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 어플-60화 (60/303)

〈 60화 〉# htt‍p‍s://t.‍me‍/Lin‍kM‍o‍a

“진현아 뭐 고를 거야?”

수정이가 천진난만하게 묻는다.

그래도 가격에 당황하지 않는 것과 눈치가 없는 건 염연히 다르지.

갑자기 급발진해서 여기서 제일 비싼 코스를 덥석 고르기에는 좀 뭣했다. 나는 역으로 수정이에게 물었다.

“그러게. 혹시 추천할 만한 코스 있어?”

솔직히 나는 메뉴를 봐도 잘 모르겠다.

내가 지금까지 중국집에서 먹어본 거라고는 짜장면, 짬뽕, 탕수육, 깐풍기, 만두를 포함한 기본적인 메뉴들뿐.

그런데 이곳의 코스는 일반 중국집과 메뉴가 많이 달라 보인다. 처음 들어보는 메뉴들도 상당히 많았다.

“아, 이거이거. 내가 여기 올 때마다 다른 걸 시켜봤는데, 난 이 코스가 제일 맛있더라.”

“그래?”

“응! 요 세 개는~ 으음. 안 시켜봐서 모르겠어.”

“그래? 그럼 수정이가 추천해 코스로 해야겠다.”

“웅웅.”

사실 수정이가 추천해 준 코스만 해도 15만 5천 원짜리 코스였다. 중간보다 살짝 비싼 코스.

아버님은 내 선택에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그게 젊은이들의 입맛에 맞기는 하지.”

“그러게, 수정이는 뭐 먹을 거니?”

“난 이거 먹어보려고.”

수정이는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새로운 코스를 골랐다. 아버님과 어머님은 똑같이 두 번째로 비싼 코스를 주문하였다.

주문을 마치자, 기본 세팅으로 차와 함께 입가심용 짜사이가 나왔다.

나와 수정이는 짜사이를 몇 개 집어먹고, 아버님은 차를 홀짝인다.

오, 이거 좀 맛있는데?

그때, 문득 어머님이 입을 여셨다.

“여보, 둘이 사귀는 거 어떻게 생각해?”

직설적인 질문이다.

‘드디어 올 게 왔구나.’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대답을 기다리고 있자, 아버님이 입을 여셨다.

“어떻게 생각하고 자시고, 사귀면 사귀는 거지.”

“그래?”

어머님이 의외라는 눈빛으로 아버님을 바라본다. 수정이가 한 말 거들었다.

“맞아 엄마. 애초에 아빠가 남친을 사귀라고 푸쉬 했으니까, 당연하지.”

“뭐어, 그건 그런데......”

내심, ‘너 따위에게 내 딸을 줄 수는 없다!’ 같은 상황이 일어나지 않을까도 생각했는데, 아버님은 의외로 담담했다.

아버님은 가만히 눈을 감고 수정이와 어머님의 대화를 듣다가, 이내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간단하지만 묵직한 한 마디가 튀어나왔다.

“자네, 수정이를 좋아하나?”

“네, 좋아합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한다.

이 대답이 입 밖으로 나오는 데는 1초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시작 자체는 내 욕망에 의한 강간으로 시작한 최악의 관계였지만, 어찌 되었든 나는 그녀를 내 히로인으로 만들었다.

그녀의 호감도를 올려 그녀가 나를 사랑하게 만든 만큼, 나 또한 그녀를 끝까지 사랑할 생각이었다.

“둘이 사귄 지는 얼마나 됐지?”

“오늘로 6일 됐습니다.”

호감도 100을 찍어 수정이가 완벽한 내 여자가 된 날로 치면 4일이지만, 평범하게 고백한 날로 치면 6일이다. 그때 요리해준다고 집에 초대하던 그녀의 모습은 참 귀여웠는데.

“6일이라......”

“오호, 생각보다 더 짧네.”

아버님은 고개를 끄덕이고, 어머님은 신기해했다.

“사실, 나는 딱히 딸의 연애에 대해서는 뭐라고 참견할 생각이 없네.”

아버님이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오히려 딸이 적극적으로 연애를 했으면 하는 주의지. 수정이 입장에서도 연애를 경험하면 그게 하나의 인생 경험이 되는 거기도 하고, 가슴 뛰는 청춘을 만끽하는 거니까. 연애는 자유라고 생각하네.”

그는 내 눈을 곧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하나, 신경 쓰이는 거라고 한다면 단 한 가지. 자네가 수정이를 장난으로 만나는지 아닌지, 그뿐이라네. 쓰라린 연애 또한 인생의 경험이라고 하더라도, 감정의 배신에는 상처뿐 남지 않으니 말이야.”

내려놓은 찻잔이 무겁게 테이블을 울린다.

“진정 둘이 좋아해서 만나는 거라면, 나는 전혀 말릴 생각이 없네. 나중에 뜻이 맞지 않아 헤어진다든가 하게 되더라도,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자네가 진정으로 수정이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면, 나는 교제를 허락할 수 없네. 자네는 어떤가?”

수정이와 어머님까지, 세 사람의 이목이 내게 쏠린다.

아버님의 생각은 대충 알 것 같다.

아버님은 수정이가 연애를 경험했으면 하고, 내가 그 연애 상대로 딱히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그녀를 장난으로 만나 그녀에게 상처가 될 일이 있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누구나 공감하는 이야기이겠지만, 연애와 결혼은 완전 별개니까.

아버님은 수정이가 연애를 경험했으면 하고, 그 지나가는 인연으로 아마 누가 되었던 진정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큰 상관이 없다는 주의 같았다.

지금까지 내가 무슨 대학에 다니는지, 직업이 뭔지 등등 하나도 물어보지 않고 있는 것만 봐도 그랬다.

사실 호구조사처럼 바로 날라올 줄 알았는데......

‘하지만 이 정도로는 안 되지.’

나는 수정이네 아버님이 나를 그저 지나가는 수정이의 연애 대상이 아닌, 믿음직스러운 딸의 사위감으로 봐주길 바랐다.

나는 진심으로 대답했다.

“지당하신 걱정입니다만, 저는 수정이를 장난으로 만나거나 하지 않습니다. 비록 수정이와 사귀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사귄 일수로 감정의 고저를 표현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수정이의 손을 붙잡았다.

“수정이를 만나기 전에는 제게 마음의 여유가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루하루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행복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수정이와 눈이 마주친다.

“매일매일이 설레였죠. 집에서 나와 자취하면서 제대로 된 밥도 못 먹어본 저였지만, 수정이가 집에 초대해 제게 밥을 차려줬을 때는 엄청나게 감동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수정이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이건 제 진심입니다.”

말에 거짓은 없었다.

실제로 수정이와 매일 만나기 전에는 히로인 어플을 얻기 전이니까, 마음의 여유 따위 없이 맨날 앞으로 뭘 할까 걱정하면서도 게임만 하며 지냈다.

수정이와 매일같이 장을 보러 나갔을 때는 언제나 좋았고, 그녀가 밥을 해줬을 때 진심으로 감동하기도 했다.

물론, 거기에 더해 모습을 바꾸고 그녀를 납치해 실컷 강간해 육체적으로도 너무 좋았지만......

‘뭐, 그런 이야기는 절대 할 수 없지.’

말했다가는 아버님의 호감도가 0에 수렴할 수가 있었다.

“진현아......”

수정이의 눈빛이 조금 감동으로 물든다.

거의 매일 같이 살을 섞으며 수정이에게 사랑한다고 속삭이는데도, 그녀는 내 고백에 감동한 모양이다.

아버님이 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어머님은 또한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렇군. 대답을 들으니 안심이 돼. 뭐, 사실은 알고 있기도 했고.”

“네?”

“자네가 진심이라는 거 말이야. 애초에 장난으로 사귄다면 상대 부모님을 만나러 오겠나? 안 오지.”

피식 웃는 아버님의 말씀에 나는 공감했다.

그건 그러네.

“수정아. 너도 우리한테 자랑하려고 사랑도 없는데 남자를 만나거나 하면 안 된다.”

“당연하지! 나는 진현이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걸.”

“세, 세상에서 제일?”

수정이의 당당한 발언에 아버님이 당황한다.

어머님의 눈이 반달 모양으로 휘었다. 작게 웃는 소리가 들린다.

“쿡쿡. 여보 질투 안 한다며?”

“크흐흠! 뭐, 아무튼. 태도를 보니 둘 다 좋아 보이긴 하는구먼.”

아버님의 얼굴이 풀어지고, 분위기가 한결 훈훈해진다.

“오종 냉채입니다.”

때마침 음식도 나오기 시작했다.

“잘 먹겠습니다.”

나는 수정이네 부모님에게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아버님은 미소지으며 고개를 주억였다.

“그래. 많이들 먹거라.”

우리는 식기를 들었다.

“그런데 자네, 우리 수정이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

“그러게, 나도 궁금하다. 얘.”

이제 풀어진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질문이 슬슬 나온다.

내가 대답하려 하는데, 수정이가 먼저 선수를 쳤다.

“아. 내가 컨디션 안 좋은 날에 우연히 만났는데, 그때 장보는 걸 도와줬어. 그리고~......”

수정이는 정말로 즐거운 듯 과거를 회상하며 말했다.

저기서 컨디션이 좋지 않은 이유 = 내가 강간했기 때문이지만, 수정이는 당연히 그 부분을 알아서 잘 빼고 이야기했다.

부모님은 흥미로운 듯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서로 우연히 만나는 일이 잦아지고, 결국 매일 같이 암묵적으로 장을 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되고 사귀게 되었다. 대충 그런 이야기였다.

“어머, 로맨틱하네. 그래도 수정이가 연애를 하다니. 참, 세월도 빨라.”

“그러게. 난 솔직히 스물다섯 되기 전에 한 번만 해보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맞아 여보.”

수정이가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다.

“차암. 엄마 아빠는 아직도 내가 애 같아?”

“당연하지. 솔직히 초등학교 졸업한 게 엊그제 같은데......”

“엊그제라니!”

아버님이 그러고 보니, 하는 표정으로 묻는다.

“참. 자네 나이는 어떻게 되나?”

“올해로 수정이와 동갑인 스물둘입니다.”

“호. 동갑이라 좋군그래. 혹시 군대는 다녀왔나?”

“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입영해 작년 말에 제대했습니다.”

“음. 빨리 다녀오는 편이 좋지.”

나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아 스무 살 초에 바로 입대할 수 있었다.

‘캠퍼스 라이프도 궁금하긴 한데.’

전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올해 초에는 미연시만 주야장천 잡으며 여자친구가 고파서 아무 대학에나 갈까 생각도 했었다.

‘지금은 수정이에 델리아에, 앞으로 또 누가 늘어날지 모르니까.’

매일 데이트할 시간도 부족하다.

“그래도 수정이가 연애로는 예화를 이겼네.”

문득 아버님이 말했다. 어머님이 맞장구쳤다.

“그러게.”

“어? 거기서 예화 이야기가 왜 나와?”

수정이가 깜짝 놀라 묻는다.

“지난주에 장사장이랑 술 한잔 했지. 그놈도 애가 연애할 생각이 하나도 없다고 한숨을 쉬더구나.”

“그, 그래?”

어머님이 고개를 갸웃한다.

“너 저번에도 만났다면서 몰라?”

“우리는 만나면 연애 이야기는 전혀 안 하거든......”

그렇게 말하면서 수정이가 슬슬 내 눈치를 봤다. 갑자기 예화 이야기가 나와 내 반응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눈치가 빠른 어머님과 아버님이 수정이의 그런 모습을 바로 놓칠 리가 없었다. 어머님이 수정이를 게슴츠레하게 쳐다봤다.

“흐음? 예화 이야기를 하는데 왜 네가 진현이 눈치를 보니?”

“응? 아, 아무것도 아니야.”

수정이가 시선을 피하자 이번에는 아버님과 어머님의 시선이 내게 꽂힌다.

나는 딱히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아. 예화씨가 수정이네 집에 놀러 오는 걸 제가 본 적이 있습니다. 아마 그것 때문에 그러는 것 같은데......”

어머님이 고개를 끄덕인다.

“흐응. 수정이 너 예화의 외모를 경계했구나?”

“자네, 바람은 안 된다네.”

아버님의 표정이 굳는다.

“......물론입니다.”

나는 철면피를 깔고 거짓말을 했다. 여자친구 부모님 앞에서 당당하게 바람피운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생각해 보면 하렘에는 오히려 내 히로인들이 아니라 히로인들 부모님이 더 문제였다.

으음. 이건 해결방안을 생각해 봐야겠지.

‘그런데 잠깐. 가만 생각해보면 이거 바람이 아닌 거 아니야?’

그건 맞지.

나는 갑자기 번뜩이는 생각에 정신을 차렸다.

나는 수정이와 델리아의 허락을 맡은 뒤, 정당하게 하렘을 차리는 것뿐이다.

결코, 바람을 피우는 것이 아니었다!

정당한 하렘!!

“저는 결코 바람 따위를 피울 생각이 없습니다.”

나는 아버님의 눈을 바라보며 한층 더 확고하게 말했다.

“으음. 그래. 그러면 됐네.”

내 대답과 눈빛을 바라본 아버님은 이내 표정을 풀고 만족스럽게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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