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 https://t.me/LinkMoa
“어른 한 명 청소년 한 명이요.”
삑-
대답 대신에 버스 기사님에게 말하며 카드를 찍는다.
다정이는 지갑을 꺼내다가, 후다닥 버스 안으로 들어와 내 옆에 딱 붙었다.
“굳이 안 내주셔도 되는데에.”
“그냥. 돈 자랑 좀 한다고 생각해.”
“히히. 돈 자랑이라고 치면은~ 좀 약한 거 아니에요?”
그건 그렇긴 하지.
“그래서 지금 한번 크게 자랑하려고 가잖아? 집 사러.”
“맞아요. 집 계약한다고 했죠! 완전 부럽당......”
다정이가 동글동글한 두 눈으로 나를 치켜 올려다본다.
“그런데 집은 어디서 계약해요? 이 버스 타고 계약하러 가는 거면, 거기에 집이 있는 거예요?”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
하긴 궁금하겠지. 관심 있는 여자가 이사 간다고 하면, 어디로 가냐고 꼭 물어볼 것이다.
“응. 집에서 가까운 부동산에서 계약해.”
“그 부동산이 어디 있는데요? 어디서 내려요?”
이번에는 기대감.
어디서 내리기는. 너희 집 바로 앞에서 내리지.
내가 일부러 너희 집에서 가까운 주택으로 정했어.
하지만 그렇게 말했다가는 스토커 취급을 당할 수가 있었다.
“으음...... 잠시만.”
일부러 말꼬리를 흐리며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앗. 우리 사랑스러운 델리아와 수정이한테 톡이 와있네.
델리아는 카페 창업에 관한 톡이었고, 수정이는 귀엽게 ‘언제 들어와?’ 하고 묻고 있었다.
적당히 이모티콘을 섞어 둘 모두에게 답을 한 뒤, 다정이에게 말했다.
“일서초등학교 역에서 내리면 된다고 하네.”
“어? 일서초등학교? 지, 진짜요!?”
“응. 왜?”
“저, 저도 거기서 내리거든요!”
두근두근.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로 다정이는 두근두근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너 지금 살짝 흥분한 것 같아 다정아.
“정말로?”
“네에...... 대, 대박! 그럼 아저씨 저희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는 거예요? 일서초등학교에서 내리면~ 저희집 가는데 3분도 안 걸려요!”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근데 또 그런다 또.
일단 수정해야 할 건 수정해줘야 겠지.
“아저씨가 아니라 오빠.”
“아, 아아...... 오빠. 그래요, 오빠!”
“아마도 가깝긴 하겠네. 부동산은 정류장 바로 앞에 있다는데, 내가 계약할 집은 부동산에서 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니까.”
“와아......”
다정이가 내 소매를 콕콕 당긴다.
“그러엄, 어떤 집이에요? 아파트? 아니면 빌라?”
“아니, 단독주택.”
“헐. 대에박......”
다정이가 두 눈을 반짝인다.
“그렇게 궁금해?”
“네에? 아, 아니 그냥......”
“정 궁금하면 너도 집 구경시켜 줄까?”
“어? 그래도 돼요?”
“응. 오늘 계약하고 한 번 더 볼 생각이거든. 갈래?”
“네! 갈래요!”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다정이.
아, 진짜로 귀엽다.
“그런데, 서류 같은 거 적는데 좀 걸릴 수도 있어. 괜찮아?”
“네, 괜찮아요!”
“너 공부도 해야 하고, 만화도 그려야 한다며.”
“그, 그건 맞는데에...... 주말 하루 정도는 조금? 쉬어도 괜찮아요.”
생각해보면 내 히로인들은 모두 굉장히 성실하다.
혹시 나만 게으른건가?
“그래. 그러면 보여줄게.”
“와아.”
기뻐하는 다정이의 모습을 감상하며, 나는 그렇게 버스를 타고 다정이와 같은 정류장에서 내렸다.
“여기에요?”
“응.”
역에서 1분만 걸으니 바로 부동산이 나온다.
연락은 미리 해뒀지.
좋은 단독주택이지만, 가격이 상당했기 때문에 분양 경쟁이 없어 곧바로 계약을 진행할 수 있었다.
내게 굉장한 호재였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다정이랑 같이 부동산 안에 들어가자, 어제 수정이와 델리아와 함께 집을 볼 때 안내해주었던 아저씨가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그는 다정이를 보더니,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 분은......?”
“아는 동생입니다.”
“아하, 그러시군요.”
근데 어째 믿지 않는 눈치다.
다정아 어깨에 손 좀 올렸다고 얼굴을 붉히면 안 되지.
어제 수정이랑 델리아와 집을 구경하며 동시에 염장을 질렀기 때문인가, 다정이와도 뭔가가 있는 것처럼 보는 모양이었다.
근데 왜 눈빛에서 약간의 존경심이 보이지.
“자. 이쪽으로 앉으시죠. 저번처럼 커피 드릴까요?”
“네, 부탁드립니다. 다정아 너도 커피 마셔?”
“커피요? 넹.”
“얘 것도 좀 부탁드립니다.”
“하하. 물론이죠.”
부동산 아저씨가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우리는 계약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곧이어 계약을 진행했다. 곧바로 짠, 하고 주택이 바로 내 집이 되는 건 아니었다.
과연 거금인 만큼, 나눠서 돈이 오가는 계약을 진행했다.
“오늘 아침에 연락드린 대로 집을 한 번 더 보려고 합니다. 인테리어 관련으로도 결정해야 하기도 하고, 얘도 집을 좀 구경시켜주고 싶어서 말이죠.”
“아, 물론입니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다정이와 함께 미래의 집이 될 주택으로 향했다.
******
“오늘은 감사했습니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감사하죠.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조, 좋은 시간 되십쇼!”
끝까지 오해를 간직한 채, 부동산 아저씨는 떠나갔다.
“와아. 대박이다...... 이런 집 태어나서 처음 봤어요.”
집안 곳곳을 구경한 다정이는 뿅 간 눈치였다.
다정이는 파티룸을 보고.
“헐, 대에박......”
사우나를 보고.
“대바악......”
드레스룸을 보고.
“와 대바악......”
테라스, 다락방, 등등 거의 모든 방을 볼 때마다 연신 대박을 외쳐댔다.
나는 집을 다시 한번 둘러보며 인테리어를 어떤 식으로 진행할지 생각했고, 부동산 아저씨가 집의 기능에 대해 다정이에게 열심히 설명하는 꼴이었다.
뭐, 다정이가 설명을 들어서 나쁠 건 없었다.
머지않아 다정이도 이 집에서 살게 될 테니까.
“너는 어느 방이 마음에 들어?”
파티룸, 피트니스룸 같은 기능성 방은 놔두고, 빈방들을 히로인들에게 하나씩 줄 것이다.
다정이한테도 미리 좀 물어보자.
내 물음에 다정이는 곧바로, 파티룸이요! 라고 대답했다.
“파티룸 같이 기능 있는 방 말고, 빈 방중에서.”
“빈 방중에서요? 으음......”
다정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3층에 있는 왼쪽 방? 거기가 제일 좋았던 것 같아요.”
“그래? 왜?”
“히히. 다락방이랑 연결되잖아요.”
그렇구나.
다정이는 다락방과 연결되는 3층의 왼쪽 방.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오빠는 이렇게 넓은 집에 혼자 사는 거예요?”
“그건 아냐. 나 포함 3명이 살아.”
“아. 3명.”
다정이는 아마도 나머지 2명이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뭐, 가족은 맞지?
미래에 다 같이 하렘 결혼식을 올릴 사이니까.
“그래도 넓긴 엄청 넓네요.”
“그치. 귀족처럼 사는 거지.”
“우웅. 부럽다. 이사는 언제 해요?”
“인테리어도 할 거니 좀 걸리지. 그래도 한 달 안에는 하지 않을까?”
“한 달......”
다정이는 한 달이라는 단어를 되뇌었다.
“그럼 그때 되면 저...... 오빠 집에 노, 놀러와도 돼요?”
“너 저번에는 내가 뭐 사줄까 했을 때, 공부랑 만화 그릴 시간도 없다고 내빼더니 되게 적극적이다?”
“아, 그, 그건 그냥 생각해 보니까아...... 만화 잘 그리려면 이런 집도 보고 막 경험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러고 보니 만화가가 꿈이라고 했지.
그림은 잘 그릴까?
공략 완료하면 특화 능력치를 올려줘서 지원해줄 수 있는데.
“무슨 만화 그리는데?”
“이, 일상 로맨스요......”
“푸흡. 일상 로맨스?”
다정이의 얼굴이 빨개진다.
“왜, 왜 웃어요!”
“너 연애 해 봤냐?”
어버버.
다정이의 말문이 막힌다.
“아, 앞으로 하면 되거든요! 그리고 만화 많이 읽으면서 배웠어요.”
“킥. 그래.”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끝으로 더이상 다정이에게 뭐라고 놀리지 않았다.
사실 나도 그래 다정아.
히로인 어플 얻기 전에는 연애를 미연시로 배웠단다.
옛 시절을 상상하며, 나는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
“엄마. 나 왔엉.”
좁고 허름한 문.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엄마가 거실 소파에 앉아서 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 다정이 왔어? 오늘은 늦게 들어왔네.”
“응. 히히. 뭣 좀 하느라고......”
“그래. 너도 좀 놀고 해야지. 너무 열심히만 하지 말고, 주말에는 쉬어.”
“응! 알았엉.”
윤다정은 그렇게 말하며 집을 둘러봤다.
좁다.
우리 집이 몇 평이라고 했지?
15평이었나?
아무튼, 셋이서 살기에는 좀 작았다.
친구들 말 들어보면 보면 다 25평, 35평, 40평에 살던데.
게다가...... 오늘 진현이 오빠 주택은 100평이 넘는다고 했지?
‘대박.’
다시 생각해 봐도 환상적인 집이었다.
세상에 어떻게 집에 영화관이랑 헬스장이 있지?
심지어 사우나까지 있는 건 정말 문화적인 충격이었다.
윤다정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에는 언니가 이불 위에 누워서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어? 다정이 왔어?”
“아, 언니.”
윤다정은 언니인 윤유정과 같은 방을 쓰고 있었다.
집이 작으니까 어쩔 수 없다.
솔직히 오빠의 집을 봤을 때는 살짝 질투도 났다.
로또 1등에 내가 당첨됐으면, 엄마 언니랑 같이 저런 집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까?
‘3등 당첨도 오빠가 시켜줬는데, 무슨 생각이야!’
금세 이상한 생각을 떨쳐냈다.
미안해요, 오빠.
그런데, 사실은 질투보다도 훨씬 큰 감정이 들었다.
두근두근.
‘진현이 오빠......’
요즘에는 느낌이 참 좋다.
악몽도 잘 꾸지 않았다.
매일 아침이 화창한 봄날처럼 개운하다. 악몽 대신 행복한 꿈을 꾸기 때문이다. 꿈에는 매번 엄마와 언니, 오빠가 나왔다.
‘혹시 우, 운명이 아닐까......?’
꿈에서도 진현이 오빠가 나오고.
오빠가 새로운 집을 계약한다고 했는데, 계약한 집도 우리 집 근처였다.
원래라면 그냥 지나가는 아저씨일 뿐으로 남았을 텐데, 어느새 이렇게 톡도 하면서 만나고 있었다.
혹시나 오빠랑 그렇고 그런 관계가 돼서......
막 오빠가 우리 엄마를 도와준다거나!?
‘으. 쓸데없는 생각 말고 공부나 하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윤다정은 고개를 휘휘 젓고는 수학 문제집을 집었다.
으으.
수.학.싫어.
국어는 참으로 좋은데, 매번 수학이 걸림돌이었다.
수학만 해결하면 반에서 2등도 할 수 있는데.
그때, 문득 휴대폰이 울렸다.
[ 진현이 오빠 : 잘 들어갔어? ]
‘아앗......!’
진현이 오빠였다.
히히.
선톡이 오니까 자동으로 웃음이 나왔다.
아. 이러니까 더 이상한 상상을 그만둘 수가 없잖아.
[ 나 : 네. 오빠도 잘 들어갔어요? ]
[ 진현이 오빠 : 아직 버스임 ㅋㅋ ]
[ 나 : 아항 ㅋㅋ ]
윤다정은 진현과 톡하며 미소지었다.
히힣......
‘그, 그냥 딱 10분만 톡하다가...... 조금만 더 있다가 공부하자.’
윤다정은 수학책을 접었다.
슬쩍 옆을 바라보자 유정이 언니는 계속 휴대폰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책상에 앉아서 히히 웃기만 하는 건 좀 그러니, 윤다정은 폰을 들고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
힐끗.
윤유정은 히히 웃으며 후다닥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는 윤다정을 바라보았다.
얼굴에 아주 그냥 웃음꽃이 활짝 펴있다.
‘흐음...... 요즘에 막 톡하고 그러던데?’
지금까지의 윤다정은 정말로 그림 그리기와 공부.
이 두 가지밖에 하지 않았다.
자신이 선물한 타블렛. 중고여도 다정이는 정말로 보물인 것처럼 소중히 하고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공부도 열심히 했다.
학원도 하나 다니지 않고, 그림까지 그리면서 항상 반에서 3등 안의 성적을 유지하니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편의점에서 알바를 끝마치고 밤늦게 돌아와도 항상 책을 펴고 공부하고 있었고, 주말에도 어디에 잘 나가지 않고 그림을 그리거나 공부만 했다.
그런데 요즘은, 톡을 하는 시간이 확 많아졌다.
전과는 꽤 다른 모습.
‘혹시 남자친구라도 생긴 건가?’
그럴 나이였다.
톡을 보고 웃거나, 얼굴이 빨개지는 게 남자친구라면 이야기가 들어맞는다.
‘뭐, 연애할 수도 있지.’
다정이는 성실하고 착한 아이다.
머리도 좋으니까, 시간 문제는 스스로 잘 조절할 것이라.
오히려 요즘 웃음꽃이 핀 걸 보면 참 기뻤다.
‘그런데 진짜 남자친구면...... 공부도, 그림도 나보다 잘하고, 남자친구도 먼저 사귀는 건가?’
‘힝......’
다정이를 정말 좋아하긴 했지만, 인간적으로 살짝 질투가 나긴 했다.
저 타블렛도, 원래는 자신이 그림의 꿈을 포기하고 더 재능이 넘치는 여동생에게 양보해준 거니까.
‘으으응. 아냐, 나도 열심히 하자.’
그래.
이번에는 자신에게도 좋은 소식이 있다.
진현이. 처음으로 엄청난 두근거림을 안겨줬던 남자.
그를 내일 만나기로 했다.
할 말이 있어서 만나자고 하는데 무슨 말일까?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역시나 고개를 젓는다.
그래도, 다만 만난다는 사실 자체가 두근거린다.
전에 느꼈던 그런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윤다정은 톡을 켰다.
[ 나 : 뭐해? 내일 1시에 만나는 거 맞지? ]
입술을 오물거리며 몇 마디 더 칠까 고민할 때, 금방 1이 사라지고, 답장이 왔다.
[ 진현이 : 맞아요. 알바 편의점 앞 1시. ]
[ 진현이 : 전 지금 잠깐 밖에 나왔다가 집에 들어가는 중 ㅋㅋ 누나는 뭐해요? ]
‘흐응......’
그래도 빠르게 답장하고, 뭐하냐고 역으로 물어보는 걸 보니까 톡할 마음이 있는 듯했다.
윤유정은 미소를 지었다.
“히히.”
때마침 다정이가 폰 화면을 바라보며 화장실에서 나왔다.
두 자매는 그렇게 각자의 폰 화면을 바라보며 동시에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