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 어플-30화 (30/303)

〈 30화 〉# ‍https:/‍/‍t.m‍e/L‍i‍nk‍M‍oa

나는 구매한 승차권을 주머니에 넣고, 수정이에게 물었다.

“지금 바로 올라갈까? 아니면 조금 이따가 올라갈까?”

“조금 이따가?”

“응. 기왕이면 야경을 보는 게 좋다고 하네. 아직 5시도 안 됐으니까, 8시쯤 넘어서 오면 지금보다 경치가 훨씬 예쁠 거야.”

“혹시, 자주 와 봤어......?”

살짝 불안한 눈동자로 눈을 치켜 뜬 채 올려다보는 그녀의 모습은 귀여우면서도 섹시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니. 고등학교 다닐 때 가족끼리 한 번 와봤어.”

“아하.”

“그런데 이왕 왔으면 자물쇠만 걸지 않고 전망대도 한번 가 보는 게 좋잖아? 그러면 야경을 보는 게 훨씬 예쁘고. 케이블카 티켓은 오늘 안이면 언제 써도 상관없어.”

“이따 오는 건 좋은데, 으음...... 여기서 시간을 보낼 곳이 있나?”

수정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케이블카를 탈 수 있는 건물은 화장실, 매표소, 매점만 있는 3층짜리 건물이었다.

“조금 내려가면 아마 많을 거야. 커플이나 가족들이 오는 명소라서 근처에 뭐 볼링장, 당구장, 탁구장, 노래방 등등 시간은 보낼 곳은 널렸어.”

“아~.”

수정이는 미처 생각 못 했다는 듯 손뼉을 쳤다.

나 또한 볼링, 당구, 탁구, 노래 등. 뭐 하나 크게 잘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수정이와 하면 뭐든 재미있을 것 같기는 했다.

수정이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웃으며 내 손을 꼬옥 붙잡았다.

“그럼 그러자! 나도 야경을 보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그래~.”

우리 둘은 손잡고 왔던 길을 내려갔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역시 멀지 않은 곳에 놀 만한 장소들이 많았다.

처음에는 코인노래방을 갔다.

“하루에 네 번 사랑을 말하고~ 여덟~번 웃고. 여섯~번의 키스~를 해줘~.”

노래를 부르기 전에는 좀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는데, 한번 마이크를 잡으니 용기를 얻었는지 수정이는 노래를 부르면서 자꾸 나와 눈을 마주치며 생긋생긋 웃는다.

여자친구랑 노래방을 오면 이런 점이 참 색다르구나. 그 동안은 남자랑만 와봐서 항상 분노의 샤우팅만 했는데..... 이거 앞으로는 자주 와야겠다.

“boy~ boy~ boy~ boy~ boy~ boy~~~. 히히. 어땠어?”

“수정이 노래 되게 잘 부르는데?”

노래가 끝나자 자연스럽게 박수가 나왔다.

실제로 그녀는 노래를 잘 불렀다.

가수처럼 엄청 잘 부른다는 건 아니었지만, 목소리가 깔끔하고도 예뻤다.

얼굴에 어울리는 목소리라고 해야 하나. 음정도 나름 정확하고 듣고 있으면 입꼬리가 절로 올라가는 뭔가 치유되면서도 귀여운 음색이었다.

“헤헤, 고마워. 너는 뭐 부를 거야?”

“음~. 나도 뭐...... 신나는 거 불러야겠지?”

괜히 고음이 미친 듯 나오는 사랑 노래를 선택하는 만용은 부리지 않았다.

그래도 나 자신이 막 못 부르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적당히 신나거나 감미로운 노래들을 선곡했다.

수정이는 귀에도 호감도 필터가 작용했는지 연신 좋다고 꺅꺅거렸다.

“아~ 재밌었다. 조금 더 부르고 싶었는데.”

“방송하는데 목 상하면 안 되니까 조심해야지. 다음에도 또 오자.”

“응. 꼭이다?”

노래방에 이어서 우리는 당구장에 들렸다.

볼링, 탁구, 당구 중에서 그녀는 당구를 선택했다. 놀랍게도 셋 다 할 줄 몰라서 제일 덜 힘들어 보이는 걸 고른 거라고 했다.

“으으. 또 빗나갔어...... 너무 어려워.”

“괜찮아.”

나와 수정이는 1시간 동안 포켓볼을 쳤다.

초보자라면 당구보다는 포켓볼이 더 재미있을 테니까.

수정이는 당구에는 그다지 재능이 없는지 잘 치지는 못하였다.

나도 그리 잘 치는 편은 아니었지만, 엄청나게 봐주면서 했는데도 이겨버렸다.

뭐, 대신에 가르쳐주면서 마음껏 스킨쉽을 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그녀도 내가 밀착하는 게 싫지 않았는지, 가르쳐 줄 때마다 양 볼에 홍조를 띄웠다.

당구장에서 나온 나는 수정이에게 물었다.

“이제는 어디 갈까? 지금 6시 40분이야.”

“움. 그러게, 그럼 카페에 가서 커피라도......”

그때, 갑자기 말하다 말고 수정이의 시선이 어딘가에 고정되었다. 나는 그녀의 시선이 향한 종착지를 바라보았는데, 거기에는 웬 PC방이 있음을 알리는 전광판이 빛나고 있었다.

“PC방?”

“앗! 아, 아니! 아니야...... 데이트 하는데 PC방 가면 안 되지.”

“에이, 안 되긴 왜 안돼. 가고 싶으면 가는 거지. 가서 1시간만 할까?”

“그, 그럴까......?”

나는 우물쭈물하고 있는 그녀의 손목을 그대로 붙잡고 바로 PC방으로 향했다. 그녀는 약간 부끄러워하면서도 딱히 저항하지 않았다.

“우, 우와......”

PC방 안에 들어온 수정이는 감탄을 터뜨렸다. 그녀는 진심으로 놀란 듯 내부를 둘러보았다.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뭐지.

저건 처음 와보는 반응인데?

“혹시 PC방 처음 와봐?”

“아, 아니. 처음은 아닌데...... 여기 PC방이 너무 좋아서. 진짜 넓다.”

“확실히 좋긴 하네. 마지막으로 PC방 간 게 언제야?”

“으음...... 고등학교 다닐 때?”

아 하긴.

그녀의 집에 최고급 PC가 있는데, 굳이 친구랑 함께 게임 할 게 아니라면 딱히 PC방에 갈 필요가 없기는 했다.

“요즘 PC방들은 대부분 다 이래.”

“시, 신기하네......”

옛날에 비해 PC방은 정말로 많이 발전했다.

컴퓨터도 매번 업그레이드해야 살아남을 수 있고, 깔끔한 시설은 물론, 메뉴도 무슨 음식점 수준으로 다양했다.

물론 이 PC방이 특히나 더 좋아 보이긴 했다. 좌석도 많고, 카운터도 무슨 카페 하나를 보는 것처럼 넓고 다양한 메뉴들이 즐비했으니까.

나는 그녀를 데리고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수정이가 PC방을 안으로 들어오자, 게임을 즐기던 남자들은 흘끗흘끗 그녀를 쳐다보았다.

“야야. 대박. 저 누나 알바 누나보다 이쁜데?”

“와. 진짜네. 돌았다......”

남자들의 시선은 좀 끈적했지만, 여자친구의 칭찬이라는 건 그래도 듣기 좋았다.

“킁킁. 그리고 지나간 곳 냄새 개 좋아. 너도 맡아봐라.”

“미친놈아. 변태냐?”

“진짜 개 좋은데.”

“그, 그래? 킁킁......”

뭐, 변태도 있었지만......

“지, 진현아...... 어디......”

“저기에 앉자.”

수정이는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내 옷깃을 당기며 나를 재촉했다.

나는 PC방의 구석 쪽에 자리가 있음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갔다. 커플 좌석이었다. 나는 그녀를 벽면 쪽으로 앉히고 그녀의 바로 옆에 앉았다.

“와아. 커플석도 있네?”

“응. 고등학교때 간 PC방은 작았나 봐?”

“아마~ 여기보다 한 4배는 작았던 것 같아. 몇 번밖에 안가기도 했고.”

수정이는 웃으며 컴퓨터를 켰다.

간단하게 회원가입을 하고 로그인을 하자 넓은 스크린 가득 바탕화면이 나왔다.

나는 수정이의 아이디를 확인하고 둘 다 100분씩 시간을 충전했다.충전하고 오자 수정이는 컴퓨터의 사양을 확인하고 있었다.

“흐흥. 컴퓨터는 내가 더 좋네?”

그야 뭐, 당연히 좋겠지.

그녀의 컴퓨터는 내가 지금까지 실제로 본 컴퓨터 중 가장 좋아 보였다. 승리자의 미소를 띠는 수정이를 바라보고 있자, 문득 그녀가 물었다.

“그러고 보니 진현아, 너는 무슨 게임 해?”

게임? 어......

어?

나는 수정이가 던진 물음에 살짝 말문이 막혔다. 생각해보면 요즘 컴퓨터 게임을 잘 안 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미친 듯이 하긴 했지만, 그 뒤로는 주로 모바일 게임을 즐겼다.

컴퓨터로 하는 건 미연시가 대부분. 그마저도 히로인 어플을 얻은 후로는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일단 가장 최근에 한 컴퓨터 게임이라면 ‘같은 섬에서 지내고 있는 폭유는 어떻게 하면 되나요?’라는 미연시였다.

“으음. 옛날에는 레전드 리그도 많이 했었는데......”

“했었는데?”

“욕 많이 먹고 접었지.”

“아......”

수정이는 안타까운 듯 탄식을 내뱉었다.

“근데 오랜만에 하면 또 재밌을 것 같아. 계정 탈퇴는 안 했으니까, 아이디 찾아볼게. 레전드 리그 하자.”

“나, 나 때문에 하기 싫은데 억지로 안 해도 되는데......”

수정이는 짐짓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야. 나도 오랜만에 해보고 싶어서 그래. 사실 레전드 리그 말고는 딱히 많이 해본 게임도 없고.”

“헤헤, 그래?”

“응.”

내가 말하자마자, 수정이는 레전드 리그를 켜서 접속했다.

그녀가 접속하는 것을 본 나는 레전드 리그 사이트에 접속해 내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찾기 시작했다.

인증번호를 입력하고 다시 수정이를 바라보자, 그녀는 레전드 리그의 클라이언트에서 무슨 미연시와 같은 것을 하고 있었다.

아니 저게 대체 뭐지?

왜 레전드 리그에 미연시 같은 게 있는 거지?

[ 어딘가 꺼림직한 숲이다. ]

[ 잔잔한 어둠과 끈적임이 공존하는 장소에서 당신은 누군가의 시선을 느낀다. ]

[ 1. 당장 나와! 나랑 싸우자! ]

[ 2. 이러한 숲에서도...... 나는 아름답고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는 걸까? ]

신기한 듯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자, 수정이는 흘끗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2번 선택지를 선택했다.

[ 칼날과 같던 나뭇잎이 거짓말처럼 흩어진다. 어둠으로 점칠 되었던 장소는 한순간에 꿈의 정원처럼 바뀌었다. ]

[ 노루정령 : 내가...... 아름답다고? ]

[ 노루정령 : 이, 이익! ]

[ 1. 안녕 노루야. ]

[ 2. 이익? ]

[ 3. 너는...... 누구지? ]

갑자기 배경이 바뀌며 노루의 하반신에 인간의 상반신을 가진 여자인 캐릭터가 나타나더니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자 버전 켄타우르스인가?

아니 그보다 왜 히로인같지?

스텐딩 일러스트가 나름 괜찮은데?

나는 캐릭터를 보며 참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얼굴..... 얼굴은 예쁜데, 몸이......’

세상에나.

레전드 리그에 미연시가 나오다니.

그것도 수인을 공략하는 미연시라니.

신성한 충격 속에서 입을 떡 벌리며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자, 수정이가 살짝 부끄러운 듯 장면을 다 넘겨버렸다.

“아, 아이디 찾았어?”

“아, 응.”

수정이가 PC방을 보고 놀란 것처럼, 나 또한 레전드 리그를 보고 놀랐다.

세상은 참 빠르고 신기하게 바뀌는구나.

나는 찾은 아이디로 로그인을 했다. 가만히 수정이의 친구추가를 기다리고 있는데, 옆에서 그녀가 누군가와 메시지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누굴까?

궁금한 마음에 나는 그녀의 메시지를 훔쳐보았다.

[ 반포동 교회오빠 : 헤이 듀오 ㄱ? ]

[ 강한 크리스탈 : ? ㄴㄴ ]

[ 반포동 교회오빠 : 아 왜. 오빠가 버스 태워줄게. 디코 들어오3. ]

[ 강한 크리스탈 : 필요 없음 ㅋ; 그리고 너 때문에 저번에 4연패 했잖아. 니가 똥싸서. 개못하면서 듀오는 무슨 듀오. ]

[ 반포동 교회오빠 : ? ]

수정이는 ‘반포동 교회오빠’라는 닉네임을 가진 사람이랑 친한 듯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반포동 교회오빠라니,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뭐야. 누구야?”

내 물음에 수정이는 나를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장난스러운 미소를 띄웠다.

“왜에~ 궁금해?”

“응.”

“히히. 그냥 나랑 친한 스트리머야~. 여.자. 스트리머.”

유독 여자라는 점을 강조해서 말했다. 내가 질투를 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질투가 맞긴 하지.’

수정이는 앞으로도 영원히 나만의 것이니까. 그녀는 다시 채팅을 쳤다.

[ 반포동 교회오빠 : 너 저번에 나한테 1:1 졌잖아. ]

[ 강한 크리스탈 : ? 대체 몇 달 전 일을 언제까지 우려먹는 거? 다시 뜨자니까? ]

[ 반포동 교회오빠 : 너 개 못하잖아~ 응~ 안 해~ ]

[ 강한 크리스탈 : ㅡ.ㅡ 쫄았냐? ㅋ ]

[ 반포동 교회오빠 : ㅋㅋ 아무튼 듀오 진짜 안 함? ]

[ 강한 크리스탈 : ㅇㅇ 나 실친이랑 듀오하려고 켠 거임. ]

[ 반포동 교회오빠 : 아 그럼 ㅇㅋ ]

그래도 예화 말고 친해 보이는 친구가 있어 다행이었다. 흐뭇하게 채팅을 보고 있자, 수정이 채팅을 마치고 나를 초대했다.

“어디 갈 거야?”

아마도 내 포지션을 물어보는 것이리라. 게임에는 총 5개의 포지션이 존재했다.

“나 정글 갈게.”

“응, 그럼 나는 탑.”

나는 몇 년 만의 정글을 했다.

“아......”

그리고...... 적한테 그야말로 미친 듯 박살이 났다.

아니. 저 챔피언들은 뭔가. 갑자기 몸이 안 움직이더니 풀피였던 내 HP가 단 한방에 0이 되었다. 그래도 나름 골드였는데, 솔직히 나도 내가 이렇게까지 못할 줄은 몰랐다. 미안해 수정아.

- Q평R평니가슴평평( 어펠리오스 ) : 정글 차 진심 개오지네 ㄹㅇ

- 남산고슬픈주먹( 빅투르 ) : ㅈㄱㅊㅇ 15GG

- Q평R평니가슴평평( 어펠리오스 ) : 아니 XX 진짜 혜지면 얌전히 서폿이나 쳐 가서 버스나 받지 뭘 정글까지 기어 올라가냐 ㅋㅋ

사람들이 하나 둘 내 욕을 하였다.

히로인 어플을 얻고 내 멘탈이 강해진 건가, 이전과 다르게 멘탈에는 전혀 타격이 없었다.

그러나 내 옆에서 열심히 게임을 하던 수정이는 아닌 모양이었다.

그녀는 나를 비난하는 채팅에 씩씩거리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오리모드가 발동됐구먼.

- 강한 크리스탈( 다리오스 ) : 참.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죠. 어떻게 그렇게 욕하고 갈구나요?

- 남산고슬픈주먹( 빅투르 ) : 저 실력이 실수? ㅋㅋ

- Q평R평니가슴평평( 어펠리오스 ) : ㄹㅇ ㅋ 선비 납셨네. 뭐냐? 저 정글년 혹시 니 여친이냐?

- 강한 크리스탈( 다리오스 ) : 남친인데요. ㅡㅡ

- 남산고슬픈주먹( 빅투르 )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엌ㅋㅋㅋ

수정이는 열심히 채팅을 치기 시작했고, 미드와 원딜 또한 그에 질세라 열심히 채팅을 쳤다.

결국 아군들은 전부 다 우물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 채팅 파티를 벌였다.

나는 그냥 아무 채팅도 치지 않은 채 열심히 정글 몬스터만 사냥했다. 그러다 적한테 발각되어 죽기를 반복했다.

- 전설의 출현!

‘아이고......’

아군들은 여전히 죽는 나를 비난했지만, 수정이는 필사적으로 나를 변호했다.

게임을 나 때문에 진 건 맞는데, 그녀는 엄청난 채팅과 정치 실력으로 화살표를 내게서 원거리 딜러의 인성 문제로 돌려버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