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 어플-56화 (56/303)

〈 56화 〉# https:‍//t.me/‍Li‍n‍k‍Moa

“아저씨! 방금 로또 사셨죠?”

하지만 순진무구한 귀여운 눈으로 치켜 올려다보는 여자 고등학생의 표정을 보니, 나는 찌푸렸던 인상을 풀 수밖에 없었다.

귀엽다!

어제 멀리서 볼 때도 귀여웠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눈을 마주치며 보니까 더 귀엽다!

옹졸해졌던 가슴이 다시 웅장해진다.

하긴 뭐, 애초에 처음 보는 여자 고등학생한테 초면에 오빠라고 불리는 것도 이상하긴 하다.

외모 50이라 될 수 있지도 않을까 싶긴 했는데, 어림도 없지.

“샀는데, 나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아...... 그게 저기.”

뒤적뒤적.

여자 고등학생은 갑자기 품에서 지갑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여기요!”

주섬주섬.

그러더니, 이번에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 내게 건네주었다.

“?”

5천 원짜리 1장과 천 원짜리 1장.

총 6천 원.

“저기 아저씨...... 그, 아저씨가 저 대신 로또 좀 사주시면 안 될까요?”

“로또를?”

내심 그러지 않을까 생각하긴 했는데, 진짜로 로또를 사달라고 부탁하네.

담배를 대신 사달라는 학생들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어도, 로또를 대신 사달라는 부탁을 내가 듣게 될 줄은 몰랐다.

“흐음. 로또는 청소년이 사면 안 될 텐데.”

“에이, 그러니까 이렇게 부탁드려요.”

여고생은 고개를 숙인다.

뭐어. 나야 사줘도 전혀 상관없기는 하다. 이참에 궁금한 거나 물어보자.

“그런데 로또는 사서 뭐 하게?”

“당연한 거 아니에요? 대박을 노리는 거죠!”

학생의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요 어린놈이 벌써 돈 욕심이 가득한데?

“가족한테 부탁해서 사면 되지 않나?”

“아...... 엄마나 언니는 로또를 별로 안 좋아해요. 돈 버리는 거라면서......”

“음. 가족분들이 아주 현명하시네.”

맞는 말이긴 하다.

될 놈 될.

로또는 되는 놈만 되는 종목이다.

10만 원을 넘게 꼬라박고 알게 된 사실이다.

“피...... 아저씨도 로또 샀잖아요. 돈 버리는 거면 왜 사요.”

입술을 삐죽 내민 여고생은 내가 손에 들고 있는 종이를 가리켰다.

“아. 이건 말이야. 계산적으로 산 거야. 계산적. 무조건 되는 행운의 숫자지.”

실제로 행운추적자를 통해 얻은 번호를 입력한 거니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

“풉. 계산적이래.”

여고생이 대놓고 비웃는다.

이뇬이?

“그럼 그 계산적인 숫자들을 저도 좀 알려주면 안 돼요? 제발요. 가련한 여고생 한 명 구해준다고 치고......”

“와......”

스스로 가련한 여고생이라니. 굉장하다.

내 표정을 본 학생은 살짝 얼굴이 빨개지며 두 볼을 부풀렸다.

“흥. 안 해줄 거면 도로 줘요. 다른 사람한테나 부탁해야지.”

“알았어, 알았어. 해줄게. 그런데 너 어제도 다른 사람한테 부탁해서 로또 사지 않았어?”

“어. 그걸 어떻게 알아요?”

여고생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진다.

“어제 저기 백화점에 왔다가 나올 때 봤거든. 어떤 여자한테 종이를 건네받던데. 너 설마 매일매일 6천 원어치씩 사는 거야?”

그러면 일주일에 4만 원이 넘는데.

존나 부자인가?

“아하...... 설마요. 매일은 아니고, 매주 목요일하고 토요일마다 사요.”

“목요일하고 토요일? 왜?”

내가 궁금한 듯 묻자 그녀는 후후, 하고 웃는다.

“그거 알아요? 로또 1등 당첨률이 가장 높은 요일이 목요일하고 토요일이래요!”

“아 그래?”

“네. 그래서 항상 목요일하고 토요일에 사고 있어요.”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오늘은 금요일인데? 왜 오늘 사?”

“아. 그게...... 원래는 내일 사러 오려고 했는데, 엄마가 내일은 할머니 집에 간다고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오늘......”

“흐음. 그렇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강 궁금한 건 다 물어본 것 같다.

“아무튼, 6천 원어치 사주면 되는 거지?”

“아. 5천 원어치만 사주시면 돼요! 천원은 아저씨 가져요. 감사요금. 저 착하죠?”

“풋. 감사요금은 무슨. 내가 애 용돈을 어떻게 가지냐.”

부모님한테 심부름값을 받는 것도 아니고.

여고생이 볼을 부풀린다.

“저 애 아니거든요?”

“애니까 로또도 스스로 못 사서 나한테 부탁하는 거 아니야?”

“으...... 솔직히 고등학생 정도면 다 컸다고 생각해요. 중학생까지나 어린애지, 고등학생부터는 마음대로 로또 사도 되게 해줘도 되는데.”

여고생이 입술을 삐죽 내밀고 투덜거린다.

중학생 때도 분명 초등학생까지나 어린아이라는 생각을 했겠지. 분명하다.

“그래그래. 고등학생이면 다 컸지. 아무튼 사올게.”

“아, 네. 감사합니다!”

여고생이 꾸벅 고개를 숙인다.

“아 맞다. 자동으로 사주세요!”

그걸 그렇게 크게 말하면 다 들리잖니. 피식 웃은 나는 다시 복권판매점 안에 들어갔다.

‘흠. 다시 온 김에 1등이나 몇 개 더 만들까?’

나는 자리에 앉아서 고민했다.

내 돈을 조금 더 불려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한 명이 1등 여러 개에 당첨되면 너무 수상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지금 검색을 해보니까 1등 여러 개에 당첨된 사람도 꽤 됐다.

[ 로또 1등, 1명이 5개 싹쓸이! ]

[ 로또 1등, 한 매장에서 4명 당첨! ]

생각해 보면 실제로 같은 번호를 수동으로 여러 개 사는 사람도 존재하긴 하니까.

나는 1등 3개정도를 쓸어가기로 했다.

마음만 먹는다면 막 10개씩 당첨될 수도 있지만, 그러면 너무 수상하고......

나는 1등 용지를 2개 더 작성했다.

1등 3개 정도면 돈은 충분할 것이다.

그리고 1등 번호만 너무 여러 개 적으면 그러니까, 아까 구매했던 꽝 수동번호들도 그대로 2개씩 더 옮겨적었다.

“남은 건 천원인데......”.

나는 여고생이 준, 손에 들려있는 천원을 바라보았다.

‘이름이 윤다정인가......’

명찰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어떻게 보면 어제 보고 다시 만난 것도 신기하니까, 작은 선물이라도 주자 싶었다.

‘1등은 너무 크고.’

애초에 1등을 주면 내가 받을 당첨금액에 크게 적어진다.

그건 절대 안 되지.

‘2등이 몇천만 원 수준이고, 3등은 대략 백만 원 수준이네.’

나는 2등과 3등 중에서 고민하다가, 적당히 3등 번호를 하나 적어서 추가로 구매한 로또들과 함께 계산했다.

“이것들이랑 자동 5천 원 주세요.”

“허허. 부족하셨나 보네. 대~박 나시길 바랍니다!”

나는 그대로 복권판매점에서 나왔다.

“아, 아저씨! 샀어요?”

“응. 자, 여기.”

다정이라는 여고생에게 종이 2장을 건네준다.

그녀는 종이를 받아들더니, 수동 천원이 적혀 있는 용지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어. 이건 뭐에요?”

“그건 아까 말한 행운의 숫자. 네가 얹어준 천 원으로 샀어. 다른 5천 원은 말한 대로 자동으로.”

“헤에~ 그래요?”

“혹시 몰라? 당첨될지도.”

내가 가볍게 말하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헤헤. 고마워요. 이렇게 수동번호를 적어서 주는 사람은 처음 봐요.”

“그래?”

“네. 한 10명에 7~8명은 천원은 그냥 다시 돌려주더라고요.”

뭐, 그렇겠지.

큰돈도 아니고 천원인데 딱히 받기가 그렇긴 하다.

“착한 사람이 많나 봐요. 아니면 제가 착해 보이는 젊은 사람한테만 부탁해서 그런가.”

“착해 보이는 젊은 사람?”

“네, 아저씨들은 뭔가 말 걸기가 무섭더라고요. 그래서 매번 여자나, 젊은 남자한테만 부탁해요.”

여자나 젊은 남자한테 부탁하고, 아저씨들은 말 걸기가 무섭다.

그런데 왜 나를 부르는 호칭은 아저씨인가.

뭐, 어쨌든......

“그럼 난 간다.”

“아 넵, 감사합니다. 아저씨도 대박 나세요!”

“푸. 그래...... 너도 대박 나라.”

나는 1등 번호를 알고 있다.

나올 때 그녀의 자동 5천 원 결과를 봤는데, 다 꽝이었다.

불쌍한 것.

그녀도 원래는 나처럼 운이 없는 족속인가.

“안녕히가세용!”

다정이라는 여고생은 인사를 하고 그대로 버스 정류장을 향해 뛰어갔다. 때마침 버스가 왔는지, 바로 탑승했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외모나 몸매 자체는 지금의 델리아나 수정이가 더 예뻤지만, 그와는 다른 귀여운 매력이 있다.

‘애초에 외모나 몸매 능력치야 올려주면 되는 거니까.’

그리고 이미 그녀의 외모 능력치도 50쯤 되지 않을까 싶었다.

내가 고등학교 때였을 때 같은 반이었다면, 말 한마디 못 붙여봤을 정도였다.

뭐, 나는 남중남고를 나왔지만.

버스가 출발하는 모습을 보며 옅게 웃은 나는, 그렇게 1등 당첨용지 3장을 가지고 원룸을 향해 돌아갔다.

******

“행운의 숫자......”

윤다정은 버스 자리에 앉아 수동번호가 적혀 있는 용지를 바라보았다.

초면에 이렇게 스스럼없이 남자와 이야기를 많이 한 건 처음인 것 같다. 게다가 연상의 남자와.

대부분 부탁할 때면, 그냥 말 몇 마디 나누고 끝나는데.

‘꽤 잘생기기도 했지......’

학교의 남자애들만 보다가 대학생으로 보이는 옷 잘 입는 잘생긴 남자를 보니까, 정말로 다른 생물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게다가 하는 말도 왜인지 매력적으로 들리기도 하고.

“당첨될까나.”

그가 수동으로 적어준 번호.

로또를 그렇게 많이 사는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뭔가 느낌이 좋았다.

“흐흥~.”

무언가 다시 만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1등이 돼야 엄마랑 언니도 편해질 텐데......’

당첨되면 정말 좋겠다.

다정은 지갑 안에 용지를 넣고, 기분 좋은 웃는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

“내일 몇 시에 출발할 거야?”

“으음. 11시까지 가기로 했으니까, 넉넉하게 여기서 10시에 나가면 될 것 같아요.”

수정이와 델리아가 차려준 저녁을 먹으며 내가 물었다.

“그러면 9시부터 준비해야겠네. 그런데...... 진짜로 내가 가도 돼?”

“무, 무슨 소리에요! 당연하죠. 아니면...... 저희 부모님 보기 싫어요?“

수정이의 눈망울이 애처롭다.

”당연히 아니지. 그것 때문에 옷까지 샀는데.“

”그럼......?“

”자고 온다며. 갑자기 부모님 집에 남자친구 데려와서 재워도 돼?“

갈아입을 속옷이라도 챙겨가야 하나?

수정이의 얼굴이 밝아진다.

”아. 괜찮아요. 우리 부모님 남친무새라 오히려 데려오면 좋아할걸요?“

”오호라.“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본 나는 금방 납득했다.

갑자기 내 부모님에게 수정이나 델리아를 여친이라고 소개해주며 집에 데려간다?

오우.

하룻밤이 아니라 일 년도 묵게 해줄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나와 수정이는 경우가 좀 다르긴 하다만.

”아무튼, 그러면 내일은 야한 짓 못 하겠네?“

”어, 어? 그게 그렇게 되나......“

수정이의 얼굴이 급 시무룩해진다.

물론, 나는 할 생각이다.

여친 부모님의 집에서 시선을 피해 몰래 야한 짓이라니! 완벽한 클리셰가 아닌가!

생각만 해도 자지가 발기한다.

하지만 나는 일부러 모르는 척 그녀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오늘 잔뜩 하자?“

”아, 네...... 주인님♥.“

우리는 빠르게 식사를 마쳤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