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 https://t.me/LinkMoa
‘역시 틀림없어......’
강수정은 흔들리는 진현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대략 2주 전부터 지금까지 자신을 신비한 장소로 불러서 하루도 빠짐없이 범했던 ‘주인님.’
그 주인님이 바로, 진현임에 틀림없었다.
‘바보...... 애초에 샴푸 냄새가 같았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처음 강간을 당한 날 이후부터, 강수정은 매일 같이 진현과 데이트를 했다.
그리고 동시에, 매일 같이 주인님에게 범해졌다.
가까이서 맡은 진현의 냄새와 주인님의 냄새는 너무나도 비슷했다.
샴푸의 냄새도 몸의 체취도.
전부.
2주 동안 계속해서 말이다.
하도 사람을 별로 만나지 않아서, 둘의 냄새가 같다는 점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정말로 멍청하기 짝이 없었다.
‘생각해 보니 톡도 그랬어.’
진현과 연락처를 교환한 이후부터, 자신과 진현은 많은 톡을 나누었다. 서로 다양한 시간대에 사랑이 넘쳐나는 톡을 주고받았다.
한데 이상하게도 주인님과 함께 있는 시간.
그러니까 신비한 장소로 불려가서 주인님에게 강간당하는 시간인 오후 4시부터 6시 전후까지. 진현과 자신은 단 한 번도 그 시간에 톡을 한 적이 없었다.
뭐 자신이야 한창 주인님에게 당하는 도중이라 톡을 할 수는 없겠지만, 진현 또한 그 시간에 단 한 번도 자신에게 선톡을 보낸 적이 없었다.
다른 여러 시간대에는 선톡을 많이 보내왔던 진현이지만, 유독 그 시간대만 한 번도 없었다. 만약 진현이 주인님이라면 이 의문 또한 해결되었다.
게다가 자신과 진현이 친해지게 된 시기도 그렇다.
강간을 당하기 시작한 바로 다음 날부터, 그와 친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진현......이 주인님인거...... 맞죠?”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는 진현의 눈을 보며, 수정은 물었다.
두려웠지만, 눈을 감지 않고 물었다.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가장 처음 의식한 것은 오늘 진한 키스를 나눌 때였다.
키스를 할 때 주인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키스해본 게 주인님밖에 없어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너무나 주인님과 키스 스타일이 유사했다.
마치 자신과 오랫동안 혀를 섞어본 사람처럼 거침없고 당당한 혀 놀림. 너무 황홀하게 만드는 혀 놀림.
당연히 이때는 그저 주인님의 얼굴이 떠올랐을 뿐. 딱히 의심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럴 때 주인님의 얼굴이 떠오르는 자신이 싫었다.
진현이의 자지를 기분 좋게 만들어주기 위해서 그의 자지를 처음 잡고 귀두 부분에 키스했을 때. 자지에서 묘한 냄새가 나는 것을 느꼈다.
뭔가 중독되는 냄새.
이 또한 주인님과 같은 냄새였다. 매일매일 정성스럽게 핥고, 빨고, 냄새를 맡았으니까. 주인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본격적으로 의심되기 시작한 것은, 진현이의 정액을 먹었을 때였다.
주인님의 정액은 특별하다. 뭐가 있는 것인가?
몸 안에 들어오면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미약하지만 온몸으로 무형의 기운이 퍼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무언가가 충족되는 느낌. 신비한 기분이었다.
인터넷에 여러가지로 검색을 해 봤는데, 주인님 말고는 딱히 그런 경우를 찾아볼 수는 없었다.
주인님의 정액은 맛도 특이했다. 정액의 맛은 비리고, 쓰고, 텁텁하다고 했다. 그런데 주인님의 정액은 굉장히 단맛이 강했다. 솔직히 말해서 맛있다.
그런데, 진현이의 정액에서 주인님과 같은 기운이 느껴졌다. 완전히 같은 기운이.
그리고 정액 또한 주인님과 맛이 똑같았다. 달콤하고 맛있는 맛. 정액의 맛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하는데, 너무나도 똑같았다.
진현과 관계를 맺으면서 의심은 더욱 커졌다.
섹스의 스타일. 주인님과 평소에 하던 스타일과 너무 비슷했다. 그리고 질내사정을 받았을 때 느껴지는 정액의 기운까지.
겹치는 게 한둘이 아니었다.
“말해줘요...... 주인님이 맞는 거예요?”
의심이 확신으로 바뀐 것은, 바로 금방이었다.
그가 반대로 누웠을 때 보인, 날개뼈에 있던 흉터.
자신이 두 번째로 강간당했던 날. 울고불고 난리를 치며 주인님에게 강하게 저항하면서 그의 등을 할퀴었을 때, 주인님의 등에 난 흉터였다.
그런데 주인님에게 낸 상처가, 진현이의 등에 있다. 그것도 같은 장소에.
너무 확실했다.
“만약 아니라면...... 아니라고 해주세요. 그건 네 착각이라고...... 애초에 주인님이 뭔지 모른다고......”
목청을 거친 목소리가 떨린다.
이상했다.
말을 꺼내놓고도, 후회가 밀려왔다.
차라리 그럴걸.
내일 불려갔을 때 그냥 진현이와의 섹스가 더 기분 좋았다고 한마디 하고 끝낼걸.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눈치를 챘어도 모른 척했으면, 어쩌면 앞으로도 진현과 계속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가끔 왜 다른 모습으로 자신을 찾아와서 범했을까 그런 생각이 들겠지만, 그래도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을 텐데......
따라서 수정은 진현이가 부정해주기를 바랐다.
보기 좋은 거짓말.
그래. 딱 그 보기 좋은 거짓말 한마디가 듣고 싶었다.
매일같이 자신과 데이트를 하고, 다른 얼굴로 자신을 강간하는 남자.
그런 사람이라면 그 정도 거짓말이야 쉽게 할 수 있잖아.
“맞아. 내가 너를 강간한 주인님이야.”
“아......”
그런데 그는 부정하지 않았다.
문득 주륵, 하고 눈물이 흘러나온다.
진현은 자연스러운 손놀림으로 수정의 얼굴에 묻은 눈물을 스윽, 하고 닦아주었다. 우습게도 그가 자신에게 고백했을 때와 상황이 겹쳐 보였다.
그럼 그 고백도 가짜였을까?
이제 자신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알아내 버렸으니 이 관계도 끝나는 것인가.
“흑...... 흐윽. 왜 그랬어요...... 왜 저를......”
“미안해. 수정이 너를 너무 가지고 싶었어......”
“아......”
가지고 싶었다.
자신을 강간한 사람인데, 그 말 한마디에 이상하게 안심이 된다. 저 한 마디에 마음이 눈 녹듯 쉽게 녹아내렸다.
“왜에...... 그냥 강간 같은 거 안 하고...... 평범하게만 제게 다가왔어도....... 언제나 받아줬을 텐데...... 이 몸도 마음도 지금처럼 다 드렸을텐데......”
강간으로 얻은 포인트를 통해 호감도가 올라서 이렇게 됐다는 걸 모르는 수정은 그렇게 말했다.
“미안해......”
그가 사과했다.
뭔가 이 관계를 이제 끝내려는 듯해 보여서 더욱 슬펐다.
“그럼 저를 사랑한다는 것도 다 거짓이었어요? 오직 몸만이 목적이였어요......?”
“아니야. 나는 너를 사랑해.”
“거짓말......!”
“몸만이 목적이었으면, 매일 너를 강간만 했겠지...... 직접 찾아가서 이렇게 데이트도 하고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을 거야. 나는 마음대로 너를 소환하고 돌려보낼 수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그가 얼굴을 쓰다듬었다. 사랑스럽다는 듯.
‘아아.’
슬퍼졌던 마음이 너무나도 쉽게 녹는다.
몸을 쓰다듬는 손길을 뿌리치고...... 좀 더 물어봐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다.
너무 좋았다. 그냥.
진현이가 자신을 강간한 주인님이라고 확신했을 때 든 감정은 슬픔, 불안.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다행이라는 감정이었다.
언젠가 무의식적으로 그가 주인님이어도 좋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게 기만이고, 설령 자신을 농락한 것일지라도.
“신비한 능력이네요. 사람을 마음대로 소환할 수 있다니...... 그럼 이제 제가 그 사실을 알아버렸으니...... 저를 처리하실 건가요?”
그가 강간하고, 그가 자신을 속인 것이지만...... 여전히 모든 것은 그에 따라 달려있었다.
사람을 마음대로 소환하고 내보낼 수 있는 능력. 그러한 특별한 능력이 있으니, 여자를 마음대로 강간할 수 있었던 거겠지. 어쩌면 이대로 기억을 잃거나, 진심으로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너무 슬프다.
이대로 끝난다는 것이.
그런데 예상 밖으로, 진현은 그저 웃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너는 평생 내 여자야.”
진현이 또 뺨을 쓰다듬었다. 좀 더 쓰다듬어 줬으면 좋겠다.
그런 자신의 마음을 알았는지, 진현은 한층 더 수정에게 가까이 붙었다.
“읏......”
“말했잖아. 우리는 운명이라고. 운명의 붉은 실로 이어진.”
진현이 수정의 가슴을 꾸욱 하고 눌렀다. 야한 목적으로 주무르는 움직임이 아니라, 단순히 심장 쪽을 가리키는 움직임.
심장, 운명.
그리고 붉은 실......?
‘아?’
그때, 수정의 머릿속에 마치 번개처럼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설마...... 예화가 놀러 왔던 그 날. 심장에 붉은 실이 온 게......?”
“응. 내가 연결한 거야. 절대 풀 수 없는 실이지.”
“아아......”
운명.
강간을 당하고 기만을 당했는데도, 그 한 단어로 가슴이 울렸다.
“그 능력으로...... 지금까지 몇 명이나 되는 여자를 품은건가요......?”
“아직은 너밖에 없어.”
“아직은......”
그렇다면 앞으로는 다른 여자들을 품는다는 것이다.
문득 씁쓸한 미소가 지어진다.
“그럼 앞으로 다른 여...... 읍!? 우웁! 웁! 하움......”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내가 할 말이 그의 혀 놀림에 막혔다. 그런데도 너무 좋았다.
키스 너무 좋아.
“이미 난 널 품기로 정했어. 이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풀어줄 수 없어.”
“아......”
“애초에 내기가 있었지? 주인님의 물건이 더 좋으면 평생 나를 주인님으로 모신다고. 어차피 둘 다 나니까 너는 평생 나를 주인으로 모셔야 해. 싫다면 억지로라도 그렇게 만들어줄게.”
“그, 그런 치사한 논리가......! 하우움...... 우움, 하움. 쪼옥......”
혀가 입속을 유린한다.
그러나 마음은 기쁨으로 넘치고 있었다.
‘아. 그렇구나.’
수정은 그 순간 깨달았다.
애초에 그가 주인님이든 아니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는 걸.
그가 주인님이어서 약간 두렵고 불안했던 것은, 단순히 이 관계가 변하는 것. 그러니까 자신에게 사랑을 주던 그가 자신을 떠나가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뿐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가 주인님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지금과 같이 그가 자신을 품어줄 가능성을 생각해서일 뿐이었다.
실제로 그가 자신을 평생 주인으로 모셔야 한다고 했을 때, 가슴속에 오히려 기쁨이 흘러넘쳤다. 그와 함께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기쁨이었다.
자신은 그저 그와 떨어지게 된다는 사실이 불안했을 뿐이었다.
“아, 알았어요...... 평생 주인님으로 모실게요.”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오히려 너무 좋아.
“평생 모실테니까...... 절 버리지 마세요.”
“내가 너를 왜 버려.”
“피...... 아까 아직이라고 했잖아요. 그렇다면 다른 여자도...... 그 실을 연결할 거죠?”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안 버릴 거야. 너는 내 첫 번째 여자니까.“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손길이 너무 좋다.
”주인님의 첫 여자...... 헤헤.“
”그렇지.“
”사랑해요. 주인님......♥“
쪼옥. 츄릅.
앞으로도 평생 주인님을 느낄 수 있다. 미칠 듯 키스하고 섹스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무런 걱정도 들지 않았다.
***
“오고 싶었다는 게 여기야?”
“응. 약속했으니까. 지켜야지.”
나는 수정이를 바라보았다.
수정이에게 내가 그녀의 주인님이라는 것을 들킨 다음 날. 우리는 남산타워에 한 번 더 왔다.
정확히는 수정이의 요청으로.
우리는 남산타워 밑의 사랑의 열쇠 철망에 서 있었다. 수정이와 내가 함께 걸었던 자물쇠 앞에.
수정이는 주머니에서 자물쇠를 하나 꺼냈다. 하트가 달린 자물쇠다.
“어 그건?”
“히히. 방금 진현이가 화장실 갔을 때 샀지롱~.”
“뭐야. 왜 그랬어. 같이 샀으면 더 좋았을 텐데.”
수정이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이. 이건 나 혼자 사야 돼. 내가 지킬 약속이니까.”
그렇게 말한 수정이는 펜으로 무언가 스윽스윽 글자를 적었다.
흠.
아무래도 뭔가를 써서 잠글 모양인데. 뭐지?
나는 슬쩍 그녀가 무엇을 적는지 훔쳐보았다.
[ 강수정 ♥ 주인님 ]
[ 평생 동안 모실게요! ]
“......”
헐. 보기만 해도 얼굴이 붉어지는 글이다.
“이건......”
“히히. 모처럼 왔는데, 진현뿐만이 아니라 주인님도 잠그고 가야죠. 그렇죠 주인님?”
어제의 관계 이후.
수정이는 반말과 존댓말을 번갈아 가며 썼다.
아무래도 진현이라고 부르고 싶을 때는 반말을 쓰고, 주인님으로 대하고 싶을 때는 존댓말을 쓰는 듯했다.
수정이는 자물쇠를 어제 우리가 함께 잠갔던 [ 천진현 ♥ 강수정 ] 자물쇠의 바로 옆에 잠궜다.
그 다음 이건 스스로 하는 약속이라며, 혼자서 열쇠를 저 멀리까지 던져버렸다.
“여기 받아요 주인님.”
“응? 열쇠?”
“일부러 주인님 주려고 열쇠 두 개 있는 자물쇠를 샀어요. 저는 평생 주인님 거니까요. 저걸 열 수 있는 사람은 주인님뿐이어야죠?”
나는 열쇠를 받았다.
전에는 빨간 열쇠였는데, 이번에는 파란 열쇠다. 나는 이 열쇠도 소중하게 지갑 안에 넣었다.
“하나는 진현이. 하나는 주인님. 둘 다 절대 잃어버리면 안 돼요?”
“물론이지. 사진 찍을까?”
“네~.”
우리는 두 개의 자물쇠가 잘 보이도록 자세를 잡은 뒤, 둘 모두가 나오도록 셀카를 찍었다. 수정이는 사진을 찍기 직전, 기습적으로 내 볼에 뽀뽀를 했다.
“헤헤.”
“오. 사진 잘 나왔다.”
“진짜? 나도 보내줘.”
“응. 물론이지.”
나는 그녀에게 사진을 보내준 뒤, 히로인 어플을 열어보았다.
[ 축하합니다! 히로인, ‘강수정’의 호감도가 100을 달성했습니다. ]
[ 히로인, ‘강수정’의 호감도가 더 이상 100 미만으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