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 어플-62화 (62/303)

〈 62화 〉# http‍s:‍/‍/t.me‍/‍LinkMoa

“자네 좋아하는 술은 있나?”

“술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종류도 잘 알지 못합니다.”

내가 아는 거라고는 소주, 맥주, 와인 뿐.

아버님이 웃었다.

“허허. 그러면 내 오늘 술을 좀 알려줘야겠군. 거실에서 마시지. 수정이도 가서 기다리고 있어.”

“어? 나, 나 술 잘 못 마시는데......”

수정이가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나나 수정이나 둘 다 술을 별로 마시지 않아 같이 마셔본 술이라고는 남산타워의 레스토랑에서 마신 와인 한 잔뿐이다.

“기분만 내는 거야, 기분만.”

“엄마가 주스랑 섞어서 맛있게 만들어줄 게, 우리는 그거 마시자~.”

나랑 수정이는 거실로 향했고, 어머님은 빠르게 식탁을 정리했다.

“와. 다시 봐도 집 진짜 좋다. 여기서는 언제부터 살았어?”

거실 따로, 주방 따로, 식당 따로. 방 6개, 화장실 4개.

보통은 주방과 식당이 합쳐져 있는데, 이 집은 식당이라고 분류된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거실에는 커다란 냉장고를 이어붙인 것처럼 커다랗고 얇은 TV에 더해, 무슨 분수를 뿜는 용가리 모양 장식품도 존재했다.

“내가 중학생 때 여기로 이사 와서 쭉 살았어.”

“자취는 언제부터 했는데?”

“으음. 아마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그랬던걸로 기억하는데.”

“이야. 이런 집에서 용케 나올 생각을 했네.”

심지어 가족끼리 사이가 굉장히 좋아 보인다. 딱히 부모님하고 떨어지고 싶은 마음도 크게 없었을 텐데.

“아. 그냥...... 고등학교 때 애들이 막 너는 부모님이 부자니까 아무 걱정 없겠다, 그런 말을 하기도 했거든. 그래서 나 혼자서 성공해보고 싶었어.”

“헐. 우리 수정이한테 누가 그런 이야기를 했어.”

“히히. 다 옛날이야기지. 오히려 자취해서 진현이를 만났으니 훨씬 이득 아니야?”

“그러네~.”

장하다.

그냥 부모님 눈치 보지 않고 실컷 게임 하고 싶어서 나온 내 동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아, 게임뿐만 아니라 오나홀을 숨기려고 나온 게 가장 큰가?

아무튼.

“자아, 젊은이가 좋아할 만한 것들로 가져왔네.”

아버님은 방에서 생전 처음 보는 병들을 들고 나왔다.

고급스러운 상 위에 병들을 놔두고, 방 안으로 들어가 이번에는 술잔을 종류별로 가지고 나오셨다.

방 안에 무슨 술 창고라도 있는 모양이다.

‘나도 이사 가면 방을 개조해야지.’

간다면 되도록 주택으로 이사 가고 싶다.

그러면 수정이는 방송하니까 방음이 잘 되는 부스를 만들어주고, 나는 흐음...... 노래방이나 게임방을 만들까?

델리아도 그녀가 재미있어할 만한 취미를 찾아주어, 그 취미를 즐기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주면 좋을 것이다.

수정이가 아버님이 내려놓은 병 하나를 보고 말했다.

“아빠 이거 귀한 거 아니야?”

“음? 어떻게 알았어?”

“저번에 왔을 때 나한테 좋은 거 받았다고 자랑했잖아.”

“하하. 우리 이쁜 딸이 처음으로 남자를 데려왔는데, 이런 날 아니면 언제 뜯겠어.”

아버님이 기쁜 듯 웃고, 수정이는 술병 하나하나의 도수를 확인해 나갔다. 생각해 보면 남산타워 레스토랑에서도 그녀는 와인을 한 잔 이상 마시지 않았다.

“오, 오십 팔도?”

세 번째 병을 집은 수정이는 도수를 확인하고는 입을 떠억 벌렸다.

아버님이 그런 수정이의 모습이 귀여운 듯 웃는다.

“그건 그냥 마시는 게 아니니까. 흠. 마침 수정이가 집었으니, 첫 잔으로 할까.”

아버님이 내게 작은 잔 하나를 건넸다. 나는 공손하게 잔을 받아들었다. 잔도 비싼 건지 잡는 느낌부터가 좀 다르다.

아버님은 잔에 사이다를 먼저 채워주신 뒤, 잔을 조금 기울이라고 하고 그 위에 술을 따라주셨다. 수정이한테도 똑같은 방식으로 따라준다.

“나는 사이다를 넣지 말고, 천천히 따라주게.”

나는 아버님의 말씀에 따라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아버님과 수정이와 건배를 하고 고개를 돌려 한 번에 목에 털어 넣는다.

“뭘 예의를 차리고 그러나, 편하게 마시게.”

“예.”

“맛이 어떤가?”

“음. 조금 단 맛이 느껴집니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일단 사이다가 들어갔으니 달기는 당연히 달지.

“하하. 끝 맛이 깔끔한 술이라네. 홍주라고 하는데, 몸에 좋은 약주이지. 수정이는 어때?”

“으음...... 모르겠어.”

수정이는 쩝쩝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버님은 껄껄 웃는다.

“자~ 과일이랑 꼬치 대령이요.”

어머님은 간단한 술안주와 함께 오늘 아침에 내가 선물로 가져온 과일을 깎아서 내왔다. 수정이를 위해서 주스도 몇 개 가져온 모양이다.

“그럼 좀 더 맛난 놈으로 따라줘야겠어.”

수정이와 어머님은 조금씩만 마시고, 나는 아버님의 주량을 따라가며 함께 술을 들이켰다.

처음에는 다 같이 이야기하며 술과 술안주를 먹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어머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러 갔다.

수정이 또한 조금 더 마시다가 정신을 차릴 겸 어머님을 도와준다며 같이 주방으로 갔다.

거실에는 나와 아버님만 남았다.

달그락거리며 그릇을 씻는 배경음에 아버님이 술을 또 한 잔 따라주신다.

“허허. 자네 정말로 잘 마시는군.”

“그렇습니까?”

“음. 어쩌면 나보다 술이 쌜 수도 있겠어.”

아버님의 감탄에 나는 내 상태를 점검했다.

확실히 상당히 많이 마신 것 같은데, 술기운이 조금 올랐을 뿐 정신은 멀쩡했다. 전에 소주를 두 병을 넘게 마시고 세상이 어지러웠을 때와 비교하면 딴판이다.

그에 반해 아버님은 꽤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마력이나 신체 능력치가 영향을 준 건가?’

잘 모르겠다.

술은 신체 능력과 다르게 뭐 분해하는 능력이라고 들은 적이 있는데, 아무튼 쌔서 나쁠 건 없으니까.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자네에 대해서는 물어본 게 별로 없군. 지금까지 너무 내 이야기만 했어.”

“아닙니다. 정말 도움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아버님은 세상의 정세나 나와 수정이의 연애에 관해 물어보다가. 아내와의 첫 만남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러면서 막 여자를 기쁘게 하는 법 등에 대해 설파했는데, 어머님은 그에 부끄러워하며 설거지를 하러 간 것이다.

“자네는 꿈이 뭔가?”

술잔을 비우며 문득 아버님이 물었다.

‘꿈이라.’

내 꿈이라면 당연히 하렘 라이프를 차리고, 어여쁜 히로인들과 함께 즐겁게 꽁냥꽁냥 사는 것이다.

히로인 어플의 힘을 알게 된 순간 결심한 꿈이었다. 막 세계를 정복한다는 거창한 생각은 없었다.

‘뭐, 델리아는 등급이 올라갈수록 막 신격에 가까워진다고 하는데......’

일단은 수정이나 델리아 같은 어여쁜 히로인들과 함께 잘 사는 것이 목표이다.

그 외에는 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어차피 등급을 올리려면 히로인을 늘려야하기도 하고.

그런데 당당하게 하렘을 차리겠다는 내 꿈을 그대로 말할 수는 없지......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나는 적당하게 대답했다.

“행복...... 행복이라. 좋지.”

아버님이 웃음 짓는다.

“한데, 그건 너무 추상적이고, 또 어려운 꿈일세. 나는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젊은 나날들을 빨간 불도 없이 달려왔네. 이런 안정과 여유를 찾은 것도,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지.”

회상하는 그의 눈빛이 아련하게 빛난다.

“자네는 그렇다면 그 행복을 위해 무얼 해나갈 거지? 지금은 딱히 하는 게 없다고 들었는데.”

점심과 저녁 사이에 가족끼리 이야기하며, 내가 지금 아무것도 안 하는 상태라는 것을 아버님은 알고 있었다.

호감도가 높아서 그런지, 그의 목소리는 꾸짖는다기보다는 진정으로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우선 돈을 벌 생각입니다. 수정이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히로인들이 늘어날수록 필요한 돈이 많아질 것이다.

아껴 쓴다면 로또로 번 돈으로도 충분하겠지만, 나는 팍팍 쓰고 싶었다.

로또는 자주 쓸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니, 많은 돈을 정기적이고 안정적으로 수급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겠지.

“그래. 돈은 중요하네.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돈을 벌 생각인가?”

“사업을 하려고 합니다.”

“호오. 사업을?”

아버님의 눈에 호기심이 깃들었다.

빨간 불도 없이 달려온 아버님과 다르게, 나는 파란 불에도 느긋하고 싶었다.

일을 별로 하지 않고 개꿀빨면서 돈을 벌 방법. 가장 편한 건 건물주가 되는 것이겠지. 하지만 더 큰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다른 무언가 사업을 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일단 로또로 얼마 정도가 들어올지 알아본 뒤에, 델리아가 준 리스트를 다시 읽어보며 결정할 생각이엇다.

“어떤 사업이지?”

“아직 구체적으로 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알아보는 중입니다.”

“그렇구먼, 혹시 자금은 있나?”

“예.”

내 거침없는 대답에 아버님이 놀란 눈빛을 보였다.

“젊은 나이에 사업이라...... 후후. 나도 시작은 그랬지.”

그는 나를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하나 많은 실패를 겪었네. 젊은 나이에 사업은 리스크가 커. 아는 것이 적고, 경험도 부족해 요령이 없지.”

아버님이 고개를 젓는다.

“사업은 계획을 착실하게 잘 잡아놓고, 조사도 철저히 해야 하네. 자금에 대한 계산도 두 번 세 번 더 검토해야 하고. 사람을 부리는 데도 익숙해야 하지.”

“그렇군요. 새겨듣겠습니다.”

“으음......”

아버님은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지갑에서 명함을 한 장 꺼내 내게 건네주었다.

“내 명함이네. 구상이라도 어느 정도 잡히면 내게 함 말해보게, 조언이라도 해주지. 힘이 닿는 범위라면 어느 정도 도움도 조금 줄 수 있어.”

오.

나는 명함을 받아들고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뭘, 소중한 딸 수정이의 남자친구인데 도와줘야지. 언제든 연락하게. 못 받을 때도 있겠지만...... 코코아톡을 남기면 답변 주겠네. 내 젊게 사려고 이모티콘도 많이 샀어.”

아버님이 웃는다.

아마 이모티콘은 수정이한테 배우지 않았을까. 나는 아버님의 번호를 등록했다.

“진현이가 참 마음에 들었나 봐, 여보?”

어느덧 설거지를 마친 어머님이 돌아왔다.

“이 친구가 참 예의가 발라. 수정이도 정말로 좋아하는 것 같고.”

“후후. 맞아. 수정이가 잘 만난 것 같더라.”

그렇게 말하며 어머님은 아버님의 팔을 살짝 잡았다.

“여보, 이제 나도 따라주라.”

“더 마시려고?”

“응. 오랜만에 그런 기분이야.”

“음. 그럴까...... 진현이랑은 많이 마셨으니.”

아버님은 술상을 식당으로 옮겼다.

가기 전에 나를 바라보며 확인하듯 말했다.

“그냥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정말로 연락하게.”

“물론입니다.”

“으음. 좋아.”

어머님 또한 수정이를 보며 말했다.

“진현이랑 같이 영화라도 보고 있어. 아무거나 결제해도 되니까.”

“응.”

그렇게 아버님과 어머님은 식당에서 둘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수정이가 나를 바라본다.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이다.

“진현아 안 취했어? 아빠랑 엄청나게 마시던데. 아빠 술 엄청 쌘데.”

“응. 괜찮아.”

“와. 대단하네. 나는 전혀 못 마시겠던데. 맛없기도 하고.”

우리는 어머님의 말대로 커다란 TV를 통해 영화를 시청했다.

인기순으로 정렬해 재미있어 보이는 걸 선택해서 보니까, 그럭저럭 볼만했다.

스크린이 워낙 크고 스피커도 좋아, 마치 영화관에서 보는 것만 같은 맛이 살짝 난다.

그렇게 한참 영화를 보는 도중에, 문득 수정이가 말을 걸었다.

“진현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