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 https://t.me/LinkMoa
미소녀.
그것도 그냥 미소녀가 아니었다.
찬란한 금발이 허리까지 내려오고, 아름답게 빛나는 푸른 눈동자는 너무나도 맑아 보였다.
무엇보다 한 쌍의 순백색 날개와 머리 위에 두둥실 떠다니며 찬란하게 빛나는 금빛 링은, 그녀가 예사롭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이 초라한 원룸 따위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신성함이었다.
히로인 어플로 비현실적인 힘을 경험했기에 무엇이 나타나도 그다지 놀라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과연 델리아라고 칭하는 그녀의 등장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잠시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입을 열었다.
“......델리아라고?”
“네, 델리아입니다. 앞으로 천진현 주인공님을 전력을 다해 보좌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굉장히 극진하게 내게 예의를 표하는 모습이다. 그 모습이 마치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나 보던 중세의 기사 같았다.
나는 일단 그녀를 일으켰다.
“일어나도 돼 델리아. 으음......”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내 초라한 원룸 상태에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세상에나.
남에게 보일 상태가 아닌 건 알았지만, 손님이 앉을 만한 의자 하나 없네.
그동안 나는 무엇을 하고 살았는가?
나는 어쩔 수 없이 내가 앉아있는 침대의 옆을 팡팡 때리며 말했다.
“일단 여기에라도 앉아. 델리아.”
“그, 그래도 됩니까 천진현 주인공님?”
“물론이지.”
“아, 네. 감사합니다!”
뭐가 감사하다는 것일까.
잘 모르겠지만, 델리아는 고개를 푹 숙여 인사하고는 내 옆에 굉장히 조심스럽게 앉았다.
- 끼이익
‘오...... 냄새 좋네.’
델리아가 내 옆에 앉자 바로 그녀의 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은은하게 달콤하면서도 마음이 안정되는 그런 신비한 냄새다. 뭔가 맡고만 있어도 중독될 것 같았다.
델리아는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내가 그녀를 쳐다보자 고개를 돌리며 시선을 피했다.
‘진짜 예쁘다.’
델리아의 아름다움은 가히 여성적으로 완벽하다고 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봐온 여자 중에서 가장 예쁜 사람은 단연 수정이의 친구인 장예화가 원탑이라고 생각했는데, 델리아는 예화와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았다.
그나마 수정이를 공략해서 다행이었다.
만약 수정이와 데이트를 하거나 야한 짓을 하여 여성에 익숙해지지 않았다면, 가까이서 본 델리아의 미모에 숨이 막혀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델리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근데 아까 나를 보좌한다고 했잖아.”
“네, 천진현 주인공님.”
“대체 어떤 식으로 보좌하는 거야?”
내 질문에 델리아는 살포시 미소지었다.
“그건 간단합니다. 앞으로 천진현 주인공님의 말씀을 잘 따르고, 천진현 주인공님이 시키는 일을 다 하는 식으로 보좌하려고 합니다. 뭐든지 말씀만 해주십시오!”
델리아는 의욕을 불태웠다. 나는 그녀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시키는 일을 다 한다고......?’
델리아의 발언에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과 몸매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사내라면 응당 당연한 현상이다.
잘 빠진 잘록한 허리. 그와는 대조되게 아름답게 존재감을 내뿜고 있는 탱탱한 골반. 그리고 무심코 잡고 싶어지는 탐스러운 가슴.
나는 델리아의 몸을 바라보며 무심코 침을 꿀꺽, 하고 삼켰다.
내 시선을 눈치챈 것인지 델리아는 얼굴이 살짝 빨개졌다.
그녀는 입을 달싹거리다가, 이내 수줍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 그러한 일도...... 보좌해야 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 몸으로 천진현 주인공님이 만족하신다면, 언제든지 받아들이겠습니다. 아니...... 기쁘게 임하겠습니다!”
델리아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촉촉한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슬쩍 가슴을 끌어모으고 나를 향해 수줍게 웃어보인다.
‘미친.’
미소짓는 그녀의 얼굴은 정말로 현기증이 날 정도로 예뻤다.
“......일단 지금은 괜찮아.”
나는 일단 그녀를 제지했다. 저렇게 예쁜 미녀가 나를 향해 봉사하겠다는 것을 마다할 만큼 고자는 아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지금은 그녀의 몸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아니, 중요할 수는 있다. 저렇게 예쁘니까. 그런데, 일단 그녀의 태도를 본다면 뭐든지 언제든 협조해줄 듯한 모양새였다.
그렇다면 지금은 갑작스러운 성욕보다는 내 궁금증을 해결하는 것이 더 먼저이리라.
승급하고 여러 가지 기능을 얻었다. 그리고 도우미로 그녀를 소환했다. 물어볼 것이 꽤 많았다.
“그, 그렇습니까......? 혹시 제 몸이 매력이 없는 건......”
“그건 절대 아니니 걱정하지 말고.”
“......다행입니다.”
델리아는 진심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 수정이한테 그렇게 많이 뺐는데도 발기할 뻔했다.
나는 성욕을 억누르며 머리를 빠르게 회전시켰다.
“너는 분명히 도우미라고 했지?”
“네, 천진현 주인공님.”
그런데 물어보기 전에 고칠 것이 있다.
“그런데 꼭 호칭을 매번 그렇게 천진현 주인공님이라고 붙여야 해?”
“그, 그건 아닙니다. 만약에 불리고 싶은 호칭이 있다면 정정하겠습니다.”
“으음......”
“주인님은 어떠십니까?”
내가 고민하고 있자 델리아가 제안했다.
주인님이라. 상당히 괜찮다. 그런데 그건 수정이가 쓰고 있는 호칭인데.
“일단 나중에 생각해 보자. 지금은 주인공이랑 성도 빼고, 그냥 진현님이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진현님.”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다.
처음에는 내게 존댓말을 할 필요도 없다고 말해볼까 생각했는데, 이런 미녀의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는 것은 꽤 기분 좋은 일이었다. 호칭도 좋은 것으로 정해서 부르게 하면 참 좋을 것 같았다.
‘확실히 히로인 어플을 얻고 무언가가 바뀌었어.’
스킬을 얻자마자 수정이를 강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부터, 그녀에게 주인님이라고 부르라고 시킨 것까지.
약간 가학적 성향과 함께 위에 서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것 같다. 이제 막 승급한 지금은 조금 더 심해진 것 같기도 한데......
나는 옆을 바라보았다.
“그럼 이제 본격적인 질문. 도우미가 하는 일은 내 말을 따르는 것뿐이야?”
“으음. 제가 첫 도우미라 아주 확실히 말씀드릴 수 없지만...... 정확하게는 진현님이 무사히 승급을 반복할 수 있도록 보좌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승급을 보좌하라는 명?”
“예. 하지만 진현님의 의지에 반하는 것은 절대 하면 안 되고, 진현님의 명령을 최우선으로 따르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지시라. 그렇다면 그 지시를 델리아에게 내려준 존재가 있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히로인 어플의 비밀과 무언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지시? 그건 대체 누가 내려주는 거지?”
“그건 특정 지어서 말씀드리기가 힘듭니다. 저는 ‘히로인 어플’의 의지에 의해 태어났고, 태어날 때부터 진현님을 보좌할 숙명을 지니고 태어났습니다. 따라서 지시를 내려준 존재는 특정할 수 없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히로인 어플’ 자체가 제게 지시를 내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히로인 어플 자체가.
그렇다면 히로인 어플은 대체 무엇인가.
“히로인 어플은 대체 뭐지? 이 세계에 나 말고도 히로인 어플을 가진 사람이 있나?”
“진현님 말고 이 어플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히로인 어플의 정확한 정체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모릅니다. 죄송합니다.”
델리아는 내게 정보를 주지 못해서 분한 얼굴을 했다.
“모를 수도 있지. 괜찮아. 알고 있는 부분만 말해줘.”
“알겠습니다. 우선 저는 진현님을 잘 보좌할 수 있도록 128번 세계연합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습득하고 태어났습니다.”
“128번 세계연합......?”
“예. 지구가 속한 세계연합입니다. 총 6개의 세계가 128번 세계연합에 속해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말에 나는 살짝 당황했다. 이게 무슨 소리지?
“128번 세계연합은 현재 연합을 수호해 줄 수호신이 없는 상태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신격을 뽑기 위해 현재 128번 세계연합을 수호해주고 있는 임시 수호신격이, 현 세계연합의 의지와 합쳐 신규 신격을 뽑는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혹시 그게......”
“히로인 어플입니다.”
그러면 히로인 어플은 뭐 신을 선별하는 어플이라도 된다는 건가?
갑자기 커진 이야기에 살짝 머리가 아파왔다.
“신규 신격을 뽑기 위해 만들었으면, 내가 그 후보가 됐다는 거야?”
“맞습니다. 수호신격은 가장 하위 신격이라고 합니다. 본래 이런 식으로는 뽑지 않지만, 시스템을 통해 일부러 초월자를 만들어 신격에 오르게 한다고 합니다.”
“근데 왜 하필 히로인 어플이지?”
내 물음에 델리아 또한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저도 그 부분이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어쩌면 지배욕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고, 단순히 시스템 이용자의 의욕을 복돋아주기 위해 원초적인 성욕에 접근한 걸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이 세계를 임시로 수호하고 있는 신격의 취향일 수도 있고요.”
그 부분은 대충 알 것 같았다.
워낙 비현실적인 이야기였지만, 이미 나는 히로인 어플을 통해 비현실적인 스킬과 아이템 등을 겪었다. 믿을 수 밖에 없다.
그보다 문제는 다른 것.
스케일이 갑자기 커졌다는 것이다.
솔직히 나는 그냥 어여쁜 여자들로 하렘을 차리고, 재미있게 살고 싶은 것뿐인데. 초월자니 신격이니 갑작스러운 이야기는 사양이었다.
나는 이 부분을 솔직하게 물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히로인 어플을 이용해 초월자가 된다는 거지? 솔직히 말해서 나는 예쁜 여자들과 함께 즐거운 생활을 즐기며 편안하게 살려고 했을 뿐이야. 앞으로는 그러지 못하는 건가?”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히로인 어플은 그러한 생활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히로인 어플의 등급을 올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초월자에 가까워지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델리아는 갑작스럽게 내 손을 감쌌다.
굉장히 부드럽다. 뭔가 천사가 치유해주는 것 같아.
“그러니까 지금은 진현님이 원하는 데로 여자들을 꼬셔 하렘 생활을 즐기며 편안하게 사셔도 됩니다. 신격이 되기 위한 호흡은 굉장히 길고, 히로인 어플은 그러한 힘을 제공하고 권장하니까요. 다만, 등급이 올라갈수록 히로인 어플은 진현님에게 점차 초월자에 걸맞은 무언가를 요구할 겁니다. 그때를 대비해서 차근차근 진현님 자체를 단련하는 것 또한 필요합니다.”
“그렇구나.”
“네...... 아, 앗! 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내가 델리아가 맞잡은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자,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손을 놓았다.
“왜 죄송해. 굉장히 좋았는데.”
“그, 그렇습니까?”
“응. 앞으로도 해줘.”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히로인 어플에 대한 걸 들으니, 이게 생각보다 더 대단한 어플인 것 같았다. 초월자니 신격이니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일단 델리아의 말 대로 여자들을 꼬시고 하렘 생활을 해도 좋다고 하니 다행이다.
“그런데 만약 히로인 어플의 요구에...... 아, 잠깐만.”
델리아에게 질문을 하려던 찰나, 문득 톡이 울렸다.
강수정이었다.
[ 강수정 : 녹녹~! ( 강아지가 노크하는 이모티콘 ) ]
[ 나 : 안녕. ]
[ 강수정 : 모해? ( 강아지가 살펴보는 이모티콘 ) ]
[ 나 : 그냥 쉬고 있지~ 넌? ]
[ 강수정 : 나도 쉬고 있어. 그런데 벌써 진현이 얼굴 보고 싶어졌어♥ ]
얘는 얼굴 안 본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러냐.
그런데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웃음이 나온다.
[ 나 : 그래? ]
[ 강수정 : 웅. 내려가도 돼? 나 생각해 보니까 진현이 집에는 가본 적 없는 거 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