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 https://t.me/LinkMoa
“뭐라고? 남자친구!?”
수정이네 어머니의 말에 안쪽 방에서 수정이의 아버님으로 추정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놀라서 하이톤으로 나오는 목소리임에도 불구하고, 대번에 중저음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진짜야~ 지금 안에 있는데 그게......”
수정이네 어머니는 재잘재잘 뭐라고 말을 하다가 이내 문을 닫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둘이서 무언가 이야기를 나눌 모양인 것 같다.
콕콕.
돌연 수정이가 내 옆구리를 찔렀다.
“우리 집 구경시켜 줄까?”
“아. 좋지.”
멀뚱멀뚱하게 소파에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는 것보다는, 이런 좋은 집에 흥미가 있었다.
“히히. 알았어, 따라와.”
수정이는 현관에서 가장 가까운 방문을 열었다. 나는 수정이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갔다.
문 안쪽으로 제법 깔끔하게 정리된 커다란 방이 나왔다.
“짠~ 여기가 내가 쓰던 공부방이야.”
“와. 좋다.”
나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우선은 공부방치고 굉장히 넓었다.
큰 책상 위에 컴퓨터도 한 대 있고, 거기에 이어진 고급스러운 책장에는 갖가지 책들과 더불어 여러 느낌 있는 장식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구석에는 1인용 소파도 마련되어 있고, 기다란 전등이 내려와 모던한 분위기도 풍겼다.
마치 인테리어 가게에서 완성된 방을 보는 느낌이다.
심지어 방은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하게 청소되어 있었는데, 아무래도 수정이네 어머니가 주기적으로 청소를 하는 것 같앗다.
“어. 이거 수정이 앨범이네.”
“아앗.”
흥미로운 눈으로 곳곳을 둘러보다가 나는 책장에서 수정이의 앨범을 발견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개인 앨범까지. 그녀의 앨범은 책장의 가장 하단에 차례로 정리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름은 공부방인데 책장에 공부와 관련된 건 하나도 없다.
로맨스 판타지......? 책들과 앨범, 그리고 일반 문학 소설들이 몇 권 꽂혀 있을 뿐이었다.
“봐도 돼?”
“으, 으응......”
내가 앨범을 넘겨보기 시작하자 수정이는 처음에는 부끄러워하다가, 이내 시간이 조금 지나자 스스로 사진들에 대해서 막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정이의 설명을 들으며 고등학교 시절의 사진을 넘기는데, 문득 눈에 띄는 여학생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어, 내가 아는 사람도 있네.”
“응? 누구?”
“장예화 이 사람. 종종 너희 집에 놀러 왔었잖아.”
“아~.”
수정이와 장예화가 둘이서 V자를 그리며 찍은 사진이었다.
둘다 꽃다발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고등학교 졸업 사진인 모양이었다.
‘예쁘다.’
어릴 때의 수정이는 귀여웠고, 고등학교부터 때부터 슬슬 예쁘다는 수식어에 맞는 얼굴이 되어갔다. 졸업앨범의 수정이는 귀여움과 예쁨이 공존하는 신비로운 예쁜 매력이 있었다.
그런데 그 옆에서 웃고 있는 장예화. 그녀는 그런 수정이의 매력조차도 발판으로 삼으며 자신의 미모를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굉장히 청순하면서도 성숙한 미모를 자랑했다.
“......주.인.님?”
이런.
내가 수정이의 앨범에서 예화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 어느새 수정이는 두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나를 흘겨보고 있었다.
“......혹시 예화한테 관심 있어요?”
살짝 불안하게 떨리는 목소리.
나는 수정이를 바라보며 그녀의 물음에 어떻게 대답할지 살짝 고민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있다.
애초에 처음에는 수정이가 아닌 예화를 공략하려고 했으니까. 다만 등급이 되지 않아 예화를 선택하지 못하고 수정이를 선택하게 되었다.
물론, 지금은 수정이를 훨씬 좋아하지만...... 관심 있는 것은 있는 거니까.
수정이의 호감도가 100에서 고정되어 덜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녀에게 결코 대충 대답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맞아. 관심 있어.”
“아......”
수정이의 표정이 침울해진다.
호감도 100을 찍었다고 해서, 수정이는 당연히 내가 여자를 늘리는 것을 환영하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여자를 늘릴 것이라는 걸 알고 있고, 나를 좋아하는 마음이 더 커서 가만히 있는 것뿐. 마음속으로는 독점하고 싶다고 생각할 것이다.
델리아의 경우에는 내가 등급을 올리고, 히로인 어플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 더욱더 성장하길 바라기 때문에 히로인을 늘리는 걸 장려하는 특별한 경우이다.
보통이라면 수정이 같은 반응이 정상이겠지.
그래도 관심이 없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말하는 편이 나으리라.
수정이에게는 관심 없다고 해놓고, 어느 날 예화를 공략해 데려오면 나에 대한 신뢰도만 떨어지게 되리라.
나는 살짝 슬퍼 보이는 표정의 수정이를 보다가, 갑작스럽게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흐앗?”
내게 바짝 안기는 모양새가 되자 수정이의 눈망울이 떨렸다.
“관심 있다고 해도 수정이를 사랑하는 내 마음은 끝까지 변하지 않아. 무슨 일이 있어도. 그리고...... 오늘은 수정이 너만 바라볼게. 알았지?”
그렇게 말하고 나는 수정이의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갰다.
부드러운 키스만 하려고 했는데, 수정이가 먼저 나를 갈구하듯 격정적으로 내 머리를 감싸 안고 혀를 넣었다.
츄읍. 츄릅. 쪽.
원 없이 내 타액을 빨아먹은 그녀는 대략 30초가량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얼굴을 떨어뜨렸다.
“흥...... 주인님 바보. 치사해.”
입술에 침을 묻히고, 볼에 홍조를 띄운 여자가 할 법한 대사는 아니다. 그래도 수정이의 표정은 한결 나아져 있었다.
“그래도 알았어요. 저도 사랑해요, 주인님. 끝까지 사랑해준다는 그 말 믿을게요.”
“물론이지.”
우리는 한 번의 키스를 더 나눈다.
“츄읍. 하아......”
이번에 얼굴을 떨어뜨리자, 수정이는 주인님 모드에서 다시 진현이 모드로 돌아왔다.
“다시 구경시켜줄래?”
“응......!”
수정이는 이번에 침실을 구경시켜주었다.
이 아파트의 구조는 조금 신기해서 그녀의 공부방 안에 그녀의 침실로 향하는 문이 있는 구조였다.
“이야. 침실도 넓네.”
“응. 두 방 다 넓어서 편했어.”
“킁킁. 여기 침대에서는 수정이 냄새 안 나나?”
“악. 하지마아......”
아쉽게도 침대에서는 별 냄새가 나지 않았다. 뭐, 수정이가 지낸 건 몇 년도 전이니까 당연하겠지만......
수정이의 침실에는 커다란 침대와 세련된 옷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옷장 안에는 수정이가 옛날에 입었던 옷들이 꽤 있었다.
“헉. 이, 이건 교복......!!”
그리고 나는 옷장 안에서 보물을 발견했다.
내가 그녀의 교복을 꺼내 들자, 수정이가 반가운 듯 말했다.
“와. 추억이다...... 앨범 본 뒤라서 그런지 더 그렇네. 그건 중학교 교복이고, 이게 고등학교 교복이야. 기념으로 가지고 있어.”
수정이가 교복을 자기 몸 위에 대며 싱긋 웃는다.
두근두근.
심장이 격하게 뛰었다.
이, 이건 얻어야 해!
“혹시 고등학교 교복 지금도 맞아?”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수정이에게 물었다.
“어...... 아마도? 중학교 교복은 안 맞을 텐데, 고등학교 교복이라면 맞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럼 가져가자.”
“어......?”
수정이가 놀란 눈이 됐다.
“여기서 어울릴만한 옷 있으면 가져간다며. 이거야.”
그녀는 내게 옷장 안을 보여주며, 혹시 어울릴만한 옷이 있으면 가져가자고 했다.
몇 년도 더 된 옷들이라 새로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설마 이런 수확이 있을 줄이야!
“교, 교복을......?”
“응.”
나는 결국 수정이를 설득해 그녀의 고등학교 교복을 얻는 데 성공했다.
내일 나갈 때 그녀의 고등학교 교복과 더불어 수정이에게 어울리는 머리핀 몇 개를 같이 가져가기로 했다.
“여기가 화장실~.”
수정이는 화장실까지 보여줬다.
화장실까지는 굳이 구경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이 짧았다.
이 아파트는 화장실까지 엄청나게 넓었다. 한 화장실 안에 샤워실에 목욕탕까지 다 있네.
“화장실이 다 이렇게 넓어?”
“으응~. 2개만. 나머지 화장실은 목욕탕이 없어.”
“나머지.......? 화장실이 몇 개인데?”
“4개.”
화장실이 4개라고?
사는 사람이 2명인데?
“여기 너희 부모님만 사시는 거 아니야?”
“응. 맞아.”
“평수는 혹시 몇 평인지 알아?”
“정확하게는 모르는데에...... 아마 팔십몇 평이라고 들었어.”
수정이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셋이 사는데 팔십몇 평이라니.
굉장하다. 금수저 강수정.
장예화랑 친구인 것을 보면, 사실 금수저끼리 놀았던 게 아닌가 싶었다.
마지막으로 화장실까지 구경한 나는 수정이 방에서 나왔다.
“어머나, 이제야 나왔네.”
“으음.”
수정이네 방을 다 구경하고 복도로 나오자, 수정이네 부모님이 두 분 다 거실에 나와 있었다.
“아. 우리가 늦었네. 진현이한테 내 방 구경시켜줬어.”
수정이네 어머니는 소파 옆에 서서 눈웃음을 짓고 있었고, 한 남자가 소파에 앉아 팔짱을 끼고 있었다.
‘수정이네 아버지인가......?’
아까 놀라는 목소리를 들었을 때 얼핏 짐작하긴 했는데, 체격이 상당했다.
떡 벌어진 어깨나 올곧은 자세를 보면, 자신감이 충만해 보인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얼굴 또한 근엄하다.
보는 이로 하여금 위압감을 선사하는 남자였다.
그 기묘한 공기 속에서, 남자의 입이 열렸다.
“자네가 우리 딸과 교제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맞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