하기도 해서 그런 것 같다.
이럴 때 커피가 있으면......
“아.”
생각해 보니 편의점에 커피를 두고 왔네.
나 바본가. 으으. 돈 아까워.
지금 다시 편의점에 가서 두고 왔다고 말하면 받을 수 있을까 생각을 해 봤지만, 이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올 때 커피 좀 사와 달라고 하장.’
다정은 유정이 언니의 전화번호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할까.
전화할까 싶었지만, 그래도 뭔가 오빠와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톡으로 남기자.
그렇게 다정은 전화 대신에 이모티콘이 담긴 톡을 남기고, 다시 만화 그리기에 열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