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 https://t.me/LinkMoa
“응? 왜?”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수정을 바라보았다.
“그...... 그런 거 계속 먹으면 건강에 안 좋아.”
흠. 뭔가 우리 엄마가 할 법한 말이다. 뭐, 스팸이나 라면이 몸에 좋다고는 볼 수 없었다.
그녀의 표정에는 뭔가 각오가 서려 있었다.
“그래도 내가 먹을만한 건 이 정도인걸? 나는 요리할 줄도 모르고.”
나는 그녀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었다. 실제로도 할 줄 아는 요리는 라면과 볶음밥 정도가 끝이었다.
배달시켜 먹으면 편하긴 하지만, 돈을 펑펑 쓸 만큼 여유롭지는 않았다.
그녀는 내 말을 기다렸다는 듯 눈을 빛냈다.
“그러면...... 그래! 우리 집에 와!”
“너희 집에?”
“으응. 내가 요리해줄게......!”
결연한 표정으로 두 손을 앙증맞게 모은 모습이 귀여웠다.
나는 슬쩍 장바구니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이렇게 재료를 많이 산 거야?”
“뭐...... 맞아.”
강수정이 쑥스럽다는 듯 웃었다. 나야 환영이다. 미인이 직접 해주는 요리라니, 나름 기대되었다.
손맛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고 보니 이성 친구가 직접 해주는 요리를 먹는 것도 처음이네.
“올 거야......?”
그녀는 짐짓 떨리는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치명적인 표정이다.
“그래도 돼? 요리까지 해준다니 좀 미안한데.”
“절대 아니야! 나 요리 진짜 좋아하거든.”
딱히 거짓말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피식 웃으며 스팸을 제자리에 돌려 두었다.
“그래. 그럼 갈까?”
“응!”
******
강수정은 사 온 식재료들을 정리했다. 진현은 음료수를 정리하고 바로 올라온다고 했다.
“휴우. 좋아!”
그녀는 요리에는 자신이 있었다. 평소에도 스스로 요리를 해 먹었기 때문에 익숙했다.
나쁘지 않은 몸매를 유지하는 것도, 나름대로 균형 있는 식습관 덕분이었다.
‘으으. 그런 것치고는 살이 좀 있긴 한데......’
그녀는 자신의 배를 꼬집어 보았다. 약간의 군살이 엄지와 검지 사이에 잡혔다.
이것 때문에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데,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예화는 전혀 뺄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그녀는 상당히 신경 쓰였다.
“진짜 오히려 있는 게 좋은 건가?”
이걸 천진현은 좋아할까?
‘주인니...... 아니, 아니. 미쳤어!! 그 사람도 배를 좋아하긴 하던데......’
매일 자신을 강제로 범하는 사람. 그와의 행위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이루어지고 있었다.
일주일 전부터 호칭도 주인님으로 부르라고 해서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어제만 해도 그는 자신에게 5번이나 사정했다.
입에 1번 안에 4번. 임신이 걱정될 지경이었지만, 그는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실제로도 반응은 없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으......’
솔직히 이제는 생각만 해도 유두와 음핵이 찌릿찌릿해진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런 관계를 유지할 수는 없었다.
이미 천진현을 좋아하는데, 다른 사람에게 강제로 불려가 매일 같이 성관계를 한다니. 그녀는 이미 죄책감을 안고 있었다.
이 사실을 천진현이 알면 어떻게 될까? 그러나 그는 무슨 초능력 같은 것으로 자신을 불러냈기 때문에, 전혀 저항할 수가 없었다.
‘오늘 고백에 성공하면...... 이 관계를 끝내 달라고 하자.’
어쩌면 진심을 다해서 말하면 들어줄 수도 있었다.
이제는 4시가 다가오기만 해도 저절로 몸이 반응하는 지경이 이르렀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미칠 듯한 쾌락도, 분명 다 환상일 뿐일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강제로 범하는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다만 천진현을 좋아했다.
분명 천진현과 사귀고...... 또 진도를 나가 사랑이 담긴 관계를 맺으면, 훨씬 기분이 좋을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마저 재료를 정리했다.
******
구매한 음료수들을 대충 냉장고에 넣고 그녀의 집인 501호로 올라가자, 그녀는 앞치마를 입고 있었다.
무슨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곰 모양의 귀여운 앞치마였다. 노린 건가?
“어, 어서와......”
“왜 그렇게 부끄러워해?”
“아니이~. 그냥 집이 조금 지저분해서.”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의 집은 정돈이 잘 되어있었다.
나도 요즘은 정리를 잘 해두고 있었지만, 역시 그녀와 나는 깔끔함의 정도가 달랐다.
으음. 근데 묘하게 좋은 냄새도 나는데...... 뭐지?
급히 방향제를 뿌린 것 같기는 한데, 그 사이로 강수정의 체취로 생각되는 냄새가 느껴졌다.
“뭐, 뭐 하는 거야!”
그녀는 내 팔을 살짝 쳤다.
“왜 그래?”
“킁킁거리지 마아......”
흠. 아무래도 내가 대놓고 코를 벌렁거렸나 보다. 그런데 냄새가 좋은 걸 어쩌나.
“저기서 방송을 하는 거야?”
“응. 생각보다 좁지?”
작은 방안에는 컴퓨터 한 대와 커다란 책상이 겨우 들어서 있었다.
이 원룸은 거실과 주방이 합쳐진 구조에 오른쪽에 화장실 1개, 왼쪽으로 작은 방이 하나 존재했다.
그녀는 작은 방을 방송용으로 쓰고, 침대는 주방 옆의 마루와 같은 공간에 두었다.
“이제 요리할게. 쉬고 있어.”
“응.”
송송송송.
나는 자그마한 식탁에 앉아 그녀가 요리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그녀는 오늘 외출할 때 입었던 옷 위에 앞치마를 걸치고 양파를 썰고 있었다.
보통은 더 편한 옷으로 갈아입을 텐데, 계속해서 예쁘게 보이고 싶은 모양이었다.
“귀찮지 않아?”
턱을 괴고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문득 물었다.
“으응~ 전혀.”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오히려 재미있어. 나도 부모님 말고 다른 사람한테 줄 요리하는 건 처음이거든.”
“그렇구나.”
처음이라. 야한 울림이다. 나도 뇌가 먹혀버렸군.
“근데 그렇게 구경하기만 하면 많이 지루할 텐데...... 아! 방에서 컴퓨터 해도 돼. 레전드 리그도 깔려있어. 컴퓨터 비밀번호는 0224야.”
“비밀번호 그렇게 함부로 알려줘도 돼?”
“괜찮아. 뭐어~ 여차하면 바꿔도 되고?”
비밀번호 0224. 혹시 생일인가? 메모해둬야겠다.
“좋은 컴퓨터라 렉도 안 걸릴걸? 레전드 리그 말고도 게임은 많이 깔려있어.”
“그래?”
레전드 리그라. 그 게임은 오히려 설치가 안 되어있는 편이 드물었다.
뭐, 나는 거기서 부모님을 50번 정도 잃고 접었지만......
옛날에 지른 돈을 합치면 적어도 30만원정도 될 텐데, 지금 생각하면 아까웠다.
확실히 그녀의 목소리 톤에서는 게임을 좋아한다는 게 느껴졌다. 작은방 안의 컴퓨터는 겉으로 보아도 화려해 보였다.
허름한 원룸과는 어울리지 않는 최고급 컴퓨터. 본체는 삐까뻔쩍했고, 모니터도 듀얼이었다.
저런 컴퓨터라면 한 번쯤 해보고 싶기는 했다. 내가 컴퓨터 게임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괜찮아. 나는 네 모습 구경하는 게 더 재밌어.”
“그, 그래? 흐응......”
나는 가만히 그녀가 요리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그녀에게 한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솔직히 그녀를 구경하는 게 컴퓨터 게임보다 재미있었다. 뒷모습만 보아도 그녀의 깔끔한 라인이 느껴졌다.
거의 70에 가까운 몸매 능력치를 지녀서 그런가. 확실히 대단했다.
‘골반도 대박이네.’
그녀는 가슴만 큰 게 아니라, 골반도 잘 잡혀 있었다.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요리하는 그녀의 뒷모습은 확실히 뒤치기가 마려운 모습이었다.
솔직히 습관적으로 엉덩이를 때릴 뻔했다.
‘나중에는 알몸 에이프런도 입혀야겠어.’
그녀를 완전한 내 것으로 만들면 어떤 플레이들을 해볼지 상상하고 있자, 어느새 요리가 완성되었다.
“휴. 다됐다~!”
“옮기는 거 도와줄게.”
“아냐, 아냐. 괜찮아. 앉아있어.”
그녀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밥과 순두부찌개를 준비했다.
그 외에도 김, 계란말이, 김치, 두부조림 등 여러 가지 반찬들이 많이 나왔는데, 거의 뭐 임금님 수준이었다.
“와. 이렇게 많이......”
솔직하게 감탄했다.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다 준비했다는 수준이었다.
반면에 그녀의 그릇에는 밥과 국이 정말 쥐꼬리만큼 담겨 있었다.
“너무 조금 먹는 거 아니야?”
“괜찮아. 이 정도만 먹어야 다이어트가 돼서.”
“에이, 다이어트 안 해도 이쁘다니까.”
“히히. 고마워.”
간단한 칭찬에도 그녀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걸렸다.
그러다가 그녀는 잠시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았다.
“너...... 너도 혹시 뱃사......!”
“뱃사?”
“아, 아무것도 아니야! 얼른 먹어봐.”
“그래~. 잘 먹겠습니다.”
허겁지겁 고개를 저은 그녀는 나를 재촉했다.
숟가락으로 국물을 한술 떠먹으니, 온몸에 따뜻한 기운이 퍼졌다.
“오?”
“어, 어때......?”
그녀는 긴장되는 표정으로 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진짜 맛있다. 혹시 요리학원이라도 다녔어?”
“아니~. 엄마한테 배웠어. 헤헤. 맛있다니 다행이다.”
그녀의 얼굴은 행복해 보였다.
“나 순두부찌개 좋아하는데, 혹시 알고 한 거야?”
“응. 전에 먹는 걸 봤거든.”
“아하.”
솔직히 정말로 기대 이상이었다. 국 말고 다른 반찬들도 전부 수준급이었다.
별로 맛이 없더라도 맛있다고 해주려고 했는데, 오히려 빈말이라도 맛없다고 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더 있으니까, 모자라면 말해.”
그녀는 내가 먹는 모습을 웃으며 지켜봤다.
“응. 고마워. 수정이랑 결혼할 사람은 정말 행복하겠어.”
“겨, 결혼......”
진심이었다. 이렇게 제대로 된 밥을 먹어본 게 얼마 만인지.
그녀는 잠시 얼굴을 숙이고 쑥스러워하다가, 이내 무언가를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진현. 너는 어떤 여자가 이상형이야?”
“어? 이상형?”
“응. 뭐 똑똑한 여자라든지 그런 거 있잖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것도 같지만, 눈동자가 떨리는 것을 보니 꽤 용기를 낸 것 같았다.
“으음. 그러게...... 이상형이라.”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솔직하게 말했다. 뭐, 답은 정해져 있었다.
“역시 예쁜 여자지. 아. 몸매 좋은 여자도 좋다.”
그래!
나는 천하제일미녀들로 나만의 하렘왕국을 차릴 것이다!
“......치. 그런 거 말고.”
그녀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진심이었는데.
뭐, 그녀가 원하는 답변이 뭔 줄은 알 것 같았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어. 요리 잘하는 여자가 좋지.”
“그, 그래?”
“응. 그리고 요리할 때 곰이 그려진 앞치마를 입는 여자도 좋아.”
“어......?”
수정의 눈빛이 약간 당황으로 물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가슴팍을 바라보았다. 볼륨 있는 가슴 앞에 아기곰이 웃고 있었다.
“게임 좋아하는 여자도 좋고, 매일같이 나랑 산책가는 여자도 좋아.”
나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특히 이렇게 나를 위해서 요리해주는 여자..... 네가 정말 좋다.”
“......”
“그러니까 나랑 사귀자. 수정아.”
******
“그러니까 나랑 사귀자. 수정아.”
심장 소리가 강하게 들려온다. 강수정은 지금 들은 말이 믿기지 않았다.
‘나 고백받은 거야?’
오늘은 내가 고백하려고 했는데. 만약 잘 안 되더라도 그냥 쓰게 웃고 넘기려고 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불의의 일격을 맞아버렸다.
“지, 진짜로......?”
“그럼 진짜지.”
“농담 같은 거 아니지?”
“내가 지금 농담하는 걸로 보여?”
아니. 안 보였다.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의 눈빛은 자신을 똑바로 직시하고 있었다.
뭐야아, 나만 좋아하는 게 아니었구나. 정말 다행이다. 강수정은 순간 긴장이 풀려버렸다.
“뭐야. 왜 울어.”
“으응?”
진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강수정의 눈가에 살짝 묻은 물기를 닦아주었다.
자신도 몰랐는데, 아주 살짝 눈물이 났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 건가, 아니면 기뻐서 그런 건가.
아마도 둘 다겠지. 커다란 엄지가 눈가를 한번 쓸자, 수정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
“......”
그녀는 진현과 눈이 마주쳤다. 한 번도 이러한 분위기를 겪은 적이 없었지만, 그녀는 본능적으로 지금의 상황이 어떤 상황인 줄 알 수 있었다.
묘한 분위기 속에서, 수정은 먼저 눈을 감고 입술을 살짝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