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 어플-39화 (39/303)

〈 39화 〉# ‍htt‍ps‍:‍//t.m‍e/L‍in‍kMoa

음? 그런가?

그러고 보니 그랬다.

내가 수정이의 집에 간 적 있어도, 그녀가 내 집 안에 들어온 적은 없다.

[ 나 : 좀 지저분한데...... ]

[ 강수정 : 괜찮아! 내가 치워줄게. 이제부터 내가 매일매일 아침, 점심, 저녁 다 해주고~ 청소도 해줄게~ ♥ ]

[ 나 : ㅋㅋ 모야. 내 와이프야? ]

[ 강수정 : 안 돼......? ( 강아지가 슬퍼하는 이모티콘 ) ]

안 될 리가 있겠는가.

오히려 내가 부탁하고 싶을 정도였다. 너무 바람직하다.

그렇게 한창 수정이랑 톡을 하고 있자, 어느새 델리아가 내 가까이에 붙어서 굉장히 흥미로운 얼굴로 휴대폰 화면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흘끗 눈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자, 델리아는 나와 딱 눈이 마주쳤다.

순간적으로 눈동자가 흔들리고, 델리아는 화들짝 놀라 내게서 떨어졌다.

“아, 저! 그, 그게......! 훔처 보려던 건 아니고, 그게......!”

“풋.”

허둥지둥거리는 델리아는 굉장히 귀여웠다.

그녀의 손목을 잡자, 그녀의 움직임이 순간적으로 빳빳하게 멈췄다.

“괜찮아. 내 도우미잖아? 앞으로 내 하렘 차리는 걸 도와줘야 할 텐데, 이 정도는 봐도 돼.”

“그, 그렇습니까......?”

“응.”

나는 수정이와 계속해서 톡을 했다.

[ 나 : 나야 수정이가 그렇게 해주면 너무 좋지. ]

[ 강수정 : 헤헤. 고마워~ 그럼 지금 바로 갈게! 기다려! ]

수정이의 답장과 동시에 위층에서 우당탕탕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피식 웃으며 톡을 끄자, 휴대폰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델리아가 입을 열었다.

“이 강수정이라는 여성분은...... 혹시 진현님의 히로인이십니까?”

“응 맞아. 첫 번째 히로인이지.”

순간 델리아의 눈에서 약간 부럽다는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착각인가?

“그렇군요. 저기, 자리를 비켜드릴까요?”

조심스럽게 말하는 델리아를 보며 나는 잠시 생각했다.

지금 수정이와 델리아가 만난다.

무언가 큰일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았다.

수정이의 호감도는 이미 100을 달성했고, 그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다. 심지어 다른 여자를 늘릴 수 있다고 그녀에게 떡밥도 뿌려놨기 때문에 충격이 덜할 것이다.

델리아야 뭐 내 도우미니까, 수정이랑 잘 지낼 것이다.

오히려 앞으로도 계속해서 내 하렘 라이프를 도와주겠지.

“아니, 어차피 앞으로도 많이 볼 사이인데, 지금 얼굴을 봐둬서 나쁠 게 없을 거야.”

“그렇군요.”

“근데 그 날개랑 링은 어떻게 못 해? 보기는 좋은데...... 흠. 지금은 숨길 수 있으면 좋겠는데.”

“아, 네. 가능합니다. 바로 숨기겠습니다.”

델리아가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집중하는 남자의 모습은 멋있다는데, 집중하는 여자의 모습도 예쁘다.

델리아가 집중하고 3초가 지나자, 그녀의 등 뒤로 나와 있던 날개와 머리 위를 떠다니던 링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으음.

이제야 좀 인간 같네.

‘그래도 복장이 좀 헐렁하긴 한데......’

델리아는 속옷도 입지 않고 원피스를 입은 듯한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순백의 실크로 이루어진 듯한 과감한 원피스를.

옆에서 보면 그녀의 탱글탱글한 옆가슴이 훤히 보이고, 가슴을 펴면 꼭지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는 복장이다.

그런데 그 옷도 꽤 신성해 보여서, 마치 중세 판타지에 나오는 여신이나 입을 것만 같았다. 척 봐도 현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옷이다.

날개와 링이 없어지기 전의 델리아는, 진심으로 인외의 무언가. 천사와 같은 존재처럼 보였다.

아니, 어쩌면 진짜 천사가 맞는 건가?

“델리아 혹시 너는 천사야?”

“천사......? 아닙니다. 저는 도우미입니다. 종족 또한 도우미라는 별개의 종족일 뿐...... 다만, 히로인 어플의 의지가 저를 만들 때 천사를 모티브로 만들었을 수는 있습니다. 저도 저와 제 머릿속 천사의 이미지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렇구나.”

아쉽다.

아니. 아쉬운 게 없지. 실제로 그녀에게는 날개가 달려있으니, 섹스를 할 때 날개로 나를 포근하게 안아줄 수도 있었다.

천사 플레이라고 해야 하나. 상상만 해도 기분 좋을 것 같아. 그녀의 날개는 굉장히 푹신푹신해 보였으니까.

“강수정...... 히로인분이 지금 여기로 오는 겁니까?”

“응.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아.”

“그렇군요.”

그렇게 말을 끝으로 우리 둘은 말이 없어졌다.

델리아는 이 공기가 불편한지 나를 힐끗 보다가, 원룸을 둘러보다가, 다시 나를 보다가를 반복했다.

나는 조용히 델리아를 관찰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흔들리는 옆가슴이 일품이었다. 훌륭한 가슴이다. 브라가 없는데도 축 처지지 않고, 그 탱글함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너무 야한 복장이니...... 오늘이나 내일 중에 사이즈를 측정해서, 옷과 속옷을 사줘야겠어.’

띵동~ 띵동~

그렇게 생각할 찰나, 마침 벨이 울렸다.

나는 반가운 표정으로 수정이를 맞이했다.

“아, 수정아 어서 와. 빨리 왔네.”

“응! 헤헤. 진현아 너무 보고 싶었어!”

수정이는 정말 행복한 표정으로 내게 달려와서 안겼다. 나는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넘겼다.

“에이, 헤어진 지 몇 시간 됐다고.”

“아잉. 그래도 참을 어어......!?”

그런데 수정이는 말을 끝까지 하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나는 굳은 그녀의 몸을 만지며 의아해하다가 이내 그녀의 시선을 보고 알아차렸다.

‘아.’

어느새 나를 따라 현관 앞까지 나온 델리아를 발견한 것이다.

수정이의 시선은 델리아에게 매섭게 꽂혀 있었다.

“주인님...... 이 여자 누구예요?”

수정이는 내 팔을 꼬옥 안으면서 물었다. 그녀는 내 팔을 그녀의 가슴 정중앙에 끼우는 형태로 안았다. 마치 자기 것이라는 듯.

델리아를 바라보는 수정이의 눈은 사나운 고양이 같았다.

요즘에는 한번도 본적이 없는, 그녀를 공략하기 전에 내가 받았던 눈빛이다.

‘아...... 그러고 보니 수정이의 특성은 히로인한테만 적용되지?’

3천 코인에 구매한 원가 1만 코인짜리 특성인 ‘평화로운 하렘 친화력.’

그건 특성을 지닌 히로인이 주인공의 다른 ‘히로인’들에게 호감을 느낀다는 특성이다. 즉, 모든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델리아는 내 스킬에 의해 소환된 여성이므로, 아직 내 히로인은 아니었다. 따라서 효과가 적용되지 않았다.

아직은 말이다.

‘그나저나 델리아도 다른 사람 같네.’

델리아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수정이와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 얼굴에는 일말의 동요도 두려움도 찾아볼 수 없었다.

조금만 나와 눈이 마주쳐도 당황하던 방금까지의 그녀와는 완전 다른 사람 같았다.

나는 기묘한 기류가 흐르는 듯한 그녀들의 사이에서 말했다.

“소개할게. 이쪽은 델리아. 으음...... 뭐라고 해야 하지. 내......”

나는 미친 새끼인가?

말을 하다가 말고 나는 자신을 구박했다.

그러고 보니 델리아를 뭐라고 소개할지 정하지도 않고 있었다. 호감도 100이라서 괜찮다는 것만 생각했지.

뭐, 수정이는 내게 특별한 힘이 있다는 것을 아니까 도우미라고 솔직하게 말해도 되겠지만, 되도록 히로인 어플의 존재에 관해서는 알리고 싶지 않았다.

막연히 내가 특별한 존재라는 것만 알면 족하다.

언젠가 그녀에게 모든 걸 알리게 되더라도, 그건 내가 나를 충분히 지킬 힘이 생긴 뒤겠지.

역시 빨리 능지를 올려야 한다.

능지능지.

“사촌동생입니다. 외국에서 살다가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진현님 집에 얹혀살기로 했습니다.”

그때 델리아가 내 말을 받았다.

“사, 사촌동생......? 혼혈이에요?”

수정이는 델리아의 말에 당황했다.

그녀는 델리아의 몸을, 아래부터 위까지 진득하게 훑어보았다. 그녀의 동공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흔들렸다.

그래.

도무지 내 동생으로 보이지는 않겠지.

솔직히 내가 봐도 델리아는 나보다 연상으로 보였다. 얼굴도 그렇고 몸매도 그렇고, 너무나도 성숙하고 아름다운 미를 뽐내는 모습이다.

수정이 방송에 단 3초만 출현해도 ‘눈나 나죽어’가 도배되겠지.

“그, 그래요. 사촌동생이라고 쳐요. 근데 ‘진현님’이라니...... 진현씨도 아니고 그 호칭은 대체 뭐예요?”

“아. 진현님은 저를 받아주고 구해주신 은인입니다. 평생 섬기면서 살기로 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기로 했습니다.”

“거짓말! 누가 사촌오빠를 ‘님’자를 붙여서 불러요.”

그러는 너도 방금 주인님이라고 부르지 않았니.

나는 굳이 지적하지 않기로 했다.

아니 그보다 델리아도 잠시 반말을 하거나, 오빠라고 부르면 되는데. 절대 안 그러네.

“다, 당신도...... 주인님을 모시기로 한 거죠? 빨간 실이 연결된...... 야한 짓을 한. 그런 사람이죠!?”

“빨간 실? 야한 짓? 아~. 저는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빨간 실을 알고 있으면서 시치미떼기는! 그리고 그 복장도...... 나도 코스프레 플레이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

코스프레?

아무래도 델리아의 야한(?) 신성력이 넘치는 복장을 수정이는 코스프레 복장이라고 착각한 모양이다.

이쯤에서 나서 줘야겠지.

나는 수정이의 머리를 애정 넘치게 쓰다듬었다.

“진짜야. 델리아는 빨간 실이 연결되지 않았어. 나랑 야한 짓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고.”

“저, 정말로요?”

“그러엄.”

나는 설마 내가 너에게 거짓말을 하겠니? 라고 덧붙이려다가, 차마 양심에 걸려 말하지 못했다.

히로인 어플을 이용해 그녀를 공략한 순간 나는 양심이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무의식으로 양심을 지워버리는 단계까지는 오지 못한 모양이다.

“그러면 믿을게요......! 저는 벌써 제가 질린 줄 알고...... 저한테 오늘은 하지 말자는 이유가 델리아랑 그런 짓 하기 위해서인 줄 알고......”

수정이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다. 나는 계속해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럴 리가. 내가 너를 질려 할 일은 절대 없어. 너는 평생 내 여자야. 그리고 그런 건 너한테 솔직하게 말해줄게.”

“네에...... 고마워요. 근데 그래도 저 델리아라는 사람도, 결국 붉은 실을 꽂기는 할 거죠?”

수정이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 눈동자에 흔들림은 없었다.

그래. 어차피 그녀에게 이런 것에 대해 거짓말은 할 필요가 없다. 이유도 없고, 들키기만 할 거짓말은.

“응.”

“그럴 것 같았어요...... 델리아는 굉장히, 굉장히 미인이니까.”

수정이가 부럽다는 눈빛으로 델리아를 쳐다보았다.

“저, 저를...... 히로인으로......?”

그런데 오히려 델리아가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방금 수정이와 대치했을 때와는 다르게, 나와 눈을 마주치고 당황했을 때처럼 또 얼굴이 조금 빨개지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일단 수정이를 안으로 들여보냈다.

“어쨌든.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는 없지. 들어와 수정아.”

“네. 알았어요. 그리고 델리아......씨? 도 잘 지내봐요.”

수정이는 먼저 델리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저, 저한테 히로인이라니...... 아앗! 네, 수정씨 잘 지내봅시다.”

델리아는 무언가를 중얼중얼거리다가, 수정이가 내민 손을 보고 깜짝 놀라 황급히 잡았다.

“수정씨라뇨. 너무 딱딱한데, 앞으로는 수정이 언니라고 불러요.”

“네, 알겠습니다. 수정이 언니.”

뭐야.

나는 둘이서 악수를 하는 장면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며칠 전에 수정이와 잡담을 하면서, 그녀가 내성적인 성격이라서 친구의 추천으로 집에서 방송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걸 보면 수정이는 그다지 내성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사실 내성적이지 않은 것인가?

“후후. 아. 그리고 설령 나중에 주인님의 선택을 받는다고 해도, 제가 첫 번째에요. 아셨죠?”

“아, 네...... 알겠습니다. 수정이 언니.”

아.

그냥 서열정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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