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 어플-87화 (87/303)

〈 87화 〉# ht‍tps‍://‍t‍.‍m‍e/‍Li‍nk‍M‍oa

음식점이 즐비한 골목은 떠들썩하다.

사람들은 저마다 모여들어 회포를 풀고, 가족, 연인들이 두루두루 자리에 앉아 음식을 즐겼다.

주말 저녁의 고깃집.

진현의 뒷모습만 바라보며 따라온 윤유정은,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에 살짝 어색한 마음이 들었다.

오늘 입고 온 상큼한 느낌의 원피스와 저녁의 떠들썩한 골목 식당의 분위기는 사뭇 어울리지 않았다.

고깃집의 구석진 자리에 앉아 진현을 바라보자, 그가 메뉴판을 돌려서 보여주며 말했다.

“누나 뭐 드시고 싶어요? 오겹살? 아니면 목살? 다 국내산이래요. 여기 삼겹살이 대박이라고도 하는데.”

“아무거나 괜찮아. 진현이 너 먹고 싶은 거 시켜.”

“그럼 모둠으로 해요. 다 먹어볼 수 있으니까. 먹다가 마음에 드는 거 있으면 더 시키고...... 아, 참. 공깃밥은 어떻게 할까요?“

”어...... 나는 괜찮아.“

유정의 대답과 동시에, 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하나만 주문해서 우리 반 공기씩 나눠 먹어요.“

진현은 익숙한 듯 휴지를 깔고 그 위에 수저를 세팅해주었다.

”아, 고마워.“

물까지 한잔 따라서 앞에 놔준 진현은, 이내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손을 들어 아주머니를 불렀다.

”여기요~!“

”주문하시게?“

“예. 저희 모둠 2인분이랑, 된장찌개 하나, 공깃밥 하나. 그리고.”

진현은 흘끗 윤유정을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

“진이슬도 1병 주세요.”

“모둠, 된장, 밥, 이슬이. 냉면은 안 시키나? 맛 좋은데.”

“괜찮아요. 모자라면 더 시키죠, 뭐.”

“예이~.”

아주머니는 주문표에 체크한 뒤, 메뉴판을 들고 떠나갔다.

윤유정은 진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술 마시게?”

“조금만 마시게요. 그래도 같이 고깃집 왔으면 같이 한잔해야죠. 짠~ 하고.”

“......”

윤유정은 평소에 술을 잘 마시지 않았다.

스스로 사서 마시는 일은 아예 없고, 가끔 식당의 회식이 있을 때만 참여해서 마시는 정도.

그마저도 그냥 엄마 옆에 앉아서 몇 잔 훌쩍이는 시늉만 할 뿐, 윤유정은 술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 같아.’

자연스럽게 웃으며 말하는 진현의 저 모습이 마치 이전과는 다른 사람 같다고 느껴졌다.

전에는 조금만 살갑게 몇 마디 하면 금방 얼굴이 빨개졌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은 뭔가 반대가 된 기분.

그렇다고 싫다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더 좋았다.

그래서 더 혼란스럽지만.

‘이래도 되는 건가......?’

윤유정은 몇 시간 전의 일을 생각했다.

고급스러운 일식집.

화장실에 들어가지 않고 그 옆의 복도로 여동생 다정이를 부른 윤유정은 그녀와 대화를 나눴다.

“왜 불렀어......?”

무언가 장난질을 들킨 것 같은 표정을 하는 다정이. 키도 몸매도 자신과 비슷한데, 동글동글한 인상이 참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귀엽다.

윤유정은 그냥 직설적으로 물어보았다.

“너 혹시 진현이 좋아해?”

“그,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아......?”

윤다정은 한껏 당황한 듯했다.

말로는 일단 부정했지만, 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졌다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질문을 듣고 질색하는 게 아닌, 부끄러운 감정을 숨기는 모습.

윤유정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로 안 좋아해? 나 지금 장난치는 거 아니라 진지하게 물어보는 거야.”

“그, 그게에......”

다정이는 흘끗흘끗 눈치를 보면서 기어가는 목소리로 우물쭈물했다.

정황으로 보나, 반응으로 보나.

역시, 다정이가 진현이를 좋아하는 건 확실해 보였다.

‘하아. 어쩌다 이렇게.’

기껏 진현이를 다시 만나고, 또다시 두근거림을 느끼나 싶었는데, 하필 여동생이 진현이를 좋아하다니.

‘그리고 진현이도......’

따지면 보면 자신이 뭘 어떻게 할 게 아니었다.

진현이는 이미 자신의 고백을 한 번 거절했으니까.

게다가 그냥 우연히 마주쳤을 뿐인 다정이와 계속 연락하고, 어제는 로또를 대신 사주는 데에 그치지 않고 이사 갈 집까지 구경시켜줬다고 한다.

‘나한테는 이사 간다는 말 한마디 없었으면서......!’

서운함과 동시에 심장을 콕콕 찌르는 마음이 든다.

다정이와 이렇게 사적으로 만난 것을 보면, 진현이도 다정이한테 호감이 있는 게 분명했다.

결국, 윤유정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이전 만화에 대한 마음을 접고, 동생에게 타블렛을 선물했을 때처럼.

“너...... 솔직하게 말하면 내가 도와줄게.”

“어......?”

“내가 도와준다고.”

도와준다는 말 한마디에 윤다정의 두 눈동자가 놀란 듯 커졌다.

“지, 진짜로?”

“그럼 가짜겠어?”

“아...... 나, 나는 언니가 진현 오빠 좋아하는 줄 알았는...... 윽. 아얏! 왜, 왜 때려.”

“좋아하는 줄 알면 가만히 있어야지. 갑자기 난입한 게 잘한 거야?”

“아하하...... 그건 아닌 듯. 지송......”

시무룩하게 바뀐 동생의 표정에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튼, 후. 나는 진현이랑 아무 관계도 아니야.”

“정말로?”

“응. 그러니까 확실히 말하면 도와줄게. 좋아해 안 좋아해?”

“......좋아해.”

아.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들으니 또 가슴이 답답하다.

그래도 윤유정은 애써 괜찮은 표정을 하고, 동생과 마저 대화를 나눴다.

진현이의 취향이나 그런 것도 알려준다고 말하고, 직접 물어보기 뭐한 게 있으면 대신 물어봐 준다고도 했다.

되도록 가까워질 수 있도록 기회도 만들어준다고 했고.

“언니 사랑해!”

“얘, 얘가 왜이래......”

그래도 밝은 표정의 동생을 보니 그나마 괜찮다......

괜찮다고, 그렇게 합리화를 하며, 함께 테이블로 복귀했는데.

그랬는데.

“아. 이거 잘 익었다. 누나 자, 먹어봐요.”

“으, 으응.”

진현이가 친절하게 고기 한 점을 집어 윤유정의 앞접시 위에 놔주었다.

아직 기름이 표면에 자글자글 끓고 있는 고기.

꿀꺽.

군침이 절로 넘어가는 모습에, 윤유정은 고기를 소금에 톡톡 찍어서 입안에 넣었다.

으. 뜨거워.

그래도 입안에서 호호, 하면서 식히고 고기를 씹자 탱글한 육즙이 터져 나왔다.

“맛이 어때요? 괜찮아요?”

“응. 되게 맛있다.”

동생을 도와주기로 했는데, 왜인지 둘이서 데이트를 하는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그것도 저녁 시간 고깃집에서.

“자아~, 여기 주문하신 된장이랑 공깃밥. 그리고 진이슬까지.”

“아,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쇼~.”

음식을 내준 아주머니가 가자마자, 진현은 윤유정에게 술잔을 건네서 쪼르르 따라주었다.

“누나 따라드릴게요.”

“아, 응.”

술잔에 소주가 차자, 이번에는 진현이가 잔을 내밀었다.

“저도 따라주세요, 누나.”

“으응.”

윤유정은 진현이의 잔에도 술을 채워줬다.

술.

대학도 다니지도 못하고 휴학하고, 고등학교 친구들과도 거의 안 만난다.

그래도 가끔 얼굴을 보는 친구가 몇 있기는 했고, 단톡에서는 친구들이 이야기하는 것들을 눈팅했다.

대부분 술을 마시고 그......!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다고 했는데!

‘조금 정도는 괜찮겠지......?’

어차피 다정이랑 진현이를 응원한다고 치면, 오늘이 순간이 진현이랑 같이 오묘한 분위기가 될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일 수 있었다.

그렇다고 치면, 지금이 진현이랑 마지막 데이트 같은 건가?

조금은 즐겨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설마 진현이가 이상한 짓을 하겠어?’

편의점 아르바이트 때부터 착한 동생이었다.

게다가 자신에게 이상한 짓을 하고 싶으면, 그냥 이전에 했던 고백을 받았으면 됐던 일이니까.

키스도 내가 먼저 했었지.

그게 첫 키스였는데......!

“자, 누나 건배해요. 짠~.”

“응. 짜아안~!”

윤유정은 그냥 마음을 가볍게 먹기로 했다.

에이, 몰라아.

그냥 진현이랑 같이 맛있게 저녁 먹는 셈 치면 되겠지.

윤유정은 즐겁게 술잔을 맞추고, 이내 술을 한 번에 털어 넣었다.

“꼴깍, 꼴깍...... 크흐.”

알싸한 향과 넘어가는 소주.

부드럽지만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목이 약간 따갑다.

평소에 술을 좋아하지도 않고, 주량도 별로 높지 않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늘 진현이 앞에서 술을 한 번 들이키고 나니까 뭔가 묘하게 계속 마시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이번에는 목살이에요.”

진현이가 구워주는 고기를 상추에 싸서 먹고, 먹음직스러운 된장찌개도 한 숟갈 떴다.

솔직히 이렇게 맛있게 음식을 먹을 기회는 얼마 없었다.

평일에는 항상 질리는 백반이나 편의점 폐기. 주말에는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으니, 이런 식으로 외식을 하는 건 드물었다.

술잔을 비울 때마다 진현이가 새로 술을 채워준다.

윤유정은 고기를 굽는 진현을 바라보았다.

“진현아, 너는 안 먹어?”

“저도 먹을 거예요. 일단 누나 많이 드세요~.”

진현의 말에 윤유정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고기 한 점을 냠, 집어 먹었다.

“꼴깍, 꿀꺽.”

그리고 술잔을 한 번에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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