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 어플-20화 (20/303)

〈 20화 〉# https://t.me/LinkMoa

[ 축하합니다! ‘깔끔한 포장 뜯기’가 발동됐습니다! ]

[ 상자의 등급보다 1등급 높은 아이템을 획득합니다. ]

[ 축하합니다! 아이템, ‘천리염기공(天理炎氣功)’을 획득하셨습니다. ]

“어?”

상자 하나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교과서와 같은 책 모양 아이콘이 자리 잡았다.

‘깔끔한 포장 뜯기라니…….’

다른 게임들로 치면 강화 대성공 같은 건가?

아무튼, 1등급 더 높은 아이템을 획득했다는 것은 호재였기에 나는 기쁜 마음으로 아이콘을 클릭해 얻은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했다.

[ 천리염기공(天理炎氣功) ]

◆ 등급 : 9등급

◆ 분류 : 서적

◆ 설명 : 일염신류(一炎神流)의 기초 심법, 천리염기공(天理炎氣功)을 익힐 수 있도록 히로인 어플에서 자체 제작한 물건이다. ‘기환단(氣’丸丹)‘ 1환이 같이 들어있다.

◆ 옵션 : 없음

“천리… 염기공?”

처음 들어보는 단어다. 마치 무협지에서나 나올 법한 이름인데……

정말 무공 같은 것인가? 갑자기 뜬금없이 기공이라니?

의문이 들었지만 나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판타지에서나 나올 법한 마법적인 아이템들이 있는데, 무공 같은 게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는 않았다. 연애 보조 옵션이라는 말이 없으니 상자에서 이런 것도 나오는구나.

“일단 다른 남은 상자 하나도 마저 까보자.”

나는 이번에는 연애 보조 옵션이 달린 상자를 사용했다.

[ 아이템, ‘무작위 연애 보조 옵션 아이템 상자( 등급 : 10급 )’를 사용합니다. ]

[ 축하합니다! 아이템, ‘처녀 판독 안경’을 획득하셨습니다. ]

“처녀 판독 안경?”

아쉽게도 이번에는 깔끔한 포장 뜯기인가 뭔가가 걸리지 않은 모양이다.

그나저나 처녀를 판독한다고?

…뭐지?

나는 안경 모양 아이콘을 클릭해 정보를 보았다.

[ 처녀 판독 안경 ]

◆ 등급 : 10등급

◆ 분류 : 장신구

◆ 설명 : 47세 동정 마법사가 자신의 인생에 한을 품으며 앞으로는 왕국의 유명한 처녀 사냥꾼이 되겠다고 결심하며 만든 마법 안경… 을 본떠 히로인 어플에서 자체 제작한 물건이다. 안경을 착용하고 여성을 바라보면, 처녀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 옵션 [-]

1. 처녀 판독

- 안경을 착용한 채 여성을 바라보면, 해당 여성이 처녀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

참 신기한 아이템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47세 동정 마법사라니. 나보다도 훨씬 심각하군.

47년 동안 동정이면 능히 이런 아이템을 만들 법하긴 했다.

‘어디 바로 시험해 볼까?’

지금은 이른 아침이고, 버스의 구석 자리에 앉아있었기 때문에 아이템을 소환하는 걸 들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안경을 구현화 하여 얼굴에 한 번 착용해 보았다. 평소에 안경을 끼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 불편하긴 했다.

‘어디…….’

창문 밖을 바라보자,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여성들의 모습이 보였다. 안경을 착용하고 그녀들을 바라보자, 그녀들 위로 하나의 메시지들이 둥둥 떠다녔다.

[ 처녀 : X ] [ 처녀 : X ] [ 처녀 : O ] [ 처녀 : X ]

“…….”

정말 단순하게 처녀인지 처녀가 아닌지만 알려주는 안경이었다.

‘이걸 어디다 써먹냐.’

싶었지만, 뭐 언젠가는 쓸 일이 있겠지 하여 나는 다시 인벤토리 안으로 안경을 집어넣었다.

‘다음은 천리염기공인데…….’

나는 버스에서 내려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바로 천리염기공 아이템을 구현화 하였다.

- 툭

바닥에 깔끔한 책 한 권과 함께, 작은 목함이 하나 떨어졌다.

나는 우선 책을 집어, 한번 스윽 훑어보았다.

“호오.”

책은 딱 평균적인 고등학교 교과서 정도의 두께였는데, 스르륵 넘겨보니 뭔가 설명이 굉장히 자세히 적혀있었다.

그렇다고 글만 있는 것은 아니고, 사람 모양의 그림과 함께 어떤 자세와 구결을 취해야 하는지 아주 자세하고 깔끔하게 적혀있는 것 같았다.

“이걸 익히면 나도 뭐 내공 같은 걸 쓸 수 있는 건가?”

분명 아이템의 설명에는 이 천리염기공이 일염신류라는 것의 기초 심법이라고 되어있었다. 무협지에서 심법은 보통 내공을 모으는 호흡법을 뜻했는데, 내 생각이 옳다면 아마 그럴 것이다.

“근데 이거 직접 공부해야 하나 보네.”

지금까지 얻은 사탕 생성기, 레이저 스틱, 욕망의 물 변환기, 처녀 판독 안경 등의 아이템은 아이템 그 자체에 마법적인 효력이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은 아니었다.

직접 책의 내용을 학습해야 했다.

내심 책을 잡자마자 책의 정보가 머릿속에 들어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 다른 아이템들은 옵션이 있는데, 이 아이템은 옵션이 없는 이유가 그러하리라.

‘단환은…….’

나는 책을 내려놓고 같이 떨어진 목함을 열어보았다. 목함 안에는 동그랗고 불그스름한 커다란 알갱이 하나가 들어있었다. 크기는 대략 엄지손가락 한 마디 정도 됐는데, 뭔가 묘한 기운을 품고 있다는 것이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지금 먹으면 안 될 것 같네.’

단환을 바라보자 그냥 먹으면 안 될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책도 그냥 한번 훑어본 것으로는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알 수 없었다.

‘나중에 자세히 읽어보자.’

시간이 날 때 읽어보기로 하고 나는 슬슬 코인을 사용하기로 했다.

‘우선 강수정의 호감도를 조금 올려 볼까.’

나는 히로인 어플에서 강수정의 현 상태를 확인했다.

◆ 현 상태

- [ 호감도 : 19 ]

- [ 연분도 : 12 ]

- [ 성욕 : 29 ] [ 식욕 : 67 ] [ 피로 : 82 ]

‘호감도는 변한 게 없네.’

그녀의 호감도는 19인 그대로였다.

원래 8이었던 호감도를 19로 올리고, 그 다음에 그녀를 소환하여 강제로 범했다.

호감도가 마이너스로 떨어져도 시원찮을 판에 변한 게 없다는 소리는, 그녀가 변신한 내 모습을 나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소리이다.

‘즉, 호감도는 그녀가 인지한 것에 대해서만 적용된다.’

예상했지만 잘된 일이다.

나는 그녀의 호감도를 터치했다.

[ 히로인, '강수정'에게 코인을 후원하여 현 상태, ’호감도‘를 올리겠습니까? ]

[ 호감도 능력치 변화 : 19 -> 20 ]

[ 코인 변화 : 2227 -> 2217 ]

[ ( 예 / 아니오 ) ]

[ 축하합니다! 히로인, '강수정'의 호감도가 '20'으로 올랐습니다. ]

[ 히로인의 호감도가 '20' 이상이 되었습니다! ]

[ 히로인, 강수정의 정보에 '이벤트' 항목이 추가됩니다. ]

나는 그녀의 호감도를 50까지는 올리려고 했다. 그런데 그 전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이벤트?”

의문을 표할 틈도 없이, 강수정의 현 상태 아래에 이벤트 항목이 새로 생겨났다.

◆ 이벤트

[ 대상 : 강수정 ]

[ 시간 및 장소 : 오늘 11:32 AM, 옐로우 빌라 401호 앞 ]

[ 키워드 : 장 보기, V마트 ]

“음. 오늘 11시 32분이면, 4시간 뒤인데.”

옐로우 빌라는 지금 내가 거주 중인 원룸 빌라의 이름이었다. 401호에 거주하고 있었다.

'이벤트면… 4시간 후에 집 문 앞에 있으면 강수정을 만날 수 있다는 건가?'

이벤트라는 것이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그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변한 호감도를 확인하기 위해 어차피 강수정을 찾아갈 생각이었는데, 마침 잘된 일이었다. 자연스러운 만남이 더 좋은 법이니까.

“일단 호감도를 더 올려보자.”

나는 그녀의 호감도를 더욱더 올렸다. 코인은 많았기에, 막 써도 되었다.

[ 히로인, '강수정'에게 코인을 후원하여 현 상태, '호감도'를 올리겠습니까? ]

[ 호감도 능력치 변화 : 29 -> 30 ]

[ 코인 변화 : 2037 -> 2017 ]

[ ( 예 / 아니오 ) ]

[ 축하합니다! 히로인, '강수정'의 호감도가 '30'으로 올랐습니다. ]

하지만 30을 찍은 그녀의 호감도는 더 올릴 수 없었다.

[ 현재 연분도가 낮습니다. 연분도를 더 올려야 호감도에 코인을 후원하실 수 있습니다. ]

'젠장.'

어쩐지 너무 쉽게 풀린다 했다.

'호감도를 더 올리려면 이벤트를 통해 연분도를 쌓으라는 건가?'

나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어플을 종료했다.

일단은 그녀를 만나봐야 할 것 같았다.

******

4시간 뒤.

“좋아.”

나는 이벤트까지 남은 4시간 동안 씻고, 잠시 눈을 감아 피로를 몰아냈다. 그리고 나갈 준비를 마친 뒤 현관문 앞에 서서 문에 귀를 바짝 대고 있었다.

현재 시각은 11시 31분 30초.

이벤트 시간보다 조금 앞서 가만히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자, 마침내 위층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 터벅, 터벅

'왔다.'

발걸음 소리가 천천히 들려왔다. 계단을 내려오는 속도가 상당히 느렸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다가, 마침내 발걸음 소리가 문 앞에 거의 당도했다.

그때, 나는 자연스럽게 문을 열었다.

- 철컥

“아…….”

“어. 안녕하세요?”

예상대로 문 앞에는 강수정이 서 있었다.

내가 문을 벌컥 열고 나오자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녀는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마주 인사했다.

“네, 안녕하세요…….”

'오 대박.'

톡톡 쏘는 사나운 말투가 아닌, 예의 바르고 공손한 인사였다.

확실히 호감도 30을 찍어서 그런지, 이전과 같은 노골적인 사나움이 담겼던 태도와는 확실히 달랐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데?'

사나움이 빠졌다고 해도 그녀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헐.

나는 무언가 걸리는 마음에 그녀를 살펴보았는데, 그녀를 자세히 바라보니 눈이 팅팅 부어있고 잠을 잘 자지 못했는지 굉장한 피곤해 보였다.

게다가 계단의 손잡이에 기대듯이 서 있는 모습을 보니 몸도 잘 겨누지 못해 보였다.

나는 걱정된다는 듯 그녀에게 물었다.

“저기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아, 아뇨, 별일 없었어요.”

그녀는 내 물음에 몸을 흠칫 떨더니, 순간적으로 슬픈 표정을 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바꾸며 억지웃음을 지었다.

'으음. 내가 어제 좀 심하게 하긴 했나 보네.'

그녀를 범했을 때 그녀 또한 육체적 쾌감은 컸겠지만, 엄연히 처음이었고 강간이었다. 아마 정신적으로 힘든 부분이 상당했을 것이다.

게다가 고통을 쾌감으로 바꿔주는 크림이 적용되는 것은 딱 3시간뿐.

크림의 효과로 하는 당시에는 고통이 쾌감으로 느껴졌겠지만, 효과가 풀린 다음에는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마치 마취가 풀리고 고통이 한 번에 찾아온 느낌이겠지.

'끙.'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니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털었다.

'후회하면 안 되지.'

나는 이미 쓰레기의 길을 걸었다.

한번 쓰레기의 길을 걷기로 했으면, 끝까지 쓰레기의 길을 걷고, 또 철저하게 쓰레기의 길을 걸어야 했다.

이제와서 후회해봤자, 더 어중간해지기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내 히로인이 트라우마를 가지는 건 싫은데.'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그 고통조차 덮을 정도로 더 강렬한 쾌감을 그녀에게 주는 것뿐이었다.

변신한 모습으로는 극상의 쾌감을. 이 모습으로는 그녀에게 친절하게 대하며 다가가면 될 것이다.

나는 정말로 걱정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혀 별일 없어 보이지 않는데. 혹시 그 친구분과 싸우셨나요?”

“아. 예화… 그건 절대 아니에요!”

“그래도 무슨 일이 있는 건 맞네요. 혹시 붉은 실인가 뭔가 그것 때문이에요?”

“붉은 실? 아!”

그녀는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그것도 아니에요. 그리고… 그때는 정말 죄송했어요. 제가 좀 예민했었나 봐요.”

그녀가 내게 사과했다. 호감도가 한자리였던 시절에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에요. 저야말로 죄송해요. 그땐 너무 매몰차게 대한 것 같네요.”

더이상 깊게 물어보는 것은 실례일 수 있으니 나는 그녀에게 마주 사과한 뒤 가만히 있었다.

“…….”

“…….”

그렇게 우리는 10초 동안 말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그녀는 그 분위기가 어색했는지 손가락을 꼼지락하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 먼저 가셔도 돼요.”

“같이 가지 않으실래요?”

“네에?”

내 말에 그녀가 깜짝 놀라 물었다. 나는 웃으면서 미리 준비해 둔 장바구니를 그녀의 앞에 흔들었다.

“제가 지금 장 보러 가거든요. 수정씨도 손에 장바구니를 들고 있길래, 혹시 장 보러 가시는 게 아닌가 싶었어요.”

“아… 맞아요. 저도 지금 장 보러 가요.”

“마침 잘됐네요. 그럼 같이 가지 않으실래요? 컨디션이 좀 안 좋아 보이시는데, 제가 짐이라도 들어드릴게요.”

그녀는 살짝 놀란 눈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고마워요.”

사실 나는 컵라면이나 배달 음식으로 매번 끼니를 때워 장은 잘 보러 가지도 않지만, 이벤트에 장보기라는 단어가 있어 미리 방에 쑤셔둔 장바구니를 챙겨 두었다.

그리고 문에서 나왔을 때 그녀의 핸드백 옆에 있는 장바구니를 보고, 그게 정답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벤트가 어떤 식인지 알겠네.’

“그럼 가요.”

“네.”

속으로 웃은 나는 그녀를 부축하며, 계단을 한 걸음씩 내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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