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 https://t.me/LinkMoa
“치. 나쁜 자식들.”
게임이 끝나고도 입술을 삐죽 내민 그녀는, 욕설로 원딜과 미드를 신고했다. 둘 다 나중에는 심한 욕설을 사용했기 때문에 정당한 신고였다.
나와 수정이는 그 뒤로 게임 두 판을 더 했다.
다행스럽게도 두 판 모두 승리하였다. 수정이가 적 탑을 찍어 누르고 무쌍을 찍어서 이길 수 있었다. 과연 플레티넘 1티어 다운 캐리력이었다.
“이제 시간 됐다. 슬슬 갈까?”
“응. 그러자.”
건물 밖으로 나오니 땅거미가 자욱하게 깔려있었다.
8시가 좀 넘은 시각. 이제 충분히 저녁이었다.
“후우. 나 때문에 졌네, 미안해.”
“아, 아니야~. 오랜만인데 그럴 수 있지. 그건 팀원들이 나쁜 거야.”
“그래도. 감싸줘서 고마워.”
“응......”
아마도 내가 아니었다면, 그녀도 정글을 무진장 욕했으리라. 그런데 나라서 그런지 내가 탑에 가서 허무하게 킬을 헌납했음에도 오히려 나를 위로해줬다.
연인 사이도 갈라놓는 게 레전드 리그라는데, 호감도 효과가 대단하긴 하네.
다시 손을 맞잡은 우리는 케이블카를 타러 가기 위해 걸었다. 서로 오늘 노래방이나 당구장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내주기도 하면서, 평범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금 걷자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티켓을 구매했던 건물이 나타났다.
“사람이 많아졌네?”
“그래도 이 정도면 적은 편이야. 주말에는 이보다 세 배는 더 많을 테니까.”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확실히 아까 전보다 사람이 많아진 것이 보였다. 티켓 사는 곳에도 줄이 있었다. 미리 사둬서 다행이네.
“일단은 자물쇠를 사자.”
“자물쇠? 아.”
내가 자물쇠 상점을 가리키자 그녀가 탄성을 뱉었다.
“으음. 어떤 거 살 거야?”
“이건 어떨까?”
자물쇠를 판매하는 매점에 들려서, 나와 수정이는 자물쇠를 골랐다.
중간에 하트가 그려져 있는 빨간색 자물쇠를 하나 들어 올리자, 수정이는 조금 살펴보다가 마음에 든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좋다! 그럼 계산은 내가......”
“아니, 잠깐만. 자물쇠는 둘이서 같이 내자.”
“왜에?”
“둘의 사랑이 오래오래 가도록 하는 거니까. 공동소유잖아? 서로 반반씩 내는 게 좋을 것 같아.”
“아하. 그거 좋다.”
우리는 각자 6천원씩 현금을 모아 자물쇠를 계산했다.
자물쇠 하나에 1만 2천원이라는 게 좀 비싸긴 했지만 뭐, 추억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야 상관없었다. 좀 더 싼 녀석들도 있었지만, 열쇠가 세 개인 자물쇠는 이게 유일했다.
“자~ 차례대로 줄 서 주세요~. 금방 타실 수 있습니다~.”
자물쇠를 구매한 우리는 조금 줄을 서서 기다린 뒤 케이블카에 탑승했다. 케이블카 아래로 바라본 도시의 야경은 아름다웠다. 연보라색 배경에 수놓은 듯 장식된 불빛들은 밤하늘과 미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예쁘다.”
“그러게. 밤에 오길 잘했네.”
“응.”
우리는 서로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반짝이는 눈빛으로 케이블카 밖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마치 보석처럼 아름답게 빛났다.
‘좋네.’
수정이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불과 2주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 하면 아르바이트를 하며 꿀을 잘 빨 수 있을까만 생각했다. 혹여 이쁜 손님이 오면 몰래 몸을 힐끔거리며 굴곡을 바라보기 바빴고, 거스름돈을 주며 손이 살짝이라도 닿으면 그 감촉에 좋아하던 변태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보다 훨씬 이쁜 수정이를 데리고 데이트를 하다니. 참 신기했다.
‘데이트도 자주 해야겠어.’
처음에는 마냥 어여쁜 여자들과 주지육림을 차리고 섹스할 생각에 온 머리가 가득 찼었는데, 이렇게 평범하게 데이트하는 것도 상당한 만족감이 있었다.
여자가 많이 생기더라도, 데이트나 여행도 자주 다니고 하면 참 좋을 것 같았다.
“도착했다.”
우리는 케이블카에서 내렸다.
저녁의 산 위라 그런지 여름인데도 시원한 바람이 우리를 지나쳤다.
곧바로 높게 뻗은 남산타워가 보이고, 옆으로는 사랑의 열쇠 철망으로 향하는 표지판이 있었다. 우리 둘의 시선은 똑같이 표지판을 향하고 있었다.
“바로 갈까?”
“응!”
애정행각을 벌이는 커플들, 유대감을 다지는 가족들, 관광을 와서 감탄하는 외국인들을 지나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자물쇠가 주렁주렁 매달린 공간이 등장했다.
“와아~. 진짜 많다. 이게 다 자물쇠야?”
“그러게. 진짜 대단하네.”
수정이는 감탄하며 사방 곳곳에 걸린 자물쇠들을 살펴보았다. 난간에도, 신기한 조형물에도 곳곳에 자물쇠가 빼곡했다.
나 또한 놀랐다. 설마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는데...... 우리는 함께 돌아다니며 어디에 자물쇠를 걸지 생각했다.
“저기 어때?”
“응 괜찮다.”
수정이가 가리킨 나무는, 꽤 컸다. 자물쇠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자물쇠 나무였다. 주변에 커플들이 빼곡했지만, 이제는 나 또한 그들 중 하나였다.
그냥 길거리를 돌아다닐 때면 수정이의 모습만 보아도 힐끔거리는 남자가 많았는데, 과연 진정한 커플 천국에 오니까 수정이의 모습을 봐도 잠시 감탄할 뿐, 금방 다시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집중하는 남자도 상당했다.
나는 미리 준비한 펜으로, 빨간색 자물쇠에 나만의 색을 써 내려갔다.
천진현. 내 이름을 적고 수정이에게 펜을 넘겨주었다. 수정이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펜을 넘겨받고는 마찬가지로 하트 옆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밑에 추가로 메시지를 적었다.
[ 천진현 ♡ 강수정 ]
[ 앞으로도 영원하게 해주세요. ]
“......괜찮지?”
“물론이지.”
수정이는 베시시 웃으며 내게 다시 펜을 건네주었다.
“이제 자물쇠를 걸고, 열쇠를 버리면 되는 거야.”
“열쇠를 버려?”
“응. 잠긴 사랑을 열지 못하도록.”
“아......”
수정이의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 나는 그녀에게 열쇠를 하나 건네주었다.
“그런데, 우리는 각자 하나씩 기념으로 가지고 있자.”
“기념으로?”
“응. 나 하나, 너 하나. 그리고 하나는 버리는 거지.”
“아하~. 그래서 일부러 열쇠가 세 개 있는 걸 고른 거구나.”
나는 그녀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히히. 그래. 그러자.”
수정이는 수줍은 표정으로 열쇠 하나를 지갑 안에 넣었다. 나 또한 지갑 안에 열쇠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 남은 열쇠로 자물쇠를 열고 나무에 잠근 뒤, 우리 둘은 열쇠를 동시에 잡았다.
“하나, 둘, 셋 하면 같이 던지는 거야?”
“응!”
“하나~ 둘~ 셋!”
열쇠는 한치의 아쉬움도 없이 우리에게서 멀어져갔다. 저 남산 중턱에 아래로 떨어진 열쇠는 이제는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이제 된 건가?”
“그래. 이제 사진 찍자.”
어차피 남는 것은 추억과 사진이리라.
우리는 실컷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거나 셀카를 찍었다. 잠근 자물쇠의 사진도 다양한 각도에서 찍고, 다른 커플에게 부탁해서 수정이와 함께 찍은 사진까지 잘 남긴 채 마지막으로 남산타워를 향했다.
“헐, 줄봐......”
수정이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평일인데도 전망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려면 15분을 기다려야 했다. 만약 토요일날 왔으면 족히 1시간은 기다려야 했겠지.
전망대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1인당 1만 원 하는 티켓을 끊어야 했다. 뭐 2만 6천원을 내면 팝콘과 맥주 2잔을 주는 비어 세트 같은 것도 있었다.
나는 간단하게 1만 원짜리 티켓만 2장을 끊었다. 줄은 그래도 의외로 금방 줄어들었고,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었다.
- 띵
엘리베이터 안내 직원의 설명과 함께 전망대에 올라온 우리는 감탄을 하며 구경했다. 산 위에 있는 타워라 그런지 도시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천천히 전망대를 둘러본 우리는 사랑의 열쇠 철망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꿀이 떨어지는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한 커플에게 부탁해 나와 수정이 함께 나올 사진을 찍어달라 부탁했다.
“아. 찍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뇨. 하하. 저희야말로 감사합니다. 잘 나왔어요.”
“감사합니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전망대에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타자 문득 수정이 입을 열었다.
“오길 잘했다.”
“그거 다행이네.”
오늘 데이트를 하면서, 레전드 리그를 할 때 빼고 수정이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끊이지를 않았다. 그녀의 그런 모습을 바라보니 나 또한 흐뭇했다.
“저기서 먹을래?”
기념품관을 지나 내려오다가 수정이가 문득 한 표지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층에 있지 않고, 따로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레스토랑이었다. 저런 곳은 보통 예약해야 하지 않나. 그래도 일단은 올라가 보았다.
“오......”
“예쁘다.”
우리는 레스토랑의 입구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척 보아도 상당히 비싸 보이는 귀전풍의 레스토랑이었다. 내부도 깔끔하고 전망도 좋아서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레스토랑 앞에 우두커니 서서 내부를 살피고 있자 그녀는 내가 가격이 걱정돼서 망설인다고 여겼는지, 말을 덧붙였다.
“걱정하지 마. 내가 사줄게.”
“아니, 수정아. 너는 좀 그만 내야 해. 그러다 나쁜 남자한테 사기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나는 걱정스러운 어투로 말했다.
근데, 솔직히 말하면서도 조금 뜨끔하긴 했다.
이거 내가 할 말이 맞기는 한가?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냐, 맞아 맞아. 수정이는 내 히로인이니까. 나한테 사기당하는 건 되는데, 나 말고 다른 남자한테는 절대 사기당하면 안 된다. 암. 그렇고말고.
“피...... 어차피 너 말고는 아무한테도 안 이래. 우리 사귀는 사이잖아. 내가 좋아서 사주는 건데......”
“킥. 그래. 일단 들어가자.”
생각해보니 TGI 썬데이에서 실컷 먹고 영화관에서 팝콘을 먹은 뒤로, 우리 둘 다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였다. 그녀 또한 상당히 배가 고프리라.
“예약하셨나요?”
들어가자마자 우리는 직원에게 가로막혔다. 이야기를 해 보니 역시 예약자만 받는 레스토랑이었다. 수정이가 시무룩해져서 돌아가려던 찰나, 갑자기 직원이 무언가 생각난 듯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하고 어딘가로 갔다가 다시 왔다.
“자리가 하나 비었습니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얼떨결에 우리는 레스토랑 안으로 안내 받을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게다가 운 좋게도 창가 자리였다. 고급스러운 테이블에 앉은 우리는 메뉴판을 받고 바로 펼쳐 보았다. 손끝으로 느껴주는 메뉴판의 재질부터 심상치 않았다.
근데 잠깐만.
이거 가격의 상태가?
“뭐 먹을까?”
“커플 코스 이거 어때? 와인도 두 잔 나온데~.”
나는 그녀가 가리키는 메뉴를 바라보았다.
뭐 알아들을 수 없는 여러 설명이 여러 가지 적혀있었는데, 그들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단지 맨 밑에 적혀있는 코스의 가격이 단번에 내 눈을 사로잡았다.
‘31만원?’
이거 진짜 실화인가.
평생 아싸의 삶을 산 내게 저녁 2인에 31만원이라는 가격은 상상도 못 해봤다. 이번 저녁은 내가 낼 생각이었는데, 이런 곳에 오려면 양복이라도 입고 와야 하는 것 아닌가?
‘뭐, 그래도......’
꽤 비쌌지만, 아예 낼 수 없는 가격은 아니었다.
‘이런 경험도 한 번쯤 해보는 게 나쁘지 않겠지.’
지금은 볼품없지만, 언젠가 사랑스러운 히로인들에게 이보다 비싼 가게에서도 당당하게 음식을 사줄 수 있는 남자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 동안 아르바이트하면서 저금해둔 돈을 생각해보면, 그래도 최소한 2개월은 굶어 죽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물론, 그 안에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을 뭐라도 생각해 봐야겠지.
“좋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인 나는 직원을 불러 메뉴를 주문했다.
코스의 이름은 ‘익스클루시브 커플 코스.’ 직원은 알레르기 여부나, 스테이크의 굽기 등을 물어보고 퇴장했다.
앉아서 기다리고 있자 요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어뮤즈 부쉬입니다.”
직원은 각각의 음식이 구제르, 타르트, 크루도, 비프 타르타르라고 설명하고 떠났다.
솔직히 아는 게 타르트뿐이다.
“먹자.”
“응.”
음식은 굉장히 맛있었다. 분위기에 취한 탓도 있으리라.
어뮤즈 부쉬 다음에는 에피타이저가 나왔다. 특이한 모양의 만두와 저온조리한 당근과 전복의 퓨레, 그리고 청포도였다.
그다음으로는 스프가 나왔는데, 특이하게도 아이스 소르베와 함께 나왔다. 스프와 아이스를 금방 해치우자 메인메뉴가 등장했다.
“메인메뉴입니다.”
안심, 채끝, 부채살. 세 종류의 스테이크와 함께, 여러 가지 곁들임 요리들이 등장했다. 수정이는 사진을 찰칵 찍고는 스테이크를 썰어 내게 포크를 쑥 내밀었다.
“자, 아~~.”
나는 갑작스러운 공격에 살짝 당황하면서도 그녀가 건넨 스테이크를 물었다.
맛있다. 누가 파인다이닝급 레스토랑은 만족도가 떨어질 수 있다고 했는데, 음식 자체는 굉장히 맛있었다. 다만 가격이 엄청, 더럽게 비싸서 그렇지.
“그럼 수정이도. 아~ 해봐.”
“응. 아아~~~.”
‘좀 야한데.’
연분홍색으로 빛나는 입술이 살짝 벌어진 작은 입의 모습은 내 성욕을 자극했다. 언뜻 보이는 빨간 혀와 새하얀 이빨이 참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오늘은 그녀의 바람대로 4시에 변신해서 그녀를 범하지 않고 데이트를 했더니, 아무래도 그사이에 나도 쌓인 모양이다.
“아움...... 쪼옥.”
“......”
그런데 수정이는 그런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스테이크와 함께 포크까지 요염하게 빨아먹었다.
그리고 나서는 장난스럽게 눈웃음치기까지. 약간 부끄러워 보이지만, 뭔가 엄청 열심히 섹시한 척 어필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뭐야 저거. 지금 유혹하는 건가?
약간 당황했을 때, 그녀는 민망한 표정을 짓고는 테이블 위에서 새 포크를 하나 꺼내서 건넸다.
“미, 미안해...... 자 여기.”
“뭘 미안해. 괜찮아.”
피식 웃은 나는 포크를 받지 않았다.
솔직히 이 업계에서는 포상이다.
나는 수정이가 빨아먹은 포크를 이용해 스테이크를 썰고는, 그녀가 내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스테이크에 이어 그녀의 타액이 번들거리는 포크까지 맛나게 빨아먹었다.
- 쪼옥
그녀는 내 모습을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가, 이내 갑자기 부끄러워졌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는 식사를 계속했다. 그녀의 입가에는 다만 미소가 걸려있었다.
“......”
“......”
음식을 하나하나 먹을 때마다 우리는 말수가 적어졌다.
말은 오가지 않았지만, 어색한 기류는 흐르지 않았다. 그저 자연스러운 침묵이었다.
언젠가는 깨질 침묵. 그 침묵을 먼저 깬 것은 강수정이였다.
“진현아 나~ 꿈이 뭔 줄 알아?”
문득 그녀가 물었다.
크게 진지하지도, 크게 장난스럽지도 않은 목소리였다.
수정이의 와인잔은 반쯤 비어 있었다. 그녀는 딱히 취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약간의 취기를 빌린 듯 보였다.
나는 조명에 반사된 그녀의 눈빛 속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약간의 떨림과 두근거림. 나는 살짝 생각하는 척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으음~. 꿈이라. 방송이 잘 되는 거?”
“히히. 맞아. 처음에는 그냥 잘 먹고, 잘 살고~ 그러려면 방송 대기업에 되는 게 목표였어.”
“그럼 지금은 바뀌었어?”
“그대로야. 그런데, 거기에 하나가 추가됐어.”
그녀의 눈동자는 미약한 열망으로 불타올랐다. 반대로 두 볼에는 수줍은 기운이 서려 있었다.
“뭔데?”
“혀, 혀......”
그녀는 말하려다 말고 두 입술을 오물거렸다. 조명에 비춰 매력적인 분홍색으로 번들거리는 그녀의 입술은 정말로 색스러웠다.
“혀......? 혓바닥?”
“아잇! 그게 아니잖아.”
볼을 부풀린 그녀였지만, 이내 긴장이 풀렸는지 피식 웃었다.
“......현모양처야.”
매우 바람직스러운 꿈이었다. 나를 보필해주는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원래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진현이 너랑 요즘 지내면서 너무 행복했어. 고백해 줬을 때도......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어. 원래 내가 하려고 했는데.”
역시 수정이가 먼저 하려고 했구나. 하지만 순서 따위는 이제와서 어찌 되든 상관없으리라. 오히려 내가 먼저 고백을 해서 그녀의 호감도가 더 오른 것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오늘도...... 정말 최고로 행복한 하루였어. 같이 있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려. 역시 진현이 네가 내 운명의 사람이야.”
“운명?”
“응. 운명.”
내가 히로인 어플을 통해서 그녀를 히로인으로 설정한 순간부터, 우리는 운명으로 이어져 있는 것이다.
뭐어, 그녀는 그 동안 자신을 범한 것이 변신한 내 모습이라는 것을 모르지만.
“그, 그...... 그러니까. 오, 오늘......”
똑바로 말을 못 하던 그녀는 이내 침을 한번 꿀꺽 삼키더니, 결연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오늘 날 안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