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 어플-85화 (85/303)

〈 85화 〉# https:/‍/t.me/L‍ink‍Mo‍a

어느새 다가온 초가을.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미지근한 햇볕 아래에서, 나는 가만히 두 자매의 회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서 진현이가 로또를 대신 사주고 있다고?”

“으응.”

“매주 목요일이랑 토요일마다?”

“응.”

유정이 누나의 물음에 다정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크게 죄지은 것도 없는데, 다정이는 뭔가 심문당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어, 로또 대리 구매가 그렇게 떳떳한 행위가 아니긴 하다만......

“근데 언니도 진짜로 진현이 오빠랑 같이 아르바이트했었어? 오늘은 같이 아르바이트했던 사람 본다며.”

“응. 지금은 진현이가 그만둔 상태인데, 한 한 달? 전까지는 진현이가 내 다음 타임이었어. 야간.”

유정이 누나의 발언에 다정이가 곧바로 나를 향해 고개를 휙 돌렸다.

“오빠 진짜예요?”

“응. 몇 달 정도 같이 했지.”

“와. 신기하다......”

감탄하는 다정이의 표정에 동의하듯 유정이 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나도 네가 진현이를 알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어. 그리고 로또 1등이라니 세상에......”

다정이는 나와 만나게 된 과정.

그러니까, 우연히 로또 대리 구매를 부탁한 것부터 연락처를 주고받은 것까지 설명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로또 1등에 당첨됐다는 사실까지 말했는데, 좀처럼 믿지 않아서 통장 잔고까지 보여주었다.

주택 계약금으로 금액이 꽤 빠져나간 상태임에도, 돈은 충분하고도 넘칠 정도로 들어있었으니까.

뭐...... 로또 1등이 숨길 것도 아니고 언젠가는 알게 될 내용이다. 게다가 1등 당첨이면 내가 유정이 누나에게 임금을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걸 증명하는 셈이기도 하니까.

“진현이 너도 몰랐어?”

“네. 누나랑 다정이랑 이름이 비슷하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설마 친자매였을 줄은.”

행운추적자를 통해 나는 다정이와 유정이 누나가 자매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나 또한 둘의 관계를 모르는 상태였다.

‘설마 오늘 밝혀지게 될 줄은 몰랐지만.’

애초에 딱히 숨길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어차피 자매 덮밥을 맛있게 해 먹기 위해서는, 서로가 나를 동시에 좋아해야 하니까.

그래서 톡도 딱히 신경 쓰지 않고 다정이와 유정이 누나랑 동시에 했다.

그런데, 그 정체가 밝혀질 날이 오늘이 될 줄은 몰랐지.

오늘은 그냥 유정이 누나랑 만나서 적당히 호감도를 올려둘 생각이었는데......

흐으음.

막상 이렇게 되니까......!

‘오히려 좋아.’

나는 속으로 미소지었다.

흐흐. 그래.

오히려 좋다.

생각해보면, 오늘 이렇게 셋이서 자연스럽게 만난 것은 참으로 행운이었다.

만약 여기서 둘 중 누군가와 더 관계가 깊어진 상태에서, 내가 둘을 동시에 만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 조금 난감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으니까.

이렇게 미리 밝혀지는 편이 훨씬 더 편했다.

다정이는 수정이를 공략했을 때처럼 코인으로 호감도를 강제로 올리는 것이 불가능하고, 유정이 누나는 아직 히로인 등록하지 못한 상태.

유정이 누나를 히로인으로 등록하기 위해서는 순애 러브러브 섹스를 해야 했다.

“그런데 오빠. 저희 언니를 계속 누나라고 부르는데, 혹시 오빠가 더 어려요?”

무슨 당연한 질문을 하는지. 다정이의 질문에 나와 유정이 누나가 눈을 마주쳤다.

“응. 내가 더 어려.”

“그럴걸. 진현이 너 지금 스물둘 맞지?”

“네, 맞아요.”

“허얼......”

다정이가 이럴 수가, 하는 표정을 짓는다.

이뇬이?

“그 표정은 뭐야. 나 그렇게 늙어 보여?”

“아~ 아니 그건 아닌데요...... 으음. 성숙? 맞아. 성숙해 보여서. 히히.”

“그거나, 그거나...... 내가 말했잖아. 우리 나이 차이 얼마 안 난다고. 솔직히 아저씨는 선 넘었지.”

“히히. 그래서 지금은 오빠라고 부르잖아요. 오빠아~.”

다정이가 귀엽게 애교를 부린다.

얘가 갑자기 왜 이런데?

톡에서 이야기할 때도 잘 안 하던 앙탈을 부린다. 유정이 누나는 그런 다정이의 모습에 약간 충격을 받은 듯 입을 벌렸다.

“그런데 오늘은...... 두, 둘이서 왜 만난 거예요? 혹시 데이트......?”

다정이가 마침내 본론을 꺼냈다.

‘데이트?’

그건 맞지.

남녀가 같이 만나서 밥을 먹는데 그게 데이트가 아니고 뭐겠는가!

“데이트는 아니고, 내가 누나한테 할 말이 있어서 불렀어.”

“할 말이요?”

“응.”

내 말에 다정이의 눈동자에 궁금증이 서렸다. 나는 유정이 누나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이야기하지는 말고. 일단은 밥 먹으면서 이야기해요.”

“아, 응. 그러자.”

“다정아 너도 같이 밥 먹을래? 오빠가 사줄게.”

“어, 진짜요?”

다정이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럼그럼. 내가 다 사줄 수 있지.

“응. 이왕 이렇게 만났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유정이 누나가 헛기침을 하고는 다정이에게 말했다.

“근데 다정이 너어, 오늘 그릴 분량 많다고 하지 않았어?”

“아, 아아~ 그거어...... 저녁에 돌아와서 그리면 돼!”

“그, 그래?”

“응.”

유정이 누나가 미약하게 한숨을 쉬고는 내게 말했다.

“다정이 음식값은 내가 낼 게 진현아.”

“괜찮아요. 그 정도는. 그냥 제 이야기 들어주는 값이라고 생각해요. 1시 반 전까지 가기로 했으니까 지금 천천히 걸어가면 딱 맞을 거예요.”

우리는 그렇게 음식점으로 향했다.

******

빨간 색채로 장식된 고급스러운 일식집의 룸.

벽면에 그려진 화려한 그림에도 꿇리지 않을 고급스러운 접시에, 회, 스시, 튀김이 한가득 담겨 상 위에 나왔다.

평소에는 올 일이 전혀 없는, 1인당 몇만 원이나 하는 음식.

하지만 윤유정은 회 한 점을 집어서 마치 고무 씹듯 씹어먹었다.

‘우씨이...... 뭐야.’

맛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그건 이 회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가 아니라, 지금 느끼고 있는 아쉬운 감정이 회의 맛을 덮어버렸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비싼 값은 하는지, 식감은 좋다.

냠냠......

‘단둘이 만날 줄 알고 좋아했는데......’

윤유정은 얼굴을 미약하게 찌푸렸다.

기껏 이렇게 차려입고 나왔는데, 둘이 만날 약속에 갑자기 여동생이 불쑥 끼어들어 버렸다.

‘으으. 같이 나가겠냐고 물어보지 말 걸 그랬나.’

뒤늦게 후회가 밀려온다.

설마 다정이와 진현이가 아는 사이였을 줄은, 정말 단 1mg도 상상하지 못했다.

다정이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진현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지 알아요? 남주가 여주한테......”

“아하하. 그거 재밌네. 그 다음은?”

재잘재잘.

진현이는 웃으면서 다정이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주었다. 다정이는 학교 이야기나, 아니면 평소에 보던 만화 이야기를 끝없이 풀어냈다.

‘이런 식으로 매주 이틀씩 만났다고......?’

윤유정은 오징어 튀김을 화풀이하듯 집어먹었다.

질겅질겅.

치잇. 맛있잖아.

‘내 고백은 거절해 놓고.’

마지막으로 만난 뒤에 자신에게는 톡 한번 하지 않을 동안, 진현이가 설마 여동생인 다정이와 만나고 있을 줄이야.

“하아......”

“누나 왜요. 혹시 음식이 맛없어요?”

“아, 으응? 아니이~. 맛있어, 맛있어.”

“하하. 그거 다행이네요.”

눈치도 없이 웃는 얼굴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아니, 한번 진현이가 고백을 찼으니 눈치가 없는 게 아니라 그냥 나한테 감정이 없는 건가?

그렇다면 더욱더 슬펐다.

윤유정은 진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심장의 박동이 더 빨라졌다.

두근거림은 분명히 있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그러니까, 영화관에서 느낀. 그런 아주 강한 두근거림은 아니지만...... 오늘 진현이를 직접 봤을 때부터 윤유정은 진현에게 묘한 매력이 느꼈다.

말하자면 그래.

맨 처음 진현이가 지각한 날, 밥 먹을 약속을 했던 그런 간질간질한 느낌?

애초에 그런 느낌을 준 사람 자체도 진현이가 처음이라, 만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 질투하는 건가?’

진현이가 여동생과 저렇게 친하게 대화하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지 않다.

게다가 문제는 그것뿐이 아니다.

‘행복해 보여.’

진현이와 이야기하는 다정이가 행복해 보였다.

그게 제일 문제였다.

지금까지 톡 하면서 실실 웃었던 그 얼굴. 바로 그 얼굴을 진현이와 만난 뒤로 계속 보이고 있었다.

‘다정이가 진현이를 좋아한다.’

그렇다면 말이 됐다.

다정이가 로또 3등 당첨금을 가져온 다음부터 톡을 보고 웃는 나날이 시작됐으니까. 그날이 딱 진현이와 연락처를 교환한 날이라고 했다.

‘어제는 만나서 이사 갈 집도 구경시켜줬다고 했지?’

어제오늘 다정이가 그린 만화의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을 자신의 집에 초대하는 내용.

그리고 최근에 바뀐 남주인공의 스타일.

진현이와의 만남에 대입해 보면 모든 것이 맞아떨어졌다.

만약 다정이가 진현이에게 고백한다면, 진현이가 받아 줄까?

만약 받아 준다면......

으. 또 가슴이 아프다.

‘일단은 확인해 봐야겠지.’

직접 물어보자.

다정이한테.

정말로 좋아한다고 답하면 어떻게 할까.

그럼 나는 유일하게 나를 두근거리게 만든 진현이를 그냥 포기하고, 다정이한테 넘겨야 하는 건가?

그림의 꿈도 다정이한테 넘겼는데......?

“나 잠시 화장실 좀 갔다 올게.”

“아 다녀오세요. 보니까 나가서 왼쪽으로 쭈욱, 가면 있더라고요.”

“다정아 같이 가자.”

“응? 난 괜찮......”

찌릿. 눈빛으로 와달라는 신호를 보내자, 다정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았어.”

“잠깐 가방 좀 맡아주라.”

“네, 걱정말고 다녀와요.”

윤유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윤다정과 함께 화장실로 향했다.

******

‘역시.’

나는 생각했다.

오히려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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