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 https://t.me/LinkMoa
“민......트 초코?”
이, 이럴 수가!
내 히로인 후보가 민트초코를 좋아한다니!
내가 혼란스러워할 때, 내 표정을 봤는지 윤다정이 킥킥 웃었다.
“아저씨는 민트초코 싫어해요?”
“아. 응. 나한테는 조금 안 맞더라. 그래도 사람마다 다 취향이 다르니까...... 너는 좋아해?”
내 물음에 윤다정이 고개를 저었다.
“저는 아직 안 먹어봤어요. 애들이 막 민트초코가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떠들길래 궁금해서 이참에 한 번 먹어볼까, 하구요.”
“아하.”
그렇구나. 그러면 인정이지.
아직 안 먹어봤다면 궁금할 만했다. 어쩌면 그녀의 입맛에 맞을 수도 있고.
“그럼 민트초코 한번 먹어봐.”
“그럴까요? 으으. 그런데 엄마는 외계인도 되게 궁금한데......”
“왜? 그것도 친구들이 이야기해?”
“아뇨. 이건 그냥 이름이 되게 특이해서 궁금해요. 대체 무슨 맛이면 엄마는 외계인이라는 이름이 붙을지 궁금하지 않아요?”
“그렇긴 하네.”
윤다정이 머리를 싸매며 고민했다.
고민하는 모습도 귀엽다.
나는 피식 웃고는, 그녀를 그대로 둔 채 카운터로 향했다.
답례한다고 나를 붙잡은 걸 보아 아마도 윤다정이 내게 사줄 생각이었겠지만, 이 정도야 내가 내줄 수 있었다.
나는 카드를 내밀며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더블레귤러로 두 개 주세요. 하나는 민트초코랑 엄마는 외계인. 다른 하나는 메이플 월넛이랑 체리쥬빌레로요.”
“네, 드시고 가시나요?”
“네.”
“12,400원입니다. 카드 받았습니다.”
내가 계산하고 있자, 어느덧 윤다정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아앗! 왜 아저씨가 계산해요.”
“너 고민하는데 오래걸릴 것 같아서. 그냥 둘 다 먹어보라고.”
“제, 제가 사드려야 하는데...... 얼마에요?”
나는 돈을 꺼내려는 윤다정을 말렸다.
“괜찮아. 돈 아껴야 한다며, 이왕 이낀 거 이것까지 아껴라. 내가 사줄게.”
내가 말하자 윤다정이 뭐라고 말하려는 듯 입을 달싹거리다가 이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고, 고마워요.”
윤다정의 인사에 나는 그냥 웃음으로 대답했다.
아이스크림은 금방 나왔다.
우리는 창가 근처의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잘 먹겠습니다~.”
“그래.”
예의가 바르다.
내게 말한 윤다정은 이내 민트초코 아이스크림을 한 숟갈 떠서, 그녀의 앙증맞고 작은 입에 가져갔다.
두근두근.
과연 무슨 맛이라고 할까.
나는 가만히 윤다정을 바라보고, 그녀는 아이스크림을 음미했다.
“으음......”
“어때?”
아이스크림을 먹은 윤다정의 표정은 뭐랄까, 굉장히 미묘해 보였다.
“잘 모르겠네요. 그렇게 제 취향은 아닌 것 같은데, 아이스크림이라서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윤다정은 이번에는 엄마는 외계인을 한 숟갈 떠서 먹었다. 그녀의 얼굴이 밝아진다.
“아! 이건 꽤 맛있네요.”
“그럼 다행이네.”
윤다정은 행복한 듯 아이스크림을 떠먹었다.
왜인지 그녀가 맛있게 먹는 것만 봐도 뭔가 배가 부른 느낌이 들었다. 애완동물을 키우면 이런 느낌일까?
그녀는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문득 내 것도 바라보았다.
“호, 혹시 아저씨 것도 한 입만 먹어봐도 돼요?”
되게 궁금한 눈빛이다.
“그래. 자.”
내가 그녀에게 아이스크림 컵을 내밀자, 그녀는 내 아이스크림을 한 입씩 떠서 먹었다.
“아......”
“왜?”
“아저씨께 더 맛있어서요. 이거 이름이 뭐예요?”
“이거? 체리쥬빌레.”
“와. 이거 취향이네요.”
윤다정이 좋아할 만한 맛이기는 했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킥. 그럼 바꿀까?”
“아, 아뇨. 그렇게까지는 안 해주셔도 돼요.”
윤다정이 손사래를 쳤다.
분위기가 상당히 자연스러워졌다.
나는 맛있게 아이스크림을 떠먹는 윤다정을 바라보다가 돌연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너 로또는 왜 하는 거야?”
“우움? 로또요?”
윤다정이 고개를 갸웃한다.
“응. 뭔가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호기심으로 몇 번 사는 거라면 몰라도, 굳이 미성년자가 요일까지 정해서 주기적으로 다른 사람한테 부탁해서 사는 거면, 뭔가 확실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돈을 아껴야 한다는 것도 그렇고.”
“아......”
윤다정의 표정에 살짝 그늘이 드리웠다.
나는 말을 덧붙였다.
“말하기 싫으면 말 안 해도 돼.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니까.”
“아, 아뇨. 뭐 대단한 것도 아니고. 알려드릴게요.”
윤다정이 아이스크림 숟가락을 쪼옥 빨았다.
“저희집에 빚이 있거든요.”
“빚이?”
“네. 아빠가 몇 년 전에 집을 나갔어요. 그때 아빠한테 빚이 많았는지, 어느 날 사람들이 찾아와서 아빠의 빚 중 일부로 살고 있던 집이랑 가구들을 다 수거해갔어요.”
“허......”
오랜만에 무거운 이야기였다.
“아빠는 저 어렸을 때부터 집에 있던 적이 거의 없었어요. 엄마 말로는 도박에 빠졌다고 했는데, 집에 들어올 때마다 둘이서 많이 싸웠죠. 그래서 거의 저랑 엄마, 언니 셋이서 생활을 했는데...... 갑자기 집과 가구들이 사라지고, 아빠는 연락이 아예 끊긴 거예요.”
“그럼 너희 어머니가 아빠의 빚을 갚고 있는 거야?”
내가 물어보자 윤다정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에요. 아빠의 빚을 엄마가 갚아야 한다는 법은 없데요. 자세히는 모르지만...... 가구는 공동재산, 살고 있던 집은 담보라서 다 뺏긴 거라고 했어요. 그래서 한순간에 살 집을 잃고 빈털터리가 돼서, 엄마가 저랑 언니를 부양하기 위해 빚을 많이 지고 생활했어요.”
“이런...... 그래서 로또를?”
윤다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엄마는 지금 하루종일 식당에서 일하고, 언니는 아침에는 식당일을 돕고 오후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거든요. 저도 일을 하겠다고 했는데, 엄마랑 언니는 안 된다고 말리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도울 게 없나 하고, 혹시 하는 마음에 용돈 중 일부로 로또를 사고 있는 거예요.”
“그렇구나.”
윤다정이 애써 웃었다.
“재, 재미없는 이야기죠?”
“무슨. 재미를 바라고 물은 게 아니잖아. 힘들었겠네......”
“아니에요. 힘든 건 엄마나 언니죠. 저는 아무 고생도 안 하고 있어요. 지금은 가족 분위기도 좋고요.”
윤다정의 성격이 참 좋다는 걸 알 수 있는 한마디였다.
‘그나저나 집안의 빚이라.....’
빚이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윤다정이 만약 내 히로인이 된다면 해결해 줘야겠지. 내가 빨리 무언가를 시작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기도 한 것이다.
히로인들은 전부 풍족한 생활을 만끽하게 해주고 싶었다.
뭐, 히로인 어플의 힘이 있으면 잘 될 테니까 그리 걱정은 되지 않지만.
“그래도 3등이 돼서 참 다행이에요.”
윤다정의 웃음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그런데 아저씨는 1등이 되다니. 와...... 대단해요. 아저씨 막 로또 분석 같은 거 하는 거예요?”
“분석?”
“네. 저번에 저한테 로또 사주실 때 막 계산적으로 산다고 하셨잖아요. 저한테 준 것도 수동이고. 막 보니까 돈 받고 로또 번호 분석해서 보내주는 곳도 있던데.”
윤다정이 분위기를 환기하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 그런 거 아니야. 그리고 로또 분석 같은 건 받지 마. 그냥 랜덤으로 번호 뽑아서 뿌리는 거니까.”
“네. 애초에 비용이 너무 비싸서 안 했어요.”
“잘했어.”
“그런데, 그럼 아저씨는 어떻게 1등이 됐어요?”
윤다정이 궁금한 듯 물었다.
흠. 그러게.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요 똘똘한 안경이 알려줬다고 할 수는 없엇다.
뭐라고 말할까~ 잠시 생각하다가 나는 적당한 말을 골라서 했다.
“꿈을 꿨어.”
“꿈이요?”
“응. 꿈에서 어떤 신통한 도사가 나타나서 몇 개의 로또 번호 조합을 알려줬어. 그래서 그 조합대로 샀지. 근데 그게 된 거야.”
“우왕. 진짜요?”
“응. 막 번호들이 황금빛으로 빛나더라. 너한테 준 것도 그 조합 중 하나야.”
윤다정이 감탄했다.
“와. 그런 이야기 몇 번 봤어요. 부럽네요. 저는 그런 꿈 한 번도 못 꿔봤는데.”
“나도 요번에 처음 꿨다 야.”
내가 말하자 윤다정이 살짝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아. 그, 그러면 다음에도 꿈꾸시면 저한테 좀 알려 주시면 안 될까요?”
“응? 어. 그래. 알려줄게.”
다음에도 로또 1등을 해야 할 일이 있겠나 싶겠지만, 일단 그렇다고 대답했다.
윤다정은 침을 꿀꺽 삼키더니 말했다.
“그, 그, 그, 그럼 저 아저씨 번호 좀 주세요.”
“번호?”
“네. 꾸, 꿈 내용 알려주려면 연락처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건 그렇다.
‘그런데 나 번호 따인건가?’
처음으로 따인 상대가 고등학생이라니. 살짝 어이가 없었지만, 기분은 좋았다.
이런 상황은 내성이 없는지, 윤다정의 얼굴은 새빨개져 있었다.
오히려 내가 이런 상황에서 여유가 생기다니.
한 달 전만 해도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자.”
“네......”
내가 휴대폰을 윤다정에게 주자 그녀는 번호를 찍어 내게 돌려주었다.
“여기요. 아. 맞다 제 이름은......”
“윤다정 맞지?”
“어, 어떻게 알았어요?”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가슴팍에 붙어있는 명찰을 가리켰다.
“아......”
윤다정의 얼굴이 빨개졌다.
“예쁜 이름이네.”
“헤헤. 고마워요. 엄마가 지어줬어요.”
그 뒤로 우리는 별말 없이 아이스크림을 다 먹었다.
“슬슬 일어나자.”
“네.”
밖에 나와서 헤어지기 전에 윤다정은 내게 다시 꾸벅 고개를 숙였다.
“오늘은 정말 감사해요.”
“아니야. 너도 조심해서 들어가라. 봉투 잃어버리지 말고.”
“네, 아저씨. 그으...... 나중에 토, 톡 할게욧.”
윤다정은 그렇게 말하고는 쌩, 하고 버스 정류장 쪽으로 달려갔다.
나는 그 모습을 귀엽게 바라보다가, 이내 등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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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룸 안으로 들어오자 구수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으음. 좋다.
“수정아, 리아야. 나 왔어.”
“아. 진현아 왔어? 조금만 기다려줘~. 지금 저녁 하고 있으니까.”
“다녀오셨습니까. 진현님.”
집에 들어오니 엄청난 미녀들이 나를 웃으며 맞이해준다.
이곳은 천국인가?
“어? 뭐 사 왔어?”
수정이의 시선이 내 손에 들려있는 봉투로 향했다.
“아, 그냥. 나갔다 온 김에 아이스크림 좀 사 왔지.”
나 혼자 아이스크림을 먹기도 그래서 사 왔다. 수정이나 델리아의 취향도 알 겸 다양하게.
돈이 별로 없던 편의점 아르바이트 시절이었다면 베스킨로빈스는 상상도 못 했겠지만, 지금은 가장 큰 놈으로 2개나 사도 문제가 없었다.
“와. 진짜? 디저트로 딱 좋겠다. 그, 그런데 왜 그렇게 많이 사 왔어.”
“두고두고 먹으면 되지. 그리고 델리아한테는 별로 안 많을걸.”
“아......”
수정이도 이제는 델리아가 심상치 않은 먹성을 가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어디 갔다 온 거야?”
“아. 앞으로 어디서 뭘 할지 근처를 좀 둘러봤지. 우리 이사 갈 생각도 조금 하고.”
“어. 이사?”
“응.”
실제로 나는 윤다정만 만나고 온 건 아니었다.
오는 길에 아이스크림도 사고, 요 근처에서 무언가 할만한 게 있나 없나 조금 둘러보았다. 수확은 없었지만......
‘요놈이 참 효자야.’
행운추적자.
정말로 개사기 아이템이 아닐 수 없었다.
그냥 돌아다니면서 ‘저 가게 어때 잘 될 것 같아?’만 물어봐도 황금빛의 밝기로 대답해 주었다.
아마 주식을 해도 이 안경을 쓰고 하면 엄청난 돈을 만질 수 있을 것이다.
윤다정네 빚이 아무리 많아도 걱정할 필요가 없겠지. 이사를 하고, 사업을 하고, 남은 돈으로도 부족하면 주식 같은 것으로 돈을 불리면 될 것이다.
“이제 여기서 벗어나야지. 나 로또 1등도 됐으니까. 앞으로 우리 같이 살자 수정아?”
내가 말하자 수정이가 깜짝 놀라 되묻는다.
“지, 진짜?”
“그러엄 진짜지. 돈도 많으니까, 좋은 곳으로 가자. 주택 하나 멋지게 해가지고.”
“와. 사랑해! 진현아.”
수정이가 내게 안겼다. 어지간히 감동스러운 모양이다.
말랑말랑한 두 가슴이 기분 좋게 눌렸다.
“뭐야.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야? 주택 간다고 하니까 사랑한다는 거 보니 우리 수정이 속물이네.”
“치. 그런 거 아닌 거 알면서.”
“델리아도 같이 살고 괜찮지?”
“응. 당연하지. 헤헤.”
쪽.
수정이가 가볍게 키스를 했다. 좋아하는 수정이를 보니 절로 힘이 난다.
옆에 델리아를 보니 그녀 또한 웃음 짓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 살짝 싸한 한기가......’
생각해 보면 요즘 델리아를 놔두고 너무 수정이랑만 애정행각을 한 것 같다. 델리아의 무릎베개를 받거나 하기도 했지만, 그녀를 옆에 두고 수정이랑 키스하거나 하던 적이 많았다.
블랙룸에서 섹스를 할 때도 델리아가 알아서 컴퓨터를 하며 자리를 피해 주고.
물론, 델리아의 특성을 마련해 줄 코인이 아직 모이지 않아서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나 델리아한테 덮쳐질 때 엄청 심하게 덮쳐지는 거 아니야?’
그녀가 나를 따른다고는 하지만, 애초에 능력치 자체가 델리아가 나보다 아득히 높았다.
나는 그렇게 애써 드는 이상한 예감을 무시하고, 그녀들과 맛있는 식사를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